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진 귀촌칼럼니스트
신동진 귀촌칼럼니스트

지난 번 칼럼 <‘매국’ 내몰리는 어느 지방보조사업자의 ‘애국’ 단상>에 이은 후속 칼럼이다. 지난 6월 4일 대통령실이 배포한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결과, 각종 부정 비리 온상 확인” 제하의 보도자료에서 분류한 ‘민간보조금 주요 위반사례’ 유형은 다음 5가지다.

유형 1) 보조금 횡령, 사적 사용 등

유형 2) 거래업체에게 리베이트 수령

유형 3) 가족, 임원 등 내부자 부당거래

유형 4) 서류 조작 등을 통한 부정수급

유형 5) 목적 외 사용 등 부정 집행

자료에서는 위 5가지 유형을 위반한 44개 단체의 위반내용들을 적시하고 있다. (상세 내용은 대통령실 보도자료 참고) 내용을 읽으면서 위반한 사람들에 대한 공분보다는 측은지심이 생겼다. 그리고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 마동석이 분한 성주신의 명대사도 떠올랐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지…” 라는 대사. 나의 법 감정이 너무 무뎌서일까? 분명한 것은 촌에 와서 보조금 사업을 하면서 겪은 나의 경험이 대통령실이 제시한 위반사례들에 대한 내 법 감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쁜 상황’에 대한 검토 없이 나온 개선 대책은 공염불이라고 생각한다. ‘나쁜 상황’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먼저 독자들께 질문을 드린다.

‘나쁜 사람’을 만드는 ‘나쁜 상황’의 실상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위 질문의 합계점수는 4점을 넘을 수 없다. 각각의 질문에 대한 내 판단의 근거는 아래와 같다.

질문 1 관련 : 촌민과 고령층의 문해 능력과 정보화 역량이 다른 계층에 비해 가장 낮고, 촌이 초고령화 돼있다는 점에서 인력상황은 열악하다. 초고령화 지역은 당연히 젊은 경제활동인구가 적다. 이런 이유로 도시에서는 핸드폰이나 메일로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대면해서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과소화, 저소득 상황과 안 좋은 대중교통 여건은 일 처리 속도를 하염없이 늦추곤 한다.

질문 2 관련. <법률저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9년~2018년 10년간 행정고시 합격한 총 2729명 중 2명을 빼고는 모두 대학 출신이 합격했고, 상위 1~10위 대학이 87%의 합격생을 배출했다. 이 10개 대학은 모두 서울에 있고, 이 중 1, 2, 3위를 각각 차지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는 전체 합격생의 무려 65%를 차지했다. 집, 학교, 학원, 독서실을 오가며 무균실험실 같은 조건에서 열심히 공부했을 엘리트들이 열악한 촌의 현실을 잘 알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신이 일하는 근무여건이 일반적인 세상의 근무여건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어낸 보조금 집행기준이 촌에서 무리 없이 적용되길 기대하는 것 또한 어렵다.

질문 3 관련. 그렇다면 공자왈 맹자왈 같은 중앙행정의 지침을 현장의 상황에 맞게 촌의 공무원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책임 있는 재량권을 행사하면 좋을텐데,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도 현실적으로 힘들다. 어느 날 인사가 나서 보조금 관련 보직을 맡아 아직 업무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그리고 올해 예산 올해 안에 다 써야 하는 상황에서 이전 해오던 방식을 바꾸겠다는 결심을 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이미 안전이 검증된 이전 근무자의 방식을 따라 하는 것이 가장 공무원다운 선택이다. 그래서 회계 처리 방식이 온라인 시스템으로 바뀌었어도 과거 오프라인 시절 요구했던 증빙자료는 여전히 요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전자세금계산서를 홈택스로 발행하게 되면, 정상적으로 사업자등록이 돼 있는 거래처만 발행할 수 있고, 거래처의 업종, 업태가 무엇인지도 확인이 되고, 제품이나 용역의 내용, 단가와 합계액이 얼마인지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업자등록증, 견적서, 거래명세서를 전자세금계산서와 함께 제출해야 한다. 인터넷뱅킹으로 출력한 이체확인서에 거래처의 계좌번호가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처의 계좌사본을 역시 제출해야 한다. 이제 온라인으로 증빙이 되니 사업자등록증이나 계좌사본을 따로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용기(?)있게 얘기할 촌의 공무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조금 사업자가 힘들더라도 다양한 증빙서류를 만들어오면 공무원 입장에서는 회계관리부실의 책임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나의 안전이 보장되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기존에 받아오던 증빙서류를 줄일 공무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들이 가진 중앙정부의 회계지침에는 벌써 없어졌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무사안일의 이유로 여전히 남아있는 증빙서류 목록이 버젓이 적혀있는데 이 지침을 거스르면서까지 주민 위주의 행정혁신을 해내겠다고 나설 기초지자체 공무원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최근 들어서는 이 회계 검증을 공인회계사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행정이 져야 할 검증의 부담과 책임을 피하고 전문성을 기하기 위함일 것이다. 보조금 사업자의 필요라기보다는 행정의 필요 때문에 검증을 맡기는데 그 비용은 보조금 사업자가 낸다. 뭐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이런 경우 회계사무소 직원은 보조금 사업에 대한 이해도 없고, 주민들과는 일면식도 없어서 정말 말 그대로 회계지침대로 그대로 검증을 하려 든다. 참고로 가평군에 사는 내가 진행했던 보조금 사업의 회계사무소는 서울과 남양주시에 있었다. 그래서 현장의 열악한 상황을 전하며 증빙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회계사무소는 그 판단을 공무원에게 넘기고, 공무원은 다시 회계사무소로 넘긴다. 공익적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사업에 참여해 행정의 파트너로서 일한다고 믿고 싶은 보조금 사업자의 사명감과 자부심은 넝마처럼 돼버린다.

