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의 한글철학 ⑤] 하나둘셋에 다사리는 한울이다
“‘파-란’(蒼蒼) 것이 한울 아니며, ‘가-만’(玄玄) 것이 한울 아니다. 한울은 얼굴과 바탕도 없으며, 첫끝(端)과 맞끝(倪)도 없으며, 우․아래와 넷녘(四方)도 없고. 겉은 황-(虛虛)하며, 속은 텡-(空空)하여.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싸(容)지 않은 것이 없나니라.”
- 『역해종경사부합편 전』(대종교총본사, 개천4406)의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
“모든 것을 시종(始終)으로 보려고 하지만 종시(終始)라야 능득(能得)을 한다. 그래서 한아님 섬김에는 겉나로 끝내고 속나로 비롯하는 것이다. 사천종시(事天終始)이다. 우리의 앎이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자리에서 가서는 지지(知止)이지만 이것은 또 하나의 시작이다.”
- 다석어록
우리가 쓰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실제로는 서아라비아 숫자)는 고려말인 13세기에 들어왔다. 지금 우리는 아리비아 숫자 헤아림과 우리말 숫자 헤아림을 다 가졌다. 그런데 우리말 숫자 헤아림은 수를 헤아리면서 동시에 뜻을 나타낸다. 그 뜻으로 온 우주의 올(理致)을 꿰뚫어 본다. 그러니 오래된 옛 말씀을 잘 풀려면 반드시 이 우리말 수 헤아림의 뜻을 깊게 살펴야 한다.
예컨대 『천부경(天符經)』은 아라비아 숫자로는 풀 수 없다. 수는 단지 수가 아니라, 우주의 올을 꿰뚫는 뜻의 수여야 하기 때문이다. 민세 안재홍은 우리말 숫자 헤아림에서 철학의 시원을 살폈고, 다석 류영모는 그 우리말 숫자 헤아림을 깊이 꿍꿍했다. 그 뜻으로 『천부경(天符經)』을 풀었다. 이번 글은 오직 우리말 수 헤아림의 뜻를 살피기로 한다. 여기에 밝힌 것은 하나 한울에서 조 울까지다. 한울과 울은 같은 뜻이다. 그 이야기는 하나의 끄트머리(終始)가 조라는 이야기다. 조에 이른 뒤에 다시 하나 한울이 비롯된다. 열 다섯을 오르내리면서 돌아간다. 이것은 다석이 몸맘얼을 닦아가는 깊이와 넓이였다.
다석 류영모의 한글철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말 수 헤아림의 뜻을 짚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꼭 마음에 새기고 늘 그 뜻을 품어 풀어야 하리라.
하나 : 한울, 하늘
일一 : 천天
하나는 한울이요, 하늘이다. 하나로 늘 하시는 님이 하늘님, 하느님이다. 늘 이제 여기로 가오는 가온데 그 자리에 없이 계시는 님이다. 하늘은 스스로를 묻지 않는다. 안팎 없이 두루 계시니 늘 나는 나요 나날이요 남이다. 하늘하늘하고 너울너울하다. 나죽지 않는 큰 한숨이다. 빛숨으로 숨빛이다. 하! 늘이시니, 오! 늘로 늘을 타는 하나다. 하나는 씨ᄋᆞᆯ이다. ᄋᆞᆯ에 헤아릴 수 없는 씨앗이 있다. ᄋᆞᆯ은 씨앗의 어버이다. 씨가 품은 앗은 ᄆᆞᆯ숨에 저절로 앗숨을 튼다. ᄆᆞᆯ숨은 말씀에 깃든 물숨이다. 비로소 말씀이 말슴이 된다. 슴은 섬이니 숨이 솟는다. 텅 빈 자리에 움쑥불쑥하고 불쑥움쑥하다. 싱그러운 고요가 그 자리를 돌돌돌 싸고돈다.
한숨 : 크고 큰 숨이요, 끝없는 숨이다.
빛숨 : 밝게 빛나는 숨이다. 몸 안팎 둘레를 투명한 빛으로 가득하게 한다.
숨빛 : 빛숨이 몸속에서 환히 빛나는 숨이다. 숨빛이 가득할 때 몸은 ‘ᄆᆞᆷ’이 된다. ‘ᄆᆞᆷ’은 몬(物)의 몸을 오롯한 숨빛이 숨 돌리는 한울로 깨어나게 하는 참나다.
씨ᄋᆞᆯ : 우주 온통의 살아있는 알로써 산알(生靈)이다. 글씨를 풀면 이렇다. ‘ㅇ’는 어미 우주요, ‘ㆍ’는 씨앗 우주인 참나다. ‘ㄹ’은 나죽지 않는 늘삶(常生)이다. 거기에 영원이 있다.
앗숨 : 씨 속에 있는 얼숨(靈氣)이다. 마른 씨앗이 물로 첫 숨 쉴 때 ‘앗’ 터진다.
ᄆᆞᆯ숨 : ᄆᆞᆯ은 물과 말의 뿌리다. 말씀 속에 물숨과 말숨이 있다.
