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의 정치 새판] '이재명다운' 선택 보여달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된 지 무려 8개월이 지났는데도 민주당이 선거구제 개혁에 대해 당론을 정하지 못한 채 관망 중이다. 국힘당도 다르지 않지만 국힘당은 선거구제 개편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렇지 않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 여러 차례 다당제 정치개혁을 공개 표명했었다. 다당제 정치개혁 제안은 대선을 간신히 일주일 앞두고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에게 던진 그의 마지막 승부수였다. 당시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정치개혁 제안을 임시전당대회까지 열어서 뒷받침했었다. 그런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막상 국회의장이 각 당에게 요구한 개편안 제출시한(2월 말)이 한참 지난 오늘(3월 22일)까지도 당론 안을 제출하지 못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직까지 민주당의 공식기구에서, 이를테면 의원총회나 최고위원회, 정책위 차원에서 공식논의가 진행된 바도 없다. 정치도의로 보나 선거전략으로 보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개혁, 이 대표의 대선 승부수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물론 당내 여러 의견이 있을 게다. 그건 당연하다. 문제는 여러 의견을 하나로 녹이는 공식작업이 없다는 데 있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석을 무려 163석이나 획득했다. 지역구 의원 입장에선 본인이 애써 일궈놓은 지역구가 안 바뀌는 게 제일 좋다. 어떤 선거구제 개편안이 나오든 민주당의원 각자는 내년 총선에서 유불리를 놓고 복잡한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 스타성을 획득하지 못한 대부분의 지역구 의원에게는 당 지지율이 가장 중요한 당선요인이다. 사법리스크를 강조하며 이재명 대표를 흔들어대는 민주당 의원들이 걱정하는 것도 당 지지율이다. 방탄국회가 계속되는 이상 이 대표로는 민주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 다음 총선에서 본인의 재선 전망이 흔들릴 것으로 예측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도 내년 총선에서 선거구제를 바꿔서 비례성을 강화할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의석을 바랄 수 있을지, 최소한 과반수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을 게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과 국힘당의 당 지지율 차이가 10%p 이상 나기도 어렵기 때문에 정당 지지율에 비례해서 의석을 나눌 경우 지금 같은 의석 격차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당지지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을 강화하면 강화할수록 민주당이 다음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다. 이 사실을 잘 말해주는 것이 2020년 총선결과다. 당시 민주당은 명목상 정당득표율(34.4%)에서 국힘당(34.8%)에 오히려 0.4% 밀렸고 열린민주당 몫(5.4%)까지 쳐줘도 5%를 앞섰을 뿐이다. 그럼에도 21대 국회는 1988년 이후 9차례의 총선 중 불비례성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서 양당 의석수가 180석(60%) 대 103석(34.3%)으로 큰 차이가 났다. 민주당 의원의 출당과 탈당이 이어져서 지금은 169석(56.5%) 대 115석(38.5%)로 불비례성이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몹시 큰 불비례성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출범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2023.1.30.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출범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2023.1.30. 연합뉴스

이 수치가 민주당 지도부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를 알려준다.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을 강화시킬 경우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 의석수가 줄어들 확률이 90%가 넘는다. 만약 국힘당보다 민주당이 지지율에서 밀리는 날에는 민주당은 과반수의석은 고사하고 제2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야당이 제2당이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120석 넘게만 갖고 있어도 국회에서 야당으로서 비판과 견제 역할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표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될 경우 선거 패배 및 의석 감소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기 때문에 아주 불편한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재명대표가 처한 딜레마의 핵심일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어려움을 십분 이해해도 여기서 정치개혁의 길을 머뭇거리는 것은 조금도 이재명답지 않다. 어려울수록 원칙과 정도로 돌아가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지지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을 높이는 것만큼 근본적인 정치개혁이 어디 있겠는가.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 개혁은 사표를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뿐 아니라 각 당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하게 그의 의석 몫을 배분하는 가장 정의로운 방법이다. 소선거구제에 내재한 지독한 불비례성은 지난 2020년 총선으로 끝내자고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 과감하게 기득권을 포기하며 정치개혁의 기선과 주도권을 잡아야 이재명 대표답다. 여기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과감한 기득권 포기로 개혁 주도권 잡아라

