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혁 '교육언론 창' 취재본부장
윤근혁 '교육언론 창' 취재본부장

27조 1000억 원. 지난해 한국 초중고 학부모들이 학원과 과외 등에 쓴 사교육비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 3월 14일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다. 이 액수는 2022년 사교육비 26조 원보다 4.5%포인트(1조 1000억 원) 늘어난 수치다. 3년 연속 역대급으로 늘어나는 사교육비 행진이다. 이런 행진을 해야 하는 학부모들의 등골은 휘어지는 상태를 지나 꺾이기 일보 직전이다.

역대급 사교육비 증가 행진에 학부모 등골 꺾여

학생 한 명당으로 치면 2020년엔 월평균 사교육비가 30만 2000원이었다. 이러던 것이 2021년 36만 7000원으로 늘어나고 2022년엔 40만 원을 돌파한 41만 원이 되었다. 이러던 것이 2023년엔 월평균 사교육비가 43만 4000원으로 전년 대비 5.8%포인트 치솟았다. 사교육 참여 학생만 떼어내 계산하면 55만 3000원이나 된다.

이에 대해 학부모들은 물론 교육기자들의 속마음도 부글부글 끓는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정책은 실패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육부가 ‘사교육 경감대책’을 내놓은 것은 지난해 6월 26일이었다. “사교육 카르텔(담합)에 집중 대응하고 EBS(교육방송) 중학 프리미엄 유료 강좌를 무료로 전환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배제” 등등을 언급하면서 ‘사교육 카르텔’을 언급한 뒤 나온 대책이었다.

당시엔 자신감이 넘쳤던 것일까? 교육부는 9월 11일 국회에 보고한 ‘2024년 성과계획서’에서

‘초중고 사교육비 목표 24조 2000억 원’를 밝혔다. 하지만 2023년 사교육비가 이미 27조 원을 넘어선 것이다. 올해 교육부 계획인 사교육비 24조 2000억 원은 당연히 물 건너간 약속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사교육비가 이렇게 3년 연속 천정을 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교육정책 전문가들의 모임인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는 지난 18일 낸 성명에서 “지난 1년간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사교육 경쟁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 같은 말과 정책들을 줄줄이 내놓음으로써 국민들의 불안감만 증폭시켰다”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라고 쓰고 ‘사교육을 권장하는 대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는 “교육부의 대입 수능 킬러 문항 출제 배제 방침은 오히려 사교육 시장에는 호재가 되었다. 사교육은 대입 수능의 난이도가 아닌 수험생의 ‘불안감’과 정책의 ‘불확실성’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라면서 “대통령과 교육부가 수면 위로 소환한 ‘킬러 문항’과 ‘사교육 카르텔’이라는 자극적인 표현들은 30년 넘게 이어져 온 수능의 신뢰도를 한 순간에 땅에 떨어뜨린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이 연구소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특수목적고(특목고)의 일반고 전환 백지화 ▲초중고 학업성취도평가 확대 ▲수능 상대평가 유지 계획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3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사회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3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사회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교육업체에 활짝 문 열어제친 AI교과서 사업

나는 이런 지적에 더해 교육부의 이상한 행동을 지적하려고 한다. 바로 사교육업체와 손잡고 벌이는 사업 얘기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AI(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제작 사업과 디지털 선도학교 사업 등 AI 디지털 교육혁신 사업을 벌이면서 민간 에듀테크 업체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그런데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런 민간 에듀테크 업체들의 상당수는 유료 온오프라인 과외 사업을 벌이는 사교육업체이거나 사교육 관련 업체다. 이것은 교육부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교육부가 오는 2025년 3월부터 영어, 수학, 정보, 국어(특수) 교과부터 도입하는 AI교과서 사업엔 사교육 사업과 학원 자본과 관련 있는 업체들이 이 교과서 개발, 제작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교육부는 국회 교육위 강민정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보낸 답변서에서 “AI교과서는 검‧인정교과서 체제로 도입됨에 따라 별도 참여 기업 또는 단체를 제한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방침에 따라 교육부는 AI교과서 개발 관련 설명회 등에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151개 사), 디지털교육협회(102개 사) 등의 업체에 모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업체들의 상당수는 사교육업체이거나 사교육업체 관련 회사다.

현재 이들 회원사 가운데 수십 개가 AI교과서 제작에 뛰어든 상황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두 자리 수의 관련 회원사들이 AI교과서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또 교육부는 “기존 검정교과서도 사교육업체가 개발사인 곳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존 교과서도 사교육업체에게 문을 열었는데, AI교과서도 그렇게 하는 게 무엇이 잘못이냐는 뜻으로 해석된다.