말슴 : 말씀에 숨 트면 말이 제소리로 일어선다. 그때 비로소 하나를 깨닫는다.
가온데 : 가고가고 오고오는 그 가오는 가운뎃자리!
둘 : 두루, 땅
이二 : 지地
둘은 두루, 땅이다. 두루는 두루두루 여기저기 곳곳에 있이 계시는 님이니 따님이다. 따알이요, 땅알이다. 하늘이 줄곧 그리워 내리는 곳이 땅이다. 땅은 그런 하늘을 받으며 오른다. 맞어울려 하나로 오르내린다. 땅에 하늘이, 하늘에 땅이 맞붙어 돌아간다. 둥글둥글하다. 하나로 맞아 돌아가니 땅하늘이 한꼴(一圓)로 들쑥날쑥 돌아가는 둥글움이다. 둥구루움! 하늘이 먼저가 아니고, 땅이 먼저가 아니다. 그저 땅에 하늘이요, 하늘에 땅이다. 땅에 하늘이 들어야 산다. 땅에 든 하늘은 불숨이다. 하나로 깬 앗숨은 불숨이 키운다. 앗숨은 저절로 솟는 샘이요, 불숨은 샘물에 흐르는 숨빛이다. 번쩍번쩍 숨빛에 든 몸은, 반짝반짝 숨빛이 든 몸은 ‘ᄆᆞᆷ’으로 참나가 솟는다.
맞 : 아귀가 딱 맞은 것. 하늘땅에 땅하늘이 한꼴로 돌아갈 때는 빈틈이 없다.
땅에 하늘, 하늘에 땅 : ‘에서’가 아니고 ‘에’다. ‘에서’는 쪼개질 때 쓴다.
불숨 : 살아 움직이게 하는 숨이다. ‘ᄇᆞᆰ’은 밝, 빛, 불의 말뿌리다. 몸 밖은 밝게 빛나는 햇살이요, 몸 안은 400조 개의 살알(細胞)을 깨우는 숨빛이다. 불숨이 있어야 산다. 불숨이 생명의 불이다. 앗숨은 저절로 터지고 불숨은 앗숨을 저절로 키운다. 불숨이 멈추면 앗숨은 하늘로 돌아간다.
둥구루움 : ‘두’에 끝소리(終聲) ㆁㄱㄹㅁ를 하나로 붙여서 내는 소리다. 끝소리에 닿소리 무리(합용병서)를 하나로 붙여서 쓰면 더 좋다. 우주의 모든 은하 항성 행성의 꼴은 둥글다. 동글이가 가는 길도 둥글다. 휘돌고, 감아 돌고 그러면서 까마득히 돌아가는 그 모든 움직임이 ‘둥구루움’이다. 둥그게 구르고 굴러가면서 늘 움을 틔우는 우주이지 않은가!
ᄆᆞᆷ : ‘몸’에서 ‘ㅡ’를 빼면 ‘ᄆᆞᆷ’이 된다. 다석 류영모는 ‘맘’과 달리 이 글씨를 참나의 마음이라 했다. 또 율려(律呂)의 려(呂)와 같은 뜻으로도 풀었다.
셋 : 씨알, 사람
삼三 : 종種, 인人
셋은 씨알, 사람이다. 사람이 씨알이다. 사람은 사ᄅᆞᆷ이요, 살알이요, 산알이다. 씨ᄋᆞᆯ이 낸 씨앗이 사람(生命)이다. 사람은 싱그레 온 벙그레이다. 싱싱 벙그러졌다. ᄋᆞᆯ은 한 우주로 온통이요, 씨앗은 낱 우주로 온통이다. 한 우주가 싱그레 벙그레 낱 우주를 내었다. 그 우주를 이제로 여기에 세웠다. 곧 씨알사람이다. 셋을 ‘세웃’이라고 한 까닭이다. 하늘에 땅이, 땅에 하늘이 맞붙은 자리에 씨알사람이 움직움직 솟았다. 줄줄 줄곧 내린 하늘이 땅에 움쑥 드니 산숨(生命)이 불쑥 깨어났다. 땅에 하늘이 들어서 숨 돌아간다. 움쑥불쑥 숨 돌리는 숨돌(氣運)이다. 산숨이 솟으니 하늘땅이 다 깨어 돈다. 하나둘셋이 한꼴 하나로 돌아가는 돌아감이다. 셋이 참(眞)이다. 셋참이 하나로 돎(三眞歸一)!
사람 : 온 생명의 일름(命)이요, 이름(名)이다. 인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ᄅᆞᆷ : ‘사르다’의 이름씨꼴(名詞形). 산 사람은 ‘불숨’에 타오르는 숨빛이다.
살알 : 인간의 몸은 400조 개의 살아있는 알갱이(細胞)로 이루어져 있다.
산알 : 생물학자 김봉한이 주장한 경락의 실체. 우리 몸은 많은 수의 ‘산알’과 이것을 잇는 그물망 같은 물리적 시스템이 있다고 보았다. 살아있는 알인 산알이 세포로 자란다.
세웃 : 셋의 우리말. ‘서게 하다, 곧게 하다, 세우다, 싹 틔우다’의 뜻이 있다.
