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인 산재 예방 정책 출발점은 정확한 통계
‘올해 상반기 산재 사망 287명’ 보도, 사실 아냐
실제 사망자 1천 명 넘는데 질병 사망자는 빠트려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와 산재 사망자는 달라
제조업체 사망 노동자를 서비스 업종 사망자 처리
산재 통계 업종별 분류 현실에 맞게 전면 개선해야
중대재해를 뿌리뽑기 위해 강력한 의지를 보인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적게는 한두 명, 많게는 서너 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고로 숨지는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경북 청도 구간을 달리던 무궁화호 열차가 점검을 위해 선로 위를 걸어가던 공사 직원과 하청노동자를 치어 두 명이 숨지고 5명이 중경상을 입는 큰 사고가 났다.
철도노동자 출신 노동부장관의 철도에서 일어난 대형 사고
이 사고는 특히 현재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전국철도노동조합 간부와 위원장(20대·26대)을 지냈고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데다 장관 임명되기 직전까지 철도기관사로 일했기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2월 임명한 김현중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도 전국철도노동조합에서 국실장을 지낸 데 이어 철도 종사자를 주축으로 하는 산업별 노동조합인 한국노총 산하 한국공공사회산업노조위원장과 한국노총 부위원장을 역임한 50년 가까운 철도 노동자 출신이다. 중대재해 관리 주무 부처 장관과 산업재해 예방 전문 공공기관장이 모두 철도노동자 출신이라는 사실은 매우 공교롭다.
이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일어난 사고인데다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사고 경위까지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이어서 유가족뿐만 아니라 국민의 분노가 일었다. 이례적으로 코레일 사장은 사고 이틀 만에 사표를 냈고 하루 만에 대통령이 이를 수리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산업재해와 관련해 요즘처럼 대통령과 정부, 산업계, 국민의 관심이 뜨거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언론도 요즘 산재와 관련한 것이라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앞다퉈 이를 다룬다. 지난 21일 고용노동부는 「2025년 2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 잠정결과 발표」라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과 산재 사망 쉽게 구별할 수 있나?
핵심 내용은 “2025년 2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287명(278건)으로 전년 동기 296명(266건) 대비 9명(3.0%) 감소 12건(4.5%) 증가. 건설업은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사망 6명), 세종-안성 고속도로 교량 붕괴(사망 4명)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사고사망자 수가 증가”였다. 보도자료 끝부분에 참고사항으로 “「산업재해 사망사고」 통계는 근로복지공단의 사고사망자 유족에 대한 보상 승인 기준이며, 발생 연도가 아닌 ‘승인 연도 기준’으로 집계하는 통계로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와 차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또 이 통계에 대한 참고 내용을 밝혔다. “22.3.11. 통계청 승인을 거쳐 22년 1분기부터 대외 발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산재사망사고를 수집·분석한 수치-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사업장에서 발생한 업무로 인한 사망사고 중 사업주의 ‘법 위반 없음’이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고 집계‧분석”
거의 모든 언론사가 이를 보도했다. 주 제목과 부 제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노컷뉴스> 상반기 산재 사망자 287명… 외국인 비율 13.2% △<파이낸셜뉴스> 상반기 산재 사망자 287명… 건설업·영세사업장일수록 많았다. △<KBS> 상반기 산재 사망자 287명… 5인 미만 사업장서 24%↑△<조선비즈> 올 상반기 산재 사망자 287명… 건설업·소규모 사업장 사망 증가 △<경향신문> 올해 상반기 산재 사망 ‘287명’··· 건설업·5인 미만 사업장서 증가 △<MBC> 상반기 산재 사망 287명‥ 50인 미만 사업장 증가 △<동아일보> 상반기 산재 사망 287명… 건설업·50인 미만 사업장서 증가 △<매일경제> 상반기 산재사망 287명… 건설이 최다 △<YTN> 올 상반기, 일하다 287명 숨졌다 △<세계일보> 상반기 일터에서 사고사망 287명… 5인 미만 사업장서 24% 증가 △<연합뉴스TV> 상반기 산재사망자 287명… 건설업·영세사업장 늘어
역시나 일제히 “산재 사망자 수 287명”으로 보도한 언론들
언론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올 상반기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87명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에만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사망자가 287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등으로 기사 리드(첫 문장)를 잡았다. 이에 따라 편집기자 등이 ‘상반기 산재 사망 287명’ 등의 주 제목을 기사 앞에 붙인 것이다.
각 신문과 방송은 <노컷뉴스>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나 시청자들은 올해 상반기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가 287명인 것으로 착각하게 했다. 실제 산재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산재 사망자는 업무상 질병 사망자와 사고사망자로 이루어지며 질병 사망자가 사고사망자보다 1.5배 이상 많다.
노동부가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전체 산재 사망자의 극히 일부분이고 전체 사고사망자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근(2022~2024년) 공식 산재 통계를 보면 연간 산재 사망자는 2100명가량 된다. 이 가운데 사고사망자는 800명이 조금 넘는다. 따라서 실제 반기별 산재 사망자는 1000명이 조금 넘고 사고사망자는 400명 안팎으로 보면 된다. 재해조사 대상 287명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언론이 올 상반기 산재 사망자가 287명이라고 보도한 것에 대해 노동부는 보도자료에서 이미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에 대한 설명을 참고자료로 설명했다고 눙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 통계는 노동부, 안전보건공단, 전문가 등만 참고하고 언론에는 예전처럼 공개하지 않거나 아니면 언론이 완벽하게 제대로 보도할 수 있도록 보도(출입)기자뿐만 아니라 언론사 편집기자와 데스크 등까지 소통을 완벽하게 해 두 번 다시 황당한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가 서비스업 종사자?
산재 통계와 관련해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부분은 또 있다. 지난해 6월 화성 아리셀 전지 제조공장 화재 참사와 관련한 것이다. 당시 23명이 숨졌고 이 가운데 18명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라오스 국적 한 명을 빼면 모두 중국동포였다. 이들은 모두 메이셀이란 한 인력제공업체가 아리셀에 파견한 이들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이들이 모두 제조공장에서 일하다 산재로 숨졌지만 아리셀 소속 한국 노동자만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숨진 것으로 통계처리했다. 나머지 메이셀이 아리셀에 제공한 이주노동자 18명은 모두 서비스업에서 일하다 사망한 것으로 분류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이건 황당한 행정 처리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산재 통계를 처리할 때 건설업, 제조업, 운수‧창고‧통신업, 서비스업 등으로 대분류를 하고 실제 산재가 일어난 곳을 기준으로 하지 않으니 이런 착시 현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의 형태를 기준으로 분류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전년도보다 제조업에서 사망자가 증가했을 수가 있는데 수십 명을 서비스업으로 분류하는 바람에 산재 사망자가 제조업에서는 실제보다 대폭 줄고 서비스업에서는 외려 크게 느는 왜곡이 생기는 것이다. 산재 예방 정책의 핵심은 정확한 통계에 기초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아리셀 참사 노동자 사망 분류의 문제점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산재 통계 처리의 전반을 톺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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