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신년사를 대신한 당 전원회의 결정서 발표를 통해, 현 국제관계구도를 ‘신냉전’으로의 명확한 전환과 ‘다극화’ 흐름의 가속화로 평가하고 남한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면서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무기의 다량생산과 핵탄 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선언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김정은 신년사를 중단하고 2020년부터 당 전원회의나 당대회 결정서로 갈음했는데, 이번에도 그대로 따랐다.
이번 공개된 당 전원회의 결정서는 작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된 '공화국 핵정책에 대하여' 법제화에 대해 "만년대계의 안전담보를 구축하고 국가의 전략적 지위를 세계에 각인"시켰다며 그 의의를 평가하였다. 또한 당 전원회의에서는 '2023년도에 강력히 추진해야 할 자위적 국방력 강화의 새로운 핵심목표'로 2023년 4월까지 정찰위성 1호기를 준비하고, 최단기간 내에 또다른 신형 전략무기를 출현시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북한은 이미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극초음속 무기, 다탄두개별유도기술(MIRV) 초대형 핵탄두, 고체발동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전략무기, 군사정찰위성·무인정찰기 등을 제9차 당대회 전까지 완성해야 할 전략무기 5대 과업으로 제시했다. 2021년 8월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형, 2022년 11월 다탄두장착이 가능한 화성-17형, 12월 ICBM용 고체연료엔진, 정찰위성 및 무인정찰기를 각각 시험하였고, 핵잠수함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태세는 어디까지 와 있고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미국 MIT대 비핀 나랑(Vipin Narang) 교수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회원국이 아니면서 사실상의 핵무기보유국인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북한과 같은 제2차 핵국가들이 취할 수 있는 핵태세를 촉발, 확증보복, 비대칭확전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핵태세는 핵탄두의 양적 증가와 투발수단의 강화에 따라 공세적으로 전환된다.
북한의 핵태세는 핵무기 개발 초기에는 핵위협을 통해 중국의 중재나 미국과의 협상을 '촉발'하는 목적을 띄었지만, 핵실험에 성공하고 운반수단을 확보하면서 '확증보복'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작년 9월 8일 핵정책을 법제화하면서 '비대칭 확전'으로 전환했다. 당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천명한 대로 다량의 전술핵무기와 핵탄을 보유하게 되면 '비대칭확전' 태세는 완성된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태세가 '비대칭 확전'으로 전환하게 되면 남북관계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푸틴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서유럽 NATO 회원국들의 반응을 보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미국 등은 우크라이나군에 최신 재래식무기를 제공하면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 본토 공격 금지, △ 크림반도 수복 불가의 두 조건을 사실상의 레드라인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미국 등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거나 2014년에 빼앗긴 크리미아 반도의 수복을 시도하는 등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점령하려 들 경우, 서방진영은 제3차 대전으로 확전되는 것을 각오하지 않는 한 이를 막아내기가 쉽지 않다.
미국은 줄곧 강대국 간 군사충돌이나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확전 방지에 노력해 왔다. 2010년 11월 북한군에 의한 연평도 포격사건 때 우리 군의 F-15K 전투기가 출격하고 북한군도 Mig23기를 출동시키는 등 일촉즉발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은 우리 공군의 북한 타격을 제지했다. 2015년 8월 목함지뢰 사건 직후에도 남북이 포격을 맞교환한 뒤 북한군이 준전시태세를 선포하고 박근혜 대통령도 3군사령부를 방문해 '선조치 후보고' 지침을 내리는 등 강대강으로 대치했을 때 미국과 중국이 개입해 극적으로 군사충돌을 막았다.
이는 일부 안보전문가들이 금과옥조처럼 믿고 있는 이른바 '김관진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관진 효과'란 김관진 국방장관이 "북이 도발하면 도발 원점은 물론 지원·지휘 세력까지 타격하라"고 지침을 내린 뒤 북한군이 국지도발을 하지 못했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김관진 효과'는 처음 나왔을 때 반짝효과가 있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2015년 8월 위기 과정이 보여주듯이 한반도 전체를 전쟁으로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만용이었음이 드러났다. 오히려 북한이 이듬해 열린 당 7차 대회 이후 핵무력 개발에 전력을 쏟을 빌미를 제공했다.
최근 들어 북한군은 과거와 달리 한·미 군사훈련이 실시되면 곧바로 군사적으로 맞대응하며 위기 수위를 높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 나아가 작년 12월 26일 소형무인기 5대를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보내는 도발을 자행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북한 무인기 1대에 우리는 2~3대 올려보내라"고 지시해, 아직도 '김관진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게 아닌가 우려를 낳는다. 오늘날과 같이 북한이 각종 핵무기와 투발수단을 실전배치하고 공세적 핵독트린까지 발표한 현 상황에서 더 이상 '김관진 효과'는 없다.
한·미는 북한의 공세적인 핵태세에 맞서 미국의 확장억제력과 한국군의 3축체제로 균형을 맞추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냉전시대 미국 핵전문가 글렌 스나이더가 지적한 대로 핵균형을 이루면 전면전 위험성은 낮아지지만 재래식분쟁의 가능성은 높아지는 '안정-불안정 패러독스'가 나타날 수 있다. 이것도 군사적 대응이 '비례성 원칙'에 따를 때나 그나마 가능하다. 비현실적인 ‘김관진 효과’에 기댄다면, 이는 확전으로 이어져 이는 결국 한반도 핵전쟁의 위험성을 초래하게 된다.
앞으로도 북한의 군사도발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미흡하나마 기존에 구축된 안전장치들을 활용하고 북한의 도발이 자행될 때는 비례대응의 원칙을 견지해 확전을 방지해야 한다. '9.19군사합의' 정신의 위반까지 도발이라며 과잉 대응해선 안 되며, 북한이 합의위반의 도발을 저질러도 우리가 먼저 합의 파기를 선언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과거 북한군이 2009년과 2013년에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과 같은 초강수를 둔 전례가 있는 만큼, 우리가 ‘9.19군사합의’ 이행중지를 선언한다 해도 도발의 억제를 기대할 순 없다.
정부 정책결정자들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4세기 로마시대의 격언이나 '김관진 효과'와 같은 비현실적인 믿음을 버려야 한다. 현 안보위기는 미국의 확장억제력과 대량응징보복 능력만으론 해결할 수 없으며, 주변국의 건설적 역할과 국민들의 지지, 초당파적인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일 수 있고 국지도발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신묘년 새해를 맞이해 정부여당은 이념에 매몰된 대외전략을 재검토하고 초당파적 협력을 복원해 현 안보위기를 타개할 지혜와 힘을 모아나가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