산숨 : 생명의 우리말이다. 살아서 쉬는 숨이다. 그래서 목숨이다.
숨돌 : 숨이 돌아가는 힘이다. 숨을 돌려야 힘이 난다.
셋참 : 삼진(三眞)은 『삼일신고』「진리훈(眞理訓)」에 나오는 성(性)․명(命)․정(精)을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진성(眞性)․진명(眞命)․진정(眞精)이 하나로 이어져야 한얼(一神)이 깨어난다.
넷 : 나라, 누리
사四 : 출생出生 , 세상世上
넷은 나라, 누리다. 하나둘셋을 이은 넷은 하나둘셋이 나를 낸 것이다. 나(眞我)는 ‘하늘땅사람’(天地人)이 한 꼴 하나로 빚어 낸 ‘있’(實在)이다. 하늘(一)․땅(二)․사람(三)을 뚫어(ㅣ) 솟난 이(王)가 ‘나’다. ‘나’가 그대로 있는 ‘있’이 순수한 실재이며, 첫비롯의 하늘바탈(天性)이다.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까닭이 없다. 차라리 “나는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사람이 온갖 것들의 살알이요 산알이라면, 넷은 그 살알 산알의 산숨으로 난 나의 솟구침이다. ‘나앗․나엇’(出生)은 그런 솟구침을 나타낸다. 셋참(三眞)이 줄곧 내고 낳는 나라가 누리(世上)다. 나라는 나를 내는 누리다. 나 없이 나라가 있을 수 없다. 내가 있어야 밝은 누리다. 누리에 홀로 깬 나는 ‘빛나라’로 그물코를 이룬다. ‘빛나라’는 나남 없는 서로다. 서로서로서로 더불어 일어서고, 서로서로서로 더불어 솟구치는 살림살이다. 그것이 굽이굽이 세상이다.
바탈 : ‘받아서 할’을 줄이면 ‘받할’이다. ‘받할’을 이어적기로 쓴 것이 ‘바탈’이다. 본성(本性), 천성(天性)을 다석이 그렇게 풀었다. 천성이 ‘하늘바탈’이다. 본디 마음이란 ‘하늘로 난 마음’이다. 삶은 하늘로 난 마음이 하는 살림살이다.
나앗/나엇 : 씨앗이 나듯 ‘나’가 ‘앗숨’을 튼 것이다. 때가 끼지 않은 순수한 ‘숨나’다.
있 : 본디 있는 그대로의 실재다.
나 : 앗숨을 가지고 태어나는 ‘나’를 가리킨다. 태어남의 ‘나’는 순수한 존재이다.
나라 : 국가(國家)가 아니다. 너나없이, 나남 없이 솟는 ‘나들’의 공동체다. 이것이 국가보다 먼저다. ‘앗숨’을 틔우며 솟는 순수한 ‘숨나’들의 공동체는 신명 가득한 존재들이다.
누리 :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온 땅의 이름이다. 온 누리의 밝은 땅이다.
서로서로서로 : ‘서로’는 마주함이요, ‘서로서’는 서로 마주해 한꼴로 일어섬이다. ‘로서로’는 그에 들어감이다. 한꼴로 일어서서 들어가면 ‘서로’가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을 풀어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다섯 : 다사리, 다살림
오五 : 섭리攝理
다섯은 다사리, 다살림이다. 다사리는 세상의 생명들을 ‘다 사리다’의 뜻을 가진다. 이 말은 ‘다 살리다’, ‘다 말하게 하다.’를 뜻한다. 우리말 ‘사뢰다’는 “웃어른에게 말씀을 올리다.”이다. 웃어른을 ‘너나 없’으로 바꾸고 ‘나남 없’으로 돌린다. 온갖 생명들이 골고루 다 잘 살도록 하는 것이 다사리다. 얼씨구절씨구 에헤라디야 흥에 응하는 신명이 오르내리며 강강술래 춤추는 삶이다. 이것은 그저 인간의 삶만을 말하지 않는다. 다사리는 우주 대자연이 돌아가는 원리요 섭리이기 때문이다. 이 다사리 철학을 인간사회에 구현하려는 힘이 민주주의다. 민세 안재홍은 다사리 공동체를 꿈꾸었다. 다사리를 온 누리에 세워야 한다.
다섯 : 모두가 다 고루고루 평등하게 일어서는 자유다. 다 함께 일어섰으니 다섯이다. 우주는 누구를 막론하고 다 살리고 다 말하게 한다. 그것이 섭리다. 다 살려야 한다.
다사리 : 다 살리다, 다 말하게 하다의 뜻. 민세 안재홍이 가져와 쓴 우리말이다.
얼씨구절씨구 : ‘얼씨구 들어간다. 저 얼씨구 들어간다.’에는 ‘얼의 씨가 들어간다.’는 뜻이 있다. ‘얼씨’가 곧 하늘님의 씨다. 하늘님의 씨로 다사리 이룬 것이 신명이다.
원리(元理) : 으뜸 올(바름). 오롯한 올바름이다.
섭리(攝理) : 굳건 올(바름). 굳건한 올바름이다.
