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석 시민언론민들레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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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또는 논현동) 어느 고급 술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새벽까지 술 마시는 것을 목격했다는 한 첼리스트가 경찰 수사과정에서 말을 바꿨다고 한 신문이 단독 보도를 냈다. 남자 친구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한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세상이 또 한 번 뒤집어졌다. 

“아무리 술통령이란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도 법무장관까지 대동하고 김엔장 변호사들과 어울려 새벽 3시까지 술을 퍼마셨겠어? 첼로 연주에 맞춰 ‘동백아가씨’까지 부르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무슨 배지까지 달아줬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이제 안도의 한숨을 돌리게 됐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로비스트의 주선으로 민간 로펌 변호사들과 만나 술까지 진탕 얻어 먹었으니 명백한 탄핵 사유 아니었던가! 양식 있는 사람들이라면 탄핵 운운 이전에 윤리적 도덕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미 김의겸 의원의 한동훈 장관을 상대로 한 국회 질의와 이어진 ‘시민언론 더탐사’의 보도를 들으며 의심없이 ‘청담동 술판’의 진상을 믿어 버린 판이다. 설마 우리 대통령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술자리에 끼었겠나, 의심부터 해야 마땅한 윤리의식 부족 때문이 아니다. 술자리를 주선했다는 이세창 씨와 첼리스트의 녹취 내용이 워낙 사실적이고 적나라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평소 보였던 공과 사를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자유분방함을 넘어 기괴하기까지 한 행동거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면도 있었다. 

그런데 첼리스트가 경찰 수사과정에서 그 생생한 녹취 내용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가 꾸며낸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문득 수십 년 전 중학 영어참고서에서 읽은 적이 있는, 미국의 한 가난한 소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집은 가난합니다. 우리 집 가정부도 가난하고 운전기사님도 가난하고 정원사도 가난합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는 웃었지만 철이 들고 나서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이 소녀는 정말 자기가 가난하다고 믿었을까?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는데 너무 순진해서 잘못 말한 걸까? 아니면 ‘가난’에 대한 에세이를 쓰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가난’을 접해 본 경험이 없어서 그렇게밖에 쓸 수가 없었던 걸까? 딱 하나 분명한 것은 있다. 소녀는 자기에게 있는 것, 자기가 본 것, 자기가 느낀 것을 썼을 뿐 거짓으로 꾸며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 

첼리스트가 최초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말했던 것, 그리고 상당한 기간 차이를 두고 이 남자친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두 사람에게 말했던 내용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것, 이 술자리를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이세창이란 인물과 강진구 기자 간 녹취내용과도 부합되는 점이 많다는 것, 정치에 밝지 않은 그녀가 지목한 정치인의 그 후 행로가 예언처럼 맞아 떨어진다는 것 등등, 첼리스트의 증언은 마치 가난한 소녀의 ‘가정부’ ‘운전기사’ ‘정원사’와 같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소녀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나는 가난한 가정부도 없고 운전기사도 없고 정원사도 없다. 나는 진짜 가난하다”고 고백한들 소녀가 말한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질까?

나는 첼리스트가 경찰 수사과정에서 왜 자신의 녹취 내용을 전면 부정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첼리스트가 거짓말한 것이라고 고백했다는 그 신문의 보도가 사실이더라도) 그 고백을 하기까지 엄청난 고민을 했으리라는 짐작만 한다. 남자친구 모르게 딴짓을 하고 거짓말로 둘러대는 거짓말쟁이라는 불명예(?)를 감수하느냐, 봤기 때문에 본 것이라고 끝까지 주장하다가 닥칠 온갖 괴로움과 불이익을 감수하느냐. 그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자진 결심이 있었는지, 회유가 있었는지, 설득이 있었는지, 압박이 있었는지, 심지어 협박이 있었는지, 역시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게 첼리스트가 수사 경찰과 함께 연주한 협주곡은 사람에 따라 화음으로 들리기도,  불협화음으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놀라운 것은 한동훈 장관이다. 그는 첼리스트가 거짓말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반격의 포문을 열었다. 더탐사를 위협한 것은 물론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심지어 김의겸 의원에게는 사과할 필요도 없이 법적 책임을 지울 것을 다짐한다. 고작 의심쩍기 짝이 없는 첼리스트의 고백 보도가 나왔을 뿐 그날 밤 이세창 씨의 뒤죽박죽 행적, 보좌관과 첼리스트 간 관계, 양자 간 금전거래의 내용에 대한 조사, 한 장관 자신의 관용차 운행 일지의 부존재 등 당일 자신의 행적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없이 ‘청담동 술판’은 없었던 일로 확정 짓고 반격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법의 힘으로, 자신들의 비리와 범죄행위는 얼마든지 깔아뭉개고 표적으로 삼은 상대방은 증거와 증인을 조작해서라도 잡아넣을 수 있다는 배짱의 발로다. 

아쉬운 것은 이번에도 몇몇 민주진영 유명인사들이 성급하게 발을 뺀다는 사실이다. 수십 년간 당해 왔으면서도 또 그런다. 검사들의 터무니없는 날조에는 억울한 자기편 등을 밀어내면서 자기편의 정당한 의문 제기에는 증거가 우선이라고 투덜대는 야속한 행태를 또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검사정권에서 검사들이 검은 것을 희다 하고, 흰 것을 검다고 한들 검사 아닌 사람들이 제대로 항변 한 번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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