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과 청소년 ⓶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은 오래된 문제다. 우리 사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해 캐나다의 청소년 부모들이 포트나이트 게임에 빠져 잠도 자지 않고, 씻지도 먹지도 않는 자녀들을 보다 못해 게임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걸었다. 일부러 중독성이 강한 게임을 만들었다는 이유다.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이 도박성을 띠면서 청소년들이 게임하듯이 도박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실 도박도 게임의 한 종류다. 동서고금 모든 인간 사회에서 발견되는 만큼 인간의 본성과 뗄 수 없는 놀이의 하나다. 게임이나 도박을 할 때면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쫄깃한' 상태가 되고, 그런 상태를 자꾸 맛보고 싶어 몸이 원하게 된다.

중독은 뇌가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상태다. 마약 중독은 외부에서 주입된 약물에 중독되는 것인 반면 도박이나 게임 중독의 경우 신체 내부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에 중독되는 셈이다. 쾌감 신호를 전달하는 도파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호르몬이지만, 과다하게 분비되면 조증이나 환각 상태에 빠지고 부족하면 우울증이나 파킨슨병에 걸리게 된다. 중독을 뇌질환으로 보는 이유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를 중독성 행위 장애로 규정한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ICD-11)을 통과시킨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 빠진 것을 질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도파민을 공급하는 디지털시대의 전통놀이

몸놀이는 어린아이들의 신체와 정서 발달,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되지만 10대들에게는 더 이상 매력적인 놀이가 아니다. 전통놀이처럼 농경사회에서 유행하던 놀이가 산업화를 거쳐 첨단 정보화 시대에도 유효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 환경에 부합하는 놀이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사로잡는 게임의 긍정적인 면을 도외시하는 것은 놀이의 세계를 이데올로기로 접근하는 것이다. 오늘날 게임 산업의 규모는 자동차 산업과 맞먹을 정도다. 프로 게이머는 프로 골퍼만큼 인기 직종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모바일 게임 산업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같은 하드웨어의 발달과 게임 소프트웨어의 발달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새로운 게임 세계를 열어간다.

오늘날 청소년들 사이에서 게임을 모르면 대화에 끼기도 힘들다. 여럿이 함께 즐기면서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게임, 바둑처럼 치밀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게임도 적지 않다. 게임의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며 알게 모르게 현실 세계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페미니즘이 확산하면서 여성 캐릭터의 성 상품화에 반대하는 게임이 등장하고, 한편 급진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으로 여혐을 드러내는 게임도 등장한다. 게임을 통해 사회 공부를 할 수도 있다. 오늘날 게임 이용자의 성별 구성은 남성 50.3%, 여성 49.7%로 거의 비슷하다(2019년 기준). 디지털 게임이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을 인정하고 이를 건강한 놀이 문화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많은 놀이가 중독성을 띠지만, 야외에서 몸을 움직이는 놀이는 해가 지거나 몸이 지치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중단하게 된다. 디지털 게임의 경우는 배터리가 나가거나 기기가 고장 나지 않는 한 아무런 제어 장치가 없다 보니, 중독성이 강한 게임들로 인해 부모 자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최근에는 게임에 빠진 젊은 아빠들의 문제가 부각되기도 한다. 게임을 하면서 자란 세대가 부모가 되어 아이와 함께 게임을 즐기기에 이르렀다. 게임 세계를 모르는 부모와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갈등하던 시대가 저물고 게임이 가족 놀이가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걸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게임을 둘러싼 세대 갈등이 현저히 줄어들지도 모른다.

인생이 짧다지만 시간을 잊고 빠져들 만한 소일거리 없이 살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권태는 중독 못지않게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권태로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쫄깃한 긴장감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 심리다. 에너지가 넘치는 청소년들에게 학교와 학원을 뺑뺑이 도는 삶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나름 찾아낸 자구책이 게임일 것이다.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학원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도 '쫄깃함'을 맛볼 수 있으니, 지루한 학습노동 틈틈이 도파민을 보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셈이다. 그렇게 '일용할 양식'을 얻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거라고 이해하면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중독에서 몰입으로 물길을 바꿀 좋은 습관 하나

어떤 아이들은 게임 대신 아이돌에 빠진다. 중독자와 '덕후'의 경계는 애매하다. '덕질' 또한 중독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도 덕질은 곧잘 한다. 뒤늦게 '임영웅 덕질'의 세계에 입문한 60~70대 여성들이 거기서 살아갈 힘을 얻듯이 많은 이들에게 덕질은 삶의 에너지원이다. 인터넷 시대는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일 중독 시대를 지나 소비 중독, SNS 중독 시대로 넘어온 우리 사회를 '중독사회'라 명명하는 이도 있지만, 몰입과 중독의 경계는 애매하다. 대부분의 덕후들은 치료가 필요한 중독자라기보다 그렇게라도 뭔가에 마음 붙여 살아갈 힘을 얻고 있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다.

중독이 뭔가에 빠져 있는 상태라면 몰입은 뭔가에 깊이 잠겨 있으면서 동시에 안테나가 넓게 펼쳐져 있는 상태다. 프로 게이머와 게임 중독자는 겉보기에는 언뜻 비슷해 보이나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 둘 다 관성의 에너지가 작동하는 상태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프로 게이머는 몸이 이완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반면 게임에 중독된 사람의 몸은 경직되고 흥분된 긴장 상태에 있다. 대국에 몰입해 있는 바둑 고수는 명상 상태에 가까운 평정심을 유지한다. 고수들은 몰입해 있는 자신을 더 높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메타 인지가 가능하다.

중독도 몰입도 심리가 아닌 물리의 세계다. 인생의 많은 문제들이 꼬이거나 풀리는 배경에는 물리적인 이유가 있다.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길은 다른 건강한 중독거리를 찾는 것이다. 운동이나 취미 같은 다른 몰입거리가 있으면 중독으로 흐르던 에너지의 물길이 바뀐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게임 중독은 다른 창조적인 몰입거리를 주지 못하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수학 문제에 몰입할 수 있는 아이는 극소수다. 문제풀이식 학습은 좌뇌 중심이어서 우뇌가 발달한 아이들은 흥미를 느끼기 힘들다. 신체(운동)지능이 발달한 아이들에게는 또 그에 맞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심리로 접근하기보다 물리로 접근하는 편이 낫다. 몸이 바뀌면 마음 상태도 바뀐다. 10대 시절은 신체가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이고, 이때 만들어진 몸이 평생을 간다. 이른바 '몸만들기'에도 흥미를 갖는 시기인 만큼 적절한 자극으로 시동을 걸면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마라톤 같은 운동은 그 자체로 중독성이 있을뿐더러 규칙적으로 하면 호르몬 체계를 바로잡는 데도 도움이 된다.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습관은 관성의 힘이 작동하는 상태여서 시동을 거는 에너지가 따로 필요하지 않고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준다. 좋은 습관 한 가지를 들이면 다른 많은 것들이 거기에 연동되어 변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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