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무개념 '대파' 발언에 국민 분노

주류 언론, 정부 물가관리 실패 비판 침묵

총선 의식, 조선·KBS는 '정쟁' '조치'로 덮어

시민들, SNS서 풍자 글 ·그림으로 '대파 놀이'

지난 18일 보도된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합리적 가격 875원’ 발언으로 총선을 앞둔 민심이 들끓고 있다. 고물가로 서민들은 장보기가 두렵고 외식도 줄이고 있는데 대통령이 속 터지는 소리를 한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무개념 발언이 본인의 무지에서 나온 것이든, 참모들이 대통령의 물가 현장 방문 ‘쇼’를 꾸미다가 벌어진 해프닝이든 국민들은 대통령의 ‘대파 값’ 발언에 화가 나있다.

언론은 이달 초 ‘사과값 41% 상승’ 기사를 크게 보도하며 신선식품 물가 급등소식을 알렸다. ‘금사과’뿐 아니라 짜장면·설렁탕 한 그릇, 김밥 한 줄, 삼겹살 1인분 가격도 깜짝 놀랄 만큼 올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상승률 3%보다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 상승폭은 훨씬 더 크다. 물가를 관리하는 정부가 이 나라에 있는 것인지, 대통령이 민생에 관심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국민들이 화가 난 이유는 이것이다.

“민생은 목에 걸린 가시같다.” 임기 후반에 지지율이 추락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언론은 당시 4%대 성장률, 2%대 물가를 기록했던 노무현 정부에게 연일 ‘민생파탄 정부’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1%대 저성장· 3%대 고물가의 ‘민생파탄’에 주류 언론은 별로 말이 없다. ‘875원짜리 대파’라는 무개념 발언을 호되고 꾸짖고 정부의 물가관리 실패를 비판할 만도 하지만 관심이 없다.

주류 언론들은 윤 대통령의 ‘875원 대파값’ 발언이 왜 문제인지, 국민들은 왜 화가 났는지 별로 보도하지 않았다. 정부 물가관리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제대로 짚지 않았다. 오히려 ‘대파 논란’을 ‘정쟁’으로 보도했다. “‘대파 875원 합리적...딴 데는 어렵죠’ 정쟁된 윤 발언의 전말”(조선일보, 3.21), “과도한 ‘물가의 정치화’는 경계해야”(중앙일보, 3.23), “한단? 한 뿌리? 윤 ‘대파 875원’ 발언 공방” (조선일보, 3.26) 등의 기사다. 윤 정부에 불리한 이슈는 일단 ‘정쟁’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대통령의 현장방문 ‘쇼’ 이후에 대통령과 정부의 가격안정 조치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윤 대통령 ‘장바구니 물가 내리도록 특단 조치 즉각 시행’”(조선일보, 3.18), “성태윤 정책실장 ‘과일·채소가격 안정’”(KBS, 3.24), “가격 안정자금 투입에 사과 값 16% 내려...한풀 꺾인 농산물”(KBS, 3.26) 등의 기사다. 정부 발표 ‘받아쓰기’로 정부 홍보와 대통령 추켜세우기에 앞장선 어용 보도다.

대통령의 무개념 발언이 총선에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점을 눈치챈 주류 언론들은 ‘875원 대파’ 파문 보도를 아예 자제했다. 민언련 총선미디어감시단의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875원 대파’ 발언을 한 3월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관련 보도를 한 건도 하지 않은 언론은 조선일보, KBS, SBS, 매일경제, 한국경제, MBN 등이었다.

KBS는 “장바구니 물가 특단조치”(3.18)라고 보도했고, SBS도 “무섭게 오른 장바구니 물가...‘특단의 조치’”라고 알렸다. 조선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MBN 등도 윤 대통령의 무개념 발언은 빼고 ‘특단의 조치’를 강조해 보도했다. 선거를 앞두고 ‘대파값 875원’을 입 밖에 꺼내는 것 자체가 이번 선거에서 여당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해, ‘대파’로 상징되는 물가 이슈를 여론 의제,  총선 심판 의제에서 제외한 것이다.

그러나 주류 언론이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왜곡한다고 해서 국민들의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 같다. 장바구니 물가 또는 체감물가는 이미 인내하기 힘든 수준이다. 물가 고통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심지어 ‘대파 값 875원이 합리적’이라는 무지를 드러낸 대통령이 국민들의 화를 더욱 돋운 것이다.

SNS에서는 시민들의 ‘대파 놀이’가 한창이다. 페이스북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엔 ‘대파’ 사진과 그림이 수없이 등장하고 있다. 대파가 그려진 그림에는 “‘대’통령 ‘파’면”이니 “‘대파’할 결심”이라는 글자를 넣었다. 한 때 ‘프로파일러’ 직업을 갖고 있었던 국민의힘 이수정 후보가 “파 한 단이 아니라 한뿌리였다”고 말하자 그를 “프로 ‘파’일러”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정치풍자가 아직 살아있는 SNL코리아에도 ‘대파를 든 정치인’이 등장했다. 예수가 ‘대파’를 들고 시장의 장사치들을 쫓아내는 그림, 관객 1천만 영화 ‘파묘’를 패러디한 그림도 있다.  한 네티즌은 ‘일파만파’를 “파 한 단이 만 개의 파장을 일으킨다”라든가, ‘파죽지세’를 “파 한 단의 위력이 대나무를 가를 정도의 기세”라고 재치있게 해석했다. 

 

'대파'를 소재로 시민들이 그려 SNS에 게시한 풍자 그림 모음.
'대파'를 소재로 시민들이 그려 SNS에 게시한 풍자 그림 모음.

주류 언론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민심은 이제 SNS같은 디지털 여론시장에서 나타난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언론이 만든 사회적 의제와 틀(프레임)만으로 여론을 해석하지 않는다.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서 시민들은 새로운 여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신뢰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지탱하는 언론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자업자득이다. 언론이 민심을 외면하고, 축소·과장해 속이는 것을 시민들은 알고 있다. 언론이 계속 기득권 편에서 서서 시민의 눈을 속이면 시민들의 ‘대파 놀이’는 주류 언론을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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