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 달은 윤석열 대통령이 백악관 국빈 초청을 계기로, 자신을 궁지에 빠뜨린 여러 외교적 현안과 국내 현안에서 국민들의 시각을 외부로 돌리고 동시에 화려한 정상외교를 전개하여 20-30% 대에 머물던 낮은 지지도를 한껏 끌어 올리는 일대 연출 기간이었다. 이에 적극 호응한 수구 언론들 덕분에 일시적 앰플 효과는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나라가 망국의 길로 가는 것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윤 대통령의 잘못된 포석으로 대한민국은 조만간 엄청난 후폭풍에 휘말릴 것이 예상된다.
이에 주제를 해외로 돌려 세계 전반의 흐름을 되새김하여 본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대결 또는 체제경쟁의 과정에서, 과거의 미소 냉전에서 적용한 봉쇄정책이라는 단호하고 분명한 전략 대신에, 복잡하고 다층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존에 구축된 동맹과 우호관계를 기반으로 정치, 외교, 금융, 산업, 통상, 기술 그리고 규범의 영역을 총동원하는 소위 하이브리드(Hybrid)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 봉쇄에 동원한 하이브리드(Hybrid) 전략
예건대 군사적으로는 한미동맹과 미일 기본조약을 묶어 한미일 유사동맹으로 강화하고 주한미군과 유엔사에 우리와 합의되지 않은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해괴한 용어를 도입하여 동북아에 긴장을 유발하면서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유사시를 대비하고 있고, 인도-태평양이라는 깃발아래 전통 우방인 호주에 인도까지 끌어 들어 쿼드(QUAD)라는 새로운 기구를 결성하였지만 의도한 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 듯하며, 미국의 봉신국가들인 영연방을 엮어서 AUKUS라는 군사적 연합을 통하여 중국의 안보 방어선인 제1 및 제2 도련선을 압박하는 형세이다.
경제통상적으로는 경제안보라는 상호 대치되는 개념에 기반하여 ‘디커플링’을 도입해 가며 반도체 등 최첨단 산업 분야에서의 기술과 부품 그리고 장비에 대한 대중 봉쇄 조치를 취하고, 중국에 투자한 미국 및 우방국가 기업들에게 ‘리-쇼어링’과 ‘프렌들리-쇼어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가며 중국에서의 철수를 강요하는 한편, 상기 인도-태평양 개념을 경제산업적으로 연장하여 ‘IPEF’라는 실익도 내용도 없는 굴레를 작동시키고자 애를 쓴다. 그러나 ‘디커플링’이 오히려 자신과 우방국가들의 발등을 찍고 상호 간에 갈등을 야기하는 역효과로 나타나자 최근에는 애매모호한 개념의 ‘디리스크’라는 타협적인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규범의 영역으로 미국은 ‘개방된 자유민주주의와 폐쇄된 전체주의’라는 일방적이며 자기도취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구분하며 패권 방식으로 설정한 국제질서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상대 국가들을 협박하고 악마화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유엔 총회에서 “민주주의라는 체제는 인류의 중요한 자산인 동시에 서구의 우월성을 제3세계에 강요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아니되며 개별 주권국가들은 각자의 역사적 맥락과 상황의 조건에 맞추어 발전시켜야 한다”고 결의한 바 있다. 자신이 처한 역사적 조건과 현실에 직면하여 오기의 독재와 군부 독재를 차례로 극복해오면서 모범사례를 만든 국가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다만, 현재로서 조폭 수준의 검찰 독재를 단호하게 혁파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대 과제를 안고 있다.)
역으로 적대적 정당정치, 공포스런 인종차별, 극단적인 빈부격차, 일상의 총기사건, 막다른 부채위기 등으로 내전의 상황을 겪고 있는 미국이 과연 제대로 된 자유주의 민주국가인가 반문을 해야 할 판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미국의 정치체제를 껍데기만 남은 ‘분식(粉飾)절차의 제도- Anocracy’라고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 전후 미국이 개입한 수많은 국제전쟁은 대부분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진행되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국제질서 재편 방향에 대한 전망이 다른 G7과 BRICS
상기에 기술한 바처럼 미소냉전 시기와는 달리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국제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G7과 BRICS는 나름대로 상황에 대응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구 내지는 연합조직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중심을 형성하고 있고, 서로 성격을 달리하는 나토집단과 G20가 이들의 주변을 감싸고 있다.
