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회담…일본 '동아시아 대리자' 책봉식?

창과 방패 모두 가진 일본, 미일 동맹 역할 조정

미국 '일제 과거사 해결' 압박…한국민 희생 외면

윤석열 정부, 미국엔 '맹종' 일본엔 '저자세' 일관

 

미일 '외교·국방 2+2 회담' 공동 기자회견. 2023. 01.11. EPA=연합뉴스
미일 '외교·국방 2+2 회담' 공동 기자회견. 2023. 01.11. EPA=연합뉴스

새해 벽두부터 미국과 일본 정상이 마주 앉는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기시다의 미국 방문은 2021년 10월 총리에 취임한 이후 처음이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의 무게는 여느 때와는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고, 한반도와 대만해협 등지에서 군사적 긴장이 급속히 고조되는 매우 예민한 시기에 열리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처, 중국의 대만 공세 견제 등 당면 현안에 대한 양국의 공동대응책이 논의되고 회담 이후 합의 내용을 발표하게 된다. 두 나라는 11일 외교·국방장관(2+2) 회담을 열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사전 실무 작업도 마쳤다.

 

중국-러시아 연합훈련. [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2022. 12.21
중국-러시아 연합훈련. [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2022. 12.21

바이든-기시다 회담…일본 '동아시아 대리자' 책봉?

전 세계가 이번 회담을 주목하는 까닭은 따로 있다. 

미국이 일본을 ‘동아시아의 대리자’로 사실상 공식 책봉하는 자리여서다. 미국은 전방위로 세력을 확장하는 중국을 저지함으로써 전 지구적 차원에서 국제질서를 미국 위주로 재편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리고 동시에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라 동아시아의 안보는 일본에 맡긴다는 구상을 추진해왔고 마침내 공식화 단계에 이른 셈이다.

방미에 앞서 기시다가 프랑스(9일) 이탈리아(10일) 영국(11일) 캐나다(12일) 등 주요 7개국(G7) 정상을 직접 찾아간 목적은 오는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조를 요청하고 이러한 미·일 정상회담의 숨은 의미를 설명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대리자로 미국의 공인을 받는 것은 일본엔 더 없는 기회이다. 전후에 전범 국가로 낙인찍힌 까닭에 군대 보유와 교전권이 박탈된 이른바 ‘거세된 나라’로서 오랜 세월 수모를 겪어왔으나, 이번에 미국의 전폭적 지원으로 ‘공격적인 군사대국’으로 도약하게 됐다.

 

일본 육상자위대 훈련. [일본 육상자위대 제공] 연합뉴스
일본 육상자위대 훈련. [일본 육상자위대 제공] 연합뉴스

창과 방패 모두 가진 일본, 미일 동맹 역할 조정

그 길로 가는 구상과 세부적 계획을 담은 것이 ‘개정 국가안전보장전략’을 비롯한 일본의 안보 3문서이다. 그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반격 능력’이란 교묘한 말로 포장된 ‘선제공격 능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75년간 지켜온 ‘전수방위’(공격받을 때만 반격)라는 허울을 벗고 “자체 판단에 따라”(일본 당국자) 선제공격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대외에 천명했다고 하겠다.

이제부터는 일본이 방어에 전념하는 ‘방패’ 역할에서 벗어나 공격력도 갖춘 ‘창’의 역할까지 하겠다는 얘기다. 당장은 △ 군대 보유 금지 △ 전쟁 포기 △ 국가 교전권 불인정 등을 규정한 평화헌법 제9조를 공식으로 폐기한 것은 아니나, 멀지 않아 폐기 수순을 밟을 공산이 크다.

다른 하나는 이를 실제로 담보하기 위한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 계획이다. 원거리에서 적의 공격지점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대량으로 확보해 실전에 배치하고, 공격용 무인기와 소형 정찰위성 등도 도입한다. 특히 2027년까지 사거리 1250㎞ 이상인 미국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500기를 포함해 2030년까지 1000기에 달하는 장거리 미사일을 실전에 배치할 방침이다. 

당연히 막대한 방위비(군사비) 투입이 뒤따른다. 기시다 정부는 2022년도 5조4005억 엔(약 51조 원) 규모인 방위비를 5년 후인 2027년까지 두 배인 10조 엔 정도까지 대폭 증액하기로 했다. 일본 GDP(국내총생산)의 2% 선이다. 이대로라면 2027년에 한국 방위비의 두 배가 된다.

바이든과 기시다는 13일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일본의 공격적 군사력 증강 계획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미·일 군사동맹의 업그레이드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인도·태평양과 대서양을 포괄하는 글로벌 안보를 책임지고, 일본은 동아시아 안보를 책임지는 방향으로 미·일 동맹을 조정하게 된다. 그에 따라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내용을 담은 ‘공동 안보문서’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양국은 2014년 7월 일본의 집단자위권 확보를 편법으로 밀어붙인 당시 아베 신조 총리의 결정을 토대로 2015년 4월 미·일 동맹의 지리적 범위를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확대하는 쪽으로 미·일방위협력지침을 바꿨다. 그때 이미 평화헌법 9조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연설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연설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바이든·기시다…둘이서 '한국 운명' 결정하나

“미·일 양자 군사협력과 미·일·한 3자 군사협력 개선 방안을 계속 모색할 것이다.”

