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의 한글철학 ⑲] 너나 없 비롯, 하나둘셋

2025-10-06     김종길 다석연구자

세상에 머물러 묵는(住)다는 것은 실상은 몸둥이만 묵는 것이지 참나가 묵는 것이 아니다. 묵(住)는 것은 묶(束)이는 것이다. 몸이 묶이지 참나는 자유다. 참나에는 묵는다는 것은 없다. 상대적 존재인 몸이 묵지 절대 존재인 참나는 묵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응당히 묵지 않는 얼나로 살아야 한다(應無所住以生其心).
- 다석어록에서

므름 브름 프름

다석 류영모는 일흔넷에 순한글로 「천부경(天符經)」의 말을 터서 일흔아홉에 마쳤다. 이토록 오랫동안 물음을 불리고 있었던 말줄이 있었을까? 아마도 꿍꿍(想像)하는 내내 생각 불꽃에 얼의 글월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리라. 그이는 스스로 ‘물․불․풀∞밀․믿․밑’의 무늬를 직접 드러내어 ‘짓됨’(變化)의 본보기를 이 「천부경」으로 밝힌다. 끊임없이 달라지고 뒤바뀌는 ‘짓됨’의 산 꼴이랄까!

산 꼴을 내고 낳는 꿍꿍하기는 ‘물․불․풀∞밀․믿․밑’에 있다. ‘물․불․풀∞밀․믿․밑’에서 ‘물․불․풀’은 물음․불음․풀음이요(그이는 입술 말로 므름 브름 프름이라고 했다), ‘밀․믿․밑’은 밀음․믿음․밑음이다. ‘물․불․풀’과 ‘밀․믿․밑’ 사이에 ‘∞’을 넣은 까닭은 사방팔방(四方八方)의 고루 두루에 시방(十方)이 위아래로 뻥 뚫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음은 불려야 풀린다. 밀면 믿어지고 믿어지면 밑을 터야 새로워진다. 물음은 늘 불리고 있어야 어느 순간 말머리(話頭)가 우뚝하고, 믿음은 늘 밀어붙여야 새 믿음(信)이 난다.

우뚝 깨져야 끝내 풀리고, 믿음이 난 자리를 밑터야 다 열린다.

말머리 깨지는 새(間)가 깨달음이다. 한 박에 깨야 끝끝내 깨진다. 깨지고 나면 새가 없다. 오롯한 ‘새없’(無間)의 하나가 ‘늘’(常)로 따라붙어서 타고 간다. 밀어서 믿어질 때 밑(底)을 터야 솟는다. 한 박에 터야 끝끝내 솟는다. 솟아나면 위아래가 없다. 오롯한 ‘맨웋’(無極)의 하나가 늘로 돌아가면서 타고 간다. ‘오! 늘’을 타고 가는 이는 새 없는 이다. 무엇을 할 새가 없으니, 그저 늘을 타고 갈 뿐이다.

 

그림1) 박영호 글, 다석 류영모 명상록-진리와 참 나, 두레, 2000

딱 들어맞는 맞쪽, 천부경

다석은 빼어난 한글철학으로 「천부경」을 풀어 밝혔다. 제소리로 밝힌 우리말 한글 「천부경」은 참으로 웅숭깊다. 그이는 ‘천부경’(天符經)을 “ᄒᆞᆫᄋᆞᆯ 댛일쪽 실줄”이라 하였다. ‘ᄒᆞᆫᄋᆞᆯ’은 온통의 우주 하늘(天)이요, ‘댛일쪽’은 오롯이 들어맞는 맞춤의 믿음(符信)이요, ‘실줄’은 땅하늘을 하나로 잇는 날줄의 실(經)이다. 한글 풀이는 『다석일지(多夕日誌)-다석 류영모 일지』(홍익재, 1990) 제2권에 실려 있다.

글쓴이가 처음 한문 「천부경」을 알게 된 때는 1990해를 넘긴 어느날이었다. 아마도 1994해 갑오동학농민혁명 100돌을 맞아 김지하의 『동학이야기』(솔, 1994)와 함께 여러 권의 책을 구해 보던 때인 듯 싶다. 그 무렵에 한문 「천부경」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런데 무엇보다도 글쓴이는 그 뜻이 궁금했다. ‘천부경’이라니, 이름부터가 너무도 깊고 의뭉스럽잖은가! 속으로 엉큼한 땅의 참올(眞理)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1994해 겨울이던가, 아니면 1995해 봄이었을까. 문화일보를 보다가 다석을 알게 되었다. 신천옹 함석헌의 스승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조선의 첫 무교회주의자라는 사실에 더 놀랐으며, 동서양의 종교사상을 한 통으로 꿰뚫어 밝혔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그이는 일원론(一元論)의 사상가였다. 오직 하나의 참을 좇아 길을 가는 참사람(眞人)이었다.

