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오송…참사가 참사 덮은 실패의 연대기

'눈 떠보니 후진국' 국민적 분노 자아낸 장본인들

책임회피·진상조사 방해하더니 특별법엔 거부권

"희생자 명단 공개는 패륜"이라던 ‘패륜 출마자들’

총선넷, 주호영 정진석 원희룡 전주혜 등 공천 반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4·10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민심이 들끓고 있다. 대한민국을 '눈 떠보니 후진국' '다시 헬조선'으로 만든 범인을 응징하려는 것이다. '이채양명주'라는 조어도 등장했다. 이태원 참사에서 '이',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에서 '채',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에서 '양',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씨의 명품(디올) 가방 수수 사건에서 '명', 주가조작(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주' 자를 끌어온 것이다. 투표소로 향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다섯 가지 죄목이다. 그러나 어디 그뿐이랴. 집권 만 2년도 안 돼 정부의 거버넌스(통치시스템)를 통째로 무너뜨리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실정과 비정이 작용했다. 정권의 무도함과 무능, 무책임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빚어낸 것들이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그 중에서 12개를 뽑아 선거 전날까지 시리즈로 내보낸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국민의힘이 이날 의결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를 규탄하며 삭발하고 있다. 2024.1.18. 연합뉴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국민의힘이 이날 의결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를 규탄하며 삭발하고 있다. 2024.1.18. 연합뉴스

소 잃고도 안 고친 외양간

사건, 사고는 어느 시대에나 발생할 수 있다. 비극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예방과 사전 대비의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작동 안 됐다면 1차적 실패다. 일단 사고가 발생했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지언정 재발 방지를 고민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는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1, 2차에 걸쳐 거버넌스가 작동되지 않았다면 후진국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대유행에 3년 가까이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청년 159명이 2022년 10월 29일, 모처럼 핼러윈 축제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이태원의 골목길 바닥에서 스러졌다. 2023년 7월 15일 폭우로 갑작스레 침수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 2지하차도에서 14명이 사망한 참사는 또 어떤가. 뻔히 예상된 사고에 어떠한 경고도, 안내도, 대비도 없었다.

국가 시스템이 실패했으면 그 책임자를 가려 책임을 지게 하고, 무엇보다 사고 희생자들을 위무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대통령 이하 고위 관료들에게 봉급을 주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1, 2차 시스템의 붕괴에 더해 더 기막힌 상황을 연출했다.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건 물론,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그 상처에 연거푸 소금을 뿌렸다. 윤석열 정부는 간단없이 거대한 실패를 연출했다. 새로운 참사가 지나간 참사를 덮는 방식으로 거대한 실패의 퇴적층을 쌓아갔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3.12.20.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제공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3.12.20.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제공

국화꽃 향한 조문, 기괴한 풍경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과 용산구청은 핼러윈 축제에 최대 10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사건 당일 ‘압사’와 ‘압사 가능성’을 언급한 119 신고 전화 녹취록이 여러 건 확인됐다. 경찰과 구청, 소방 당국이 총체적으로 대응에 실패한 꼴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의 기상천외한 행보는 이즈음부터 시작됐다.

대통령은 10월 30일 아침에야 대국민담화에서 "정말 참담하다"라면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다음날에는 김건희 씨와 함께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아무런 영정 사진도 없이 국화꽃 앞에 조문하는 기행을 며칠 동안 계속했다. 정부·여당은 '참사'가 아닌 '사고'였고,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는 용어 규정에 매달렸다. 공무원들에게는 '謹弔(근조)'가 쓰이지 않은 검은색 리본을 착용토록 지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결정한 지침이었다. 이 장관은 "경찰 등 인력 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가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슬픔에 빠진 국민의 마음을 미처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라고 사과했다.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에 참여한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1차 공천 반대명단 35명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2024.2.19. 연합뉴스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에 참여한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1차 공천 반대명단 35명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2024.2.19. 연합뉴스 

박 구청장의 행태는 더욱 기가 막혔다. 10월 30일 오전 3시 "구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시간들이 제게는 행복이었다"고 생뚱맞은 말을 내놓았다가 같은 날 오후 "참담할 따름"이라고 말을 바꿨다. 대통령-행정안전부 장관-용산구청장 등 참사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3인이 사고 발생 뒤 보여준 행적이다.

유족들 창자끊는 슬픔을 외면한 '패륜'

영정도, 이름도 없는 분향소를 보다못해 <시민언론 민들레>가 11월 14일 희생자 155명의 명단을 보도하자 집권 국힘당은 이를 '패륜'이라고 매도하며, 장마에 폐수 버리듯 저주의 언어를 쏟아냈다. 원내대표 주호영은 "유족 다수가 명단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명단 보도를 "패륜적 행위"라고 주장했고, 당 비상대책위원장 정진석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명단 공개에 분노한다"면서 "언제부터 한국 정치가 잔인하다 못해 무도해졌나"라고 반문했다.

