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의 궁리] 나는 두렵지 않다, 저들의 ‘종북좌파’ 프레임
이럴 수도 있구나, 국가와 국민의 자존을 이렇게까지 유린하고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니, 행정수반이 사법부를 무시하고 국가의 중요한 명운이 달린 사안을 국회의 검토 한 번 없이 마구 싸질러도 정녕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존재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게 요즘 솔직한 심경이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사건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반민특위 해체를 들겠다. 해방 이후 친일청산이라는 첫 단추를 잘 꿰고도 또다시 친일세력에게 찬탈당한 역사가 요즘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때가 또 있을까. 억압과 모순으로 점철된 질곡의 현대사의 뿌리는 반민족행위를 처벌하지 못한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민특위 활동이 좌절되지만 않았어도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팔아넘긴 자들에게 다시 나라의 근간을 빼앗기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역사는 1보 전진 2보 후퇴를 거듭하며 발전한다지만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후과는 번번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과거로 돌리며 통곡하게 만드니 역사에 생략이나 건너뛰기는 결코 허용되지 않음을 재확인한다.
반민특위 해체, 번번이 되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1948년 9월 제헌의회가 제정한 헌법 제 101조에 의거한 전문 32조의 특별법, 이른바 친일파 단죄를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 제 1조에서 “일본 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병에 적극 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와 모의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의 1 이상을 몰수한다”고 명시한 것은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출발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자신의 지지세력인 친일경찰 세력을 이용하여 반민특위의 정신적 구심이었던 김구 선생 등 민족 우파 세력을 제거하고 두 차례 국회프락치사건으로 국회 소장파를 몰락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여순사건을 거치며 ‘빨갱이’를 정치적 숙주로 삼아 비판세력을 거세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를 참칭하는 이익집단들이 자신의 권력이 흔들릴 때마다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것이 한국에 보수가 없는 이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를 팔아먹어도 열광하는 추악한 아스팔트 극우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이유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반민족특별법 제 1조에 해당하는, 국가과 국민의 자존을 짓밟는 역사상 최악의 이익집단을 목도하고 있다. 일제의 총칼 앞에 대한국민의 주권을 당당하게 외친 3·1절에 조상 탓으로도 모자라 “자유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의 협력이 3·1 정신”이라며 일본과의 협력 필요성만 강조한 대통령은 돌아서자마자 간첩단 운운하며 ‘종북좌파’를 좌시할 수 없다고 했다. 1949년 정부수립 후 첫 3·1절에 “3·1운동의 힘을 반공으로”라며 반공국가, 반공투쟁을 강조하던 이승만, 유령단체를 사주하여 반민특위를 빨갱이 집단이라 시위하게 하고 그들의 폭력시위를 수수방관하며 이를 빌미삼아 서울 중부경찰서장의 지휘로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게 했던 이승만과 무엇이 다른가. 반민특위법이 시행되던 날 반공국민대회에 참석한 이승만은 “현직에 있는 사람을 처단하면 나라에 큰 혼란이 온다”며 반공으로 친일청산 의지를 무력화시킬 것임을 예고했고, 지금의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민노총이 종북 간첩단이 암약하는 근거지라며 종북 간첩단과의 전쟁을 선포, 공안정국을 예고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광화문과 세종로를 가득 메웠을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따라 불렀다던 이명박은 수십만 개의 초를 구매한 촛불자금의 출처가 봉하라며 노무현 죽이기에 돌입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 친일파로 투항한 사람들의 유일한 논리가 반공이었던 것처럼 일본 굴욕외교에 반대하며 윤석열의 퇴진을 외치는 시민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낡은 국가보안법을 휘둘러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을 상대로 칼춤을 출 것이다. 세상은 인공지능과 기후위기라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대전환적 위기를 맞고 있는데 윤석열 퇴진 구호가 북한의 지령이라는, 진화하지도 않은 매카시즘의 빈곤한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두렵지 않다, 저들의 ‘종북좌파’ 프레임
저들이 종일(從日)매국이라는 비판에 화들짝 놀라는 것처럼 정부 비판적인 시민사회는 저들이 종북좌파에 코를 거는 것에 화들짝 놀란다. 각 진영의 뿌리 깊은 트라우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저들은 친일, 종일을 선택했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종북좌파로 몰아붙이며 소위 순수하고 평범한(!) 시민들과 격리시키려 들 것이다. 저들은 이번에도 우리가 종북좌파 프레임에 걸려들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떨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적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 종북좌파라면 나는 기꺼이 종북좌파 하겠다. 저들은 대놓고 종일매국을 일삼는데 한반도에 결코 전쟁위기는 안 된다는 신념이, 정치는 오직 국민만을 보아야 하며 어떤 외압에도 국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본이 종북좌파의 것이라면 까짓거 종북좌파 하면 되지 않겠는가. 반공을 신념으로 민주화 운동가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어렵다면 국민이 만들어준 국회 다수당이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를 신념으로 한 종일방지법, 국익안위법을 제정하여 비판의 수위를 높여가야 하지 않겠는가.
