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불출석 할 경우 구인장까지 발부할 것”
바쁜 사람 불러놓고 공판 진행도 원만하지 못해
오후엔 유동규 코로나 증상 호소 5분 만에 파행
오전 내내 정진상→유동규 반대 신문만 주구장창
이재명 “검찰이 손발 묶어…정치하고 있다 생각”
[기사보강 : 오후 9시 40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인천 계양을)가 4·10총선을 하루 앞둔 다음 달 9일까지 재판을 받게 됐다. 제1야당 대표가 선거 전날까지 재판에 불려다니는 초유의 일이 현실화했다. 26일 열린 재판도 이 대표에 대한 신문이 아닌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 쪽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한 반대 신문만 있었고, 그마저도 유 전 본부장 쪽 요청으로 오후 공판은 5분 만에 끝났다. 중요 선거를 앞두고 증인신문도 없는 야당 대표를 법원 ‘포토 라인’에 세우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다. 정치 중립뿐 아니라 형평성, 국민 참정권 침해 문제도 제기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는 이날 대장동·성남FC·백현동 사건 재판 기일을 오는 29일, 다음 달 2일, 9일로 지정했다. 공식선거 운동 기간은 오는 28일부터다. 13일간의 선거운동기간 중 3일(전체 기간의 23%)을 법원에 발목 잡히는 셈이다. 이에 이 대표 쪽은 재판부에 “국민의힘 나경원 후보(서울 동작을)도 선거 기간을 빼고 (공판)기일이 지정되는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지금 이재명 피고인은 본인의 후보자 지위뿐 아니라 당대표 지위에서 활동이 있는데 선거 직전까지 기일을 잡는 건 너무나 가혹하고 모양새도 좋지 않다”고 했다.
실제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여당 인사 관련 재판은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이 대표 쪽이 언급한 나경원 후보는 지난 2020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당시 국회법 위반으로 기소돼 아직까지 재판을 받고 있지만, 국회의원이 아님에도 법원에서 일정을 조율해준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정진석 후보(충남 공주·부여·청양)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지만, 재판부가 공판일을 총선 뒤인 5월 초순으로 미뤘다. 또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 재판의 경우, 4월 하순으로 연기했다. 재판부 운영의 형평성에 의문에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재명) 측은 충분히 그리 생각 가능하지만, 그렇게 생각 안 하는 분이 있어 재판부에서 피고인 측 정치일정을 고려해서 재판기일을 조정해주면 특혜라는 말 나올 것”이라며 “(일정을) 맞출지 안 맞출지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출석할 경우 전에 말씀드린 대로 구인장까지 발부는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에 함께 기소된 정진상 전 실장의 법률대리인인 조상호 변호사가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자를 불러 재판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정당하게 재판 지휘가 이뤄지는지 심각하게 의문을 표시하고 싶다. 이 부분을 조서에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표도 재판부에 출석 문제를 제기했다. 오전 10시 20분쯤 법원에 온 이 대표는 재판 시작 직후 “검찰 입장이 이해 안 된다. 저의 반대신문은 사실 끝났고, 정 전 실장의 반대신문만 있는데 제가 없더라도 재판 진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런 점을 생각해달라”고 했다. 또 재판부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유 전 본부장의 화상신문을 제안한 데 대해서도 “코로나 환자와 한 공간 안에 있지 않는 것도 시민의 권리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재판을) 해야 하는지 생각이 든다”며 “증인과 같은 자리에서 얼굴 보며 대면하는 것도 권리이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재판장은 이 대표의 요청에 “절차는 제가 정해서 진행하고 있다. (이재명) 피고인에 대해 변론 분리를 왜 안 하는지는 (이미) 설명드렸다”고 말하며, 이 대표의 주장을 사실상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며 “이재명 피고인이 안 나오면 증인(유동규)이 증언을 안한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잘 안 간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쯤부터 시작한 재판은 이 대표의 발언대로 정 전 실장 쪽의 유 전 본부장 반대 신문만 이뤄졌으며, 이전 공판에서 신문을 마친 이 대표는 재판 시작 직후 자신의 출석과 코로나19에 감염된 유 전 본부장의 화상신문 여부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을 뿐 사실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심지어 오후 공판은 유 전 본부장이 “열이 올라서, 이번 주 금요일도 (재판을) 해야 하니까 무리하면 안 좋을 거 같다”고 호소해 시작한 지 5분 만에 끝나는 파행을 빚었다. 이처럼 진행도 원만하지 않은 데 무리해서 총선 전날까지 공판을 강행하는 이유를 납득하긴 어려워 보인다.
법조계에선 보수 성향의 조희대 대법원장 영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 취임 후 첫 일성으로 “국민들이 지금 법원에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볼 때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조 대법관 취임 이후 여권 인사의 재판 지연에 관대한 법원 운영이 이뤄지면서, 이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등 야권 인사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선거기간 재판 강행에 대해 조서 기록을 요청한 조상호 변호사는 통화에서 “선거 기간 중에 후보자를 소환해서 불러서 반드시 재판을 열어야겠다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면서 “선거운동 기간인 13일 안에 선고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재판이 많이 남아있는데, 법률상 굉장히 제한적으로 정해진 선거운동 기간 13일 중 3일을 양보해서 제1당의 당대표의 선거운동의 발목을 묶어둬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라고 했다.
조 변호사는 “(재판 강행은) 피선거권자의 활동의 자유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13만여 명의 계양을 유권자, 더 나아가서 제1당 당 대표이기 때문에 254개 선거구(비례대표 포함 300개)에 영향을 미친다”며 “당 대표는 전국 유권자에게 앞으로 4년 동안의 의정 활동을 설명할 의무가 있고, 국민들은 그 설명을 듣고 각 당의 선거 캠페인을 비교하면서 선택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일반 국민의 투표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오전 재판이 열리기 전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과 인터뷰에서 재판 강행에 대해 “제가 없는데서 재판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제가 없더라도 재판이 전혀 지연되는 게 아니”라며 “지금 다른 재판부들은 주가조작 사건 이런 건 다 연기하는데, 검찰이 절대 안 된다고 지금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 손발을 묶겠다는 검찰의 의도같다. 권투하는데 한 손 묶어놓고 하면 이기기 쉽지 않겠나. 발도 묶어놓고 때리면 더 재미있을 것”이라며 “검찰이 정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유 전 본부장은 오전 증인신문에서 조상호 변호사가 질문을 하자 “일단 공천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엉뚱한 말을 해 재판부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조 변호사는 서울 금천에서 현역 최기상 의원과 경선을 했으나 탈락한 바 있다. 조 변호사가 유 전 본부장의 발언에 “공천을 안 받았다”고 답하자, 유 전 본부장은 재차 “조상호 아니냐”고 물었고, 조 변호사는 “맞는데 안 받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에게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고 제지했다.
유 전 본부장은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에 입당해 이 대표가 후보로 등록한 인천 계양을에 출마 선었했다가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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