민세 안재홍 ; ‘다사리공동체’ 나아가 ‘다사리국가론’을 꿈꾼 독립운동가다. 우리 철학의 오래된 뿌리가 ‘비, 씨, 몬’에 있다고 보았다 비는 허(虛), 씨는 종(種), 몬은 물(物)의 우리말이다. 이 세 뿌리의 우리말에서 번져간 말들이 적지 않다.
여섯 : 연속, 이음
육六 : 지속持續, 존속存續
여섯은 연속, 이음이다. 이어서 오래오래 끊이지 않고 쉬지 않는다. 늘 있는 그대로 가오는 가온데 ‘있다시 온’(如來)이다. 늘 이제 여기로 가고 오시는 순수한 실재가 ‘있다시 온’이다. ‘있다시 온’은 이어 이어서 잇으로 잇닿아 끊이지 않는 잇의 이음이다. 잇에 잇이 잇으로 가오는 ‘있다시 온’이다. 잇고 잇는 ‘이을’로 ‘여어서’ 나아가는 연속이다. ‘이을’에는 마디가 없다. 도막도 없다. ‘이을’은 끄트머리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안팎도 없다. 이어서 가는 그대로 ‘있다시 온’이 ‘옛다시 가온’에 돌아갈 뿐이다. ‘있없’ 한꼴로 돌아가는 늘(常)이다. 여섯에는 ‘사이’가 없다. 다사리 섭리가 쉼 없이 움직이는 ‘가온데’ 다. 그 자리는 그치지 않고 멈추지 않고 돈다.
있다시 온 : 있는 그대로의 ‘있’(實在)이 오시는 걸 뜻한다. 다석은 부처를 이르는 열 가지 이름 가운데 여래(如來)를 그리 풀었다.
옛다시 가온 : 순수한 실재가 지금 여기에 오시는 순간 현존의 ‘있’은 어느새 흘러간 ‘옛’으로 다시 가버린다. 다석은 부처를 이르는 열 가지 이름 가운데 선서(善逝)를 그리 풀었다.
있 : 있을 존(存), 있을 재(在), 있을 유(有)의 본디 뜻은 그저 ‘있’ 하나다. ‘있’은 끊임없이 잇고 잇는 잇이란 뜻이다. 우리는 모두 그 이음의 ‘잇’이 드러난 실재로서 ‘있’(實在)이다. 삶은 이 ‘있’의 앗숨을 틔우는 싸움이다.
없 : 없을 무(無)는 ‘있’이 돌아가는 자리다. ‘없’(無)은 본디 ‘춤’(舞)이다. 돌고 돌아가는 춤짓의 마지막에 텅 빈 빈탕의 ‘없’이 가득하다. ‘없’의 꼴은 바로 그와 같다. 빈탕에 오롯이 ‘숨’(氣:生氣)만 남은 그 자리!
여어서 : ‘여섯’의 사투리는 ‘여어’다. ‘여어’는 ‘여기’를 뜻하기도 한다. ‘여어서’는 이제로 늘 여기를 이어가는 이음이요, ‘이을’의 뜻이다. 여기를 이어서 가니 여섯이다.
일곱 : 이룸, 이르름
칠七 : 사위事爲, 흥기興起, 성취成就, 도달到達
일곱은 이룸, 이르름이다. 저절로 하는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야 이룸에 이른다. 일곱의 ‘일’은 저절로 하는 일이요, ‘곱’은 그렇게 하는 일로 열맺는 이룸이다. 생명이 하는 일은 늘 저절로 내고 낳고 되고 이루는 이룸의 나날이다. 우주가 돌아가는 길에 삶이 더불어 돌아가는 ‘큰길’(大道)이 있다. 큰길 이룸에 일곱 빛깔 무지개(水戶)도 있다. 노자 늙은이(老子)와 다석 류영모는 ‘ᄒᆞᆷ없 ᄒᆞᆷ(爲無爲)’을 말했다. 연속으로 잇닿아 잇는 여섯이 일곱으로 나아가 이루는 이룸은 ‘함없에 함’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이루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주는 어지럽게 널려 있으면서도 가지런히 돌아간다. 그렇게 돌아감이 우주바탈(宇宙本性)이요, 더할 나위 없는 저절로다. 저절로에 귀를 열어야 한다.
곱 : 열매 맺음이요, 또 단단한 덩어리다. ‘굽’이라고도 한다.
내고 낳고 되고 이루다 : 생생화화(生生化化)의 우리말 풀이다.
큰길(大道) :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길이다.
무지개 : 15세기엔 ‘므지게’로 썼다. ‘므’는 물(水), ‘지게’는 문(戶)이다. ‘물의 문’이라는 뜻.
ᄒᆞᆷ없 ᄒᆞᆷ : 하늘아(ㆍ)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하늘 숨이다. 하지 않는 자리에 늘 하는 ‘함’(爲)이 돌아감이다. 노자 늙은이가 말한 ‘위무위’(爲無爲)의 풀이다.
마음 없 : 무심(無心). 숨빛 한가득으로 텅 비었으니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 따위가 없다.
