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학 칼럼] 정부 망국적 가계부채 관리 실패, 언론은 다시 입 닫아
1년 전부터 한국 경제는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경제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서민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기 어렵다. 마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같은 격이다. 빨리 경보를 울려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다급해졌다. 고금리의 부담을 안고 버텨왔는데 지난 가을부터 싸늘하게 얼어붙은 경기는 서민 경제에 이중 타격을 주었다. 쓰나미는 끝났는가? 불행하게도 내년에는 더 강한 쓰나미가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으로 시작된 금융위기
중앙은행인 연준은 금리를 신축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8년 이후부터 이러한 추세가 더 강화되어, 제로금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로금리까지 낮추었는데도 경기부양이 되지 않으면서 과감한 양적 완화 정책을 추진했다. 중앙은행이 직접 시중의 채권을 사들이는 비전통적 방식의 시장 개입을 통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풀었다. 이러한 양적 완화 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해 정상화 과정을 개시하면서 서서히 채권 보유량을 줄이려는 시기에 코로나가 발생했다. 미국 연준은 지체없이 다시 채권을 사들여 자산이 최고 9조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미국 연준은 급속하게 정책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2022년 3월에 0.25%였던 정책 금리를 2023년 7월에 5.5%까지 급격하게 올렸다. 과거 인플레이션이 높고 이자율이 10%를 넘나들 때를 제외한다면 대단히 이례적인 금리 인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9조 달러에 달했던 자산을 꾸준히 줄여 현재 7조 7000억 달러까지 내려왔다. 과거 양적 완화 정책을 중단한다는 소식에도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기에, 금리인상과 동시에 추진하는 양적 긴축 정책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 세계 경제는 큰 충격을 받는다. 세계 금융자본의 본산인 미국이 블랙홀처럼 세계의 자본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2004년부터 시작된 정책금리 인상이 원인이 되었다. 1997년 연말 우리에게 닥쳤던 외환위기 역시 미국의 금리 인상에서 시작되었다. 1994년부터 미국이 정책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세계 경제는 자본 유출에 따른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당장 문제가 발생한 것은 이웃 국가 멕시코였다.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는 빈부격차가 크고 자본 유출이 문제인 나라였다.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늘어났던 멕시코에 대한 투자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농민 반란과 대통령 후보 암살로 비롯된 정정불안으로 인해 자본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페소화는 폭락하고 결국 국가 파산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인접 국가의 경제 붕괴로 인한 충격을 두려워한 미국 정부가 서둘러 개입해서 봉합했다. 그러나 세계경제에 대한 충격은 이어졌다.
한국이 파산 위기 맞고서야 쏟아진 징비록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미국의 채권 이자율을 높이고, 이는 다른 금융자산의 가치를 낮추게 된다. 미국의 금리가 높아지면 개발도상국들의 금리도 영향을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위험한 투자의 부실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동안 투자가 크게 늘어났던 아시아 국가 기업들의 연쇄 부도가 이어지면서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흔들이기 시작했다. 1997년이 되자 이들 국가는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었다.
빠르게 성장하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크게 높아졌고, 이는 다시 연초부터 대기업의 부실이 드러나던 한국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는 순간 한국은 파산 위기를 맞게 되었고, 연말에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국제통화기금의 자금 공여조건은 가혹했다. 실업자를 폭발적으로 양산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구조조정 요구안을 굴욕적으로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되돌아보면 한국의 외환위기는 재정경제부와 중앙은행의 부채관리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개별 은행들은 재벌 계열사간 채무보증이 있으면 부채비율이 1000%가 넘는 것을 아랑곳 않고 대출을 해 주었다. 대마불사를 믿고 밑빠진 독에 물 붓듯 대출이 늘어나 경제 전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때까지, 한국 경제 그 어느 곳에서도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위기를 맞고 나서야 그동안 마치 온 국가가 무엇에라도 홀린 듯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기업 대출을 방치해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위기를 맞는 순간까지 비판하지 않았던 자신들을 성찰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심장한 징비록들을 쏟아내던 시기를 기억한다.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망국적 가계부채 관리 실패한 정부, 다시 입 닫은 언론
그 수많은 징비록이 무색하게 한국 경제는 다시 한번 부채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가계부채 잔액이 1800조 원에 달해 가처분 소득 대비 200%를 넘나들고 있다. 그 조차도 700조 원에 달하는 사업자 대출이 빠진 통계이고, 규모를 알 수 없는 전세보증금도 빠져 있으니 한국의 전체 가계부채는 가처분 소득 대비 300%를 넘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기록될 정도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망국적인 수준으로 높아지도록,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한국은행은 부채 관리에 실패했다. 가계부채 총액관리를 하겠다고 10여 년째 앵무새처럼 되뇌기만 하는 동안 가계부채는 폭증에 폭증을 거듭했다. 또 다시 모두가 홀린 듯이 경보음은커녕 빚내서 집 사라는 목소리에 맞장구를 치거나, 아니면 비겁하게 입을 닫았다. 한국 경제가 빚더미에 올라서는 순간에 모두가 침묵했던 26년 전의 모습과 겹쳐진다. 이런 규모의 부채를 안고 위기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적다. 그리고 그 모든 부담은 오롯이 서민들의 몫이 될 것이다.
미국의 고금리로 인한 충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변동금리 대출로 인해 고금리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채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민경제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데 정부는 곳간 지키기에 바빠 재정지출을 줄이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서민들의 마지막 산소호흡기를 막아 버린 격이라서, 한국경제의 장기 침체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26년 전 연말 부실 대기업은 물론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한국은행을 성토하며 비분강개하던 투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때처럼 서민 경제 앞에 놓인 추운 겨울을 맞아 꺼져가는 거리의 불빛을 바라보며 문득 드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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