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의 한글철학 ①] 기윽(ㄱ)은 하늘에서 온 얼이다
하늘의 얼이 땅 그리워 내리는 꼴이 ㄱ
그 얼이 땅에 부딪혀 생긴 것이 사람 ㅅ
땅의 얼이 하늘을 높이어 오르는 꼴이 ㄴ
“참나는 없이 있는 하나의 긋이요, 찰나다. ‘나’라 하는 순간 이미 나는 아니다. 참나는 없이 있는 나다. 그런 나만이 참나라고 할 수 있다. 빛보다 빠른 나만이 참나다. 날마다 새롭고 새로운 나만이 참나다. 다석 류영모
거센소리는 위로 불쑥 솟는 뜻이 있다. 그래서 ‘큰 뜻’을 가진다. 그와 달리 된소리는 씩씩하고 단단하고 튼튼하다. 그래서 ‘센 뜻’을 가진다. 그렇게 뜻이 붙어서 높아지고 깊어지고 넓어졌다. 뜻에 ‘낮힘’이 든든하니 ‘높’은 저절로 오른다. 거센소리로 커지는 화살표(⇑)는 ‘커짐’의 뜻이요, 한없는 오래의 지금이다. 때(時)도 없고 빔(空)도 없다. 더 높은 버금․으뜸(次元)으로 솟아오를 뿐이다.
옛이응은 ‘윽’, 기윽은 ‘극’, 키읔은 ‘큭’으로 소리 낼 수 있을 터인데, 이것은 위로 오르는 소리다. 키읔은 기윽 위에 기윽 하나를 더 쌓아서 만든 꼴이다. 쌓아서 만들었으니 크고 커지는 뜻을 가진다. 더 긋는 가획(加劃)은 바탕소리 ㄱㄴㅁㅅㅇ에 따라 다르게 맞추어 썼다. 기윽은 위로 쌓고 옆으로 더했다.
된소리로 두터워지는 화살표(⇒)는 ‘세짐’의 뜻이다. 지금이 한없는 오래로 가고 오며 가온다. 때가 때에 흐르니 빔도 빔에 흐른다. 여기에 이제로 늘 반짝이는 돎이다. 나타나 사라진다. 나타날 때 두텁고, 사라질 때 가볍다. 끝에 끄트머리요, 따르니 따름이요, 빠르니 빠름이요, 쫓으니 쫓음이다. 된소리는 더하고 더한 힘이다. 그래서 ‘두꺼워진다’고 하는 것이다.
다석이 나날의 알맞이로 꿍꿍한 ‘한글철학’으로 볼 때 위로 솟는 거센소리는 모자람이 없고, 옆으로 두터운 된소리는 모자람이 있다. 사람은 모자람 없이 솟는 거센소리를 따라야 하나, 된소리가 없으면 두터워지지 못한다. 그러니 거센소리는 된소리를 휘감아 용오름 소용돌이로 솟구쳐야 한다. 다석은 닿소리에 ‘하늘아(ㆍ)’를 써서 쉬지 않고 솟아오르는 용오름의 ‘숨돎’(氣運)을 심었다.
이런 멋진 한글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한글날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펴낸 날
세종은 1443해 음력 12달에 언문(諺文)을 새로 짓고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일렀으며, 1446해 음력 9달에는 이를 같은 이름의 『훈민정음』으로 엮어냈다. 언문의 이름과 책의 이름이 똑같다. 이 글에서는 언문으로 쓸 때는 그냥 ‘훈민정음’이라 하고, 책으로 쓸 때는 ‘해례본’을 붙여서 『훈민정음해례본』(혹은 해례본)이라 하겠다. 나라 사람들이 다들 『훈민정음해례본』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남겨진 세종의 일을 보자.
