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명단 공개로 유가족협의체 구성 논의 촉발

세월호 ‘예은아빠’ “그때 시민들이 힘이 되어 주었다”

정부, 유가족·희생자 개별 접촉 중단해야

시민언론 민들레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시민사회에서는 유가족협의체 구성에 대한 논의가 비로소 시작됐다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정부의 이상한 행태를 의심해 왔다. 왜 희생자와 유족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한사코 차단하는지, 왜 이름도 얼굴도 없는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는지, 왜 부자연스런 국가애도기간이라는 걸 만들어 강제하는지, 왜 대통령이 날마다 분향소를 찾아 일일연속극 같은 조문을 하는지, 모든 게 의문 투성이었다.

시민들은 이미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 온라인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이상한 행태에 대한 답을 추적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추리한 답 가운데 하나는 유족간의 교류 차단이라는, 합리적 의심이다.

시민들은 ‘유족간의 교류 차단은 유가족협의체 결성을 막기 위한 잔꾀’라고 여겼다. ‘유족들을 분산시켜 교류와 대화를 막는 것은 과거 유럽 식민제국들의 이른바 분할통치 수법’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공개됐으니 이제 시민단체와 인권단체, 야당이 발벗고 나서 유가족협의체 결성을 지원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래야 ‘유족들이 서로 슬픔을 나누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가족협의체가 과연 성사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생각이 엇갈렸다.

‘이제 희생자들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 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으니 유족간 만남이 이뤄질 것이고, 만남이 이어지다 보면 자연스레 협의체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이 있는가 하면, ‘윤 정부의 방해 공작이 더 심해져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었다. 심지어 ‘유족들에 대한 사찰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있었다.

이런 설왕설래 중에 ‘예은아빠’로 잘 알려진 유경근 전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정부, 언론, 시민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준다.

“우리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삼우제를 마치면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좀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목소리들이 하나로 모이는 데까지는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정보가 없으니 유가족 간 연락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참사 후 워낙 많은 주장과 행동들이 있었으니 소외감과 당혹감도 클 것이다.”

유씨는 세월호 때도 ‘당시 기관들 모두 개인정보라 주기 어렵다고 발뺌’했으며 그래도 ‘어찌어찌 반강제로 받아냈’다고 기억했다. ‘유가족 신분증’도 만들었는데 ‘경찰(혹은 국정원과 기무사)은 물론 기자들도 가족을 사칭해 접근하는 경우가 진도에서부터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족들은 ‘쉼 없이 뻘짓을 하는 정부’의 방해를 이겨내며 ‘차츰차츰 냉철하게 의견을 모을 수 있었고 나서야 할 때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대한변협과 민변의 변호사들, 여러 시민단체와 엄마·아빠의 마음으로 뛰쳐나온 수많은 시민들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나중에 가족협의회)가 만들어진 것은 참사 1개월 뒤였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아 묵념하고 있다. 2022.10.31 연합뉴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아 묵념하고 있다. 2022.10.31 연합뉴스.

 

<유경근 전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말>

“어찌됐든 분명히 유가족들이 모이기 시작할 것이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정부는 유가족·피해자 개별접촉을 중단하고 유가족·피해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모일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과 필요한 지원을 최대한 해야 한다. 언론은 이를 분명히 지적하고 실행되도록 취재, 보도해야 하며 특히 유가족·피해자를 서로 갈라치기 하려는 시도나 유가족·피해자는 물론 희생자들을 모욕하려는 시도가 있는지 세밀히 감시해야 한다.”

“정부가 안 하면 시민들이 도와야 한다. 모일 공간은 물론 필요한 지원까지. 단, 유가족·피해자들에게 어느 방향으로든 유도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 요청이 있을 경우 매우 조심스럽게, 합리적으로 견해를 전하는 것은 유가족·피해자들이 더 깊은 고민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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