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희 로드' 유사 사례, 국토부 공개 14건 중 4건 불과
대폭 변경 사례, 모두 2010년 이전의 사업
국토부 공개 사례 비춰봐도 양평은 이례적
10년 전 사례로 '대폭 변경' 일반화 옳지 않아
'포항-영덕' 예타 무력화…양평, 그 길 따를 수도
일반화 통한 은폐 시도…양평 의혹 더욱 키워
국토교통부는 14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을 둘러싼 '김건희 씨 일가 특혜 논란'과 관련 "예비타당성조사 제도가 도입된 1999년 이후 타당성 조사가 완료된 24개 사업 중 14개 사업에서 시·종점 위치가 바뀌었다"며 이에 대한 내역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예비타당성조사는 개괄적인 노선을 기초로 사업의 경제적, 정책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단계로 사업 추진 여부가 결정되면 후속 타당성 조사, 기본실시설계 과정을 거쳐 계획을 보완하고 구체화해 나간다"며 "타당성 조사는 최적의 노선을 마련하는 과정으로 노선 변경이 많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대폭 변경 사례, 모두 2010년 이전의 사업
그러나 시민언론 민들레가 이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시점이나 종점, 혹은 구간 간의 차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종점 변경 거리인 7.5km보다 더 큰 차이가 발생한 것은 4개 사업에 불과했다. 그런데 시기를 보면 예비타당성조사 도입 초기인 1999년 2건, 2003년 1건, 2009년 1건으로 이러한 차이는 예비타당성조사 자체의 불가피한 속성이라기보다는, 1999년도에 시작된 예비타당성조사가 시간이 가면서 '안정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인다.
4건의 경우 완전히 새로운 노선을 설정하는 것으로 봐야 할 만큼 큰 변경이 일어났지만 그 외의 경우는 가장 큰 변경이 광주-완도(2002), 김포-파주-양주(2009), 새만금-전주(2010)가 5km 정도로 크지 않았고, 특히 2011년 이후에는 가장 큰 변경이 2020년의 계양-강화의 2km로 굳이 '변경'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경미한 조정'의 수준이었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는 사례가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타당성 조사가 이루어진 24개 사업 중 큰 변동이 없는 10개 사업은 대부분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즉 노선 전체가 새로 설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2009년의 포항-영덕 고속도로 사업 이후로는 서울-양평 고속도로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이거나 유사한 사례는 없었다.
국토부 공개 사례 비춰봐도 양평은 이례적
이러한 예비타당성조사의 '안정화' 추세는 사업비 증감의 추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비타당성조사와 타당성 조사에서 산정된 사업비의 차이는 2009년 포항-영덕 고속도로 이전까지는 –49.8%에서 41.5%까지 증감폭이 컸지만, 2010년에는 증감폭이 10%대로 안정화됐고, 2010년 이후에는 그 폭이 10%대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어떤 제도라도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된 제도는 없으며 예비타당성조사도 초기 10년 간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안정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예비타당성조사가 아무리 타당성 조사 이전의 준비적 절차라고 해도 효율적인 예산 집행과 사업 성과 극대화가 목표이므로, 문화재 발굴지역처럼 아무리 사전에 꼼꼼하게 살펴도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니라면 타당성 조사에서 마치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비록 과거에 예비타당성조사와 타당성조사 사이에 마치 '널뛰기'처럼 큰 변화가 일어나는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예비타당성조사 제도가 안정화되기 이전의 사례로서, 10~20년 전 예타 초기 사례를 들어 시·종점과 구간의 대폭 변경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종점을 7.5km나 이동시킨 이번 경우는 2010년 이후의 예타 안정화 추세에 비춰본다면 여전히 이례적이고 특이한 경우다.
'포항-영덕' 예타 무력화…양평, 그 길 따를 수도
지난 7월 10일 양평에서 진행된 설명회에서 국토부 도로국 실무자는 "거의 100% 수정된 것도 있다"며 양평-이천 고속도로의 사례를 들었다. 이 사업은 전 구간이 예비타당성조사-타당성조사-실시설계 과정에서 변화무쌍한 변경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타당성조사에서 4.5km 변경된 종점이 실시설계에서 다시 예타안으로 회귀된 것을 감안하면, 중간 구간의 3km 이격이 가장 큰 변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서울-양평 고속도로 예타가 완료된 2021년을 기준으로 하면 11년 전의 조사로서, 그 사례를 들어 이번 예타안 변경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유사한 사례로는 구간과 사업비에서 가장 큰 변경이 일어난 포항-영덕 고속도로 사업으로 사실상 예타를 무력화시킨 사업이다. 이 고속도로는 내륙 구간으로 예타를 통과한 뒤 노선을 바다 쪽으로 옮겨 영일만에 교량을 설치하는 '교량 횡단 구간'으로 변경해 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그러나 교량 횡단 구간(영일만대교)에 대한 국고 예산 지원이 불발되면서 교량구간을 분리해 육상노선만 2015년 착공해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느라 2조 5천억에서 1조 2천억으로 사업비가 49.8% 줄어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교량 횡단 구간은 여전히 설계 작업에도 못들어가고 있다. 예산 지원이 매년 불발되는데다가 해군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뒤 현지에서는 곧 사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으나 여전히 사업 성사는 불투명하다.
이 사업에서 예비타당성조사와 타당성조사와 같은 절차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예타 제도 뿐만 아니라 SOC 건설에 대한 국가관리체계 자체를 무력화시킨 사업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도 불투명한 배경으로 예타가 무력화된다면 다른 형태로 포항-영덕 고속도로 사업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일반화로 포장한 은폐 시도…양평 의혹 더욱 키워
포항-영덕과 같은 특이한 사례를 제외하면 국토교통부의 이번 자료 공개는 우리나라 예비타당성조사제도가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안정되고 신뢰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변경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있는 그대로를 공개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국토부 도로국장은 "교통이나 환경, 결과치가 도출된 과정 등에 대해 있는 사항들을 공개할 수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숨길 이유가 하나도 없다"면서도 "그러나 공개됨으로 인해서 과정 중에 있는 게 또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공개가 조심스럽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예타 후 시점과 종점, 구간이 변경됐다는 14건의 사례 중 서울-양평 고속도로보다 더 크게 변경된 것은 4건에 불과하고, 그것도 가장 최근의 것이 11년 전의 사례인데도 마치 14건 모두가 7.5km를 이동시킨 서울-양평 고속도로와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둘러대려고 하니 자료 공개가 새로운 의혹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번 자료 공개로 예비타당성조사 노선이 타당성 조사 과정에서 대폭으로 변경되는 것이 마치 일상다반사인 것처럼 인식되게 하려는 국토부의 의도는 실패했다. 또 하나의 은폐와 허위의 기록만을 더 얹었을 뿐이다. 이러한 얄팍한 자세를 버리지 않는다면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의혹은 더 깊은 미궁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