『세종실록』(102권), 세종 25해 12달 30날(양력으론 1444해 1달) 경술 2번째 적은 글에 이런 글귀가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지은 『조선왕조실록』 누리집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뒤로도 실록의 글은 이 누리집에서 가져와 쓸 것이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세종실록』(113권), 세종 28해 9달 29날(양력으론 1446해 10달) 갑오 4번째 적은 글 앞머리에는 책을 펴낸 말이 나온다.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에,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한글날은 『훈민정음해례본』을 처음 세상에 펴낸 날을 기리는 것이다. 그 해달은 위의 『세종실록』(113권)에서 보았듯이 1446해 10달이다. 올해가 579돌이고, 돌아오는 2026해가 580돌이다. 글쓴이는 580돌에 맞추어 한글로 알맞이(哲學)를 익히고 닦은 다석 류영모의 ‘한글철학’을 깊이 살피고자 한다. 물음을 오래 불리고 있으면 탁 풀리는 때가 온다.
훈민정음 뜻얼개로 파고들기
『훈민정음해례본』은 오랫동안 감추어졌다가 1940해가 되어서야 누리(世上)에 나왔고, 이를 간송 전형필이 1943해에 기와집 열 채 값(당시 11,000원)을 치르고 샀다. ‘6․25전쟁’이 끝나고 세 해가 흐른 뒤인 1956해에 간송은 『훈민정음해례본』을 똑같이 찍어 베낀 베낌본(影印本)을 만들었다. 이 무렵 다석은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구기리(현 종로구 구기동) 집에서 학산 이정호와 더불어 해례본을 풀어 밝히는 공부를 하였다. 아마도 베낌본을 구해서 꼼꼼히 짚어 읽은 것으로 생각된다.
학산은 다석과 함께 깊이 풀어 밝힌 훈민정음 글자의 ‘해숨갈’(易學) 얼개, 얼개에 담긴 뜻, 뜻 쓰는 법을 갈무리하여 『훈민정음의 구조원리-그 역학적 연구』(아세아문화사, 1975)로 펴냈다. 이 책 뒤에는 두 사람이 공부한 『훈민정음해례본』 베낌본이 실려 있다. 글을 써 놓아두었다가 아마도 뒷날에 책으로 펴낸 것이리라. 그런데 이들이 깊게 살핀 것은 소리 내는 기관을 본뜬 훈민정음 글꼴이나, 소리글자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해례본에는 세종 당시 예조 판서였던 정인지가 쓴 머리말(序文)이 붙어 있다. 다석과 학산은 이 머리말에서 훈민정음의 뜻을 찾았다. 깊게 살핀 까닭이다. 머리말 앞 글월이다.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萬物)의 정(情)을 통하여서, 삼재(三才)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風土)가 구별되매 성기(聲氣)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外國)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는 모두 각기 처지(處地)에 따라 편안하게 해야만 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殿下)께서 정음(正音) 28자(字)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에 합하여 삼극(三極)의 뜻과 이기(二氣)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轉換)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_ 『세종실록』(113권), 세종 28해 9달 29날(양력으론 1446해 10달) 갑오 4번째 글.
먼저, 앞글의 첫 글월을 나누어 살피면 이렇다 : 가)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다. 나)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었다. 다)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정을 통하여서, 삼재의 도리를 기재하였다. 라) (기재한 것을)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하였다.
다석과 학산은 다)와 라)에 꽂혔다. 글자에 ‘삼재의 도리를 기재하고,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하였다’는 말이 아주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삼재(三才)”는 하늘(天)·땅(地)·사람(人)이다.
그다음 가져와 쓴 글을 나누어 살피면 이렇다 : 가)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였다. 나)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에 합하였다. 다) 삼극(三極)의 뜻과 이기(二氣)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다.
정인지는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라고 말하고, ‘고전(古篆)을 모방했다’고 말한다. 한자를 나누는 육서(六書)에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가 있다. 한글도 육서의 얼개를 따랐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으로 그럴듯하다. 첫소리 초성(初聲), 끝소리 종성(終聲)에 병서(竝書)를 썼기 때문이다. 각자병서(各字竝書)와 합용병서(合用竝書)를.