아직까지 국회에서 어떻게 진행할 지는 정해진 게 없다. 다만 민주당과 국힘당의 숙제 미제출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 자문위가 3개의 안을 내놓았기 때문에 김진표 국회의장은 오는 27일부터 전원위원회를 소집해서 공식 논의를 시작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과연 그렇게 될 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양당의 공식 안이 없는 상황에서 양당이 국회의장의 일방적 일정 제시를 순순히 따를 것 같지 않다. 특히 3개의 안 중 2개는 비례대표 50명 증원을 전제하는 안으로 알려졌다.

이미 국힘당의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가 의원 정수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도 없이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에 2개 안은 정개특위나 전원위의 논의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 나머지 1개 안은 도시에선 중대선거구제를 하되 이미 3, 4개 군을 통합선거구로 치르는 농촌에선 소선거구제를 유지하자는 이른바 도농복합안이라고 한다. 이 안에 대해서는 이미 최악의 어정쩡한 안이라는 게 중평이어서 논의할 가치가 있을 지 의문이다. 설령 국회의장이 원하는 대로 27일부터 전원위원회를 돌리더라도 논의할 안건부터 마땅치 않은 상황인 셈이다. 거대 양당이 각 당의 공식 안을 제출할 때까지 전원위원회를 열겠다는 국회의장의 일정이 으름장과 독촉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서 나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다음 사항을 사즉생의 각오로 해줄 것을 주문한다.

첫째, 지금의 민주당이 보여주는 것처럼, 의석 점유 비율에 근접하거나 그보다 높은 당지지율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의석수는 정치세계에서 별다른 쓸모가 없는 허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절대과반수 국회의석을 처음으로 가져본 민주당이 개혁입법권, 국정조사권, 해임건의권, 판검사 탄핵권 등 수다한 국회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당 지지율이 낮은 상태에서 의석수만 믿고 국회 권한을 행사했다가는 입법독주 프레임에 걸려 혹시 모를 후폭풍과 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아닌가. 민주당이건 국힘당이건 어느 당이건 이제 행여 당면 선거에서 불비례성 덕을 볼 생각일랑 아예 접고 터무니없는 불비례성과 사표를 바로잡자. 이제 당당한 선진국이 아닌가.

다시 강조하지만 어느 당이든 딱 그 당의 지지율만큼만, 실력만큼만 의석수를 가져야 한다는 대원칙에 찬성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따지고 들면 국힘이야말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2018년 광역의회선거에서 국힘당은 정당지지율이나 지역구 득표율에서 몇% 차이가 나지 않았음에도 서울, 경기, 인천에서 10%도 안 되는 의석을 확보했을 뿐 나머지 90%이상 의석을 민주당에 가져다 바쳤다. 2020년 총선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국힘당은 서울, 경기, 인천에서 15% 안팎의 국회의석을 차지했을 뿐 나머지 85% 안팎의 국회의석을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이것이 어떻게 민심을 반영하는 선거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 무슨 선거정의와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가.

정치적 사명 완수할 때 큰 기회 따른다

이처럼 정당지지율과 의석수의 불비례성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국힘당이었다. 2018년 광역의회 선거와 2020년 총선에서 이렇듯 된통 당한 국힘당이 무슨 이유로 이 사실에 눈을 감고 비례성 강화에 한사코 반대하며 소선거구제를 고집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18년 광역의회 선거 결과와 2020년 총선 결과로 소선거구제는 더 이상 타락할 수 없는 바닥을 보인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국힘당도 과감하게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로 입장을 바꿔야 한다. 이런 제도 아래서는 모든 당이 민심의 지지를 받은 그만큼만 의석을 갖게 되기 때문에 어느 당도 선거결과에 억울할 일이 없다. 나는 이재명 대표가 민심 그대로를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본인의 역사적, 정치적 사명이자 기회로 받아들이고 그 사명을 완수할 때 큰 기회가 따를 것으로 믿는다.

