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중요”

정부 공식 대외전략 문서에 처음 등장, 파장 예고

‘대만해협 유사시 한국 적극 개입’으로 해석될 위험

“중, 주요 협력국” vs “일,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

보고서에 전략적 이해 충돌, 이율배반 사례 상당수

 

박진 외교장관이 28일 외교부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인태전략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2022.12.28. 연합뉴스
박진 외교장관이 28일 외교부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인태전략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2022.12.28. 연합뉴스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28일 발표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담은 ‘자유·평화·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 최종 보고서에서 인·태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있어 대만 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명시했다.

이런 언급은 대만 해협에 군사 분쟁이 발생해 평화와 안정이 깨지면, 그것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깨고 한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시도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특히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만일 군사적으로 충돌한다면 대만 해협이 1순위가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런 언급은 윤 정부가 대만 해협 유사시 한국의 적극적인 개입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오해받을 위험성이 적지 않다.

정부의 공식적인 대외전략 문서에 중국이 가장 예민해 하는 대만 문제를 한반도 문제와 ‘직결’시킨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양 정상은 인·태 지역 안보 및 번영의 핵심 요소로서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만 되어 있다.

지난달 13일 프놈펜 한·미·일 정상 공동성명에도 세 정상은 “대만 관련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 요소로서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윤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 제공.]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 제공.]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선 “주요 해상 교통로인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며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말해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런 말들은 미국이 중국을 압박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보고서는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듯 한국판 인·태 전략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배제’를 겨냥한 게 아니라고 밝혔다. 협력원칙으로 포용·신뢰·호혜를 내세운 뒤 “우리의 인·태 비전은 특정 국가를 겨냥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포용적인 구상”이라고 해명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주요 협력국” 정도로 전략적 의미를 낮췄고, 총 33쪽에 걸친 보고서 전체적으로 중국과의 관계 자체를 별로 거론하지 않았다. 일본을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로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역내 국가 간 협력과 연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평가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보고서 뒷부분에서 “한·미·일 협력과 한·일·중 협력을 조화롭게 발전시켜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겠다”고 했지만, 중국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란 인상을 주었다.

이날 중국 외교부는 공식으로는 배타적 소그룹에 반대해야 한다면서도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국의 역할에 기대를 표명했으나, 앞으로는 한중 관계가 점차 더 냉랭해질 공산이 커 보인다.

 

북한 김정은, 제6차 전원회의서 보고 2022.12.28.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제6차 전원회의서 보고 2022.12.28. 연합뉴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 보고서는 “북한의 개발 의지보다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더 강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며 “인·태 지역 국가들의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이행을 강화하고 북한의 역내 제재 회피 활동을 차단하는 국제협력을 증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어 “북한과 대화의 문을 계속 열어두면서 ‘담대한 구상’을 바탕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일 3자 협력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한다”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 뿐 아니라, 공급망 불안정, 사이버 안보, 기후변화, 국제보건 위기와 같은 새롭게 제기되는 지역 및 글로벌 문제의 해결에도 유용한 협력 기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한민국은 인도-태평양 국가이다’로 시작되는 보고서는 △ 추진 배경: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 인도·태평양 전략의 비전, 협력원칙 및 지역적 범위 △ 9가지 중점 추진과제 등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대한민국을 ‘평화를 지향하는 개방형 통상국가’ ‘역내외 국가 간 협력 논의를 주도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자유·평화·번영을 3대 비전으로, 포용·신뢰·호혜를 3대 협력원칙으로 내세웠다. 인·태 전략의 지역적 범위로는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동남아,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인도양 연안 아프리카 등을 포함하고, 유럽과 중남미 지역은 인·태 전략의 주요 협력 파트너로 삼겠다고 했다.

9개 중점 추진 과제는 △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인·태 지역 질서 구축 △ 법치주의와 인권 증진 협력 △ 비확산·대테러 협력 강화 △ 포괄안보 협력 확대 △ 경제안보 네트워크 확충 △ 첨단 과학기술 분야 협력 강화 및 역내 디지털 격차 해소 기여 △ 기후변화·에너지 안보 관련 역내 협력 주도 △ 맞춤형 개발 협력 파트너십 증진을 통한 적극적 기여 외교 △ 상호 이해와 교류 증진 등이다.

대통령실은 관계 부처들이 9개 중점 추진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이행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 · 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인도 · 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보고서를 살펴보면 전략적 이해 충돌이나 이율배반 사례들이 발견된다.

우선, 미국 주도의 보호주의 블록에 가담하면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대목이 그렇다.

보고서는 “배타적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공급망의 분절 등 세계화 거버넌스의 쇠퇴도 목도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국은 “개방적 자유무역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경제 문제가 과도하게 안보화되지 않도록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배타적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공급망 분절 등 ‘경제 안보화’의 대표적 사례가 윤 정부가 적극적으로 동참한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이다. 미국 주도의 IPEF는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의 동맹국 등과 교역망과 공급망을 갖추는 ‘경제·기술 안보동맹’이다.

특히 IPEF는 인플레감축법(IRA)에서 확인됐듯이 동맹국에까지 시장 접근을 불허하는 미 국익 최우선의 보호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주도의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과 다자 무역협정인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관련 논의에도 참여해 자유무역 증진과 보호주의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미국의 중국 배제 의지가 강해 윤 정부의 뜻대로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역내의 군비경쟁 과열을 지적하고, 우발적 군사 충돌 방지와 역내 위기관리 체제를 만들기 위한 다자협의를 주장하면서도, 당장 시급한 남북 군 당국 간 비상 소통 채널 복원 문제나 최근 일본의 공격적 군비 증강 움직임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보고서에서 윤 정부는 ”화석연료와 같은 전통적 에너지 자원은 전략 무기화 추세에 있는 만큼 청정에너지 전환을 통한 에너지 공급의 안정화가 시급하다“며 탈탄소화를 향한 청정에너지 확대, 수소경제 발전, ”가장 강력한 고효율 청정에너지“인 원자력 발전에 진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국내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전임 문재인 정부 목표인 30.2%에서 21.5%로 낮추는 내용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8월 30일)을 발표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민주주의 화상 정상회의 개막 연설하는 바이든. 2021.12.10 연합뉴스
민주주의 화상 정상회의 개막 연설하는 바이든. 2021.12.10 연합뉴스

보고서에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을 자부하는 표현들로 넘쳤다.

예를 들면,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성취했다는 점을 강조하는가 하면, ”투쟁과 희생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지켜왔다“고도 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개도국에 “경제성장, 민주화 등 우리의 성공 경험을 공유하겠다”고 과시하는 대목도 있었다.

윤 정부 출범이후 지난 7개월여 기간에 진행된 전 정권 인사와 야당 대표 등을 겨냥한 과도한 수사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들에 대한 재갈 물리기 등 한국의 민주주의의 급속한 퇴행 현상을 보면 이율배반이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보고서가 일부 권위주의 나라를 겨냥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자유, 법치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가 도전받고 있다”고 한 비판은 윤 정부가 스스로에게 던진 화두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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