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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독립영화 ‘다음 소희’가 11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노조 등 사회단체들의 자발적인 집단관람 캠페인에 힘입어 ‘다음 소희’가 소수의 극장에서나마 계속 상영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작품의 문제의식과 높은 완성도에 힘입어 이 영화는 제41회 프랑스 알레필름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이 영화를 만든 정주리 감독은 제11회 헬싱키 씨네아시아영화제까지 공식 초청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상영되어 현지 관객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특히 콜센터 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을 다루는 장면을 보고 나서 비슷한 경험을 한 프랑스 관객도 그 현실에 공감하면서 울먹였다고 한다.

‘다음 소희’는 독립영화로서는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11만 명의 관객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소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직업계교 전체 학생 20만 명의 반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벌집 사무실’에서 일하는 ‘현대판 공순이’, 즉 50만 명의 콜센터 여성노동자의 5분의 1에 불과하고, 한국의 양대 노총의 총 조합원수 250만 명의 5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소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학생과 노동자, 혹은 노조에 가입한 임금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는 1970년 전태일이 분신할 때 노동자들이 그랬듯이 아직도 이런 영화가 나온 것도 모르거나, 알고 있어도 볼 시간이 없거나, 그리고 별로 볼 생각도 없다.

누구도, 스스로도 관심 주지 않는 직업계고 출신 노동자들

그래서 하층 노동자들이 그렇듯이 직업계고 출신 청년들은 그들 중 누가 사망한 사실이 보도되어야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사회의 가장 밑바닥의 신판 천민과 같은 존재이며, 그냥 그림자처럼 취급된다. 한국의 정치권, 언론, 법조계, 학계에서 정책과 담론을 주도하는 사람들 중 자녀를 이런 직업계고와 위험한 실습 현장에 보낸 경우는 아마 1퍼센트도 안 될 것이므로 그들은 이들 청년들의 문제에 철저히 무관심하다. 특목고와 일반고 출신들의 명문대 진학률이 언제나 언론의 관심거리인 한국에서 이들 학생들의 처지는 사회적 관심권 밖에 있다. 즉 당사자인 직업계고 실습생들도 자신의 힘든 처지를 사회에 호소할 기회가 없고, 그들의 편에 서야 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도 그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사회 일반도 그들을 그림자처럼 취급하니, 영화로나마 이렇게 고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들 직업계고, 실업계고는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종합고, 직업위탁고 등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관심을 갖고 주변을 돌아보면 학교 입구나 건물에 국제 금융고, 세무고, 조리고, 항공고, 관광고 등의 학교 명칭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 시민들은 그저 공부 못 하거나 안 하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2021년 통계를 보면 현재 고등학교 재학생 중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에 재학 중인 학생은 약 20만 명인데 전체 고등학생의 15퍼센트 정도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직업계고 학생 수는 40퍼센트 정도 감소했는데 그 이유는 직업계고 취업률이 2017년 50퍼센트로 최고점을 찍은 후 급감하여 2020년에는 28퍼센트에 불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취업한 학생들도 자신들의 전공과는 거의 무관한 배달노동, 단순노동, 심부름 등에 종사하거나, 여학생들은 ‘다음 소희’의 주인공 소희처럼 콜센터 등에서 일하기도 한다. 2021년 통계로 8만여 명의 직업계고 출신이 배출되었지만, 그 중 대학 진학자수는 오히려 취업자 수를 능가하고, 그중 4분의 1정도는 취업도 진학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떨어지는 취업률, 떠나가는 학생들, 기로에 선 직업계 교육

역대 정부는 다양한 방식의 직업계교 지원 정책을 펴왔고 특히 이명박 정부는 고교 직업교육 선진화 방안에 따라 마이스터고를 신설하고 고졸자 대기업 취업의 길을 열었다. 박근혜 정부는 도제 시스템도 도입했다. 모든 정부는 고졸 취업자 지원 확대, 직업계고 지원 확대, 취업자 지원 확대, 산업형 맞춤형 교육 정책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학생 모집률, 졸업생 취업률 등 모든 지표에서 지금 직업계 교육은 거의 기로에 놓였다.

과거 교육부는 이후 산업 현장에서의 고졸자 인력 부족을 예상하여 실업고 확대, 선진화 정책을 펴왔으나, 실제 이들 직업계고 출신들은 취업 몇 년 후에는 산업 현장에서 거의 이탈하였다. 불안전 노동의 회전문을 돌 가능성이 크고, 숙련 축적의 기회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경기 비정규직지원센터 조사에 따르면 특성화고 졸업자들 중 80퍼센트 이상은 비정규직으로 취업하였고, 70퍼센트 정도는 종업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이들 중소기업들은 실업고 출신 청년들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자신의 전공과도 무관한 분야에 취업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허드렛일 심부름을 하면서 청춘을 보내야 한다면, 그들 중 누가 대학 진학의 길을 찾지 않을 것인가?