각자병서는 같은 낱자를 가로로 나란히 써서 겹낱자를 만들어 쓴 것이다. 첫소리, 끝소리에 모두 썼다. 합용병서는 다른 낱자를 가로로 나란히 써서 겹낱자를 만들어 쓴 것이다. ㅂ계 합용병서, ㅅ계 합용병서가 있으나, 지금 맞춤법에서는 끝소리에만 남아 있다. 첫소리는 대체로 각자병서의 된소리로 바뀌었다.
다석은 『다석일지』에 육서의 얼개를 잘 살려서 세상에 없는 한글 글꼴을 만들어 썼다. 어제오늘하제의 때(時)가 없는 글꼴이다. 육서의 뜻을 살피면서 한글의 병서(竝書)를 떠올려 보자.
∙ 상형은 꼴을 본떴다 : 해를 본뜬 날 일(日), 달을 본뜬 달 월(月)
∙ 지사는 점․선의 뜻 기호로 만들었다 : 위의 기호인 상(上), 아래 기호인 하(下)
∙ 회의는 글자를 나란히 한 뒤 뜻을 더했다 : 나무를 나란히 써 수풀 림(林)
∙ 형성은 몬꼴(事物)로 뜻삼고 소리로 이름 부른다 : 나무 목(木)+매(每)=매화나무 매(梅)
∙ 전주는 같은 뜻을 서로 주고받는다 : 고(考), 노(老)
∙ 가차는 글자가 없을 때 소리에 맞는 글자를 가져다 쓴다 : 自, 來, 北, 無
☞ 스스로 자(自)는 본디 ‘코’의 뜻이다. 새로 비(鼻)를 만들었다.
☞ 북쪽 북(北)은 본디 ‘등’의 뜻이다. 새로 배(背)를 만들었다.
☞ 없을 무(無)는 본디 ‘춤’의 뜻이다. 새로 무(舞)를 만들었다.
“칠조(七調)”는 칠음(七音)으로 곧 궁(宮)·상(商)·각(角)·치(緻)·우(羽)·변치(變緻)·변궁(變宮)의 일곱 음계를 말한다. 궁(宮)·상(商)·각(角)·치(緻)·우(羽), 이 다섯 가락이 바탕소리다. 이 다섯에 변치(變緻)·변궁(變宮)를 더한 것이 칠음이다. 다섯 가락의 소리는 이렇다. 궁은 음, 상은 아, 각은 어, 치는 이, 우는 우. 그러니까 ‘궁상각치우’는 ‘음아어이우’다.
그리고 “삼극(三極)”은 삼재(三才)와 같아서 하늘(天)·땅(地)·사람(人)을 뜻한다. 삼재로 말할 때는 그냥 하늘·땅·사람이고, 삼극으로 말할 때는 하늘극(天極)·땅극(地極)·사람극(人極)이라 한다. “이기(二氣)”는 음양(陰陽)이다. 우리말의 ‘움쑥불쑥’이 음양이다. 자, 정인지의 글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말은 바로 이것이다.
소리글자에 담은 뜻을 바꾸지 말라!
바탕소리 다섯 개의 뜻얼개
바탕소리 다섯 글자 ㄱㄴㅁㅅㅇ에 ‘그음’(劃)을 쌓고 더하고 넓혀서, 첫소리 열다섯을 만들었다. 다섯 가락에 더한 변치(變緻)·변궁(變宮)처럼, 첫소리 열다섯에 반혓소리(ㄹ)과 반잇소리(△)을 더하여 첫소리는 열일곱이 되었다. 그렇지만 소리는 다섯 숨길(五行)과 다섯 소리(五音)를 따랐다. 옛 인도의 산스크리트 글자도 다섯 소리가 바탕이요, 이걸 본받은 한자도 다섯 소리가 바탕이었다. 한자도 나중에는 반혓소리와 반잇소리를 더해서 일곱 소리로 나누었다.
