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선택' 20년 이상 OECD 평균치 2배 넘어
산재사망자의 6.7배…노인, 청소년이 많아
허술한 복지, 가족·공동체 해체 등이 빚은 산물
남의 일로만 여기는 분위기, 대책도 공염불 그쳐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너무나 많다. 암, 심장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과 감염병, 식품·의약품 위험, 사회·자연재난, 교통사고, 산업재해, 안전사고, 자살, 살인, 전쟁, 테러 등등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생명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부문은 무엇일까? 나는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2004년부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먼저 자살은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노동자 산재 사망보다 그 수나 사망률 측면 모두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일 정도로 심각하다. 사고와 질병 모두를 포함하는 노동자 산재 사망자 수는 2024년 2098명이다. 물론 여기에 공무원과 군인, 산재 사망으로 집계되지 않는 대형선박 사고 사망을 포함하면 이보다 약간 더 많다. 하지만 이를 모두 더하더라도 자살 사망자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다. 2023년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 수는 1만 3978명으로 산재 사망자의 6.7배나 된다.
외환위기 이후 증가 시작한 자살률, 2004년부터 OECD 1위
한국은 산재사고 만인율과 자살률 모두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 산재는 38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사고 사망 만인율이 높고 자살률은 2023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7.3명으로 2004년부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줄곧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이런 자살률은 OECD 평균인 10.7명의 2배가 넘는다.
우리나라 자살 문제는 산재 사망보다 그 규모와 실태, 미래 전망, 예방 대책과 감소 해결 방안 등 모든 면에서 심각하고 어둡다. 산재 사고 사망률은 1990년대 이후 연도별 약간의 부침이 있기는 하지만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는 그래도 희망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자살은 다르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격히 증가했다. 잇단 기업과 소상공인 부도, 대규모 실업 등으로 이는 예견된 결과였다. 1990년 7.6명에서 1996년 12.9명으로 점차 증가세를 보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해 1997년 13.2명에서 외환위기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1998년에는 18.6명으로 크게 높아졌다.
2000년대 들어서도 자살률은 증가해 2003년 22.7명, 2005년 24.8명, 2008년 26.0명을 기록했고 특히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듬해인 2009년에는 31.0명으로 크게 높아졌다. 2011년 31.7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12년부터 점차 낮아지는 추세를 보여 2017년 24.3명까지 떨어졌다. 2018년과 2019년 다시 약간 나빠지기는 했지만 26명대를 유지했다.
점점 깊어지는 사회적 병리 현상, 시원찮은 진단과 처방
하지만 최근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023년에는 27.3명으로 전년 대비 8.5% 증가하며 9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아직 확정치가 아니지만 28.3명으로 2023년보다 더 높아졌다. 정점을 찍은 자살률이 낮아지다가 다시 상당 폭으로 다시 올라가는 현상은 매우 좋지 않다. 암 환자에 비유하자면 수술과 항암제 투여로 암이 낫는 듯하다가 다시 재발해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살이라는 전이암에 걸린 한국의 실태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으로 완전 회복은커녕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10대(연령대별 사망의 42.3%), 20대(50.6%), 30대(37.9%)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과 특히 노인 자살률이 다른 나이대에 견줘 압도적으로 높다는 특징은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 자살률이 감소하는 추세를 거스를 뿐만 아니라 초고령사회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 매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률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요인으로 △우울증 등 정신질환 △실업, 빈곤, 소득 불평등 등 사회경제적 요인 △노인과 사회 소외계층의 사회적 연결망의 약화와 고독 △입시, 취업, 결혼 등 지나친 경쟁사회와 사회적 압박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 등을 꼽는다.
우리 몸에 병이 들면 그 증상과 그 증상을 일으킨 직·간접적 원인을 제대로 찾아야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 자살 또한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보아야 해결의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전문가 등이 나름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이 나온 적은 없다.
정부 등이 그동안 마련한 대책을 보면 △생애주기별 맞춤형 정책 △정신건강 서비스 강화 △위기 대응 체계 구축 △자살 유해 정보 관리 △사회적 안전망 확충 △생명존중 문화 조성 따위를 들 수 있다.
공염불에 그치는 각종 대책들
이 가운데 몇몇을 골라 비판적 진단을 해보자. 먼저 생애주기별 맞춤형 정책은 연령별 자살 원인이 다르므로 맞춤형 대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청소년에게는 학업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대책을, 노인에게는 경제적·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청소년 학업 스트레스 완화는 우리 사회에서 날이 갈수록 거꾸로 가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영어 학습에 매달리고 중고등학교 때부터 의대 진학, 외국 유학 보내기에 열 올리는 사회에서 이런 대책은 공염불이다. 노인에게 경제적·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지금까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30년 가까이 노인은 늘 뒷전으로 밀려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둘째, 자살 유해 정보 관리다. 종종 청소년 등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온라인상에서 동반자를 모집하거나, 자살 방법 정보를 얻어 자살하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유해 사이트를 단속한다고 해서 얼마나 우리 사회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될지는 의문이다. 물론 유해 정보 관리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이들의 자살하려는 동기를 줄이거나 없애는 등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살 방법을 몰라 자살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함께 죽을 사람이 없어 자살하지 못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셋째,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의 중요한 원인인 만큼, 취약 계층에게 사회적 지원을 확대하여 기본적인 삶을 지켜줌으로써 자살 문제를 해결하자는 대책이다. 특히 지금의 70~90대 노인의 대다수는 빈곤에 시달리고 이들을 지원해주는 복지제도는 얕고 허술하다. 노인 빈곤을 해결하려 모든 것을 쏟은 정부는 지금껏 없었다. 이재명 정부는 과연 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그 대책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 가운데 노동자 건강·안전 정책은 포함되었으나 자살 예방 정책은 없었다.
여전히 자살을 남의 일로만 여기고 있는 사회 분위기
끝으로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을 들 수 있다. 이를 위해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실패를 용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며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자살 징후를 알아차리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주변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하며 정책적, 사회적,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자살률을 낮추고 생명 존중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들린다.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조만간 정착하리라고 믿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당신이 자살하려 할 때 그 징후를 알아차리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하는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는 몇 명이나 있는가.
우리 사회의 최근 자살 문화는 3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자살 문화는 유명 정치인, 재벌 회장, 유명 연예인에서부터 가난한 노인, 청소년 등 장삼이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연령층과 다양한 계층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병처럼 퍼져 있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고 어떤 대책이 효과적일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전문가나 정부는 없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거의 모든 이들한테 자살은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로 여기는 사고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갈 길은 멀고 험한데 우린 아직 출발도 못하고 있다
공동체는 무너졌고 가족도 해체되었다. 이웃은 사라지고 파편화된 개인은 각자도생의 사회 분위기 속에 고립되고 있다. 무한경쟁과 탐욕, 상대방 죽이기, 집단 따돌림 문화가 기승을 부리고 내로남불, 승자독식, 황금만능주의, 가진 자와 권력을 쥔 자들의 오만과 거짓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자살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자살을 줄이는 것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마라톤이다.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가야 하는 대장정이다. 10년 뒤에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자살 국가란 오명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출발도 못하고 있는 실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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