나위 없 : ‘나위 힘’은 능력(能力)의 우리말. 우주는 검얼(神靈)로 ‘나위 힘’을 일으켜 돌린다. 그것이 얼 큰 ‘얼힘’(靈能)이다. 우주는 있는 그대로 돌아가는 ‘함없(無爲)’이니, 더할 나위 없다.
여덟 : 여닫음, 여덜
팔八 : 개합開闔
여덟은 ‘여닯’이기도 하다. ‘여닯’은 ‘여닫’이요, ‘여덜’이다. ‘여닯’은 열고 닫는 여닫음이요, ‘여덜’은 남고 모자람을 뜻한다. 여닫는 가온자리, 밀써는 가온자리, 드나듦의 가온자리, 끄트머리 맞자리, 그리고 더덜자리를 보라. 여닫음, 밀썰음, 드나듦, 끄트머리, 더덜…. 모두가 함께하는 동시성(同時性)이다. 하나 한꼴이다. 우리말에는 너나를 나누어 쪼개지 않으려는 뜻말이 여럿 있다. 심지어 ‘우리’라는 말은 그 안에 ‘너나’를 따로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저 한 울타리 한패다. 주역(周易)의 가온꼭지는 여닫아 잘 뚫음(開闔變通)이다 노자 늙은이(老子)도 하늘 궁 여닫음(天門開闔)을 말했다. 하늘이 올바른데 그저 밝은 ‘여닫음’이 돌아갈 뿐이다. 오롯한 ‘ᄒᆞᆷ없’ 하나가 까마득하다.
여닫음 : 열고 닫음이 하나로 동시에 일어나는 ‘여닫음’이다.
여덜 : ‘여’는 남음이요, ‘덜’은 모자람이다. ‘여덜’은 남고 모자람을 한 꼴로 쓴 말이다.
가온자리 : ‘가온데’의 뜻. 가고 오는 순서 없이 그저 가오는 가온자리다.
개합변통(開闔變通) : 여닫아 잘 뚫음.
천문개합(天門開闔) : 하늘 궁 여닫음.
올 : 리(理). ‘올바르다’, ‘올발라’의 ‘올’이다.
까마득 : ‘감아 돌아감이 아득하다’의 뜻이다.
아홉 : 아우름, 회통
九 : 종합綜合, 회통會通
아홉은 아우름, 회통이다. 여럿을 모아 하나로 아우르는 아우름이요, 서로 어긋난 뜻을 잘 통하게 하는 조화다. 어우렁더우렁 함께하는 ‘어울림’이요, ‘아울름’이다. 우주에 있는 온갖 것들을(萬有) 고루고루 골고루 싸고 안는다. 더불어 빙글빙글 돌아간다. 싸고 안아서(周包) 돌아가는 이 우주의 꼴을 ‘큰얼골’(大靈)이라 한다. 사람도 그 ‘얼골’로부터 나왔다. 본디 이 우주의 씨앗을 받은 얼골은 얼굴이 아니라 몸의 온통을 뜻했다. 생명은 다 다른 꼴로 나서 살지만 아홉은 이 모든 꼴을 하나로 아우른다. “같되 다르고 다르되 같은” 꼴들은 모두 ‘한알’(宇宙)에서 비롯되었다.
아우름 : ‘아우르다’의 이름씨꼴(名詞形)이다.
아울름 : ‘아울리다’의 ‘아울림’과 같은 말이다.
얼골 : 15,6세기까지는 ‘온몸’을 뜻했다. 18세기에 지금의 ‘얼굴’이라는 뜻이 되었다.
한알 : 우주하늘을 뜻하는 말이다. 하늘은 하눌, 한눌, 한늘, 하날, 한알 등으로 불렸다. 다 우주를 꼴지어 부르는 우리말이다. 하눌 한눌은 큰집이라는 뜻이요, 한늘은 끝이 없이 큰 늘이라는 뜻이요, 하날 한알은 하나로 크고 둥근 검얼(大靈)이라는 뜻이다. 우리 철학은 ‘하늘’의 여러 말들과 그 뜻을 알아야 깊어진다.
비롯 : ‘비’는 텅 빈 빔이요, ‘롯’은 텅 빈데서 난 남이다. ‘비롯’은 텅 빈데서 나고 생긴 것을 뜻한다.
열 : 다 엶
십十 : 개전開全, 현현(顯現)
열은 다 여는 엶(開)이다. 네 계절을 살펴서 ‘열’을 푼다. 봄은 ‘배음’으로 ‘뱀’(孕胎, 胚胎)이다. 여름은 다 열고 열어서 펴는 벌림이다. 그것은 ‘떨쳐 일어섬’(發揚)을 뜻하기도 한다. 일이 참 성하게 잘 돌아간다. 가을은 그 여름이 가니 ‘갈’이라 한다. 가고 가는 가을로 ‘갈’이다. 쉬엄쉬엄 쉬어 갈 ‘쉬갈’이 아니다. 달라져 바뀌어 가는 가을이다. 겨울은 ‘다함 없에’(無盡) 다다른 끄트머리다. 여름은 여는 열이요, 열리는 열이다. 넷 나라, 다섯 다사리, 여섯 이음, 일곱 이룸, 여덟 여닫음, 아홉 아우름을 거치어 거칠 것 없이 열린 열이다. 끝없이 열리니 무한개전(無限開展)이요, 늘 그대로 드러나고 나타나니 항구현현(恒久顯現)이다. 열은 휘돌아 흐르는 여울이기도 하다. 세차게 휘돌아가는 울돌목이 그것이다. 울돌목의 ‘돌’은 소용돌이로 열린 문이다.