세종도 다섯 숨길(五行)과 다섯 소리(五音)를 바탕으로 하여 첫소리(初聲)를 맺었다. 늘 소리의 밑바탕은 다섯 숨길과 다섯 소리였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섯 바탕소리는 어떻게 열다섯 개의 첫소리가 되었을까? 이 첫소리에 대한 알음알이가 다석과 학산의 놀라운 깨우침이다!
다섯 바탕소리 ㄱㄴㅁㅅㅇ에 ‘그음’(劃)을 더하고, 쌓고, 넓혀서 열다섯 개의 첫소리를 만들었다. 해례본에서 말하는 가획(加劃)은 ‘더하기’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기윽이 있고, 그 위에 기윽 하나를 쌓아서 키읔을 만들었다. 니은이 있고, 그 위에 그음을 더하고(디읃) 쌓고 더했다(티읕). 이응에서 여린히읗과 히읗은 그음을 더한 것이고, 시읏도 그음을 더하여 지읒과 치읓을 만들었다. 바탕소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미음이다. 미음이 있고, 미음을 네 녘(四方)으로 넓혀서 비읍과 피읖을 지었다. 다섯 숨길(五行)에 맞추어 보면 미음은 가운데 흙(土) 자리다. 네 녘으로 넓히면 우물 정자(井)가 된다.
정인지는 하늘극(天極)·땅극(地極)·사람극(人極)의 삼극(三極)과 이기(二氣) 곧 음양(陰陽)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다. ‘포괄’(包括)은 ‘모두 끌어 넣었다’는 뜻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언문 28자에 삼재(三才)․칠음(七音)․삼극(三極)의 이치는 물론이요, 음양오행론까지 아주 깨끗하게 끌어넣다니!
자, 그렇다면 다석과 학산은 삼재(三才)․칠음(七音)․삼극(三極)의 이치와 음양오행론을 어떻게 풀었을까?
맨 처음, 바탕소리는 셋
학산은 『훈민정음의 구조원리-그 역학적 연구』에 그림을 그려 놓았다. 아래는 초성기본음의 평면도이다.
그는 초성기본음을 원(圓:○), 방(方:□), 각(角:△)으로 풀었다. 그 까닭은 삼재(三才)․삼극(三極)의 원리에 있다. 바탕소리와 삼재(三才)․삼극(三極)의 원리는 아래 표와 같다.
바탕소리 다섯 개가 세 개로 바뀐 까닭은 이렇다. 기윽 ‘ㄱ’과 니은 ‘ㄴ’이 하나로 합쳐져 미음 ‘ㅁ’이 되기 때문이다. 바탕소리 ‘ㄱㄴㅁㅅㅇ’ 다섯 개는 다시 ‘ㅁㅅㅇ’ 세 개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ㅁㅅㅇ’ 이 세 개는 삼재(三才)․삼극(三極)의 원리이다.
학산이 ‘초성기본음 평면도’에 대해 밝힌 뜻을 풀어 옮긴다. 목구멍소리(喉音) ㅇ은 물(水)이요 하늘(天)이므로 바깥둘레의 하늘 둥긂(天圓)을 나타낸다. 어금니소리(牙音) ㄱ은 ‘물 나니 나무(水生木)’이므로 그다음에 있다. 혓소리(舌音) ㄴ은 ‘나무 나니 불(木生火)’이므로 그다음이다. 입술소리(脣音) ㅁ은 ‘불 나니 흙(火生土)’이므로 ㄱ과 ㄴ 다음에 한 덩이(合體)로 있다. 넷 땅 쪽(地方)을 뜻한다. 넷 땅 쪽(地方)은 ‘땅이 모나다’는 뜻이. 잇소리(齒音) ㅅ은 ‘흙 나니 쇠(土生金)’라 그다음이다. 쇠(金)면서 사람이므로 머리를 하늘(天)에 두고 발을 땅(地)에 둔 꼴이다. 사람 세웃(人立)을 보여준다. 위 그림은 ㄱ과 ㄴ이 합하여 ㅁ을 이루고 있으므로, 다섯 바탕소리(五音) ‘ㄱㄴㅁㅅㅇ’이 줄어 ‘ㅁㅅㅇ’으로 되었다. 셋 다섯으로 섞어 모이는(三五錯綜) 바탕 올을 볼 수 있다. 삼오착종(三五錯綜)은 해숨갈(周易)에 딸린 말(繫辭)에 “삼오(參伍)로써 변하여 그 수효를 착종한다.”는 말에서 가져다 쓴 것이다.
