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의 정치 새판] 150명 미니국민의회가 '과락' 판단케 하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는 이미 평가가 나 있는 상태다. 국내 여론조사기관들이 거의 매주 대통령지지율과 주요 정책 찬반조사 결과를 내보내고 있고 22개 국 지도자들의 지지율 조사결과도 매주 나온다. 국내 조사기관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8개월 넘게 30% 박스권에서 맴돌았다. 반면 국제 비교조사결과에 따르면 윤대통령 지지율은 20%대 초반부에서 맴돌았다. 국내 조사결과가 맞더라도 부정평가가 긍정평가의 1.5배~2배에 달한다. 만약 우리헌법에 대통령 국민소환제도가 마련돼 있다면 벌써 불신임당해 자리에서 쫓겨났을 수준인 것이다.

대통령 국민소환제 있었다면 이미 쫓겨났을 것

이 정도 낮은 지지율이 집권 첫해에 8개월째 계속되고 있다면 윤대통령이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해야 정상이다. 대선 때 찍어준 지지자의 1/3이 벌써부터 실망을 거듭해서 등을 돌렸다는 뜻이고 뭔가 본인에게 바로잡아야 할 잘못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잘못 인정이나 정책 수정, 자세 교정이 없이 그대로다. 내가 보기에 정치입문 1년 만에 ‘눈 떠보니 대통령’이 된 전대미문의 성공신화로 자아도취가 심하고 검찰조직에 평생 몸담으며 권력중독이 체질화된 윤대통령이 궤도수정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25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 2023.3.25 사진 제공 이 호 작가
25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 2023.3.25 사진 제공 이 호 작가

집권한 지 1년도 안 지났지만 윤 대통령에게서 좋은 점을 발견하지 못한 나는 마치 몇 년이 지난 것 같은 피로감이 쌓여 있다. 지금 같은 꼴을 앞으로도 4년 넘게 볼 생각을 하면 나라걱정으로 잠이 안 올 지경이다. 어렵게 쌓아올린 민족, 민주, 민생의 '3민 전선'이 뒷걸음질치며 무너지고 있다. 준비되지 않고 체계가 없는 무능, 무책임, 무치한 3무 정권의 정책실패가 날로 쌓인다. 국가와 사회 요소요소에서 검찰 등 권력기관을 앞세운 권력정치가 다시 활개를 치고 개혁의제를 앞세운 개혁정치는 약에 쓸래도 찾아볼 길이 없다.

과거방식으로 말하자면 윤 대통령은 암군이자 폭군으로 방벌대상이고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리콜 대상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시민들은 벌써부터 광장으로 나가서 촛불을 들고 윤석열 아웃, 윤석열 퇴진, 윤석열 타도 순으로 구호강도를 높여왔다. 집권 첫해의 대통령 행태가 하나에서 열까지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서 촛불광장이 퇴진과 타도 요구로 타오르게 한 것은 윤석열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을 둘러싸고 정치양극화가 심해진다. 윤 대통령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낙으로 앞으로 4년을 더 살 수는 없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대통령 비난 조롱하며 4년을 더 살 수는 없다 

대통령 탄핵은 국힘당이 탄핵저지선(100석)을 훌쩍 넘는 115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힘당의 반윤세력이 분당해서 탄핵에 찬성하지 않는 이상 구호 이상이 될 수 없다. 대통령국민소환제는 아직 우리 헌법에 없어서 꿈속의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상 국민투표도 대통령만 회부할 수 있어서 논외다. 남는 압력수단은 촛불집회와 여론조사밖에 없다. 2016년 겨울처럼 촛불집회에 100만 넘게 운집해서 윤석열 아웃을 외치면 국힘당이 움찔하며 생존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치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지 않은 이상 여론조사결과 지지율이 20%대로 다시 떨어지고 심지어 10%대로 곤두박질쳐도 대통령이 버티면 그만이다.

여론조사보다 확실하게 국민의사를 확인해서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할 방법이 없을까? 하나 있긴 하다. 윤대통령의 집권1년 평가 및 진퇴문제를 숙의해서 권고할 추첨시민의회를 구성, 운영해보는 것이 그것이다. 첫째, 인구학적으로 국민을 빼닮은 ‘미니 국민’ 150명을 추첨으로 추려내서 시민의회를 구성한다. 비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집단적 숙의를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미니국민의 적정규모는 150명 정도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성별, 연령대별, 거주지역별, 교육수준별, 소득층위별, 정치성향별로 국민의 인구학적 축소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추첨에 의한 미니국민은 선거의회보다 더 확실하게 모든 국민을 민주적으로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상이한 관점과 입장을 가진 다양한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시민의원들에게 윤석열 집권 1년 평가에 필요한 집단학습과 숙의과정을 제공한다. 학습숙의과정을 최소한 30시간 넘게 진행한다. 결과적으로 시민의회의 미니국민들은 집권 1년 평가에 요구되는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개별적으로 갖게 된다. 집단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인지다양성과 집단지성을 발휘하게 된다. 시민의회는 즉흥적인 개인선호를 드러내는 여론조사와 달리 집단지성 안에서 숙고를 거친 사회적 합의를 드러낸다. 시민의회는 그를 바탕으로 윤 대통령의 집권1년에 대한 진단과 평가, 권고를 작성, 공표한다.