배음 : 뱀으로 읽히는 우리말이다. 잉태, 배태의 뜻.
갈 : 가을바람을 ‘갈바람’이라고도 한다. 가을의 줄임말. 달라지고 바뀌어 가는 것을 뜻한다.
다함 없에 다다른 끄트머리 : 구극(究極)을 풀어 쓴 말이다.
여울 : 열 십(十)의 본디 옛 글씨는 만(卍)이다. 이것은 휘돌아 가는 소용돌이다. 울돌목의 ‘돌’은 문(門)의 옛 가야어다. 다 열린 엶의 ‘열’은 소용돌이 큰 구멍이다. 위아래가 다 뚫린 문이다.
온 : 백, 온통
백百 : 전全, 원통圓通
온은 백이요, 온통이다. 온은 모두이고 다여서 온전하다. 오롯한 동그라미로 둥글둥글 가없는 둘레를 이룬다. 그래서 원통구전(圓通具全)이다. 온통에는 길고 짧음, 멀고 가까움이 있을 수 없다. 어긋남 없이 가득 차서 골고루 퍼지고 두루 잘 미친다. 눈부시어 밝은 햇살이 온 데로 다 비추면서 한가운데에 있는 까닭이다. 우주는 때빔(時空)을 뛰넘어 끝없이 밑없이 가없이 펼쳐진 온통이다. 하늘길(天道)이 보여 뵈는 뵘(觀), 검얼(神)을 알아차려 뵈는 뵘(觀)이 여기에 있다. 뵈니 보는 봄이다. 그 봄에 온이 뚫린다. 한길뵘(天道觀), 검얼뵘(神靈觀)이 선다. 모든 씨알들이 더불어 살기(萬民共生) 위해서는 온을 짱짱하게 이뤄야 한다. 우리 모두는 낱낱으로 다 ‘온생명’이다.
가없다 : 둘레가 없다. 경계가 없다.
온데 : 이곳저곳, 여기저기, 온군데를 뜻한다.
한가운데 : 시간, 공간, 상황 따위의 가운데를 뜻한다.
때빔 : 시공(時空)의 우리말이다.
뛰넘다 : ‘초월(超越)하다’의 뜻이다.
뵘 : 관(觀)은 보여서 뵈는 뵘이다. 마음 눈에 뵌다. 견(見)은 눈으로 보는 봄이다.온생명 : 장회익이 주장한 개념이다. ‘낱생명’이 개별 생명체라면, ‘온생명’은 ‘하나의 전일적 실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사람도 하나의 전일적 생명체라는 측면에서 ‘온생명’이다.
참 : 천, 즈믄
천千 : 진眞
참은 천이요, 즈믄이다. 참에 좇음으로 참을 이룬다. 참이 아니면 찰랑찰랑 차지 못한다. 거짓이 많아 미덥지 않으니 그것은 허망(虛妄)이다. 참은 아주 잘 영글고 익은 열매(實), 줄곧 뚫어 솟은 마음(忠)에 있다. 참열매요 참마음이다. 참마음이 가득 차니 충실(忠實)하고, 이루어 가득 차니 성실(成實)하고, 거짓 없고 참되니 진실(眞實)하다. 알알이 가득가득하여 주전보만(周全溥滿)의 길이 열린다. 내 속 깊은 곳에 우주가 감아 돌아가고, 헤아릴 수 없는 별빛처럼 온 우주의 숨빛이 가슴에 환하며, 늘 빛숨이 한가득 쏟아져 내리는 머릿골 ‘골밑샘’은 위아래가 뻥 뚫려 차지 않은 데가 없다. 온통이 참에 들어 꽃내(香氣)가 난다.
허망 : 허망(虛妄)은 ‘거짓되고 거짓되다’의 뜻이다.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쓴다.
줄곧 뚫어 솟은 참마음 : 충(忠)의 풀이다. 가운데 중(中)은 마음이 줄곧 뚫린 글씨다. 가운데 중(中) 아래에 마음 심(心)이 있다. 충(忠)은 줄곧 뚫린 마음을 뜻한다.
길 : 도(道)의 우리말이다. 하늘머리 기윽(ㄱ), 곧이 고디 섬(ㅣ), 늘 흐름(ㄹ), 바로 그것이 ‘길’이다. 사슴뿔 샤먼의 첫머리(首), 쉬엄쉬엄 갈 착(辶)을 가진 도(道)와 다르지 않다. 도가 길이고, 길이 도다. 그러니 우리말 ‘길’로 써야 도가 잘 보인다.