첫소리 셋을 세워 그린 그림(立體圖)은 아래와 같다.
뜻을 풀어 옮긴다. ㅇ은 사람의 머리 꼴이다. 하늘 둥긂이다(天圓). 하늘이 땅을 동그랗게 둘러싸니(圓環) 그림자이고, 그 속에 ‘검밝(神明)’이 모여 있음을 보여준다. ㅁ은 사람의 몸꼴이다, 넷 땅 쪽을 가리킨다(地方:地平). 땅이 하늘을 싣고 쪽을 바로 하니 몸통이다. 그 속에 ‘올김(理氣)’이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네 쪽 바름(方正)은 새갈마노(東西南北)가 다 바르다는 뜻이다. 동서남북의 우리말은 새갈마노이다. 샛바람, 갈바람, 마파람, 높바람의 앞 글자이다. ㅅ은 두 다리 꼴이다. 사람 세웃이다(人立). 하늘땅 가운데에서 위로는 하늘의 때를 바로하고, 아래로는 물과 흙을 받는다. 하늘․땅․사람으로 세 으뜸(三才)을 맡아 두 다리로 디뎠으니 사람에게 길(道)이 있음을 보여준다. 어린아이의 모습 같고, 텔레비전 전파수상기를 닮았다. 여기에서도 셋 다섯으로 섞어 모이는(三五錯綜) 바탕 올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훈민정음』의 바탕소리 얼개와 뜻을 살펴보았다. 세종이 해례본에 밝힌 ‘해숨’(易)의 뜻에 다석이 새로 심은 바탕소리 뜻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면 이제부터 바탕소리 다섯 개의 뜻을 살펴보자. 여기서부터가 다석 한글철학의 가온꼭지(核心)이다. 앞에 풀어놓은 말들을 잘 생각하면서 뒤로 열리는 한글 닿소리 홀소리의 뜻을 잘 알아차려야 한다.
ㄱ : 기윽․기역
첫소리 초성(初聲)을 끝소리 종성(終聲)에도 똑같이 쓰기 때문에 ‘기역’보다는 ‘기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다. ‘디귿’도 ‘디읃’이 맞고, ‘시옷’도 ‘시읏’이라고 써야 정확하다. 다석은 ‘기윽․기역’을 둘 다 썼다. 이 글에서는 ‘기윽’으로만 쓰겠다. 다석과 학산은 ‘기윽’을 이렇게 보았다.
‘기윽’은 하늘이 땅 그리워 내리는 ⬎ 꼴로 ‘ㄱ’이다.
『다석어록』에서 다석은 ‘기윽’을 ‘하늘에서 온 얼’이라 했다. ‘가온찍기’를 풀어 말할 때는 “기윽은 니은을 그리고 니은은 기윽을 높인다.”라고 풀었다. ‘기윽은 니은을 그리고’는 ‘하늘이 땅을 그리워 내린다.’라는 뜻이다. ‘니은은 기윽을 높인다.’는 ‘땅이 하늘을 높이어 그린다.’는 뜻이다. 하늘이 땅 그리워 내려오고, 땅이 하늘을 높이어 그리워하며 오르는 기윽과 니은. 이렇게 기윽니은이 한 꼴로 내리오르며 돌아가는 소용돌이 태극(太極)의 한 가운데를 콕 찍는 것이 다석이 말하는 ‘가온찍기’이다. 가온찍기가 되어야 ‘가온찌기’로 ‘늘’(常)을 탈 수 있다. 찍어야 지키는 ‘지기’가 되는 셈이다.