 

2017년 10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원전 건설' 공론화 결과를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 공론화위는 '원전을 축소하는 쪽으로 에너지 정책결정을 권고하되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건설은 재개하라'는 결론을 냈다. 2017.10.20 연합뉴스
2017년 10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원전 건설' 공론화 결과를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 공론화위는 '원전을 축소하는 쪽으로 에너지 정책결정을 권고하되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건설은 재개하라'는 결론을 냈다. 2017.10.20 연합뉴스

시민의회의 숙의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먼저 윤 대통령을 옹호해줄 전문가 3~4인을 국힘당에서 추천받고 비판해줄 전문가도 야권에서 동수 추천받을 것이다. 다양한 관점과 진단, 처방을 가진 전문가들이 150인 시민의원들 앞에서 직접 상이한 입장과 논거를 발표하며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할 것이다. 150인 시민의원들은 상이한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윤 대통령의 정치행태와 정책실천을 최소한 30시간 이상 학습, 숙의해서 권고안을 작성할 것이다. 학습숙의 시간이 더 많으면 바람직하겠지만 30시간도 적은 건 아니다. 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만큼 늘리면 된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숙의민주주의의 도구

대통령 집권 1년 평가 시민의회는 대통령이나 국회가 조직과 운영을 의뢰하고 돈을 대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윤석열 정부가 집권 1년 평가 시민의회를 소집할 리는 만무하다. 국힘당이 반대할 게 뻔해서 국회가 시민의회 운영을 결의하기도 어렵다. 결국 시민사회가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예산이 없다. 절반은 온라인회의로 운영해서 대폭 비용을 줄여도 150인 시민의회는 최소한 2억 원은 있어야 기본으로 돌아간다. 뜻있는 사람들이 종자돈을 모으는 성의를 보이고 그 바탕 위에서 일반대중에게 십시일반 모금하면 된다.

시민의회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숙의민주주의의 도구이다.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미니국민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치성향으로는 당연히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찍은 유권자가 49%를 차지하고 이재명 후보를 찍은 유권자가 48%, 심상정 후보를 찍은 유권자가 2% 들어올 것이다. 숙의과정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전문가들도 국힘당과 민주당에 의뢰해서 절반씩 추천받고 학습자료나 발표자료, 답변자료도 정치성향별 전문가그룹이 정확성, 객관성, 균형성을 상호 체크하고 제3독립전문가그룹의 더블체크를 거칠 것이다. 또한 시민의원의 신원보호를 위해 원탁토론과정을 제외할 뿐 나머지 진행과정은 100% 투명하게 온라인과 동영상으로 공개함으로써 공신력을 확보할 것이다.

나는 추첨시민의회에 모인 일반시민들의 집단지성과 책임감을 신뢰한다. 대표성과 숙의성, 중립성을 갖춘 믿을 만한 시민의회가 만들어내는 최종권고안은 당해 사안에 대해 일반시민이 도달가능한 집단지성의 최대근사치이자 ‘깨어 있는 국민의사’의 최대근사치로 존중받아 마땅할 것이다. 실은 그 권고안이 어느 쪽에 유리할지는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시민의회의 권고안은 이념적 정합성이나 이론적 엄격성을 높이 사지 않고 진영논리나 당파성에 얽매이지 않을 게 분명하다. 전문가의 서생적 진단과 처방을 일반시민의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녹여서 매우 근본적이고 실용적이며 지혜로운 권고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국민의 축소판인 150인 시민의원들이 집단학습과 토론을 통해 각자의 이념성향과 지지정당의 단층선을 얼마나 극복하고 넘나들며 어느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지, 어떤 진단과 처방을 권고안에 담아낼지 참으로 궁금하다. 윤 대통령의 지난1년을 샅샅이 공부하고 검증할 시민의회가 이제 그만 물러나라고 할지, 조건부 유예기간을 줄지, 어떤 조건들을 붙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사직이나 탄핵을 권고할지는 알 수 없어도 과락점수를 줄 건 틀림없을 것이다. 민주적 대표성을 갖는 미니국민 시민의회가 누가 봐도 설득력 있는 논거를 달아서 윤석열 정권의 발본쇄신과 환골탈태를 요구하면 그 또한 무시하기 어려운 경고와 경계가 되지 않겠는가. 힘없는 여론조사와 촛불광장의 함성 사이에서 한 줄기 희망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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