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과 함께 경찰 개혁도 고민해야 할 때
무소불위’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이 높은 가운데 공권력의 또 다른 축인 경찰 개혁 논의는 왜 미진한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거악인 검찰의 문제가 시급하니 우선 검찰개혁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경찰 역시 ‘이대로 좋은가’에 대한 문제의식도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경찰 개혁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고 있다는 취지는 아니다.
지난 8월 26일,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권이 만든 ‘경찰국’을 시행 3년 만에 폐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어 그간 자문기구 수준에 불과했던 현 ‘국가경찰위원회’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여 경찰청장 등을 탄핵하는 소추권을 부여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려되는 경찰권 비대화를 해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지금 국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경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범죄를 덮어주고 해외 도피까지 권유한 경찰 간부
지난 5월 26일, 검찰은 의정부경찰서 소속 수사팀장 정 아무개 경위를 특정 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공무상 비밀누설, 허위공문서 작성, 공용서류손상, 범인 도피, 직무유기 등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정 경위의 공소장에 드러난 범죄 혐의는 매우 충격적이다. 그는 2020년 6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여러 건의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던 피의자 김 아무개에게 “사건을 모아서 모두 불기소해 주겠다”며 돈을 요구하고 이후 22차례에 걸쳐 총 2억 112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 목록 중 정 경위가 피의자에게 보낸 메신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중 몇 가지만 열거하면 이렇다.
‘(아)무튼 오늘 돈 줘. (사건) 다 불기소해 버릴 테니까’
‘내일 출근해서 당신 건은 불기소로 정리해 볼게’
‘하나는 약속할게. 당신이 절대 구속은 안 되게 할 거야'
수사팀장 정 경위의 메시지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더 놀랍고 충격적인 메시지는 따로 있었다. 그는 피의자에게 ‘내년부터 (경찰이) 수사권 독립되고 바뀌는 시스템은 (피의자) 당신의 세상이다’ ‘불기소를 내가 마무리한다는 거 매력 있지 않아? 어느 검사보다 나을 거야’라고 보냈다고 한다. 그후 정 경위는 자신과 유착한 피의자 김 아무개에게 별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해외 도피를 권유하며 자금까지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 구속되자 그는 반년간이나 사건을 방치한 채 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정 경위는 과연 없을까?
과연 정 경위와 같은 행위는 지금의 경찰 시스템에서 이례적인 것일까? 검찰은 정 경위의 단독 범행인지 의심하며 수수한 뇌물의 상납 경로를 확인 중이라고 한다. 정 경위가 보낸 메시지 내용 중에 특히 충격적인 대목은 ‘수사종결권’ 언급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정 경위는 그것을 악용하여 자신의 뇌물수수 범죄 도구로 썼다.
‘경찰권 비대화’에 대한 우려는 이미 현장에서 들려오고 있다. 배수진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수사종결권이 경찰에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오전엔 화가 났고, 지금은 눈물이 날 정도로 속상하다. 수사종결권이 있으면 민원인에게 불이익한 것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사건을 살피고 기록을 검토하고 당사자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다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며칠 후 배 변호사는 재차 자신의 페이스북에 또다른 글을 올렸다.
“수사권을 가지게 된 경찰의 태도는 아직 훌륭하지 못하다.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아니어야겠지만- 몇몇이 문제를 일으키니까 무시할 순 없다. 일부 경찰은 변호인이나 고소 대리인과 의견이 다르면 ‘자기가 수사권이 있다’고 대놓고 말한다. 대화를 한 것인지, 조롱을 당한 것인지, 싸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수사는 제 마음이잖아요’ ‘수사권은 저에게 있어요’ 등등. ‘당연히 수사관님 권한이십니다만 이런 걸 고려해 주십시오’ 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다.”
경찰의 태도에 불만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배수진 변호사만이 아니다. 최근에 만난 공익제보자 이상돈 씨 역시 ‘잘못된’ 경찰 수사에 대한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회사에 배치된 30대 초반의 ‘전문연구요원’과 기업주 등을 내부 고발했다. 의무복무 대신 기업에서 3년간 연구 업무를 하는 직위였다. 하지만 그들은 제도를 악용했다. 실제 근무는 고사하고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며 전문연구요원과 특수관계가 있는 기업주는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씨는 이 사실을 병무청에 신고하는 한편 경찰서에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달여 만에 보내온 경찰의 수사 결과는 ‘각하’ 처분. 피고발인이 근무 안 했다는 사실과 회사가 허위로 문서를 작성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각하 처분의 주된 이유였다고 한다.
