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법원 선고 “인권 침해에 대한 위자료” 명시

돈 지급 주체·방식 모두 전범기업들 불법 행위 덮어

양금덕 할머니 “우리나라가 뭣이 아쉬워 벌벌대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4년을 맞아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로 외치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졸속 해결과 대일 굴욕외교를 규탄하고 한일 및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 일본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및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에 대한 사죄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4년을 맞아 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로 외치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졸속 해결과 대일 굴욕외교를 규탄하고 한일 및 한미일 군사협력 중단, 일본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및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에 대한 사죄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인권 침해 사건을 단순히 돈 지급 문제로 전락시켰다.”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얻어낸 강제징용(동원) 피해자들이 제3자로부터 “판결금”을 대신 변제받는 방안을 윤석열 정부가 해법으로 제시한 데 대해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가 1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일본 전범 기업에게 “못 받을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이 주면 안 되겠느냐는 식”이라면서 윤 정부의 접근 방식을 비판했다.

 

군함도(일본명 하시마)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군함도(일본명 하시마)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법원 선고 “인권 침해에 대한 위자료” 명시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전원합의체 선고를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 인권 침해에 대한 개인 위자료 청구권 행사”를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원고인 피해자들에게 피고인 전범 기업이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도록 했다. 뒤이어 이에 불응하는 전범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하고 현금화 명령을 앞두고 있었으나 작년 7월 윤 정부의 요청으로 현금화는 중단된 상태이다.

대일 실무협상 책임자인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12일 외교부 주최 공개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윤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해법을 소개했다.

서 국장은 “채권 채무 이행의 관점에서 판결금은 법정 채권으로 피고인 일본 기업 대신 제3자가 변제 가능하다는 점이 검토됐다”면서 “핵심은 어떤 법리를 택하느냐보다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서 우선 판결금을 받아도 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1.12. 연합뉴스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1.12. 연합뉴스

돈 지급 주체·방식 모두 전범기업 불법행위 덮어

이런 윤 정부의 해법에는 몇 가지 심각한 결함이 있다. 첫째는 대신 변제하는 주체인 ‘제3자’가 한국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배상 판결로 원고에게 지급해야 하는 돈도 한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강제노역이란 불법 행위를 저질렀던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피고 기업은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공식 면죄부를 주겠다는 얘기다.

둘째는 ‘변제’라는 지급 방식의 문제다. 서 국장 스스로 실토했듯이 윤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금 지급 문제를 “채권 채무 이행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취하게 되면, 전범기업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관계는 단순히 ‘돈 문제’만 남게 된다. 강제동원을 통한 강제노역과정에서 일제 전범 기업들이 저질렀던 불법 행위는 없어지고 ‘채무’만 남았다는 말이 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3일 미국을 방문 중인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통화하고 일제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 간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진 외교부 장관이 13일 미국을 방문 중인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통화하고 일제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 간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위자료’ 아닌 ‘판결금’…윤 정부, 용어까지 일본 눈치

셋째는 대법원이 확정 판결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 인권 침해에 대한 개인 위자료”라고 돈의 성격을 분명히 했는데도, 윤 정부는 굳이 “판결금”이라는 낯선 용어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판결금은 ‘재판의 결과에 따라 주거나 받아야 하는 돈’이다. 돈의 성격이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반면에 위자료는 ‘불법 행위로 인하여 생기는 손해 가운데 정신적 고통이나 피해에 대한 배상금’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윤 정부가 일본을 의식해 용어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따지면서 전범 기업들의 불법 행위를 덮어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지난해 광주 서구 광주광역시의회 시민 소통실에서 강제 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 강제 동원시민모임, 소송대리인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력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2022.12.26. 연합뉴스
지난해 광주 서구 광주광역시의회 시민 소통실에서 강제 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 강제 동원시민모임, 소송대리인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력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2022.12.26. 연합뉴스

양금덕 할머니 “우리나라가 뭐가 아쉬워 벌벌대나”

이국언 대표는 “정부는 건너서는 안 될 위험한 강을 건너려고 한다. 정부의 구걸 외교에 대해 준엄한 심판이 내려지고록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4) 할머니도 “우리나라에서 주는 돈을 내가 왜 받아야 하나”라면서 “무엇보다 일본으로부터 잘못됐다고 사죄받는 것이 내 소원이다. 우리나라가 무엇이 아쉬워서 벌벌대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윤 정부의 저자세 외교를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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