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교육 강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AI(인공지능) 시대다. 빛의 속도로 빨라지고 있는 AI 변화·발전 속도가 멀미를 나게 할 정도다. 3년 혹은 5년 안에 대화와 자료 정리만을 하는 AI가 아니라, AI 셀프 분업시스템으로 예약도 구매도, 기획뿐 아니라 실행도 하는 AGI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오게 될 거라고 한다. 비서가 아니라 기업의 조직도 하나가 손 안에 들어 있는 일인기업 시대가 곧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방식의 삶 예고하는 AI
사람이 하던 일, 하고 있는 일과 AI가 하는 일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휴모노이드 로봇이 보편화되면 온라인 상 업무 외 제조업 현장 모습도 완전히 달라질 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로봇기술 발달과 확산 속도를 보면 챗GPT 등장으로 받았던 충격과 놀라움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커다란 변화가 곧 올 것 같다.
AI 등장과 확산은 산업혁명 이후 보편화된 인류 삶의 양식, 인간관계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이미 지식과 정보 생산과 유통방식, 노동 형태, 상품과 이윤 거래방식, 사적 자본은 물론 공적 자본 분배방식,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일상 모습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있다.
소수가 관리하는 거대 네트워크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지만, 각 개인은 훨씬 더 개별화되고 고립이 구조화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이미 빛의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AI시대에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말로 교육에 대한 답으로 삼기는 부족해져 버린 것 같다. 교육은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AI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역량과 태도는 무엇일까.
AI에 적응하고 그 위험성을 방어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
우리는 지금 '인간과 AI의 경계는 어디인가'와 같은 실존적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인간 성장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하는 AI에 적응하면서도 AI가 만들어내고 있는 위험을 방어해야 하는 과제까지 동시에 안고 있다. AI는 이재명 대통령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발언처럼 재앙이 될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데 인간 같은 기능을 하는 비인간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인간이 AI와 경쟁하며 사는 세상일까? 소수 플랫폼 권력과 절대 다수 AI 소비자들이라는 새로운 계급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아닌가? AI코딩을 인간이 아니라 AI가 한다고 하지 않나?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 개발자 대량 해고 소식이 전해졌다. 극소수 인간의 개입만 있으면 AI가 AI를 스스로 진화시키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 삶은 어떤 모습일까?
‘환각 현상(Hallucination)’이 점차 많이 제거되고 제어되고 있다고 하지만 AI의 출발선이 된 LLM은 인류가 생산한 거대한 지식정보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 토대가 된 지식정보 자체는 다양한 지적 생산물의 집합체이며, 그 안에는 오염된 지식과 정보들도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정치적 혹은 경제적 목적으로 AI를 활용하거나 AI에 개입하여 현재진행형 오염정보들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Hallucination의 근본적 제거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AI시대 온갖 변수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 아이들
문제는 이미 성장한 성인이 아니라 성장 과정 중에 있는 아이들 일상에도 AI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혐오와 차별,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혹은 특정한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어른들의 의도에 저항하지 못한 채 아이들이 포획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소년의 시간’이 경고하고 있듯이.
AI시대 교육은 인류가 지금까지 풀어보지 못한 이런 새롭고도 거대한 질문과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요즘 AI시대 교육을 논하며 ‘AI 리터러시’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AI 리터러시란 구체적으로 무얼 말하는 걸까? 우리 사회가 합의한 교육적 관점에서의 정의가 분명하게 존재하는가. 그저 AI를 다룰 줄 아는 기능적 능력이나 전문가적 AI 개발능력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AI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은 AI 개발능력을 가진 사람을 길러낸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고도의 AI 개발능력을 가진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할 때라도 우리는 질문해야 하지 않나? 그가 만들어낼 AI가 인류 발전에 선순환적 기여를 하는 것이 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AI시대 보편적 교육원칙도 필요하지만, 오히려 AI 개발능력을 갖춘 인재일수록 더 특별한 윤리적, 철학적 태도를 갖추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재명 정부는 아이들 AI교육에 충분히 대응하고 있나
AI 3대 강국을 국정목표로 삼은 이재명 정부에서 AI교육은 특별한 중요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지명자 철회라는 특별한 상황이 있었지만, 정부 출범 후 3개월이 지나서야 교육부 장관이 임명된 것은 그만큼 현 정부 국정운영 차원에서 교육이 전략적 집중과제에서 밀려나 주변화되고 있다고 보여 씁쓸했다.
