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올리려 접경지 지상군 배치까지 흔들려는가
국가 전략자산 무력화하는 최고 권력자의 폭주
직 걸고 성남공항 지키려던 이명박 정권 때의 공군 총장
2008년 2월에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잠실의 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해 주기로 마음먹고 이상희 국방부 장관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해 4월 재벌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 이상희 국방장관을 부른 이 대통령은 장관에게 "언제까지 성남공항의 군사보호구역을 해제할 것인지를 밝히라"며 고압적으로 명령했다. 롯데월드 건설에 협조하지 않는 군을 대표해 이 대통령에게 망신을 당한 이 장관이 꾸역꾸역 검토를 진행하자 공군 예비역 장성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예전에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씨가 개입해도 안 되던 사안이었고, 롯데월드를 허가하고자 했던 노무현 대통령마저 공군의 반대로 포기했던 사안이 한순간에 해결됐다.
김은기 공군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도 자신의 직을 걸고 성남공항을 지켰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 대통령은 아직 임기가 남아 있는 김 총장을 전격 경질하고, 중장으로 진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계환 합참 차장을 대장으로 진급시켜 후임 총장으로 임명한다. 신임 총장은 롯데월드가 건설되려면 성남공항의 활주로를 7도 정도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기존 검토와 달리 3도만 틀어도 된다고 검토 보고서를 수정한다. 롯데 측이 비용을 부담하는 활주로 재공사는 실제로는 2.7도 밖에 틀어지지 않았다. 롯데는 거듭되는 청와대의 압력을 등에 업고 비용을 크게 줄였다. 그 결과 지금 성남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에서 창밖을 보면 활주로 직전에 거대한 롯데월드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는 느낌을 준다. 평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긴급 출격과 저공비행이 요구되는 위기 시에는 작전의 치명적인 장애물임이 분명하다. 이미 성남공항은 반쯤 죽은 공항이 되고 말았다.
초현실적 군사 보호구역 해제에도 숨죽이고 있는 윤 정권 참모총장들
지난 2월 26일에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339㎢(1억 3000만 평)에 달하는 초현실적인 규모의 군사 보호구역 해제는 이상하다.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하려면 해당 부대가 지자체와 협의를 거쳐 면밀한 작전성 검토를 거쳐 건의하고, 합참의 동의를 거쳐 국방부가 발표하는 것이 통상적 절차다. 보호구역 해제는 각종 청탁과 비리가 개입할 소지가 다분해 1년 이상의 검토 기간이 소요된다는 게 상식이다. 이번 발표는 작년 연말에 여의도 면적의 18.8배인 54k㎡의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완화한 지 석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왔다.
통상 이런 중요한 결정을 내리려면 이번 해제구역으로 직접 영향을 받는 육군과 공군의 작전성 검토가 필수적인데, 윤 대통령이 해제구역을 발표하고 나서도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과 이영수 공군 참모총장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 16년 전에 성남공항을 사수하려다 경질당한 김은기 총장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서산과 성남공항을 무력화하는 이런 결정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달리 군사 지도자와 어떤 협의를 한 흔적조차 없다.
국가 전략자산 무력화하는 최고 권력자의 폭주
이번 발표에 포함된 서산 해미 공군기지 일대와 성남 비행장 일대 등은 공군 핵심 전략기지로서 그 누구도 해제나 완화를 말할 수 없는 국가 안보의 중추다. 공군 F-16 전투기가 배치된 20전투비행단이 위치한 서산 비행장 일대 141㎢의 토지가 이번 조치로 보호구역에서 풀린다. 이 공항은 유사시 미군과도 공유되지 않고 한국군이 단독으로 사용하는 공항으로서, 오직 우리 공군만의 핵심 전력이 배치되도록 특별히 관리되는 전략기지다. 국방부가 제시한 설명 자료를 보면 활주로가 있는 구역을 포함해 공항 남북 쪽으로 광활한 지역에 아파트나 고층 건물이 건설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 정도면 서산 기지는 완전히 군사 기능이 무력화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서산의 공군 핵심 전력을 타 기지로 분산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공군전력 운용계획은 처음부터 재작성해야 한다.
