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빈 방문 앞두고 한국대사 초치

국빈 방문 전 벌어진 전무후무한 초치 사태

대통령실 의전·외교 라인 총체적 난국 방증

자기 반성 없는 대통령…같은 문제만 반복

쇄신은 난망…국정 전반에 걸쳐 반성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앞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막시마 왕비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3.12.13.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앞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막시마 왕비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3.12.13. 연합뉴스

정상외교에서의 의전 문제가 이젠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반복되고 있지만, 이번엔 결이 많이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11~15일)을 앞두고 네덜란드 측이 한국의 '과도한 의전 요구'에 항의해 최형찬 주네덜란드 한국대사를 초치(불러들여 항의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15일 외교부에 따르면 네덜란드 측은 지난 1일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 필요한 경호 및 의전 문제와 관련해 최 대사를 불러들였다. 외교부가 기자들에게 보낸 언론대응자료(PG)에서 △관련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네덜란드 측에 항의하거나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귀책 사유가 한국에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외교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국빈 방문이 임박한 시점에서, 일정 및 의전 관련 세부적인 사항들을 신속하게 조율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진 소통의 일환"이라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국외 순방을 앞두고, 그것도 최상위격 정상외교인 국빈 방문을 목전에 두고 한국대사를 초치한 것은 보수·진보 정부를 떠나서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전망이다.

초치의 의미는 일반적인 외교 관례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상대국 외교관을 불러들이는 초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처럼 국가 간 첨예하게 대립·갈등하는 문제에서 이뤄지는 높은 수위의 항의 표시다. 국빈 방문을 앞두고 대사를 초치했다는 것은, 한국 측이 국빈 방문 자체가 성사되지 않을 정도의 중차대한 문제를 일으킨 것 아니냐는 의심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13일(현지시간) 헤이그 총리실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3.12.13. 연합뉴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13일(현지시간) 헤이그 총리실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3.12.13. 연합뉴스

이번 사태를 처음 보도한 <중앙일보>는 한국 측이 경호를 이유로 엘리베이터 면적까지 요구하거나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의 '클린룸'에 제한 인원 이상의 방문을 요구한 것 등이 원인이라고 짚었지만, 이러한 문제로 초치했다고 하기엔 사안이 너무나 가벼워 보인다. 이 정도의 사안은 얼마든지 '물밑 협상'으로 풀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의전 문제를 넘어서 더 큰 문제가 이면에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네덜란드 측이 국빈 방문 일정 자체를 아예 날릴 수 있다고 결심하지 않으면 이렇게 못한다"며 "단순히 협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네덜란드 측이) 우리가 몹시 불쾌하다는 걸 한국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초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민한 문제가 있어 서로 밀고당길 때도 있지만, 물밑에서 협의하지 이렇게 드러내지는 않는다"면서 "네덜란드 국왕이나 총리 관련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견된 참사, 총체적 난국

이번 사태의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이나 원인 규명은 더 필요해 보인다. 다만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매 순방마다 발생하는 의전·외교 문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이렇게까지 연쇄적으로 의전 문제를 일으켰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 이면엔 대통령실 의전 라인과 외교 라인의 '총체적 난국'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편이 현재로선 합당해 보인다. 네덜란드 측이 대통령실·외교부·대사관의 산발적 요구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언론보도는 의전·외교 지휘라인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의전 라인과 외교 라인은 이 정부 출범 때부터 말썽이었다. 특히 이들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에 드러난 것은 올해 3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돌연 사퇴하면서부터다.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안보실장이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배경에 대통령실 내 '권력 암투'가 있다는 건 이제 거의 정설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외교부 출신과 비외교부 출신의 '알력 싸움'으로 비화됐던 이 사태로 김일범 의전비서관, 이문희 외교비서관에 이어 김 실장까지 물러났지만, 문제는 전혀 봉합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의전비서관에 김승희 의전비서관 직무대리를 정식 임명했다. 사진은 지난 달 2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끝난 뒤 전시된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북한의 방사포탄을 살펴보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보좌하는 김 비서관(왼쪽). 2023.4.16 [연합뉴스 자료사진]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의전비서관에 김승희 의전비서관 직무대리를 정식 임명했다. 사진은 지난 달 2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끝난 뒤 전시된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북한의 방사포탄을 살펴보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보좌하는 김 비서관(왼쪽). 2023.4.16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일범 의전비서관의 바통을 이어 받은 인물이 '김건희 라인'으로 분류되는 김승희 의전비서관이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김승희 의전비서관은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할 때부터 이미 영부인 의전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외교관 출신 상관이었던 김일범 전 의전비서관과 충돌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벤트 대행사 대표 출신이라는 것 외에 의전 업무에서 전혀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대통령실 내에서 승승장구했고, 대통령 의전 사고는 계속해서 터졌다.

