일본 전범기업 사과·배상 빠진 ‘3자 변제안’

전범기업에 면죄부, 한국이 불법책임 떠맡는 셈

일본 위로금 출연한 위안부합의 때보다도 못해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정부의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 관련 해법 발표가 임박했다.

한국과 일본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는 6일 ‘제3자 대신 변제안’과 역대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죄 표명’ 계승 재천명, 그리고 배상과는 무관한 한일 ‘미래청년기금’ 공동조성을 골자로 한 ‘윤석열 해법’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지난 1월 12일 외교부 공청회에서 제시한 ‘제3자 대신 변제’ 방안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불법 행위를 저지른 피고인 일본 전범기업(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의 배상 참여는 무산된 듯하다. 윤 정부는 협상한다면서 시간만 끌었지, 시종 고압적인 일본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무릎을 꿇은 양상이 됐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외교부 자료사진]. 연합뉴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외교부 자료사진]. 연합뉴스

‘고압적’ 일본에 끌려다니다 결국 무릎 꿇어

이른바 ‘윤석열 해법’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모두 심각한 결함을 지녔다.

최대 결함은 다 알다시피 배상 책임이 있는 피고 일본 기업의 사과나 출연이 없다는 점이다. ‘윤석열 해법’의 골자는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위자료)을 피고인 일본 전범 기업 대신 한국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지급하는 것이다.

그 재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최대 수혜기업인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의 기부금만으로 조성된다. 이와 관련, 포스코는 5일 정부의 기부금 출연 공식 요청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윤 정부는 그동안 협상을 통해 피고 기업 등 일본 기업의 기금 출연을 ‘요청’했으나 일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 문제를 포함한 일제 과거사 문제는 법적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일본의 일관된 주장을 고수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돈을 대고 한국 재단이 배상금을 대신 갚게 되면, 가해 일본 기업들은 쏙 빠지고 일제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인 한국 정부와 기업이 불법 행위의 책임을 떠맡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된다. 주객이 뒤바뀐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국면이면 일단 협상을 중단하고 시간을 두면서 일본을 압박해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끌어내야 마땅한데도, 되레 윤 정부는 뭐에 씌기라도 한 듯 일본 전범 기업의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1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일본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2023.3.1 [공동취재] 연합뉴스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1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일본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2023.3.1 [공동취재] 연합뉴스

뜬금없는 ‘미래 청년기금’…강제동원 ‘덮기’

윤 정부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와 물밑 조율 아래 역대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죄 표명’ 계승 재천명에다가, 한국 유학생 장학금 지급 등을 위한 한일 ‘미래청년기금’의 조성에 일본 경제계의 참여 계획도 넣었지만, 핵심 현안인 강제동원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포장용’ 장치나 다름이 없다.

그동안 윤 정부는 우리가 먼저 피해자들에 대한 판결금 변제를 시작하면 일본 기업의 자발적 출연과 일본 정부의 유감 표명 등 '성의'를 기대할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설득해왔으나, 결국 일본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빈말’로 끝나게 됐다.

양금덕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강제동원의 불법성에 대한 일본 피고 기업의 인정과 사과이다. 그것이 진정한 문제 해결의 출발점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1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해 욱일기가 그려진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3.1 [공동취재] 연합뉴스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1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해 욱일기가 그려진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3.1 [공동취재] 연합뉴스

양금덕 “제대로 된 돈 아니면 필요 없다”

설사 ‘100원’에 ‘유감’을 표명하는 최소한의 수준일지라도 피고 기업의 사과와 배상 이 필요한 것도 그래서다. 그런 핵심 내용이 빠진 ‘윤석열 해법’은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더 큰 논란을 부르는 ‘악수’(惡手)가 될 공산이 크다.

앞서 양 할머니는 제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제3자 변제안'에 대해 “난 그런 돈은 아무리 굶어 죽어도 안 받는다”라고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양 할머니는 “옳고 그른 일을 분명히 우리나라에 말하고 제대로 된 돈을 주면 모르지만, 아무리 굶어 죽어도 천 냥, 만 냥을 줘도 필요 없다”라고 못 박았다.

‘윤석열 해법’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은 만족시키고, 정작 역설적으로 피해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래서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할 뿐이라는 우려가 짙어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6시 30분 쯤 본집회를 마친 뒤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일본 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이 피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쓴 대형 혈서 태극기가 행진 대열의 맨 앞에 펼쳐졌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6시 30분 쯤 본집회를 마친 뒤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일본 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이 피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쓴 대형 혈서 태극기가 행진 대열의 맨 앞에 펼쳐졌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징용 해법 ‘한국 단독 발표’도 일본 배려

발표 형식도 문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윤 정부의 ‘단독 발표’가 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동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단독 발표는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이미 다 해결'됐다는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이 해법을 발표하든 말든 일본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모양새를 연출하는 것이고, 윤 정부는 장단을 맞춰주는 모양새다. 이렇게 되면, 양국이 공동 발표했던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인 한일 위안부합의 때보다도 못하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어렵다. 당시에는 그나마 위로금이 일본 정부에서 나온 데다가, 지금의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방한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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