20세기가 끝나는 1999해의 어느 날 한문 「천부경」의 뜻이 궁금하여 이 책 저 책을 찾아 읽었으나, 참뜻(眞意)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다석철학에 깊이 ‘파고들어야겠다’라고 마음 먹었다. 한 해가 지났을까. 2001해 4달 4날 교보문고에서 『진리와 참 나-다석 류영모 명상록』(두레, 2001)을 샀고, 그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이 뒤흔들리는 체험을 했다. 그해 겨울부터 한글 「천부경」이 내 안에서 아주 조금씩 풀어졌다.

 

그림2) 단애종사(檀崖宗師) 윤세복(尹世復, 1881~1960)

다석의 제자 박영호 언님이 쓴 『다석 전기-류영모와 그의 시대』(교양인, 2012)에, 다석과 대종교의 제3세 도사교(都司敎)이며 초대 총전교(總典敎)를 지낸 단애종사(檀崖宗師) 윤세복(尹世復, 1881~1960)의 인연이 나온다. 그 인연의 실마리가 머리에 불꽃을 밝혔다.

『다석일지』제1권 13쪽(홍익재본)은 20해 동안 쓴 날적이 일지의 첫 쪽이다. 1955년 4월 26일부터 시작되는데, 바로 그날 제자 함석헌과 금석호(琴錫浩) 장로를 만나 『삼일철학합편(三一哲學合編)』을 건넨 이야기를 짧게 적어 놓았다. 이 책은 『삼일철학-역해종경합편(譯解倧經合編)』(대종교총본사, 개천 四四O六해』이다. ‘개천 四四O六해’는 1949해다. 이때는 「천부경」이 아직 대종교의 경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때였다.

『삼일철학-역해종경합편』은 다석철학을 이해하는 또 다른 비밀문서다. 이 책에 실린 주해(注解), 그리고 한글 풀이는 다석이 쓰는 말과 글을 많이 닮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책의 순한글 풀이에 다석이 참여했다는 이야기다.

다석은 단애종사와 인연이 깊었다.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석은 삼일철학의 이치를 깨닫고 알아차렸다. 단애종사는 1960해에 하늘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세 해가 흐른 1963해 12달 21날에 대전시 대사동 산 2번지에 있는 성진원(成眞院)의 조용승(趙鏞丞)이 편지로 보내온 「천부경」을 받았다. 그이는 그 자리에서 곧장 생각을 풀어 일지에 적었다. 그것이 첫 「천부경」 한글 풀이다. 그해 12달 25날에 다시 풀었고, 1964해에 또 풀었다. 그러다가 1968해 10달 31날에 새로 고쳐서 매듭지었다. 다섯 해에 걸친 순한글 「천부경」 꿍꿍이는 ‘물․불․풀∞밀․믿․밑’을 홀로 깨달아 간 나날이었다. 참 놀라운 깨달음이 깃들어 있다. 첫 풀이에서 나중까지 그 맛을 살핀다.

[덧글 : 다석은 일지에 조용승(趙鏞丞)이라고 적었으나, 독립운동가이자 단민회(檀民會)를 조직한 성당 조용승(星堂 曺瑢承, 1891~1966)이 아닌가 한다. 그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국조전 건립을 주도했고 1966년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다석이 쓴 한문 이름이 서로 달라서 더 확인이 필요하다.]

 

그림3) 서우 전병훈(曙宇 全秉薰, 1857~1927)

다석이 본 한문본 「천부경」은 서우 전병훈(曙宇 全秉薰, 1857~1927)의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6권 2책, 활인본(活印本)]에 실린 것과 같다. 그대로 복사한 것은 아니고, 옛 한문체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 책은 1920해 중국 북경에서 간행한 것이다. 전병훈은 평안북도 출신으로 1892해에 의금부 도사, 1899해에는 중추원 의관을 지냈고, 황해도 균전사를 역임했다. 1907해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도사(道士)로 이름을 크게 떨쳤다.