결국 김승희 비서관도 자녀 학폭 무마 문제로 물러나고 그 뒤를 언론인 출신인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이 이어받았지만, 내부 문제는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갈등의 핵심에 있던 인물들이 물러났음에도, 다시 전무후무한 초치 사태가 벌어진 것은 여전히 의전 라인과 외교 라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방증할 뿐이다. 오히려 곪을대로 곪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형국이다.

외교의 꽃은 '정상외교'라고 할 수 있다. 외교부를 비롯한 각 부처에서 국·과장, 차관, 장관급 인사들이 수년간 논의한 내용이 위로 올라가면, 그 최종 마무리를 짓는 것이 대통령의 정상외교다. 그리고 정상외교를 '꽃'에 비유한다면 정상외교의 의전은 '꽃봉오리'로 비유할 수 있다. 아무리 아래에서부터 좋은 내용으로 채워도 꽃봉오리에서 피어난 꽃이 형편없다면 '국격 실추' '실패한 외교'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처럼 정상외교를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가 드러났다면,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내부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쇄신과 반성 없는 대통령의 책임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가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많은 의문이 남는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의전 라인과 외교 라인에서 숱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 인물을 그대로 기용함으로써 문제를 확산시켰다.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해도 봉합되지 않는 데에는 누구보다 지휘체계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쇄신과 반성 없는 대통령 본인의 '태도'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3.4.26. 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3.4.26. 연합뉴스

대통령의 반성없는 완강한 태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중 하나가 '국기에 대한 경례' 논란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였던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성조기에 경례를 해 스스로 의전 논란을 자초했다. 이에 당시 대통령실은 "상대국에 대한 존중 표시"라면서 반박했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일은 반복됐다. 캐나다 국기에도, UAE 국기에도 대통령은 경례를 했고, 그때마다 대통령실은 수습하기에 바빴다.

정치권과 언론에선 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를 문제라고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 대통령의 책임이 우선 거론될 수밖에 없다. 상대국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는 윤 대통령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 한미 정상회담 국빈 환영식에선 성조기에 경례를 하지 않았다. 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미국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것일까. 일관되지 않은 대통령의 태도는, 결국 자기 반성은 없이 반복적으로 의전 프로토콜을 무시한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대통령의 태도 문제는 국외 순방에서뿐만 아니라 국내 의전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제병 지휘는 단순 의례가 아닌 대통령의 권한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식이지만, 여기에서도 어이없는 실수는 반복됐다. 대통령은 취임 첫 해 국군의 날 행사에서 '부대 열중쉬어'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됐지만, 올해 두 번째 국군의 날 행사에서 또다시 '부대 열중쉬어'를 하지 않아 구설에 올랐다. 이쯤되면 실수라고 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이러한 대통령 태도 문제가 단순히 사소한 행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미국 순방 당시 '바이든-날리면' 사태로 파문을 일으킨 데 이어, 올해 1월엔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을 해 이란 외무부가 성명을 내고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란 측에서 양국 간 민감한 현안인 원유 수입 대금 70억 달러 동결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 문제로 번졌다. 수십억 원을 써서 추진한 정상외교 성과는 온데간데없이 가는 곳마다 발언 논란만 남게 됐다. 그럼에도 쇄신이나 반성 메시지는 없었다.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현지에 파병중인 아크부대를 방문,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2023.1.16. 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현지에 파병중인 아크부대를 방문,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2023.1.16. 연합뉴스

대통령의 그간 리더십을 고려했을 때, 당분간 혹은 앞으로도 쇄신이나 반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과나 반성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외교 문제뿐만 아니라 비교적 자유로운 국내 정치 문제에서도 쇄신이나 반성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가 여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다. 인요한 혁신위원장 조기 퇴진과 장제원 불출마, 김기현 사퇴 등 당내 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시작점은 거슬러 올라가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공천에 개입한 대통령의 문제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대통령 쇄신 메시지는 없고, 대통령의 '격노' 보도만 잇따르고 있다. 대통령이 격노할 대상은 외부가 아니라 자기자신이다. 외교부터 국내 정치까지 대통령 스스로  쇄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자멸 혹은 파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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