정작 장례를 치른 유가족이 책임자 처벌 및 공식 사과를 요구하자 참사 관련 발언을 줄였다. 당 차원에서는 사고 책임을 묻는 질타를 죄다 '정쟁'이라고 둘러댔다. 더러운 침처럼 내뱉은 ‘패륜’이라는 단어는 국민적 분노의 맞바람에 잠시 체공하다가 그들의 얼굴에 들러붙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왼쪽)가 2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간담회에서 눈물 흘리는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위로하고 있다. 2022.12.20 [공동취재] 연합뉴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왼쪽)가 2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간담회에서 눈물 흘리는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위로하고 있다. 2022.12.20 [공동취재] 연합뉴스

대통령은 희생자 영정만 외면한 게 아니었다. "10분만 만나달라"는 유가족들의 면담 요청을 한사코 거부하고 작년 8월 유가족들이 4대 종교단체와 함께 참사 300일 추모를 알리는 삼보일배 행진도 외면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외면한 것은 물론, 살아남은 이들의 절규에도 귀를 막은 것이다. 책임은 일선의 말단 공무원들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극한 호우'에도 순방기간 늘린 대통령

작년 7월 '극한 호우' 당시 정부의 행태 역시 가관이었다. 호우 경보 속에 폴란드 출장길에 나선 대통령은 순방기간을 2박 3일 연장, 우크라이나 방문을 강행하는 행동궤적을 보였다. 전국적으로 '극한 호우'로 인명 피해와 도로 유실, 농경지 침수, 정전 피해가 잇따르던 6일 간(11~16일)에 대통령은 출장 중이었다. 공교롭게 오송 참사가 벌어진 15일,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전사자의 벽'에 헌화, 참배했다. 이번에는 국화꽃이 아닌, 전사자의 영정 사진이 빼곡히 박힌 제단이었다. 중대본 집계에 따르면 9~16일 오전까지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피해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망·실종자가 43명이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일주일 앞둔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에서 한 시민이 기도하고 있다. 2023.10.22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일주일 앞둔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에서 한 시민이 기도하고 있다. 2023.10.22 연합뉴스

해가 바뀌어 총선의 계절이 돌아오자 정부·여당은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다시 혈세로 밥을 벌겠다고 나서고 있다. 화장을 고치고 길 위에 섰다. 대통령은 올해 부처별 새해 업무보고를 대신한다는 구실 아래 순회 민생투어를 하면서 선심 공약을 대량 방출하고 있다. 지난 2월 23일 현재 14차례의 민생토론회에서 831조 1707억 원의 투자 유치 및 사업 추진을 약속했다. 3월까지 합하면 1000조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의 기본적인 안전조차 지켜내지 못했으면서 한 해 예산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묻지마 공약'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와 극한 호우 속 오송 등의 참사에 대비하는 데는 단 한 푼의 추가 예산도 아꼈으면서 말이다.

선거판 벌어지자 화장 고치고, 눈웃음 치는 그들 

시민은 개, 돼지가 아니었다. 시민단체 ‘2024 총선 시민네트워크(총선넷)’가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공천 반대 명단에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한 장본인들과 오송 참사에 책임이 있는 원희룡 전 장관 등이 이름을 올렸다. 국힘당 이만희 의원(사회적 참사 분야)에 대해서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위‘의 여당 측 간사위원으로 짧은 국조 동안에도 참사 원인 규명과 관련 없는 질의로 시간을 끌며 정쟁화를 주도했다"고 명시했다. 조은희, 전주혜 의원 역시 같은 사유로 뽑혔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채택 과정에서 회의장에서 퇴장, 유가족 일부를 기절케 한 장본인들이다. 일부 유가족은 여당 의원들을 상대로 "2차 가해를 막아 달라"고 울부짖었다.

김기현, 정진석 의원은 "세월호, 이태원 등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폄훼하는 후보자" 명단에 포함됐다. 주호영 의원은 이태원 참사와 직접 관련되지 않았지만, 민생경제 분야 부적격자로 적시됐다. 오송 참사 당시 책임부처 장관이었던 원희룡 전 장관은 복지노동·보건의료·민생경제 분야 등에서 부적절한 후보로 규정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 헌화하고 있다. 2022.11.4.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 헌화하고 있다. 2022.11.4.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키이우 '우크라이나 전사자의 벽' 앞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벽에는 전사자 사진과 이름이 게시돼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정상이 사진을 찍은 장소다. 2023.7.15.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키이우 '우크라이나 전사자의 벽' 앞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벽에는 전사자 사진과 이름이 게시돼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정상이 사진을 찍은 장소다. 2023.7.15.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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