문제는 경찰의 수사 과정에 있었다. 경찰은 고발인 이 씨가 관련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공익제보자 이 씨가 분노하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고발인은 관련 증거가 있는 병무청에 자료의 제출을 요청할 것을 고발인 조사 당시 경찰에게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병무청에 이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한다. 피해자격인 또 다른 ‘관련 협회’에도 참고인 조사는 고사하고 전화 한 번 하지도 않은 채 사건을 각하 처리했다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발한 사람만 바보가 되었다. 이런 식의 경찰 수사를 믿고 맡길 수 있나.
방심위 ‘민원 사주’ 사건에서 내부 고발자들만 송치한 경찰
이 뿐만이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류희림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을 내부 고발한 방심위 직원 세 명 역시 잘못된 경찰 수사의 피해자다.
윤석열이 검사 재직 시절,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을 보도한 방송사들을 징계해 달라는 민원이 2023년 9월 방심위에 제기되었다. 방심위는 이를 토대로 심의한 결과 MBC 등 방송사에 1억 4000만원의 과징금을 의결한다. 하지만 이후 방심위 직원 3명이 내부 고발에 나섬으로써 추악한 진실이 폭로되었다. 민원인 40여 명이 사실은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들이었으며 이들이 제기한 민원 100여 건이 오타까지 똑같은 이른바 ‘복사해서 붙이기’ 민원이었다는 ‘공익신고’였다. 내부 직원들이 이러한 사실을 국민권익위에 신고하는 한편 언론에 제보함으로써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2024년 7월 25일, 경찰의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류 전 위원장을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만으로 검찰에 송치한 반면, 민원 사주를 통한 ‘업무방해’는 불송치 결정한 것이다. ‘민원 내용이 유사하여 의심은 되지만 심의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류희림을 불송치 처분한 경찰이 류희림 대신 방심위 내부 제보자 세 명을 민원인 개인정보를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한 것이다. 경찰은 벌 줄 사람에게는 눈 감고 상 줄 사람에겐 벌을 준 것이다.
경찰 ‘청문감사인권관’을 외부 개방직으로
지금의 경찰을 이대로 두고 수사권을 줘서는 안 된다. 검찰 개혁과 함께 경찰 개혁이 이루어져야 국민이 공정한 수사로 이익을 볼 수 있다. ‘거악’ 검찰로 인해 경찰의 문제가 방치되면 피해는 결국 국민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경찰이 개혁될 리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방법의 하나로 경찰 ‘청문감사인권관 제도’의 전면적 외부 개방을 주문한다.
1999년 6월, 김대중 정부 당시 각 경찰서마다 설치한 ‘청문감사관’(현 ‘청문감사인권관’, 이하 ‘인권관’) 제도는 획기적인 경찰 개혁 조치 중 하나였다. 독재정권 하에서 자행된 경찰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행태와 관련하여 국민의 억울함을 듣고 민원을 해결하는 기구였다. 문제는 인권관을 맡고 있는 사람의 신분이다. 현직 경찰 신분의 과장급 간부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경찰 내부자끼리 좋게 좋게 해결한다’는 비판과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다. 본래의 취지에서 변질되어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인권관 제도 자체를 모르는 국민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한데 왜 그럴까? 혹 국민이 너무 많은 불만을 제기할까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정부는 경찰 개혁을 위해 외부 인사 중심인 ‘국가경찰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경찰위원회’가 대동맥이라면 각 경찰서마다 설치되어 있는 ‘청문감사인권관’은 실핏줄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찰 신분이 아닌 사람이 인권관을 담당해야 제대로 된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겠나. 이를 통해 인권관 제도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게 보장해 줘야 한다. 그럴 때 경찰 수사에 대해 억울하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검찰개혁 잘 했다는 소리가 커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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