머릿골 : 『삼일신고(三一神誥』「신훈(神訓)」에 한얼이 “너의 머릿골에 나려 계시나니라.”라고 했다. 한얼이 신령한 빛숨이다.
골밑샘 : 뇌하수체(腦下垂體)의 우리말이다.
꽃내 : 향기(香氣)의 우리말이다.
잘 : 만, 선
만萬 : 선善, 대선大善
잘은 만이요, 선(善)이다. 잘의 옛말은 ‘쟐’이다. 잘하고 잘하고 또 잘해야 ‘쟐’이다. 선은 착함이요, 올바름이요, 어짊이다. 마음씨가 곱고 바르다. 그러니 만(萬)은 참 착하고 참 올바르고 참 어질다. 두루 미치고, 크게 잘하며, 끝없이 높오르는 지극한 참이 만이다. 참으로 착한 것을 지선(至善)이라 한다. 또 잘은 우주의 모든 생명들이 쑥쑥 ‘자라’는 것이다. 잘이 있어서 저절로 길이 나아가며 잘 자란다. 잘은 뜨거운 알짬(精氣)이기도 하다. 잘몬(萬物)을 생성하는 으뜸 김(元氣), 생명의 원천이 되는 원기이니까. 모든 생명에 힘이 미치고, 모든 생명에 마음이 가고, 모든 생명에 손이 닿아, 하나도 그 바를 얻지 못함이 없다. 널리 인간계를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큰길도 이에서 비롯한다.
쟐 : ‘잘하다’의 ‘잘’를 이르는 옛말이다.
높오르는 : 상(上)을 풀어 말하는 다석의 말이다. 지극(至極)은 그저 높이 있는 곳이 아니라, 이를 데 없이 높오르는 ‘없꼭대기’를 뜻한다. 그곳은 보이지 않으니 ‘없자리’다.
자라 : ‘잘 자라다.’의 ‘자라’는 저절로 자라는 ‘잘’이다. ‘잘’은 ‘자라’로 풀리는 힘이다. 저절로 솟는 숨이다. 저절로 자라게 하는 숨이니 ‘불숨’이다. 그래서 뜨거운 알짬이라 한 것이다.
큰길 : 그저 큰 길이 아니라 ‘대도’(大道)를 뜻한다.
알짬 : 정(精), 정기(精氣)의 우리말이다. 쌀을 쓿은 뒤의 좋은 알곡이 알짬이다.
잘몬 : 만물(萬物)의 우리말 표현이다. 다석은 늘 ‘잘몬’으로 썼다.
골 : 억, 조화
억億 : 미美, 조화造化
골은 억이요, 조화다. 골은 ‘곯’(美)로 고루고루 골고루의 뜻이니 이에 조화를 이른다. 잘몬(萬物)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로 조화가 이뤄졌으니, 그것은 아름다움(고움)이다. 이제 몬(物)에 마음이 들어 제 꼴을 갖춘다. 몸꼴에 맘꼴을 한데로 아우르며 어울려야 참 아름답다. 온이 든 참(眞)이요, 참이 든 잘(善)이요, 잘이 든 곯(美)이다. 온에 거짓 없으니 참이요, 참에 틀림 없으니 잘이요, 잘에 헛꼴 없으니 곯이다. 오롯한 참, 오롯한 잘, 오롯한 곯이 있을 따름이다. 고루 골고루 고르고 고르는 골름(選擇)은 기우뚱한 것을 뒤흔든다. 기우뚱한 것들이 뒤흔들리며 창조하는 고름(均衡)을 낸다. 두둥실 두리둥실 고름이 움직인다.
곯 : 골흠, 골름, 고름, 고음, 고움으로 풀리는 말이다. 민세 안재홍이 쓴 말이다.
골 : 골고루의 ‘골’이다. 꼴(모양)로도 풀린다.
골름, 고름 : ‘골르다’, ‘고르다’의 이름씨꼴(名詞形)이다. 골름과 골르다는 사투리다.
헛꼴 : 허상(虛像)의 우리말이다.
기우뚱한 고름 : 시인 김지하는 “혼돈적 질서, 역동적 균형, 기우뚱한 뀬형, 비평형적 평형”처럼 질서, 균형, 평형을 잡아가는 혼돈, 역동, 기우뚱, 비평형에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저절로 일어나는 우주대자연과 ‘하고픔’의 욕망이 판을 치는 인간사회를 빗대어 ‘기우뚱한 고름’을 잘 살펴야 한다. “큰 됨은 이지러짐 같고, 큰 참은 텅 빔 같고, 큰 말씀은 떠듦 같다”(다석 풀이)는 노자 늙은이의 말을 되새겨야 한다.