학산도 『훈민정음의 구조원리-그 역학적 연구』에 말하기를 ‘기윽’은 무엇인가 위에서 똑바로 드리워 내려보내는 것 같다고 했고, 하늘에서 생명의 씨가 땅에 내려오매 이것은 똑바로 드리워진 사람으로 건괘(乾卦)의 네 가지 덕(德) 가운데 으뜸(元)을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말에 갸륵(奇異), 거룩(聖․偉), 검(神), 곧다(直), 굳다(固)… 등이 모두 기윽 ‘ㄱ’으로 시작하는 것은 재미있다고 썼다.
다석 류영모는 1956년에 이런 말을 했다. 『다석어록』에서 가져온 것이다.
“기윽(ㄱ)은 니은(ㄴ)을 그리고, 니은(ㄴ)은 기윽(ㄱ)을 높이는데 그 가운데 한 점을 찍는다. 가온찍기란 영원히 가고 가고 영원히 오고 오는 그 한복판을 탁 찍는 것이다.”
“기윽(ㄱ)은 하늘에서 온 얼인데 그 얼이 땅에 부딪혀 생긴 것이 사람이다.”
‘기윽’의 글꼴은 위로 쌓아 올리고 옆으로 더해서 센소리와 된소리를 만들었다. ‘기윽’보다 앞선 글씨는 ‘꼭지이응’이라고 불리는 옛이응이다. 다석은 옛이응을 참나(眞我)의 씨알로 보았다. 도대체 왜 그는 옛이응을 참나의 씨알로 보았을까?
- 우리말 풀기-
누리 : 세상(世上)
베낌본 : 영인본(影印本)
해숨갈 : 역학(易學). 역(易)은 우리말로 해(日)가 숨 쉬는 꼴이다. 하여 ‘해숨’이라 했고, 학(學)의 우리말은 ‘갈’이다.
몬꼴 : 사물(事物). ‘몬’은 몬지/먼지의 몬이다. 티끌이다. 물(物)이 곧 ‘몬’이다. 사물은 물건이기도 해서 ‘몬골’이라 했다.
움쑥불쑥 : 다석 류영모는 “움숙 고요한데 불숙 움직인다”는 말로 음정양동(陰靜陽動)을 풀었다.
검밝 : 신명(神明). 우리말 ‘검’은 신(神)이요, ‘밝’은 명(明)이다.
가온꼭지 : ‘가온’은 가고 오는 가운데 중(中)이다. 그 가운데의 꼭지가 핵심(核心)이다. 중핵(中核)이라고도 한다.
바탕소리 : 한글 닿소리 기본은(基本音)을 말한다.
다섯 숨길 : 오행(五行)을 우리말로 풀었다.
다섯 가락 : 오성(五聲)을 우리말로 풀었다.
다섯 소리 : 오음(五音)을 우리말로 풀었다.
다섯 길올 : 오상(五常)을 우리말로 풀었다. ‘길올’은 도리(道理)를 뜻한다.
네 녘 : 동서남북(東西南北)이다. 우리말로는 새녘, 갈녘, 마녘, 노녘. 샛바람, 갈바람, 마파람, 높바람의 말머리가 ‘녘’을 뜻한다. 그래서 ‘새갈마노’라고 한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누리집 : https://sillok.history.go.kr
류영모 말씀, 박영호 엮음, 『씨의 메아리 다석어록: 죽음에 생명을 절망에 희망을』, 홍익재, 1993
박영호 엮음, 『다석 류영모 어록: 다석이 남긴 참과 지혜의 말씀』, 두레, 2002
박영호 엮음, 류영모 글, 『다석 류영모 어록: 제나에서 얼나로』, 올리브나무, 2019
이정호 지음, 『훈민정음의 구조원리-그 역학적 연구』, 아세아문화사,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