우선 G7의 탄생 배경과 성격을 살펴보자. 압축하여 평가하자면, 지난 수백 년 간 세계를 지배해온 백인국가군인 서방주도의 식민지배 유산, 즉 전후에 형성된 기존의 질서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조직이다. (이중 일본은 ‘황색인종’ 국가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촘스키 교수 같은 석학은 ‘탈색된 백인국가’라고 일축한다.)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투입된 달러가 때마침 산업부흥을 이룬 서유럽과 일본 등에 흘러 들어가 쌓이게 되자, 이에 위기를 느낀 미국이 금과 가치가 연동된 태환방식을 포기하면서 국제 금융과 통상에 일대 혼란이 야기된다.
이에 따라 제3세계 국가들 사이에 자원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급기야 중동에서는 원유를 무기화하면서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발생하는 동시에, 서구에서 물가가 급등하고 실업률이 치솟는 만성적 스태그-인플레이션이 진행되어 경제위기가 급격히 확산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결성된 것이 선진 경제권의 협력 조직인 G7이다. 당시의 G7 경제규모는 전세계의 80% 수준에 달했으며 미국이 저지른 패착을 공동으로 분담하여 이를 해결하고 서구의 식민제국들이 형성해온 경제 금융 통상 등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출범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미국 등은 이후 금융산업을 일상적 감독과 통제에서 해방시키고 금리와 배당 그리고 투기를 중심으로 하는 불로소득을 조장하고 방기하면서 급기야 1998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이후 심각한 세계금융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의 위기는 제한된 지역이 아니라 지구적 규모에서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G7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실질 비중은 과거의 80% 수준에서 40-50%로 약화되면서, 위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G7의 범위를 넘어서 중진국가군과 중국 그리고 인도와 같은 대국들의 협력이 절실하게 되었다. 기실 G20의 탄생은 국제 질서가 미국과 서구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단일체제에서 전 세계를 지평 삼아 짜장! 다자적 다극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아시아 위기 당시에는 이미 재무장관 중심으로 구성된 회의체가 서브프라임이 야기한 세계금융 위기가 도래하자 국가간 정상회의로 격상되면서 유엔에 이어 명실공히 다자적 국제기구로서 위상을 갖추게 된다.
협량한 G7 대신할 다자적 국제기구로서의 G20의 위상
그러나 서구제국 중심의 기존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 등과 제3세계를 대표하고자 하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독자적인 입장을 추구하는 러시아와 인도 등 참여 국가들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충돌하면서 금융위기가 잠잠해진 이후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지난해 열린 G20회의만 하더라도 미국과 유럽 제국이 러시아를 초대해서는 안된다고 의장국 인도네시아의 조코위 대통령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했지만 비동맹 주도국가의 지도자답게 그는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에게 정중히 참여를 요청하였고 푸틴을 대신하여 외무장관인 라브로프가 반둥 정상회의에 등장하였다. 당시의 회의 분위기는 서구 제국들이 아니라 중국과 인도 그리고 주최국인 인도네시아가 주도하였으며, 대립과 갈등을 염려하였던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제프리 삭스 같은 세계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G20라는 협의체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진정한 세계정부라고 평가하면서, 서구의 자기중심적인 G7+조직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군을 추가하여 중립적인 G20+방식으로 국제사회를 이끌어갈 다자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G7이 서구중심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정치경제적 기구이라면 이를 군사안보적으로 보완하는 조직을 나토라고 할 수 있다. 출범의 배경은 소련이 유럽 전역으로 팽창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집단자위의 군사동맹으로 초기에는 서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나, 소연방의 붕괴 이후에는 ‘자유와 개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동유럽 국가군을 대거 포섭하여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포위하고 위협하는 공세적 성격으로 전환되었다. 발칸반도와 중동 그리고 북아프리카 등 1990년 이후 발생한 8차례의 국제 분쟁에 전쟁국가 미국과 함께 나토가 모두 개입하면서 ‘전쟁기구’라는 불명예의 칭호를 달게 되었으며, 특히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나토가 등장하면 분쟁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공식이 만들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하여, 올해 들어 도쿄에 사무실을 개설하는 등 나토의 아시아로 확장 시도가 가져올 위험성을 동아시아의 경계지역인 한반도에 사는 우리 모두는 경각심을 갖고 예의주시해야 한다.
