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우리나라는 1978년 4월 첫 가동에 들어간 고리1호기 이후 지금까지 40년 이상 원전 30기를 건설, 운영해 왔다. 그중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는 영구 정지되었고 신한울 2호기, 신고리 5, 6호기 3기가 건설 중이므로 현재 25기가 가동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수명 연장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 정도로 축소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부실 논란을 아랑곳하지 않는 수명연장정책으로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이 32.4%로 대폭 확대된다. 극소수 사업자와 결탁한 0.7% 승자에 의해 에너지정책이 하루아침에 세계 에너지시장 흐름과 정반대로 뒤바뀐 것이다.

정권 바뀌면서 덩달아 바뀐 반시장적 에너지정책

고리1호기가 가동된 초기에는 오일쇼크로 인해 원전이 에너지안보 개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바 있다. 하지만 3차례에 걸친 원전 중대사고로 원전에 대한 안전문제가 대두됐다.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에서는 그동안 가상사고로만 여겨졌던 중대사고가 현실화하면서 인적 오류의 중요성이 드러났다. 이후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는 안전문화의 중요성과 함께 국제협력에 의한 대처 필요성이 인식되었다. 2011년 발생된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는 지진과 해일 등 원전 안전 위협요소에 대비한 사고예방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연달아 발생한 세기적인 중대사고를 통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는 완전히 무너지게 됐다. 이윽고 2016년 영국 토마스 로즈 교수 등에 의해 향후 10년 안에 이와 같은 중대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70%에 달한다는 논문까지 나오는 상황이 됐다. 이 논문은 이런 중대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 보유국들의 학습효과가 미미하다는 가정 아래 동일사고의 재발 가능성을 고려해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학습효과가 거의 전무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점이다.

일본은 원전 재가동을 위해 투입하는 설비보강 비용이 호기당 2조 원이 넘는다. 우리나라는 24개 가동 원전 전체에 고작 1.1조 원을 투입하여 2015년까지 후쿠시마 후속대책을 완료하겠다고 했으면서도 그나마 5000억 원도 집행하지 않은 것이 2020년 국감에서 전혜숙 의원에 의해 확인되었다. 백두산 폭발 가능성이 회자되는 요즘 우리나라에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크기의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월성원전은 누설로 지하가 오염되어 온 국민의 우려를 자아냈지만, 지금까지 배출된 총량이 얼마인지 국민에게 설명하지도 않았다. 맨날 조사만 하다 뱀꼬리 감추듯 슬그머니 묻히고 있다. 월성의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은 중간저장인지 정체를 알 수 없이 야적된 상태이지만 그 넓은 부지에 방사능 모니터는 달랑 2개가 전부다. 깨진 핵연료에서 나온 고독성 방사능이 대기로 누설되어도 감지가 안 되길 바라는 것 같다.

원전 안전성 기준 한국과 유럽이 왜 달라야 하나

최근 대통령까지 1호 영업사원을 자임하며 원전 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APR1000 원전을 유럽에 수출하기 위해 유럽사용자협회요건(EUR)에 따른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유럽 사용자협회의 안전요건에 적합하게 인증(?)되었다는 것이다. EUR은 ‘9.11 테러’ 학습효과로 강화된 요건 중 하나로, 항공기가 충돌해도 핵연료가 녹는 사고를 방지하도록 요구한다. 작년 가동 승인된 신한울 1호기는 지나가던 항공기가 ‘우연히’ 원전에 떨어질 확률이 아주 낮다는 엉뚱한 논리를 대며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유럽의 안전요건은 제대로 지키면서, 제 나라 안전은 테러를 확률로 계산하는 엉터리 논리까지 대며 피해 나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원전 수출을 위해 원전 생태계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요처가 없다 보니 아쉬운 공급자가 자기 돈으로 다 지어 주고 건설비는 추후 원전을 가동해서 갚아도 되는 조건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수출 성사만 되면 수십조 원 대규모 사업이라 한탕주의가 쾌재를 부를 만하다. 요르단과 UAE를 보라. 수출해서 단 것 빼먹고 나면 뒷사람 책임이니 내겐 책임이 없다. 지지율도 하늘을 찌를 것이니 모든 수단 방법 다 동원하여 수출하고 볼 일이다. 수주를 둘러싼 뒷거래가 영업비밀이란 이유로 파악하기 힘든 것은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이다.

최근 원전 수출을 위해 한전 사장이 지진 발생 직전 튀르키예를 방문한 적이 있다. 튀르키예는 파키스탄 핵무기를 도운 적이 있어서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이 한국 원전의 수출을 승인한다고 해도 사용후핵연료는 우리나라로 반입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UAE 원전 수출 당시에는 국회 동의 없이 군까지 파견하기로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를 고려하면 대규모 비용과 민감한 부대조건이 수반되는 원전 수출은 헌법 60조 1항에 따라 반드시 국회 동의절차를 받도록 해야 한다.

특정 대학 특정 학과가 장악한 원전 생태계

원자럭산업은 진흥과 규제에 관한 핵심정책들이 모두 서울대 핵공학과를 정점으로 특정 대학 특정 학과 출신 극소수 선후배로 뭉친 학맥과 인맥에 의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추진되는 특징이 있다. ‘해먹기 좋은’ 그들만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들만의 연구생태계와 이해관계를 중시하며 자기 땅을 지키려는 허울 좋은 수사(修辭)만 있을 뿐 세계 에너지시장 추세에 적합한 국가적인 에너지 전환과 국민 안전 여부는 진지한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원전사업 초기부터 사용후핵연료 대책을 함께 추진해야 했지만, 연구비만 쓰다 지금 와서 저장공간이 다 차니 확장하겠다고 난리다. 핵폐기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당초 일을 벌이지 말아야 했다.

이들에게 국민 안전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정부는 원자력 관련 모든 정책과 예산을 단지 엘리트란 이유로 이들에게 배타적으로 의지한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다. 독립적인 규제까지도 현장을 중시하는 전문성보다 다양성을 해치는 배타적인 엘리트형 인적 구성으로 얽혀 있다. 결국 규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들이 자율적으로 국민 안전을 위한 사회적 책임까지 다할 것으로 믿는다면 국가적으로 아주 큰 불행이 닥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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