『정신철학통편』의 속 표제는 ‘정신심리도덕정치철학통편(精神心理道德政治哲學通編)’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권1 정신철학통편, 권2 심리철학, 권3·4 도덕철학, 권5·6 정치철학”의 순으로 짜여 있다. 이 책 31~32쪽에 「천부경」을 손에 넣은 사연과 원문이 실려 있다. 그리고 32쪽에서 40쪽까지 그 뜻을 우리말로 풀어 놓았다. 「천부경」은 여러 본이 있으나, ‘만왕만래(万迬万來)’의 ‘만(万)’과 ‘왕(迬)’의 옛글자로 실린 것이 『정신철학통편』이다. 다석이 일지에 붙여 놓은 것과 똑같다.

 

그림4) 서우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6권 2책, 활인본(活印本)], 1920

「천부경」은 어떤 경전일까?

여러 기록을 모아서 정리하면 이렇다. 1916해 9달 9날에 계연수(桂延壽, 1864~1920)는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이 옛글로 전해 온 「천부경」을 묘향산 바위에 한문으로 새겼다는 「천부경」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을 탁본하여 1917해에 단군교로 보냈다.

1918해 단군교 교인 윤효정(尹孝定, 1858~1939)이 북경으로 가서 전병훈에게 「천부경」을 전했다. 윤효정은 항일 독립투쟁기에 독립협회 간부와 대한협회 총무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다. 1920해에 전병훈이 펴낸 『정신철학통편』에 원문(原文)과 주해(注解)가 실렸다.

1963년 다석은 『정신철학통편』에 실린 「천부경」과 같은 한문본 「천부경」을 받아서 풀었다. 다석이 「천부경」만 받아서 본 것인지, 아니면 『정신철학통편』도 받아서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일지에 붙여 놓은 것은 『정신철학통편』을 그대로 복사한 게 아니다. 옛글자 그대를 어딘가에 다시 옮겨 인쇄한 것이다. 그렇지만 옛글자는 똑같다.

[덧글 : 계연수는 ‘실존 인물이 아닐 수 있다’라는 주장이 있다. 『환단고기』를 묶은 이가 계연수다. 이 글에서는 그의 실존 여부를 떠나 『정신철학통편』에 실린 「천부경」을 다석이 한글로 푼 것에 꼭지(重點)를 둔다. 임채우의 「전병훈의 천부경 주석이 갖는 선도수련의 의미」, 『선도문화(5)』(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2008), 63~91쪽. 김낙필의 「전병훈의 천부경 이해」, 『선도문화(1)』(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2006), 7~34쪽을 살펴보면 더 좋다.]

 

그림5) 서우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에 실린 「천부경」

순한글 「천부경」의 특징은?

하나는 이렇다. 다석철학이 영글고 영근 일흔넷(1963년)에 풀이를 시작해 일혼아홉(1968년)에 매듭지었으니, 다석철학의 고갱이가 듬뿍 담겼다. 오랫동안 동서양의 여러 경전(經典)을 꿰뚫어 그 참 이치를 뚫어 밝힌 말씀의 말숨이 쉬어졌는데, 그런 말숨의 힘이 그가 쓴 한글철학에 녹아 흐른다. 글씨 하나하나의 속뜻을 깊이 새기어 느껴야 한다.

그 둘은 이렇다. 다섯 해 동안 여섯 차례나 글을 고쳐 바꾸면서 끊어읽기의 마침표 위치를 계속 의심하였고, 가장 적절한 끊어읽기와 그 속뜻의 한글이 무엇인지를 오래 궁리하였다. 가장 나중에 푼 다석의 「천부경」 글월 속 마침표는 다해서 열 일곱개다.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한 결과를 풀어 옮긴 것이다. 글이 새로 바뀌어 달라질 때마다 그 글씨 하나하나는 더 깊어졌고 속뜻은 크게 밝았다. 다석의 속알에 ‘참올’(眞理)이 바로 섰다.

그 셋은 이렇다. 다석이 한글 바꿈 할 때 찍은 하늘아(), 마침표(.) 쉼표(,) 가운뎃점() 쌍점(:) 줄표(-)를 써서 풀었다. 모음 하늘아는 하늘(天)이요, 소우주의 ‘나’를 가리킨다. 쌍점(:)은 쌍점 앞에 놓인 말을 풀어 알기 쉽게 밝힐 때 쓰고, 쌍반점(;)은 쉼표의 하나로 글을 끊었다가 이어서 풀 때 쓴다. 쌍반점은 안 썼다. 그 대신 가운뎃점과 쌍점을 많이 썼기 때문에 글씨와 더불어 그 뜻을 나누고 더해서 밝혀야 한다.

