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핵발전소의 “신규 건설과 운영에 있어 안전을 최우선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2월 신한울 1호기 준공식 발언은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리라”는 6월 발언과 상충되어 대체 어찌하라는 건지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 때문에 윤 정부가 추진하는 핵발전소 ‘계속운전’의 안전을 우려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단 한 번의 사고도 허용될 수 없는 것이 핵발전소이기 때문이다. ‘계속운전’은 사업자 언어다. 실제는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이다. ‘계속운전’을 하자는 것은 노후 원전이라도 지금까지 잘 관리하며 안전하게 운전했으니 조금 더 운전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인가?

윤 정부에서 추진하는 수명연장은 고리2호기가 처음인데 40년 운영허가 기간을 10년 더 연장한다는 것이다. 40년 가동 중 주요 기기, 구조물, 계통은 부식, 마모, 취화 등 다양한 노화과정을 거쳐 왔다. 가동할수록 고장 발생 가능성이 커짐과 동시에 안전기능과 품질 신뢰도가 저하되어 사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노화지식이 부족했던 40년 전 기준으로 설계, 제조된 발전소는 현재의 제조방법과 시험이 요구하는 기술기준과 18개의 원자력 품질보증요건에 미흡할 수밖에 없다. 가동 중 필요한 새로운 안전개선을 요구하면 40년 운영이 승인된 발전소이므로 계속운전을 허용해 주는 조건으로 수명 말기에나 개선조치 하겠다는 억지를 현장에서 종종 듣는다. 미국, 유럽, 일본에 다 있는 소급적용규정(Back Fitting Rule)이 우리나라에만 없기 때문이다.

고리2호기처럼 지난 정부에서 수명연장을 않겠다는 발전소는 안전개선을 위한 투자가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제는 수명연장이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 대통령 지시사항처럼 되었으니 최소비용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수명연장을 위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보고서가 부실하게 작성되었다는 지역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에도 주민공청회가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최소비용,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 소통까지 모든 것을 맡겨도 되는 것일까? 정권이 바뀌자마자 수명연장에 총력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소통 주무부처이지만 소통의 현장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원안위가 진흥에 무게를 두고 국민안전은 내팽개치는 행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수명연장에 있어 최근 문제가 되는 중대사고, 항공기 추락 등 테러와 기후환경 위협요인을 더는 무시할 수 없음에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넘어가고 있다. 신한울 1호기 운영 허가 당시 항공기 추락에 의한 테러가 우려됨에도 지나가는 항공기가 고장으로 떨어질 확률이 희박하다고 그냥 넘어갔다. 노후원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동일부지 원전에 최근 적용된 기준을 최신기술기준으로 보는 것도 불합리하지만 그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신고리 5,6호기는 고리2호기와 동일부지에서 승인받은 원전으로 테러 충격 대비를 위해 원자로 건물 두께가 137cm이고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벽체 두께가 150cm이다. 고리2호기 원자로건물 두께는 120cm이고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두께는 40cm이다. 수명연장을 위해 최신기준을 만족해야 하는데 어떻게 두께를 보강할 것인가? 주어진 안전여유도는 예기치 못한 오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여유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비밀스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 비용이 3000억 원이라고 한다. 이 중 거의 절반이 주민에게 지급하는 돈이므로 실제 설비개선 비용은 얼마 안 된다. 운전하는 동안 안전개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다고 이 작은 비용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일까? 그동안 일부 개조, 교체했다고 해도 사실 40년 전에 승인한 기준에 따른 조치에 불과하므로 최신 안전기준과 경험을 적용한 것이 아니다. 새것으로 교체해도 옛날 기준에 맞춘 것일 뿐이다.

설비를 개조하는 일은 막상 쉽지 않다. 기존 시스템과 호환되어 병합이 잘 되어야 하는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부품을 자주 교환해야 하지만 가동 중에 공급자가 소멸될 수 있으며, 예비품 조달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오류로 인해 품질입증이 어렵다. 한빛원전에서 펌프 계측기기 예비품을 교체했지만 가동하자 화재로 고장 정지된 사례도 있다. 기기교체, 부품조달 문제에 추가하여 현장 문서와 도면이 실제 상태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후원전일수록 도면이나 설계문서가 없고, 있어도 실제 상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이 문제는 안전을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여전히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실정이다.

안전성을 평가하는 일은 노후원전에서 매우 중요하다. 외부 안전평가 전문기관이 현장에 와서 조사하고 상태를 보지만 주로 기록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위험 식별과 확인이 어려우므로 안전성 평가 입력자료가 부실할 수 있다. 현장 운영요원의 퇴직, 인사이동 등 변동 사유로 정보가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위험요소가 안전성 평가에 반영되지 못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발주처가 독점사업자이기 때문에 평가결과에 대한 발주자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결과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용역대금 지급이 원활하겠는가? 객관적인 3자 독립검토가 미흡하여 발생되는 고질적인 품질저하 문제는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다. 경제성과 독점 거버넌스만 집중하고 안전은 장식품 수준이니 노후원전 수명연장이 우려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라가 제대로 하지 않는 핵발전소 안전을 위해 시민 사회의 꾸준한 감시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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