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항의 '의례적'…강경 대응 문 정부와 대조

군함도·사도광산, 징용 배상 거부한 미쓰비시 작품

‘광부 무덤?’ 사도 광산, 조선인 2000명 강제노역

일본, 강제노역 은폐…세계유산제도 정신에 위배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000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게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000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일본이 일제 강점기 참혹했던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재도전에 나섰다.

기시다 후미오 정부는 사도광산을 2024년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정식 추천서를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사무국에 지난 19일 다시 제출했다.

일본은 지난해 2월 처음으로 추천서를 제출했으나 유네스코가 내용의 미비함을 들어 그동안 심사를 보류하고 있었다.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을 세계유산에 올리겠다고 일본이 나선 것은 2015년군함도(일본명 하시마, 나가사키현)에 이어 두 번째다. 강제동원 등 일제 과거사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부끄러움도 없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11.13.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11월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11.13. 연합뉴스

‘광부 무덤?’ 사도 광산, 조선인 2000명 강제노역

사도 광산은 니가타현 사도 섬에 있다. 에도 시대(1603∼1867년)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금 생산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 · 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등이 2021년 12월 출간한 <탐욕의 땅, 미쓰비시 사도 광산과 조선인 강제동원>에 따르면, 에도 시대 광부들은 진폐증과 중노동, 낙반과 매몰 사고 등으로 2,3년을 못 채울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었다.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에는 서구의 기계화 기술이 적용되면서 근대 광산으로 바뀌었지만, ‘광부의 무덤’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태평양전쟁(1941년∼1945년) 시기에 접어들면서 전쟁에 필요한 구리와 철, 아연 등을 주로 캐는 광산으로 바뀌었다.

조선인은 1939년 2월부터 사도 광산에 본격적으로 동원됐다. 일본의 침략 전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사도광산 동원 조선인을 연구한 히로세 데이조 후쿠오카대 명예교수는 이때부터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최소 2000명(연인원)의 조선인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조선인은 운반부와 착암부 등 갱도 내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는 비율이 높았고, 모집조건 위반과 조선인 차별 등으로 인한 노동쟁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도주한 조선인 노동자들도 있었다. 1940년 2월∼1943년 6월 기간에 148명(약 15%)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망자 수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군함도(일본명 하시마).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군함도(일본명 하시마).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군함도·사도광산 모두 전범기업 미쓰비시 작품

일제의 대표적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가 사도 광산과도 관련돼 있다.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인 사도 광산의 소유자는 미쓰비시광업이었다.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옥의 섬‘ 군함도를 운영한 장본인도 이 회사다. 강제동원(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불응하며 윤석열 정부의 면죄부만 기다리는 미쓰비시중공업과도 한통속이다.

기시다 정부는 이번에 꼼수를 썼다.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면서 그 시기를 에도 시대(1603년∼1867년)까지로만 한정한 것이다. 조선인 강제노역을 비롯한 근대 이후에 벌어진 강제동원의 역사를 일부러 누락시키는 수법으로 유네스코의 심사 관문을 뚫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한국 등 피해 당사국이 반발하면 심사에 난관이 생길 것을 치밀하게 계산한 행동이다.

앞서 지난해 2월 일본의 첫 등재 신청 때는 당시 유네스코가 사도 광산 유적 중 하나인 니시미카와 사금산(砂金山)에서 과거에 사금을 채취할 때 사용된 도수로(물 끌어들이는 길) 중 끊긴 부분에 관한 설명이 없다고 지적하며 미비점 을 보완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정의기억연대, 전국민중행동, 진보대학생넷 등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정부가 제시한 일제 강제동원 해법을 규탄하고 있다. 2023.1.18. 연합뉴스
정의기억연대, 전국민중행동, 진보대학생넷 등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정부가 제시한 일제 강제동원 해법을 규탄하고 있다. 2023.1.18. 연합뉴스

일본, 강제노역 은폐…세계유산제도 정신에 위배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20일 성명에서 “일본이 근대 이후의 강제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에 대한 언급 없이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재단에 따르면, 사도 광산의 외관은 물론이고 내부에서 채굴 장소로 이어지는 길은 모두 근대 이후의 시설로서 대부분 조선인 강제노역의 산물이다.

일본이 유네스코가 요구한 미비점 보완 대신, 아예 강제노역 부분이 담긴 근대 이후 시대를 통째로 들어낸 게 아닌가 한다. 문화유산의 명과 암 모두 균형 있게 기술하라는 세계유산 제도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셈이다. 

말로는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등 인류의 보편가치를 추구한다고 외치면서, 실제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일본의 이중성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군함도 건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공식회의에서 “수많은 한국인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는 그동안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역 부분에 대한 설명을 보완하라고 일본에 요구해왔다. 이에 일본 정부는 차일피일 하다가 답변서를 냈는데 “조선인 차별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고 산케이신문(2022년 12월 2일자)이 보도한 바 있다. 

 

일본 정부가 사도 광산 세계문화유산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다시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20일 주한일본대사 대리인 나미오카 다이스케 경제공사가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되고 있다. 2023.1.20.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사도 광산 세계문화유산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다시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 20일 주한일본대사 대리인 나미오카 다이스케 경제공사가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되고 있다. 2023.1.20. 연합뉴스

윤 정부 항의 “의례적”강경 대응 문 정부와 대조

윤 정부의 대응은 역시 예상대로였다. 외교부 대변인 논평과 주한 일본 대리대사 초치를 통해 항의하는 시늉을 했지만, 일본을 자극할까 수위를 낮추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윤 정부는 20일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2015년 등재된 ‘일본 근대산업시설’ 관련 후속조치가 충실히 이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유사한 배경의 사도 광산을 또다시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데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논평은 이어 “정부는 전시 강제노역의 아픈 역사를 포함한 전체 역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유네스코 등 국제사회와 함께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외교부 2차관이 주한 일본 대리대사를 불러 유감을 전했다.

일본이 처음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결정했던 작년 1월 28일 당시 문재인 정부의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이 아니라 수위가 더 높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고, 초치 대상도 주한 일본대사였다.

지난해 12월 16일 일본이 외교·안보 기본지침서인 개정 국가안전보장전략에 독도(다케시마, 일본 주장)를 “우리나라(일본) 고유영토”라고 최초로 명시했을 때도 윤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논평과 해당 공사 초치 수준에서 슬며시 넘어가려다가 거센 역풍에 휘말린 바 있다. 일제 과거사를 부인하는 일본의 일관성도 대단하지만, 윤 정부의 일관된 대일 저자세가 더 압권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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