그 넷은 이렇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우리말 수 헤아림에 담긴 뜻이다. 다석은 ‘일이삼사오…’의 헤아림이 아닌, ‘하나둘셋넷다섯…’의 헤아림으로 풀었다. ‘일이삼사오…’의 헤아림은 단지 소리 내어 읽을 때 쓰고 그 속뜻은 ‘하나둘셋넷다섯…’으로 밝혔다. ‘하나둘셋넷다섯…’은 아주 오래된 우리 민족의 수 철학이다. 그 속뜻을 모르고 하늘 실줄(天經)을 풀어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어려울뿐만 아니라 아예 실마리조차 잡지 못할 것이다. 수 헤임말의 속뜻을 보자.

하나(一) : 한울, 하늘
둘(二) : 두루, 땅
셋(三) : 씨알, 사람
넷(四) : 나라, 누리
다섯(五) : 다사리, 다살림
여섯(六) : 연속, 이음
일곱(七) : 이룸, 이르름
여덟(八) : 여닫음, 여덜
아홉(九) : 아우름, 회통(會通)
열(十) : 엶(開展)
백(百) : 온, 온통
천(千) : 즈믄, 참(眞)
만(萬) : 잘, 선(善)
억(億) : 골, 조화(造化)
조(兆) : 울, 큼(大)

이런 수 헤임말의 속뜻은 다석 홀로 밝힌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크게 밝혀서 오롯하게 하나의 철학으로 다시 세운 이는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 1891~1965)이다. 그는 우리 수 헤임말의 뜻에서 민족정신을 보았고 더불어 다가 올 미래 인류를 위한 새로운 민주주의 철학으로도 보았다.

[덧글 : 우리말 수 헤임말의 참뜻은 “다석 류영모의 한글철학(5)”를 다시 볼 것]

 

그림6) 단재 신채호(丹齋 申寀浩, 1880~1936)와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 1891~1965)

1981해 ‘안재홍선집간행위원회’에서 펴낸 『민세안재홍선집(民世安在鴻選集)』 2권에서 살필 수 있다. 민세의 수 헤임말은 단재 신채호(丹齋 申寀浩, 1880~1936)의 민족사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민세와 다석의 인연은 알 수 없으나, 수 헤임말의 뜻과 풀이가 다르지 않아서 앞으로 이들의 관계나 교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단재와 다석의 인연은 익히 알려져 있듯이 오산학교에서다. 다석이 처음 오산학교 교사로 갔을 때 단재도 오산학교에 있었다.

또한 박영호 언님이 쓴 『다석전기-류영모와 그의 시대』(교양인, 2012)에는 다석과 교류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 훈민정음과 한글을 연구한 이들로 학산 이정호(鶴山 李正浩, 1913~2004)와 재야 한글학자 서상덕(徐商德, ?~?)을 빼 놓을 수 없다. 학산은 『훈민정음의 구조원리-그 역학적 구조』(아세아문화사, 1975)를 남겼고, 서상덕은 『국문철자법(상권)』(청구출판사, 1968)을 남겼다(국립중앙도서관 누리집에서 디지털 원문을 볼 수 있다). 이 책들은 다석의 한글철학을 파악하는데 있어 큰 실마리다.

우리말의 수 헤임말은 ‘조: 울, 큼’이 끄트머리다. 물론 지금은 조보다 더 큰 수도 있고 부르는 이름도 있지만, 옛 사람들은 하나 ‘한울’에서 시작해 조 ‘울’로 끝냈다. 한울이 울에 이르러 크게 한 바퀴 돌았다고 본 것이다. 다석도 이러한 우리말 수 헤임말을 잘 살펴서 썼다. 다만, ‘골’과 ‘잘’의 위치를 달리 보았는데, 잘을 만(萬)으로, 골을 억(億)으로 보았다. 다석이 만물(萬物)을 ‘잘몬’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마음 닦아감의 실줄, 천부경

다석은 ‘뜻앎’(意識)을 열어 올리는 ‘수준 높임’의 수행을 한울에서 울로 올라가는 것으로 본 듯하다. 한울에서 천지인(天地人)을 물음․불음․풀음으로 풀어 트고 올라가는데, 다시 둘에서 천지인을 물음․불음․풀음으로 트고 올라가는 방식이다. 모든 것은 천지인 공부에서 비롯한다. 그렇게 울까지 올라야 다 알아진다. 몸․맘․얼의 수행을 늘 ‘오늘살이’로 하되, 그 수준의 ‘높임’과 깨달음의 ‘저절로 높오름’을 더불어 한가지로 보았다. 깨달음의 ‘높오름’은 ‘밀음․믿음․밑음’으로 깊어진다.