63년 전 봄, 3·15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이라는 방아쇠를 당긴 그들에 맞서 지식인, 학생, 시민들은 육탄으로 저항했다. 학생들의 시위가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선전하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진압하려 했던 이승만은 불과 한 달 하고도 열흘이 지난 4월 25일 하야성명을 발표했고, 종신대통령이라는 과욕을 부리던 박정희는 결국 심복의 총탄에 스러진 것이 우리의 최현대사다. 이같은 역사를 외면하는 무도한 정부, 일본 요미우리신문과는 9개 면이나 할애할 만큼 친절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면서 제 나라 국민들에게는 대통령의 말을 다 전할 수는 없다는 오만한 정부가 윤석열 정부다.
경술국치에 이은 계묘국치라는 항의에 해명도 변명도 하지 않는 대통령은 이미 국가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참담하고 통탄할 시국이지만 위기는 곧 기회일 터이니 해방 전후 뒤틀린 역사, 기형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역사적 시간이기도 하다. 결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민족의 역린을 건드린 죗값을 철저하게 치르게 해야 한다. 그것이 민족의 자존을 천명한 3·1정신이며 정당성을 잃은 권력은 지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4·19 정신이자 5·18 광주정신이다.
사족을 달자면, 저들이 아무리 시계 태엽을 거꾸로 감는다 해도 시간은 앞으로 흐른다는 것을 보여준 일이 3·16 치욕이 있던 날 서울 광화문에서 있었다. 문화재청이 3월 16일부터 3일간 하루 3차례 30명의 시민들에게 공개한 광화문 월대(月臺) 복원조사 현장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유린한 현장을 오늘에 소환한 일종의 시간여행이었다. 이명박 정부에게 국민건강을 볼모로 저자세 외교를 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우리당이 선거에서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에 탄핵으로 몰아간 거대양당 정치인들에게 철퇴를 내려친, 국정농단으로 국기를 문란케 한 박근혜를 끌어내린 광화문광장이 실은 과거에도 광장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백년 만에 모습 드러낸 월대,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지문
광화문 정문 앞에 있던 월대는 임금이 친히 주재하는 과거시험(무과)이 열리고 왕실의 주요 행사와 산대놀이 같은 공연이 열린 무대이기도 하고 백성의 억울함을 전하는 상소와 논쟁이 이루어진 공간이었다고 한다. 일제는 조선 통치 20주년을 기념한 1929년 조선박람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물자와 인력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월대의 허리를 싹둑 자르고 그 위에 전차 선로를 깔았던 것이다. 일제와 일본인의 편의를 위해 삼군부 터와 월대, 의정부 터를 뭉개고 서쪽 통의동과 동쪽 안국동을 연결하고 세종로로 이어지는 Y자형 선로를 깔았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목적은 조선의 상징을 말살하려는 의도였다. 일본에 머리를 조아린 박정희 정권이 1966년 광화문 지하차도를 만들며 다 덮어버렸던 것이 백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복원과정에서 선로 아래 백년 가까이 지하에서 압살당한 월대의 흔적이 선명하게 드러났으니, 과거는 잠시 덮을 수는 있을지언정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지문 같은 것임을 증명해 보였다.
역사를 도외시한 채 한일 협력만이 미래를 여는 길이라던 대통령이란 자와 접수 5분 만에 모집마감될 정도로 월대 복원조사 현장공개에 뜨거운 관심을 보인 시민들, 이게 2023년 3월 16일 같은 날의 두 얼굴이었다. 군사적 재무장을 통해 전후 부흥을 반복하고자 하는 제국주의 후예들에게 민족자존을 헌납하는 자들은 과거 역사를 통해 현재를 통찰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수준을 죽었다 깨도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케케묵은 간첩단, 빨갱이 타령으로 국민의 자유로운 비판정신을 옥죄려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패착인지도 말이다.
밟으면 밟을수록 강인한 생명의 움을 틔워내는 보리처럼 종북좌파라 하면 종북좌파를 자임할 것이고 북한의 지령이든 아니든 내가 옳다고 믿는 윤석열 퇴진 구호를 당당하게 외칠 것이다. 주권자들을 법과 칼로 어찌할 수 있다고 믿는 가련한 자들이 국가대표 정치인들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참담할 뿐, 종북좌파로 불리든 뭐라 불리든 광장에서 웃으며 만나는 시민들을 그들은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색깔론을 피워봤자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특이점을 향해가는 이 시대에 바람 한 번 불면 다 날아가고 말,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부터 다짐하고 또 다짐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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