교육부는 취업률에 따라 선별적으로 지원 정책을 폈기 때문에, 취업에 사활을 건 학교에서는 실습생이라는 그럴듯한 이름하에 학생들을 사지로 내몰고도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사실 취업률은 경제나 산업 여건이 좌우하는데, 제한된 일자리 조건에서 학교끼리 경쟁을 붙이면 학교장과 교사들은 반교육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열악한 중소기업은 이들 유순한 청년들의 저임 노동력에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실업고 청년들의 죽음을 보면 교육부, 학교장과 교사, 노동부, 기업주 모두가 공범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사망 사고 이후 노동인권 보장, 근로감독 강화, 취업률 압박 완화 등의 조치가 내려졌다고는 하나 과연 이들 실습생의 처지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는지는 회의적이다.

결국 재벌 대기업과 수직계열로 연결된 한국의 기업 생태계, 그리고 청년들에게 숙련 축적의 사닥다리와 이후 기능공으로서 좋은 대우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지 않는 국가의 산업정책 부재가 이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결국 현장을 떠나게 만들었다. 대졸자 과잉과 고졸자 인력부족을 예상한 과거 교육부의 실업고 육성 정책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거제 등지의 조선산업에서 심각하게 겪고 있듯이, 제조업 분야의 기능공 부족 현상은 실업고 졸업생 수가 부족한 데서 초래된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자신의 적성과 기능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일자리, 더 나아가 노동자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일터가 없다는 데 기인한다.

좋은 대우만큼 중요한 노동자로서의 자긍심

물론 이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대우와 적절한 보수다. 그러나 이들은 기술자, 기능공, 직업인으로서의 안정감과 자긍심을 경제적 보상만큼이나 중요시한다. 과거 박정희, 이명박 정부의 기능공 육성 정책은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 이 두 정부는 청년들이 최고의 기술을 익혀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개인적으로도 지위 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박정희 정부의 금오공고 설립 시도는 개발주의 시대에 필요한 시도였고, 이명박 정부의 마이스터고 설립 역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 보수 정부는 실업교육을 또 다른 엘리트주의와 ‘개천에서 용 난다’의 정신으로 추진했다. 그래서 직업계고 역시 심각하게 수직 서열화되었고, 한 학교 내에서도 기능경시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또 다시 소외되었다. 그리고 1등 기능사들은 거의 산업현장에서 떠났다. 계층상승과 일등주의라는 논리를 이들 기능인, 직업인들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결국 1등이 된 기능인도 현장 기술력 강화에 기여하기보다는 자신의 출세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시험능력주의’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숙련축적과 노동자 권리, 기능인의 자긍심 부여를 고려하지 않는 교육정책과 노동정책, 인간을 경제적 도구로만 본 박정희, 이명박 등 개발주의, 일등주의 기능성 양성 정책, 그리고 김대중 정부 이후 신자유주의 기조하의 산업정책 축소, 교육, 노동, 산업인력 정책의 분리는 결국 오늘의 직업계고의 붕괴를 가져왔고,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조업 인력을 고갈시켰다. 아무리 사회가 대학진학을 부추겨도 공부보다는 당장의 기술이나 기능을 익혀서 취업하려는 청년들은 있고, 부모의 경제력이 있어도 대학 진학을 원하지 않는 청년들도 많다. 그런데 한국 사회와 한국 교육은 이들을 억지로 대학으로 몰아넣어, 하기 싫은 공부를 하게 만들고,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지출하게 하고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

대학진학 위주의 일반고 교육의 파행과 직업계고의 존립의 위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명문대 의대 진학에 온 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한국에서 진정한 고교 공교육은 실종된 상태다. 그것은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성, 낮은 재정지출과도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인공지능, 제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소리는 요란하나,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미래형 제조업 인력 육성, 현장 지식의 축적을 포기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처럼 ‘힘든 노동’은 이제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겨도 좋은지 정치권은 답을 해야 한다.

양극화, 노동 양극화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추세라고 하더라도 사회 내에서 누군가는 땀 흘리는 일을 해야 하고 그들에 대한 대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져야 한다. 여전히 OECD 최하위를 기록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더욱 향상되어야 하고, 고교 노동인권 교육은 전면화 되어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일자리, 복지, 직업훈련 등을 연계하여 직업계고 출신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서도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만, 교육, 노동의 위기 극복, 인구의 수도권 집중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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