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 외교 논리 밖…로비 때문이란 설명도 부족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3월 25일. 드디어 가자지구 정전 결의안이 채택됐다. 남은 라마단 기간 고작 2주 간의 정전이지만, 어쨌든 전쟁 6개월 만이다. 14개국 찬성. 미국은 홀로 기권. 국내외 언론이 앞다투어 머릿기사로 다뤘다.

팔레스타인 정부(파타와 하마스)는 “결의안은 전쟁과 학살을 멈추는 첫 번째 단계다. 이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결의안을 이행토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는 “결의안은 이스라엘에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한편 미국은 “결의안의 강제력은 없다”(국무부 대변인 M. 밀러), “강제력 없는 결의안이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제거 노력을 지원한다. 미국의 정책 또한 바뀌지 않는다”(백악관 안보실 대변인 J. 커비)고 강조했다.

 

미-이 관계에서 이스라엘이 갑이라고?

미국은 안보리 기권의 의미를 이스라엘에 해명하면서 이제까지 취했던 지지 입장을 재천명하는 모습이다. 또 굳이 정책변화가 없다는 말은 군사원조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국제사회에는 ‘안보리 결의안 채택? 그래서 뭐?’하고 냉소적인 비웃음을 던진 셈이다.

매우 불안하다. 정전 결의안을 무시한 채 이스라엘은 여전히 가자를 공격 중이고, 미국은 ‘이스라엘에 무기지원을 계속하겠다’(국방장관 L. 오스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인도주의 국제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국무부 대변인 M. 밀러)라며 이스라엘을 감싸고 있다. 결의안을 따르지 않을 때, 안보리는 규정상 군사력을 포함한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은 왜 이렇게 처신하는 것일까? 지난 14일, C. 슈머 의원(민주당 뉴욕주)은 상원 발언을 통해, 네타냐후의 전쟁 때문에 “이스라엘은 국제적 외톨이(pariah state)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번 전쟁으로 외톨이가 된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두 나라가 함께 세계의 외교적 고아가 된 것이다. 자국 이익 우선인 통상적 외교 논리로 말하기도 어렵고, 친이스라엘 로비 때문이라는 설명은 더욱 부족하다.

미-이는 어떤 관계일까? “미국은 이스라엘을 위해 자국의 이익을 희생한다. 이스라엘은 반대로 미국을 무시하고 모욕한다. 누가 주군이고 누가 신하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스라엘 유수의 일간지 하렛츠는 양국 관계를 주군(patron power)과 신하(protege)가 벌이는 ‘변태적 게임(sado-masochistic game)’이라고 과격하게(?) 묘사(2014년 10월 19일 자 칼럼) 하면서 그렇게 썼다.

미-이 관계는 기묘한 갑을관계라는 말이다. 그런데 뒤져보면 이번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미국의 모습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

 

함정 피격도, 스파이 암약도, 이스라엘에 꼼짝 못하는 미국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 동안, 아랍연합군(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중심)과 이스라엘 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이름하여 6일전쟁. 그 와중에 이스라엘 공군기와 해군 어뢰정이 미 해군 함정 리버티호를 공격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리버티호는 시나이반도 북쪽 약 50킬로미터 공해상에서 첩보 수집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피격으로 장교와 사병 34명 사망, 174명 부상. 배는 반파됐다(위사진 참조).

미국과 이스라엘은 즉각 합동 조사에 착수했다, 결론은 이집트 해군함정으로 오인한 공격이었다는 것. 그러나 ‘오인공격’이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2007년 시카고 트리뷴, 2017년 이스라엘 하렛츠 지의 탐사보도로 진실이 드러났다. 당시 승조원들의 증언과 사건 관련 비밀문서를 찾은 것. “저건 미군 함정입니다!” “관계없어, 때려!”라는 이스라엘 공군 조종사의 통신 속기록을 찾아냈다. 놀라운 것은 미국 정부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 그럼에도 생존 군인들에게 침묵을 강요했고 이스라엘 정부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폴라드 부부를 맞는 네타냐후 총리. 텔아비브 공항
폴라드 부부를 맞는 네타냐후 총리. 텔아비브 공항

2020년 12월 30일. 66세의 J. 폴라드라는 인물이 부인과 함께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했다. 네타냐후 당시 총리는 “여기에서 이제 자유롭게 새 삶을 즐기시라”는 환영 인사를 전했다. 언론은 ‘영웅의 귀환’ 같았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스라엘 간첩이다. 1985년 워싱턴에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가석방됐고 기간이 만료되자 부인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폴라드는 본래 미 해군 정보분석관이었다. 그러면서 국가기밀 문서를 절취 이스라엘에 넘기고 월급—때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2022년 기준 매월 5000불 정도—을 받았고, 보석 선물과 해외여행도 즐겼다.

빼돌린 기밀의 목록 자체가 특급 비밀에 속할 정도로 그의 간첩행위는 심각했다. 법무부가 수사에 나섰으나 이스라엘은 사실상 협조를 거부했다. 혐의자들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승진시켰다. 무기징역이 확정되자 폴라드의 월급을 두 배로 올려줬다. 그의 재판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졌으며 변호사 비용 모금운동도 벌어졌다. 이스라엘 정부는 20만 달러를 지원했다. 결국 폴라드 간첩사건은 단독범죄 수준으로 축소됐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은 국무부는 애초 조사는커녕 이스라엘 정부의 사과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것.