미·일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한 질문에 지난 4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렇게 말했다. 미·일 군사동맹의 업그레이드가 이번 회담의 최우선 의제이고 ‘한국과의 3자 군사협력’ 문제도 그것에 못지 않은 핵심 안건이란 얘기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군사적으로 중국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려면 혼자의 힘만으론 부치고, 세계 6위 군사력을 지닌 한국의 적극적 동참이 필수적이라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작년 11월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3자 군사협력’ 틀이다. 당면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행보임은 물론이다.

컴퍼스의 꼭짓점에 미국이 자리를 잡은 채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두 날개로 삼는 기존의 구조는 한국을 북한 대응에만 묶어두고, 중국 저지에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그래서 미·일 동맹에 한국을 끌어들여 3자 군사협력 틀에 묶어 놓겠다는 것이 미국의 의도라고 하겠다.

유사시 대만해협 무력충돌과 같은 상황이 닥치면 한국군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는 당연히 ‘3자 군사동맹’이다. 이런 상황 전개는 중국이 최대 교역국인 우리에게는 상당한 부담과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점쳐진다.

커비 조정관의 답변에 걸리는 대목이 있다. 별 뜻이 없는 듯하지만, 한국 정상이 없는 자리에서 3국 간 군사협력 방안까지 논의한다는 점이 좀 낯설다.

“미·일·한 3자 군사협력 개선 방안”이란 분명히 한국의 국익과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일 텐데, 미·일 정상 ‘단둘이’ 큰 구도를 결정하고 한국 대통령에겐 일방 통보하는 형식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번 강대국간의 역학구도가 굳어지면 오랜 기간 지속된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신중하고 치밀한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된다. 수수방관은 금물이다.

 

미국 의회 의사당. [AP 연합뉴스 자료 사진]
미국 의회 의사당. [AP 연합뉴스 자료 사진]

미국 ‘일제 과거사 해결’ 압박…한국민 희생 외면

대중 군사 포위망의 핵심 축인 ‘미·일·한 3자 군사협력’(미국 표현) 틀의 가장 취약한 고리는 한일 관계다. 이런 점을 잘 아는 미국은 그동안 한국을 상대로 대일 관계 개선과 대일 군사협력 강화에 나서도록 강하게 압박해왔다.

문제는 미국이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바라는 한국민의 정서를 외면한 채, ‘반중 전선 구축’이란 정치공학적 접근에 주력해 한국민의 상처를 다시 헤집고 있다는 점이다. ‘나쁜 짓을 한 일본’에 떡 하나 더 주는 모양새다.

뒤틀릴 대로 뒤틀린 한일 관계에 미국의 책임도 크다. 1951년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과 일본 간에 맺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서 영토를 획정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한국의 고유 영토인 독도를 배제한 데다가, 1965년 당시 소련 등을 겨냥한 ‘반공 전선 구축’ 차원에서 박정희 정권을 압박해 굴욕적인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맺게 했다. 결함투성이 미봉책을 쓴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60년 전인 1905년에 미국은 일본과 ‘카츠라-태프트 밀약’을 맺고 필리핀과 한국을 각각 나누기로 합의했다. 그 해 을사늑약을 통해 한국이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한국과 일본이 관련된 일이면 늘 일본 편에 서는 미국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같은 역사가 되풀이될 우려가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26일 광주 서구 광주광역시의회 시민 소통실에서 강제 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 강제 동원시민모임, 소송대리인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력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2022.12.26.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6일 광주 서구 광주광역시의회 시민 소통실에서 강제 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 강제 동원시민모임, 소송대리인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력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2022.12.26.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미국엔 '맹종' 일본엔 '저자세' 일관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에 미더운 구석이 없다는 점이다. 일본의 입장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는 미국의 압박에 기를 못 펴고 있다.  스스로 알아서 밀실 합의 비판을 받은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복원을 약속하는가 하면,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문제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다 끝났다는 일본의 입장을 사실상 수용하는 모습이다.

윤 정부가 마련한 강제동원 문제 해법은 한국 기업의 기부만으로 재원을 만들어 ‘배상금’에 해당하는 돈을 피해자들에게 대신 변제하는 방안이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일제 전범 기업은 제외함으로써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게 된다.  이들의 사과와 배상을 원하는 피해자들의 반발은 당연하다.

12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외교부 주관으로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논의하는 공개토론회가 열리지만, ‘답은 정해놓은 채’ 피해자를 포함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했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요식행위가 될 개연성이 높다. 특히 미·일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이런 이벤트를 만들어 바이든을 만나는 기시다의 면을 세워주려는 배려의 뜻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동해상에서 한미일 대잠전 훈련 .  2022.9.30 해군 제공​. 연합뉴스
동해상에서 한미일 대잠전 훈련 .  2022.9.30 해군 제공​. 연합뉴스

출범 이후 8개월간 윤 정부의 대일 외교는 국민 여론은 아랑곳없이 일본의 눈치를 보며 저자세로 일관해왔다. 변칙적인 강제동원 문제 해법, 독도 근해에서의 한·미·일 군사훈련, 우리 해군의 일본 욱일기 경례 허용, 북한 공격 시 한국의 허가 필요 없다는 일본의 발언에 대한 미적지근한 대응, 일본의 국가안전보장전략에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최초로 명시한 것에 대한 미온적 대처 등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보면, 죽은 아베’가 제시한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각본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이 연출하고 기시다 총리가 주연을 맡은 대중 포위 작전에서 조연을 맡게 된 윤 대통령은 어쩔줄 몰라 눈치만 살피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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