한편 BRICS는 비서구의 대표적인 국가들이 결성한 합의체로 이들은 나토 같은 안보적 동맹이 아니라, 경제와 통상을 중심으로 상호 이해와 번영을 위한 협력조직이다. 2015년 상하이에서 출범한 BRICS 산하의 신개발은행(NDB)이 그러한 성격을 잘 반영하여 준다. NDB는 미국이 주도한 브레튼우드 체제의 IMF와 세계은행이 서구 중심의 이해와 전략으로 운영되는 것에 대응하여, 독자적인 국제금융 체제를 확립하고자 설립된 조직으로 초기 수권자본 규모가 IMF 수준과 비견되는 1천억 달러에 달한다. 매우 관대하고 양호한 조건으로 회원국들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녹색금융을 가속화하고 세계환경보호를 촉진하고자 제3 세계의 비회원국들까지 점차 범위를 넓혀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구나 최근 회원 간의 자국통화 결제를 결정하면서 탈-달러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는 나토와 같은 군사조직을 단기 승부에 집착하는 서양식 장기로 비유하는 반면에, 중국이 취하는 경제협력 전략은 장기적 관점에서 실리와 세력의 균형을 추구하는 동양의 바둑과 같다고 평한 바 있다. 탁견이다! 또한 최근 IMF 등이 발표한 통계자료가 세계인의 주목을 크게 받고 있다. 아래 2개의 도표에서 보듯이, 세계경제 공헌도에 대하여 G7과 BRICS 간 비교 추이와 개별 국가별 비중이 제시되었다.
세계경제를 압도하기 시작한 비서구권
상기의 도표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하여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는 매우 중차대하다. 우선 경제규모와 상관없이 BRICS를 포함한 비서구권이 세계경제의 미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서구권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이다. 세계최고의 컨설턴트 조직인 맥킨지 역시 이를 재확인하면서 향후 십여 간 아시아가 세계경제를 주도할 것이며 역할의 비중이 6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였다.
특히 중국은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 이후 2020년까지 세계경제의 성장 기여도가 35%에 달하였으며, 상기 도표에서 보듯이 향후에도 23-25%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일부 축소된 중국의 몫이 미국 등 서방들에 의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에 의해서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과 G7 모두를 합한 기여도가 중국 한 국가보다도 적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예측한 바대로, 유럽은 산업이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경제가 뒷걸음치면서 완연하게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우 염려스러운 것은 세계 성장의 공헌도를 보여주는 상기의 14개 국가군 명단에서 한국이 아예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껏 우리는 한국이 경제규모 면에서 10대 강국이며 제조업 분야에서는 상위 5- 6위권에 든다고 자부하여 왔으나, 윤석열 정부의 일년이 지난 오늘 시점에서 한 순간에 13위권 아래로 하락하였으며, 국제적으로도 위상과 존재감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충격적 현실이다. 대조적으로 전쟁 중인 러시아가 오히려 8위권 국가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최근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CIA’라는 풍자적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한다. 과거의 CIA는 배후에서 음모를 꾸미고 못된 공작을 하고 불법적으로 통신을 도청하며 쿠데타와 폭동을 유발하면서 혼란과 불안을 조성했던 바로 그 미국의 비밀 정보국이다. ‘새로운 CIA’는 China, India 그리고 Asean의 결합어로서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하여 안전과 번영을 가져다 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선택은 자명하지 않나
결론이다. 대한민국은 한때 서세동점의 국제적 조류에 휘말린 피식민지 피해국가이다. 다행스럽게도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난 현재 선진국가 반열에 간신히 들어섰다고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처럼 완연하게 쇠잔해가는 식민제국들의 서방국가 클럽 G7의 주변에 들러리를 서고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역으로, 중국 시장과 우크라 전쟁에서 보듯이, 원하지 않은 부담과 역풍만 발생할 공산이 크다. 더구나 미국의 고객국가로 전락한 일본처럼 자기정체성을 탈색하고 백인국가인 양 변신해야 할 아무런 역사적 배경과 합당한 근거도 없다. 오히려 잘못된 포석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미숙하게 방향타를 잡아 제 길을 잃으면, 현재의 수출 상황이 예고하듯이 대한민국의 국제 위상은 추풍낙엽처럼 맥없이 추락할 것이다.
우리가 지닌 기술과 문화적 저력을 제대로 발휘하고자 한다면 G7이 아니라 오히려 G20이라는 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세계적 지평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보다 실질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다. 우리를 옭아매는 한미일이라는 쇠창살의 동맹에 갇힐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일원으로 그리고 제3세계의 모범국가로 우뚝 서는 것이 한국이 추구해야 할 번영의 전략이요 미래세대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는 올바른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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