씁쓸함을 넘어 걱정이 깊어지기도 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했다. 첫째,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당장 그 결과가 손에 잡히고, 성과를 계량화할 수 없지만 우리 사회 민주주의 토대를 만드는 일인 교육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란청산 연장선에서 다른 국정 분야 못지않게 지난 3년 간 윤석열 정부 교육정책으로 빚어진 교육현장 파괴와 퇴행을 다시 복원하는 일도 시급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AI교육을 기존 교육적 틀에 디지털 기능교육을 추가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이해하고 기술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AI시대 교육은 기존 교육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할지도 모르는 결코 가볍지 않은 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데 말이다. 이미 AI시대에 진입한 우리에게는 늦어도 많이 늦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교육 비전문가들이 AI교육을 두고 중구난방하는 현실
지난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정부 교육 분야 6대 국정과제가 확정되었다. 6대 과제 실현을 위해 제시된 하위정책 중에 ‘AI 교육 강화’가 포함되어 있다. 국가 전략목표인 AI 3대 강국 실현을 위해서는 물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하고도 필요한 과제설정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AI교육 강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그런데 교육적 고민이나 전문성을 갖지 않은 타 부서 장관이 나서 AI교육정책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많은 교육정책들이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결정되고 추진되어 교육적 성과보다 오히려 교육문제 악화를 초래해 왔기 때문이다. 학폭도 사교육도 전혀 줄이지 못한 학폭예방정책이나 사교육 대책 등이 대표적이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를 중심으로 풀어나가기도 전에 교육전문성과 관계없는 정부 관계자가 초등 1학년부터 AI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든가, 만화부터 시작한다면서 교육방법론까지 거론한다든가, AI 특목고를 만들면 좋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재명 정부에서만큼은 역대 정부 오류가 반복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전문가 중심되어 AI전문가와 경제전문가들 협업해야
교육문제에 대해 경제를 주로 다루는 부서 관계자가 나설 문제는 더욱 아니다. 앞서 얘기한 AI시대 교육을 논하면서 고민해야 할 무거운 주제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현재 가능하고 바람직한 AI교육정책을 도출해내야 한다. 물론 교육관계자만이 그 일을 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AI전문가와 경제전문가들과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AI시대 교육정책을 고민할 때 그 중심에는 교육전문가들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국정 전반을 관할하는 입장에서 AI 강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이해하지만 급하게 먹으면 체하기 십상이다. 제대로 된 재료로 제대로 요리해서 먹어야 몸에 좋은 음식이 된다. 정치와 경제의 작동 사이클과 교육이 작동되는 사이클에는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AI를 다룰 줄 아는 디지털 기능을 익히는 것을 중심으로 AI교육을 이해하고 접근하면 우리 교육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원치 않은 상황에 직면하는 길을 여는 것일 수도 있다.
국민의 힘으로 윤석열 정부의 AI디지털교과서(AIDT)를 막아낸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AIDT를 반대한 이들은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교과서 변경을 졸속으로 추진한 것에 대한 우려와 비판도 있었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디지털 기기 중심 학습이 아이들의 인지능력과 사회정서능력 발달에 끼칠 영향을 검토하고 그에 적합한 교육원칙과 기준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유가 더 컸다.
새끼 호랑이 살피고 경계하는 것은 교육의 몫
미국 전국리터러시교육협회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미디어를 통해 전송되는 상징을 부호화하고 해독하며, 매개된 메시지를 종합, 분석, 생산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국내 학계에서는 ‘디지털미디어의 특성을 이해하여 선택하며, 비판적으로 분석·평가하고, 창의적으로 구성·생산하며, 윤리적으로 공유·참여하는 통합적 능력’으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단순히 기능적 접근만 할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AI디지털 인재양성 국정과제에 ‘인문학과 기초학문 병행’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제프리 힌튼의 ‘새끼 호랑이’ 언급을 인용한 이재명 대통령 유엔 안보리 발언에서 AI에 대한 균형적 문제의식이 확인된 바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끼 호랑이가 우리를 공격하는 거대 호랑이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은 교육의 몫이기도 하다.
대통령 임기 내 소버린 AI개발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일은 대학과 대학원 이상 단계에 특화시켜 집중해야 할 일이다. 유·초·중등교육 단계에 적용할 AI시대 교육원칙과 교육방법론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접근하고, 교육계가 중심이 되어 연구와 토론 속에서 답을 찾아나가도록 해야 한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AI시대 교육담론을 만들어 가는 일에 나서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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