둘째, 나는 이재명 대표가 일반시민의 집단지성을 믿고 선거제 개편안을 추첨시민의회에 맡기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상식과 원칙에 충실한 개혁정치인의 면모와 배포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개혁안은 국회의원과 정당이 엄연히 이해당사자성을 갖기 때문에 국회와 국회의원에게 맡기는 것은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전형적인 이해충돌 사안에서는 추첨으로 ‘미니 국민’을 선발해서 시민의회를 구성한 후 집단학습과 숙의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로 국민 눈높이 처방을 제시하도록 하고 그것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

물론 시민의회에는 최고 수준의 다양한 입장을 가진 전문가를 붙여서 집단학습과 토론을 지원해야 한다. 이렇게 시민대표성과 숙의성을 확보한 추첨시민의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늘 강조했던 서생(전문가)의 문제의식과 상인(일반시민)의 현실감각을 조화시킬 수 있는 숙의민주주의의 총아라고 할 수 있다. 선거제도, 기타 정치개혁은 선거에 의한 엘리트 의회를 대신해서 추첨에 의한 시민의회를 시범실시하기에 가장 좋은 주제다. 나는 이재명 대표가 시민의회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혁신을 위해서도 파이어니어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셋째, 나는 이재명 대표가 이번에는 신속하게 위성정당 금지 조항을 신설해서 어느 정당도 다시 위성정당 술수를 쓰지 못하도록 봉쇄하고 2024년 총선은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적용해서 치르겠다고 선언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20대 국회 후반기 때 민주당은 야3당을 다 묶어서 패스트트랙까지 태우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었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당시 미래통합당의 편법적 위성정당 설립과 민주당의 방어용 위성정당 설립으로 완전히 무력화된 바 있다. 이재명 대표가 최소한으로 해야 할 일은 하루바삐 위성정당 금지조항을 신설함으로써 현행 연동형 비레대표제를 살려내고 2024년 총선을 현행법으로 치르겠다고 선언하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 이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 이미 소선거구제를 나름 극복하는 방안을 법제화까지 해놓았으니 한번이라도 시행해보고 필요하면 고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소선거구제 지상주의를 뒤로해야 한다는 것이고 현행법을 살리는 것이 제일 쉽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표에게도 제일 리스크가 적고 약속을 이행하기 좋은 방안이다. 내가 보기에 민주당이 제일 잘못한 일의 하나가 지금까지 위성정당금지 조항을 만들지 않은 점이다. 단언하건대 위성정당 금지 조항의 허점을 파고들어 국힘당이 또 위성정당을 만들 것이라는 기우는 내려놓아도 된다. 이번에도 또 그랬다가는 정말이지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가 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첫째, 위성정당 금지 조항을 신설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살려냄으로써 그에 맞춰 2024년 총선을 치르는 것이 쓸데없는 정치적 시간과 자원의 소모적 낭비를 막으면서도 소선거구제의 불비례성을 다소나마 억제하고 다당제를 향해 문을 여는 가장 손쉽고도 확실한 방안이라고 판단해서 이 길을 가기를 희망한다. 물론 현재 나와 있는 개방형 정당명부에 의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몇 가지 대안을 현행 연동형 선거제도와 비교하며 본격적인 선거법 개정에 들어가기로 여야가 합의한다면 그것을 막을 이유는 없겠다.

둘째, 이재명 대표가 정치개혁입법에서 국회(의원)의 이해당사자성과 셀프 입법성을 인정하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해서 미니국민으로 구성된 추첨시민의회에 정치개혁안 권고를 의뢰하겠다고 선언하고 필요한 여야 합의를 이뤄내기를 바란다. 여야 합의가 안 되면 민주당이 전문기구에 의뢰해서라도 정치개혁 시민의회를 운영하고, 깨어 있는 국민의 집단지성이 만들어낼 사회적 합의 수준의 정치개혁안을 제출받기를 촉구한다. 21대 국회에서 그 권고안을 입법으로 결실 맺을지는 상황논리에 따르더라도 우리사회가 일단 제대로 된 시민의회의 종합적인 정치개혁 권고안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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