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후쿠시마 핵발전소 원자로 바닥에 녹아 흘러 내린 코륨(녹은 핵연료가 콘크리트 등 구조물과 섞인 물질)에서는 지속적인 열이 발생하며 꾸준히 올라온 지하수가 이들을 식히고 있다. 이 오염된 물이 넘치면 바다로 그대로 배출되므로, 일단 끌어 올려 다핵종 제거설비인 알프스(ALPS)로 일부 제염하여 탱크에 저장해 두고 있는데 지금까지 저장한 양이 130만 톤을 상회한다. 도쿄전력이 오염수 탱크 저장 한도에 도달해서 상반기 중 바다로 배출하려 하는데 이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비용을 최소로 줄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수십 년, 수백 년 지속될 오염수 배출

오염수에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핵종들이 많다. 핵종들의 반감기(방사능 세기가 반으로 줄어드는 시간)는 다양해서 플루토늄239의 경우는 2만 4000년에 이른다. 이들 핵종들이 자연 방사선 수준에 도달하려면 시간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후쿠시마 원자로 내부에서는 시간당 500만 밀리시버트(방사선 피폭 단위)가 측정되고 있다. 일반인 피폭 한도가 1년 동안에 1밀리시버트임을 감안하면 원자로 내부의 방사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로봇조차 접근 불가능한 정도의 강한 방사선으로 11년이 지난 지금도 해체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당장 해체가 어렵다고 잔해를 그냥 둘 수 없으니 건물 주변만 정리하고 체르노빌처럼 거대한 건물로 덮어 씌우는 방법이 거론되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원자로 바닥에 녹아 떨어진 코륨 덩어리를 치우지 않는 한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도 방사능 오염수는 계속 발생한다. 지하수가 꾸준히 올라오기 때문에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로 배출하기 시작하면 단시일에 끝나지 않고 지속해서 수백 년 이상 기약 없이 배출될 것이며 이로 인한 바다 오염은 광역 생태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때문에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에 대한 우려가 크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지역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변국도 반대한다(혹은 반대해야만 한다). 동북아 광범위한 지역의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원자력학계는 큰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거르고 희석해서 내보내니 환경 영향도 미미하고, 북태평양을 돌아 희석될 대로 희석되어 들어오니 우리나라 해역에는 영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피해 또한 미미해서 일본 연안 정도에 국한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올해 제주도와 우리나라 해안에 방사선 감시기를 7개 더 설치해서 40개 소 운영하고, 항공 항만 감시기도 올해 6기 추가하여 237개 운영하겠다는 정도의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정보는 IAEA 공개에 의존하겠다는 수동적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안위는 작년 말 “방사선 위험으로부터 두터운 안전망을 확보”하겠다고 대통령에게 2023년도 업무보고를 했다. 특히 중요한 내용은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실재하는 방사선 위험은 즉각 대응하여 완화·제거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과장된 위험으로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원안위가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작은 문제로 호들갑 떨지 말라는 것이다. 웬만한 안전문제 제기에도 통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는 불통 원안위식 소통의지가 이런 것 아닌가 싶다.

‘상시 모니터링’은 이 땅의 핵발전소부터 해야

하지만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방사능 오염도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대통령 보고 사항은 환영할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 바다로 들어오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사능은 미미하지만 만일을 대비해 감시기를 잔뜩 설치해 놓고 측정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여기에다 몇 개 더 설치해 후쿠시마 배출 오염수 감시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이보다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 바다와 대기로 배출하는 방사능에 대한 감시가 훨씬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한국 핵발전소에서 배출하는 방사능이 후쿠시마 오염수보다 우리 근해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고 연안 지역주민 안전에 더욱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핵발전 시설에는 방사능 오염 가스를 대기로 배출하는 배출구가 있으며 바다로 오염수를 배출하는 통로가 있다. 여기를 상시 감시하여 방사능 배출량을 투명하게 실시간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현장 감시활동 당시 이것을 강력 요구했지만 한수원은 한사코 반대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핵발전소와 연구로에서 이와 같은 실시간 배출정보를 공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원안위는 후쿠시마 상황과 관련해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소통하겠다고 하기 전에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 배출하는 방사능 오염수와 방사능 가스의 누출정보부터 ‘실시간’으로 감시해 국민에게 단 1초의 배출도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안전소통일 것이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규제기관이 국민 안전정보를 은폐, 조장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은 필자 또한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기존에 누차 거론한 것처럼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과학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방사능 배출을 제대로 감시하는 모습부터 먼저 보이고 나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배출 오염수의 방사능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면서 일본에도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원안위가 대통령에게 업무보고한 ‘상시 모니터링’은 당장 올해 우리나라 핵시설에 대해서부터 반드시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온라인 감시기를 설치하기 위해 국회의 예산 협조와 기술지원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무료 자문에 적극적으로 응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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