더 엉뚱하게도 윤 대통령은 서산 민간공항 건설까지 약속했는데, 비행 안전구역이 대거 해제된 마당에 어디에 어떻게 건설한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이런 발표는 공군과 지자체의 검토를 거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급조되었음이 분명하다. 기존의 국토종합계획과 군사시설 보호에 관한 제 법령을 무시한 윤 대통령의 폭주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 국가 안보에 대한 노골적인 범죄다. 어찌된 일인지 이명박 대통령 시절과 달리 예비역 공군 장성들도 말이 없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서해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위협하며 국지전이 예고되고 있는 이 시점에, 서해에서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이를 지원해야 할 공군 전력이 위치한 서산공항을 무력화한다면 한국 안보는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다.
성남 비행장 인근 군사보호구역 해제 지역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와 분당(경기도 성남) 일대에 걸쳐 있다. 성남 비행장은 한국군 핵심 정찰자산인 금강·백두 정찰기와 대통령 전용기가 운용되고, 외국 정상이 들어오며, 한반도 유사시 외국인들이 탈출하는 유일한 통로다. 유사시에 이 공항이 혼란에 빠지면 외국인들은 다음 집결지인 오산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전시에는 고속도로가 통제돼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2008년에 롯데월드를 건설할 당시 각국 대사관들에게 매우 민감했던 성남공항은 군사보호구역이 추가로 해제될 경우 상당한 외교문제를 수반한다.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검토한 흔적이 전혀 없고, 공군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이 역시 급조됐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한반도 유사시에 치명적인 안보 손실을 감수해야 할 이 중차대한 문제에 공군 참모총장은 직을 걸었어야 한다.
땅값 올리려고 접경지역 지상군 배치까지 흔들려는가
윤 대통령은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로 충남이 환황해권 경제 중심으로 비상하는 데 필요한 입지 공간 여건이 거의 다 갖춰졌다"며 서산 일대에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탄생하고 모빌리티와 국방 산업단지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탈중국 노선을 앞세워 한중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킨 정부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과거 진보 정부나 안희정 충남지사가 꿈꾸었던 환황해권 경제와 정확히 역행하는 방향으로 전개돼 왔다. 윤석열 정부에서 중국에 대한 수출은 20% 감소했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교민들은 급격히 줄거나 철수하는 중이다. 중국에 대한 기술통제와 무역 감소로 가장 타격을 입은 지역이 바로 충남이다. 게다가 유사시 외국인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개방된 국제도시로 서울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성남공항은 중요한 전략자산이다. 성남공항을 무력화하면서 분당과 강남, 반포 일대의 부동산과 개발의 광풍을 일으키자는 단견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불태우는 식이다.
전방 접경 지역의 군사 보호구역 해제 역시 미스터리다. 작년 12월 발표 때는 태안군 공군 훈련장 일대, 양주시‧연천군, 파주‧철원‧화천 일대 자연 취락지 일대가 포함돼 있었다. 이 당시 발표에서 군부대 통폐합과 작전 관할의 변경과 같은 군의 변경 사유는 충분히 반영돼 있다. 그런데 이번 2월의 추가 해제 발표된 지역에는 경기 포천(21㎢), 양주(16㎢), 경기 연천(12㎢), 가평(10㎢)과 같은 군부대 밀집 지역이 대거 포함돼 있다. 수도권 방어를 위한 지상군의 핵심 전력이 위치한 지역에서 이와 같은 대규모 보호구역 해제가 이루어지려면 상당한 부대 해체나 작전 교리 변경과 같은 군사적 변화가 있었다는 뜻인데, 지금까지 우리는 육군이 그러한 개혁을 단행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다. 군사적 태세 변환은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지상군 전선에 심각한 교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평시에도 군의 작전은 보호돼야 하며 어떤 권력자도 이에 대해 함부로 개입할 수 없도록 관련 법령은 엄격하게 규제한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육군이 지금껏 책임 있는 설명이 없다는 점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이상 징후라 할 것이다.
투기 조짐 없지만 명백한 안보 농단 피해
총선을 앞두고 그린벨트 해제에 이어 발표된 군사보호구역 해제는 윤 대통령이 다가올 총선에 얼마나 두려움을 갖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안보를 거덜내면서 국민의힘 후보를 지원해야 할 정도라면 그 절박성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말해주는 것 아니겠는가.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요란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의 부동산이 들썩인다든가 투기 조짐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재원 대책도 없이 녹지와 군사 보호구역에 공항과 산업단지를 짓겠다는 허황된 발표를 국민들이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로 부동산 개발과 자산 가치에 민감한 구역을 골라서 보호구역을 무더기로 해제했으니 선거에서 득표 전략으로는 꽤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안보 농단으로 인한 피해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이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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