교육부가 부여한 공신력을 광고에 이용하는 사교육업체

하지만 이들 사교육업체들은 자신들이 교과서 개발사란 사실을 학부모 대상 사교육 광고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AI교과서가 학교에 보급되고, AI디지털 코스웨어(교육과정 소프트웨어)가 확대되면 이런 사교육업체의 광고전은 더 과열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본 학부모들은 ‘교육부가 부여한 공신력을 내세운 사교육업체’를 더욱 믿고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난해 교육부가 연 ‘AI교과서 사업계획’ 기자회견에서 이주호 교육부장관에게 “결국 AI교과서 사업을 사교육업체와 함께 하겠다는 것인데, 사교육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공교육의 목표는 인간을 기르는 것인데, 목표가 상충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장관은 “영국 등 디지털 에듀테크 사업에 먼저 뛰어든 선진국들도 민간 에듀테크 기업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디지털 교육혁신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일이다”고 자신만만하게 답한 바 있다. 당시 나는 국제사회에서 민간 에듀테크 사업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재반박을 하지 못했다.

며칠 뒤 공적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한 AI 디지털교육 전문가에게 이 장관의 답변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다음처럼 말했다.

“미국과 영국 등 외국의 경우 민간업체가 정부와 공동사업을 벌이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런 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처럼 교육 발전과 사회 환원 차원에서 참여한 것이지, 우리나라처럼 직접 사교육업체를 운영하는 회사가 참여한 게 아니다.”

교육부가 시도교육청과 함께 지난 해 351개 초중고를 지정하며 시작한 디지털 선도학교 사업에도 사교육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학교는 교육부 계획에 따라 이 선도학교 예산 가운데 상당 부분을 사교육업체 프로그램을 사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데 썼다. 올해 디지털 선도학교는 1000여 개로 늘어난다.

몇몇 디지털 선도학교에 자신의 학습프로그램을 제공했던 P수학은 최근 “전국 15개 교육청과 함께 하는 P수학… 교육청 주관 우수 에듀테크 기업에서 만든 1등 수학 코스웨어”란 식의 광고전을 펼쳐 논란이 되기도 했다. P수학은 자신의 사이트에서 ‘과외’업체를 자처하며 ‘고등학생 과외’의 경우 12개월 약정을 하면 월 21만 4000원을 받는 사교육업체다. 이 업체의 해당 광고를 본 한 학부모는 “광고를 봤는데 학교 선생님들만 쓰는 (공공) 사이트인 줄 알았다. 깜빡 속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외'업체임을 자처한 P수학이 최근 페이스북 등에 낸 광고물. 업체 홈페이지 캡처
'과외'업체임을 자처한 P수학이 최근 페이스북 등에 낸 광고물. 업체 홈페이지 캡처

 

A 사교육업체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가, 논란이 되자 지금은 사라진 EBS 펭수.
A 사교육업체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가, 논란이 되자 지금은 사라진 EBS 펭수.

유료 인터넷 과외사업 벌이는 업체와 손잡은 교육방송

사교육업체와 손잡는 공기관은 교육부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사교육 경감’ 등의 목적으로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라 방송을 송출하는 공영방송 EBS가 그렇다. EBS는 지난해 8월 사교육업체인 A사와 제휴를 맺고 올해부터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과목의 EBS 특화 교재 콘텐츠와 A사의 에듀테크를 결합해 중등 학습 콘텐츠를 제공”(A사 보도자료)하는 사업을 본격 진행하고 있다. A사는 이주호 장관이 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을 맡을 때 이곳에 후원금을 내 유착 의혹을 받았던 업체다.

현재 A사는 ‘EBS 특별관’을 만들어 중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교육부가 ‘사교육 경감대책’에서 EBS 프리미엄 유료 강좌를 무료로 전환한 그 중학생 대상 강좌다.

물론 공짜는 없다. A사는 중학생의 경우 12월 약정기준으로 월 15만 2000원에서 16만 4000원을 받는 유료 인터넷 과외사업을 벌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A사의 사교육이 번창할수록 EBS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와 EBS가 사교육업체와 손잡은 행위를 ‘카르텔’로 표현하는 것은 겁나는 일이다. 지난 해 교육부장관으로부터 한 번에 8개의 정정보도, 언론중재위 청구 등 줄폭탄을 맞아본 나로선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내 입을 틀어막더라도 이 질문은 막을 수 없다.

“교육부와 교육방송이여! 사교육업체와 손잡고 사교육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