몸․맘․얼 수행으로 뜻앎의 수준을 높이고, 깨달음의 높오름을 깊게 하기 위해서는 늘 스스로를 가르쳐 익히면서 알아차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 몸․맘․얼 가온찍기 닦음으로 ‘낮힘’을 키워 뜻앎을 높이고, 또 스스로 저절로 높오르는 깨달음이 하나로 돌고 돌아야 숨․김․힘이 크게 열려 빈탕의 시원시원한 텅 빔이 된다. 까마득의 빛이 환하다.

전병훈은 「천부경」을 마음수행(心學)의 경전으로 보았는데, 다석 또한 ‘천부경’을 “ᄒᆞᆫᄋᆞᆯ 댛일쪽 실줄”로 풀어 그 뜻의 참올(眞理)이 늘 ‘없’으로 하지 않음 없이 다 하시는 하심으로 ‘ᄒᆞᆫᄋᆞᆯ’에 가 닿는 깨달음 수행의 실줄(經)로 보았다. 그러니 한글「천부경」을 볼 때는 수 헤임말에 담긴 우리 민족의 오래된 알맞이(哲學) 뜻을 위에서 말한 얼개와 섬돌 사다리를 잘 맞추어 보아야 한다.

누구는 ‘집집 우주 생성의 이치를 담았다’라고 말하고, 누구는 ‘별자리로 지구 땅구슬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누구는 ‘하늘땅사람이 돌고 도는 이치’라고 한다. 다 한올(一理)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스스로 가르쳐 익힘으로 ‘ᄒᆞᆫᄋᆞᆯ’에 가 닿기 위해 거듭 거듭 거듭 참사람(眞人)의 ‘참나(眞我)’로 솟구치는 오르내림의 한 꼴 차림이 되어야 한다.

 

그림7) 다석이 1968해 10달 31날에 새로 고쳐서 매듭지은 순한글 「천부경」이다.

첫 하나 ‘ᄒᆞ실’에서 끄트머리 하나 ‘ᄒᆞ실’로 돌고 돌아가는 내리오름과 오르내림의 하늘길(天道) 닦아감이다. 몸․맘․얼을 가온찍기(ᄀᆞᆫ)로 돌려 고루 두루 조화를 이루며 ‘한울’에서 ‘울’까지 다 여는 것이다. 서로마주함의 상대계(相對界) 그 자리에 끊어너머섬의 절대계(絶對界)가 움 솟아 돌아간다. 상대계, 절대계는 둘이 아니다. 상대계에 절대계가 있고 절대계에 상대계가 맞붙었다. 사람살이의 늘 끄트머리 한 삶이요, 지금 여기에 깨․캐․냄이다. 안팎 없이 늘 비롯되는 사람의 ‘실올마ᄋᆞᆯ’이다.

다석은 일지에 종종 ‘실올마ᄋᆞᆯ’의 시를 썼고 맨 나중의 끝맺음 글도 그것이다. 몸맘얼에 실(經)이 올(理)발라 하늘(ㄱ) 땅(ㄴ)이 크게 열려서(ㅏ:마) ᄒᆞ실 하나로 늘 돌아가는 ᄋᆞᆯ, 얼나의 가온찍기(ᄀᆞᆫ)로 돌아가는 참나(眞我)!

시천주(侍天主), 곧 모신 한울이다.
없어서 모시는 모심이 아니라, 날 때부터 모신 한울이다.
스스로가 이미 한울이다!
모신 이 속에 ‘얼나’ 있고, 밖에 ‘ᄋᆞᆯ나’ 있어 세상 사람들 그 둘을 하나로 깨달아 아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위이 없는 첫 자리에 한얼(絶對靈)모신 맘의 긴김(長久氣)
밑이 없는 빈 탕까지 채고 남는 깊힘(深淵力)
_ 『다석일지』제4권, 613쪽, 「살줄 잡고. (- 내 主 의 이름 -)」

이제 1963해에 푼 순한글 「천부경」부터 1968해에 매듭지은 것까지 다음 글에서 낱낱이 밝히겠다.

- 참고문헌 -

『多夕日誌-多夕柳永模日誌』, 홍익재, 1990
류영모 글, 다석학회 엮음, 『다석일지』, 동연, 2024
박영호 지음, 『다석전기(류영모와 그의 시대)』, 교양인, 2012
박영호 지음, 『다석 류영모의 불교사상』, 문화일보,19952
류영모 말씀, 박영호 엮음, 『씨의 메아리 다석어록: 죽음에 생명을 절망에 희망을』, 홍익재, 1993
다석학회 엮음, 『다석강의』, 현암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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