사기업 에어비앤비도 굴복시킨 ‘이스라엘 보이코트 금지법’

2018년 11월, 에어비앤비(이하 에어· 전세계 숙박, 홈스테이 연결 네트워크)는 서안지구—요르단강 서쪽의 팔레스타인 지역—이스라엘 정착촌 주택의 숙소 등록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5개월 만인 2019년 4월 해당 방침을 철회한다고 공표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스라엘이 점령 이후 건설한 서안지구 Maale Adumim 정착촌 전경
이스라엘이 점령 이후 건설한 서안지구 Maale Adumim 정착촌 전경

에어가 등록을 거부한 이유는 정착촌이 국제법상 불법인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의 개인재산을 몰수하고 임의로 주택을 지어 정착민에게 분양하고, 정착민은 그 주택을 이용, 수익사업을 벌였던 것. 명백한 불법이다. 에어는 불법주택으로 사업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아왔었는데, 2018년 인권단체의 관련 보고서가 나온 이후 숙소 등록 정책 변경을 발표했던 것.

그러자 바로 다음 날, 이스라엘 정부는 일리노이, 뉴욕, 플로리다, 미주리, 캘리포니아 주지사들에게 에어의 처벌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근거는 각 주에서 제정한 ‘이스라엘 보이코트 금지법(Antiboycott law)’. 이후 일리노이, 플로리다, 텍사스주 등은 에어에 대한 압력성 조처를 내놓았다. 공무원, 주립대 교직원이나 학생의 공무 출장 시 에어 숙박비 지원을 거부하거나, 에어에 공공사업 참여 기회를 제한하거나, 연기금 투자를 철회하거나, 조사를 시행하겠다거나 하는 식으로 협박(?)에 가까운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결국 에어는 숙소 등록 중단 방침을 철회했다. 대신 정착촌 숙소 대여로 발생한 수익 전부를 인권운동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름의 저항이었던 셈이다.

 

2023년 12월 8일 유엔 안보리 회의.
2023년 12월 8일 유엔 안보리 회의.

이스라엘 위해 외교 고립까지 불사하는 안보리 거부권 행사

잔인한 이스라엘의 대량 살상 복수극이 벌어지고 있는 가자전쟁과 관련, 지난달 2월 21일 유엔 안보리는 정전 결의안 채택을 위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작년 12월부터 두 달여 만에 같은 주제로 모인 세 번째 회의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또 거부권을 행사했다. 12월의 두 차례를 포함, 세 번째 거부권이다. “정전 결의안이 카타르에서 진행 중인 인질 석방 논의를 무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작년 12월 8일은 미국이 첫 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한 날이다. 그날 회의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직권으로 소집한, 78년 유엔 역사상 (사무총장이 소집한) 네 번째 안보리였다. 가자의 참상을 국제사회 차원에서 지원하고 위무하려는 것이 기본 취지였다. 미국은 “결의안에 하마스 테러 공격에 대한 비난 문구가 없다, 하마스 조직을 놓아둔 채 정전을 선포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마스가 그 사이 다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후 21일, 안보리는 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미국은 정전 결의안을 다시 거부했다. 두 번째였다. “하마스는 평화를 원치 않는 조직으로 정전은 다음 전쟁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스라엘 군은 식량배급을 기다리던 사람들을 표적사살하듯 죽였다. 그에 대한 안보리의 비난 성명조차 막은 것이 미국이다. 그러더니 지난주 3월 22일 자신들의 정전 결의안을 안보리에 제출했다. 그런데 막상 열어보니 그것은 정전 요구 결의안이 아니라 정전 필요성을 결의하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다는, 즉각 정전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뜻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한편, 간신히 채택된 이번 결의안에 대해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식으로 안보리의 노력을 폄훼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간절한 염원은 외면하면서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국제적 비난과 국가적 불명예, 나아가 외교적 고립까지도 감수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팔레스타인 평화 막고 있는 미국 사회의 친이스라엘 구조

군사안보 문제도, 경제정책 문제도, 외교 문제도, 미국은 이스라엘의 입장과 관점에서 판단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종 매카시즘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반유대주의 금지법’ 제정 논의가 한창이다. 12개 주는 이미 시행 중이고 10/7 사태 이후 23개 주에서 법안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렛츠의 표현대로 부하가 주군을 끌고 가는 갑을관계의 한 모습이다.

사실 미국 사회의 친이스라엘 구조는 일찍부터 굳어져 왔다. 미국 시온주의 운동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1910년대까지의 운동 초기, 미국은 시온주의 사상이 뿌리내리는 가장 중요한 교두보였다. 미 의회는 1922년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건설을 지지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1917년의 영국 발푸어 선언에 힘을 실어주는 조처였다. 트루만 대통령은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자마자 누구보다 앞서 국가로 승인했다. 이스라엘 친화적 역사, 문화, 제도가 촘촘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애초부터 편향적인 양국 관계 때문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서 미국은 공평한 중재자가 되기 어렵다. 그간 미국이 이끌었던 이-팔 평화협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클린턴 시절 캠프 데이비드 협상 실무를 맡았던 국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당시 워싱턴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이스라엘 입장의 변호에 더욱 주력했다”고 실토하기도 했었다. S. 월트 하바드 국제관계학 교수는 지난해 10월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칼럼에서 ‘가자전쟁은 미국 중동 정책의 오류가 불러온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팔레스타인 인민들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고난 속에서 살고 있다. 무자비한 살육이 벌써 6개월째다. 정도만 다를 뿐 고행을 겪는 건 서안지구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은 이 참극의 공동정범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팔레스타인에서 인종학살을 멈추고 평화공존의 길을 만들지 못하는 세계는 ‘인류의 비극이자 문명의 수치’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 채택된, 고작 2주의 임시 정전 결의안. 그마저도 이스라엘과 미국에 의해 휴지 조각이 될 듯하다. 그렇다면 이들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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