헌신에 대한 배려가 1도 없는 탁상 행정

질문 4 관련 : 이상과 같은 상황에서 사업에 응모, 진행, 정산에까지 실질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보조금 사업자 단체의 대표 또는 실무자의 역할은 클 수 밖에 없다. 들여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는 상근 근로자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일자리 사업이 아닌 대다수 보조금 사업은 상근자의 인건비를 줄 수 없도록 돼있다. 아마도 어떤 목적 사업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이니 당연히 그 단체는 상근자 인건비며, 사무실 운영비가 자체적으로 확보돼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든 집행 기준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비영리단체 중 자체 사업이나 회비, 후원금 등으로 직원 월급 등 단체 운영을 위한 고정 비용을 어려움 없이 내는 단체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 의문은 차치하고라도 현재 보조금 사업은 그런 재정이 탄탄한 단체들에만 지급되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오히려 지방보조금 사업의 경우, 사업 공모를 보고 급조된 단체가 더 많을 것이고, 또 행정도 사업 활성화를 위해 이것을 독려하거나, 사업 선정 후 단체 결성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보조금 집행기준만은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단체에게 적용했던 기준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생기는 폐해는 고스란히 사업에 참여한 단체의 대표 또는 실무자가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이들 실무자들이 상근 인건비만 못 받는 것이 아니라 강사비, 원고비, 회의참석비, 컨설팅비, 단순인건비 등 여하튼 그것이 무엇이 됐든 단체 내부회원에게는 원칙적으로 인건비를 쓸 수 없도록 돼있는 보조금 집행 기준의 적용을 받는다. 예를 들어, 어떤 공모사업이 공고돼서 어떤 전문가가 공익적인 목적으로 단체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계획서 쓰고 심사를 받고 하는 일은 그 전문가가 하게 된다. 선정이 됐다고 해서 기획료를 받을 수는 없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 내용에 대한 교육을 회원들 또는 사업대상자에게 할 경우 그 전문가는 강사비와 원고료를 받지 못한다. 전문지식으로 사업참여자들을 컨설팅해줘도 회의참석비며, 컨설팅비를 받지 못한다. 행사가 있어서 현장 연출을 해도 외부 진행요원에게는 수당을 줘도 그 전문가는 수당을 받을 수 없다. 그러면 그 전문가는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살까? 바로 여기서 꼼수의 유혹이 생기게 된다. 가볍게 ‘재능기부’ 정도로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던 전문가는 수렁에 빠진 느낌을 받게 된다. ‘아, 내가 이런 고민까지 하면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이때 꼼수의 유혹은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는 때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그 정도는 괜찮다고, 그렇게라도 해야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지 하며 꼼수의 장벽을 낮춰준다. 그들은 사업으로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실무자가 고생을 하면서 돈을 벌지를 못하니 챙겨주고픈 인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무슨 기준을 이따위로 만들었냐며 기꺼이 자기가 받은 인건비의 일정 부분을 돌려주겠다고도 하고, 물건값을 좀 부풀려 주고 일부를 돌려주겠다고도 한다. 이런 꼼수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불법 위반사례가 되는 것이다. 일선의 공무원들은 이런 상황을 모를까? 이런 ‘나쁜 상황’에서 ‘나쁜 사람’들이 잉태되고 있는 것을?

현장 일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개선책

이제 대통령실이 제시한 제도개선 대책을 보자. 5가지의 제도개선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1번 대책은 결국 증빙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각종 증빙을 빠짐없이 등재’ 하겠다는데 그 증빙자료를 누가 만들고 있고, 어떤 여건에서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안 보인다. 문해 능력과 정보화 역량이 많이 떨어지는 지방에도 ‘보탬e’라는 전산 관리시스템으로만 증빙하겠다는 것인데, 지금 국가보조금 관리시스템 ‘e나라도움’에서 보듯 새것이 왔어도, 옛것이 사라지지 않는, 증빙자료 원+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책을 보면서 나는 쾌적한 사무실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는 그러나 그 커피를 만드는 농장에서 어떻게 누가 일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못된 소비자가 떠올랐다. 2~5번 대책은 요약하면 더 깐깐하게 들여다보고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현장의 인력, 근무여건을 개선해서 현장 활동가들이 ‘나쁜 상황’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겠다는, 현장 일꾼들에 대한 존경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배려심조차도 안 보인다. 그저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듯하다.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보조금 사업을 안 하면 되지”라는. 맞다. 안 하면 된다. 그런데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난 그런 사람들이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들 같다. 배고픈 동족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선도적으로 찾아 나선 열심히 일한 개미들이 안쓰럽고 짠하다. 그런 개미들을 잡아먹는 개미귀신 역할을 정부가 꼭 해야겠는가? 그래서 난 보조금 사업자들을 힐난하거나 면박을 주기보다는 주권자로서 공복에게 명령한다. “보조금 집행기준을 현장 상황에 맞게 좀 잘 만들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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