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출신 안규백 국방장관이 꼭 해야 할 일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2023년 9월 13일이었다. 그날 나는 2018년 9월에 출범하여 5년간 활동한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조사 성과를 국민에게 최종 보고하는 행사의 사회를 보고 있었다. 위원회는 1948년 국군 창설 이후 복무 중 사망했으나 국가로부터 아무런 예우도 받지 못한 군인과 유족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노력한 국가 조사 기관이다.

위원회는 5년의 활동 기간에 모두 1860건의 민원을 진정받아 조사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실은 적지 않았다. 과거 어느 조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조사 속도로 사건을 기간 내에 모두 완료했고, 그 결과 새롭게 순직 결정을 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된 군인이 1000여 명에 달했다. 군에서 자식을 잃고 고통 속에 살아온 유족들이 위원회에 고맙다는 편지를 많이 보내 주셨다.

 

2023년 9월 13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활동 종료에 따른 '5년 조사활동 성과 보고회'에 참석한 한 유족이 위원회 종료와 관련해 위원회 관계자의 마무리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2023.9.13. 연합뉴스
2023년 9월 13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활동 종료에 따른 '5년 조사활동 성과 보고회'에 참석한 한 유족이 위원회 종료와 관련해 위원회 관계자의 마무리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2023.9.13. 연합뉴스

만 2년 만에 들려온 반가운 소식 ‘미순직 군인 재조사 검토’

보고 행사 마무리 순서에서 나는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전히 방치된’ 미순직 사망 군인들에게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나는 3만 8000여 명의 미순직 군인을 그대로 남겨둔 채 위원회가 활동 기간 종료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못 견디게 가슴아팠고 미안했다. 나는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5년간의 위원회 활동 과정을 담은 영상물을 제작하면서 마지막 장면에 그 사실을 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법 연장을 거부하여 위원회는 오늘 문을 닫지만 남겨진 미순직 군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군사망사고 조사는 중단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촉구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지난 9월 21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방부가 미순직 사망 군인 3만 8056명(2022년 당시)의 명예회복을 위한 순직 재조사 필요성을 검토한다는 언론 보도였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기사를 여러 사람이 나에게 보내주며 함께 기뻐했다. 2023년 9월 위원회가 해산된 이후 내가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그동안 순직 기준이 점진적으로 완화되어 이전엔 인정받지 못한 군 사망자들이 새롭게 순직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재조사가 이뤄지면 미순직 사망 군인 중 상당수가 순직자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나는 이런 국방부의 방침을 환영하면서 동시에 군인권 운동가로서 안규백 국방부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하고 싶다.

‘타 국가기관 순직 권고 전면 수용’ 약속 왜 이행하지 않나

첫 번째는 미순직 군 사망자에 대한 조사는 환영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음을 국방부가 인정해야 한다. 위원회는 지난 5년간의 조사를 통해 ‘과거 군 헌병대의 잘못된 수사’로 순직 결정을 받지 못한 피해자 약 1100명을 순직으로 재심의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들 중에서 약 100여 명 남짓의 순직 권고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군의 명백한 적폐다.

2017년 9월 당시 나는 문재인 정부에서 국방부가 출범시킨 <군 적폐청산위원회> 간사 위원으로 일했다. 이때 <군 적폐청산위>는 밀도 있는 논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국방부에 ‘타 국가기관에서 순직을 권고할 경우 전면 수용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당시 국방부는 장관 서명을 통해 국민 앞에 약속하고 대통령에게도 이행 완료했다며 보고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오늘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방부가 타국가기관의 순직 권고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재심의하는 과정에서 자기들 눈높이에서 다시 해석하여 그 책임을 부인해 버린 결과 때문이다. 즉 국방부가 ‘갑의 위치에서’ 약속을 번복해 버린 것이다.

결국 군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은 또다시 희망 고문을 받고 더 큰 절망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하라고 권고한 것이 아닌데 이게 옳은가. 그러니 국방부는 지금이라도 대국민 약속을 이행해야 옳다. 국가인권위, 국민권익위, 그리고 위원회가 국방부에 순직 권고했던 희생자를 전부 순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미 했던 ‘타국가기관 순직 권고시 전면 수용’이라는 대국민 약속을 국방부가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다.

 

가해자 격 국방부는 재조사에서 빠지는 것이 옳다

두 번째는 미순직 군 사망자 재조사의 절차와 결론을 내는 것을 국방부가 담당해서는 안된다. 국방부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어느 죽음은 맞고, 나머지는 우리 책임이 아니라는 식의 조사는 절대 안 된다. 가해자 격인 국방부가 피해자인 군인의 죽음을 조사한다는 것이 당최 가능한 일이겠는가. 어느 피해자가 그런 결과를 납득하겠는가. 따라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의 조사기구인 민관 합동의 위원회와 같은 국가 조사기구의 재출범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군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의 한도 풀리고 논란이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의무복무제를 채택하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약 10여개 국가에서 의무복무제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우리나라처럼 1년 6개월간의 긴 시간을 복무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필요하다. 의무복무 군인을 징병하고 그 관리를 책임지는 기관은 국방부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책임을 인정해야 옳다. 복무 중 숨진 군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왜 국방부가 오히려 야박하게 구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안규백 장관은 첫 민간인 신분 국방장관이다. 또한 안규백 장관만큼 국회의원 시절 군 사망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인물이 없음을 잘 알고 있고, 군인권 운동가로서 고맙게 생각해 왔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크다.

안 장관에게 당부한다. 1948년 군 창설 이래 지금까지 방치된 3만 8056명의 억울한 군인의 죽음을 해결할 결단을 촉구한다. 그것이 민간 국방장관 임명을 환영한 국민에 대한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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