울 : 조, 큼
조兆 : 우주宇宙, 대大
울은 조, 큼이다. 하나가 한울이었듯이 조는 다시 울에 이른다. 조에 이르러 한울로 돌아간다. 본래 있던 그 자리로 되돌아온 게 아니다. 감아 돌아가는 감아 돎일 뿐이다. 그 자리는 늘 첫 자리로 ‘첫비롯’(始作)이다. 맨 앞의 ‘맨’이다. 하나둘셋에서 비롯된 수의 헤아림이 커지고 커져서 조에 이르렀는데, 본디 그 텅 빈 자리는 울의 자리다. 울은 본디 빈탕이다. 둘레 없는 울이요, 가없는 울이요, 끝없는 울이요, 끄트머리 한 꼴의 울이다. 위아래도 없고 밑도 없다. 크고 크고 또 클 뿐이다.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울을 큰극(太極)이라 했다. 울이 바로 ‘ᄋᆞᆯ’이다. 하나는 한울 하늘이지만 울에는 하늘땅이 없다. 울은 쪼개질 수 없는 ‘비’ 하나다. 하나 한울에서 울에 이르렀으나, 울은 그보다 먼저다. ‘앗’ 깨어나는 끄트머리다. ‘앗’이 깨이면 하나 한울에 ‘큰비’(太虛)가 쏟아진다. 올이 바르다. 올바르다.
울 : 한울보다 먼저다. ‘첫끝’도 없고 ‘맞끝’도 없다. 겉은 ‘황-’(虛虛)하고, 속은 ‘텡-’(空空)하여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싸지 않은 것이 없다. 민세 안재홍은 그저 ‘비’라고 했다. 텅 비어 빈 것의 맨 앞. 그 앞의 ‘맨’ 자리다.
큼 : 둘레도 없고, 높낮음도 없이 큰 큼이다.
맨 : 가장 앞에 있는 것보다 더 앞. 그 앞의 빈자리다.
끄트머리 : 끝과 머리가 하나로 붙었다.
비 : 허(虛)의 우리말이다. 온갖 것들의 비롯에 앞서 있다.
큰비 : 태허(太虛)의 우리말이다. 그 뜻은 하나 한울 하늘이다.
ᄒᆞᆫᄋᆞᆯ 댛일쪽 실줄(天符經)
一.
하실.
☞ 하나(一)는 늘 낳고 되고 이루며 돌아가는 ‘하실’이다. 여기저기거기 어디에나 있으면서 하지 않음 없이 다 하시는 님이다. 텅 비어 빈 빈탕이니 ‘없이 계시는 님’이다.
始․無 : 始.
너나 ․ 없 : 비롯.
☞ 쪼개진 바 없는 ‘너나’는 하나로 없(無)이니 그 자리에 비롯(始)이다. 이름 없(無名)에 하늘땅(天地)이 솟아서 비롯한다. 숨 하나 오롯하다(氣一元).
一析․三 : 極.
한 푸리 ․ 셋 : 가장.
☞ 큰 뿌리 셋이 잘몬(萬物)되니 셋이 으뜸 가장(極)이다. 길나니 하나요, 하나나니 둘이요, 둘나니 셋이요, 셋나니 잘몬이라 했다. 하나는 한울 하늘이요, 둘은 두루 땅이요, 셋은 씨알 사람이다. 하늘(天) 땅(地) 사람(人)이 큰 가장이다.
― 無盡本 ―
― 못다할 밑둥 ―
☞ 늘 하시고, 너나 없는 비롯이며, 큰 뿌리 셋으로 잘몬을 이루는 그 없꼭대기(無極) 가장(極)이야말로 못다 할 밑동(無盡本)이다. 그 밑동이 바로 등걸이다.
天一 : 一.
하날 하나 : 하나.
☞ 그러므로 하늘 하나는 끝없이 밑 없이 크다.
地一:二.
따 하나 : 맞둘.
☞ 땅 하나는 크고 큰 하늘 아래 맞둘(마주섬)이다.
人一 : 三.
사람 하나 : 세웃.
☞ 사람 하나는 큰 하늘 아래 맞둘로 선 땅을 뚫고 솟난 세웃이다. 솟날뚜렷으로 솟나 솟난이가 씨알 튼 사람이다. 하늘(一), 땅(一), 사람(一)을 하나로 뚫어 솟난이(王)이다.
一積, 十鉅 : 無匱化三.
하나 그득, 밀썰되 : 다함 없이 된 셈임.
☞ 등걸 하나를 가득 밀고 썰어 다 열어도 다함없이 되는 셈(三極)일 뿐이다. 쪼개진 바 없이 빈탕으로 가득가득가득 돌아가는 등걸 하나는 흩어진 바 없기 때문이요, 흩어질지라도 결국 하나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天 : 二三.
하날 : 맞섯.
☞ 하늘(○)에 땅사람(□△) 마주섰다.
地 : 二三.
땅 : 맞섯.
☞ 땅(□)에 하늘사람(○△) 마주섰다.
人 : 二三.
사람 : 맞섯.
☞ 사람(△)에 하늘땅(○□) 마주섰다.
大三合六生 : 七八九.
한셋 맞둔 여섯스니 : 일곱ㆍ여둘업ㆍ아업. 생기다.
☞ 늙은이(老子)는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솟난이(王)도 크다 했다. 그러니 그 큰 셋 가장(極)이 서로서로서로 엮여 돌아가는 여섯이 섰다. 여섯은 연속으로 잇는 것이니 이어 이룸에 이르고(일곱), 이르러 여닫고(여덟), 그것을 다 아울러(아홉) 솟는다. 그 솟음이 다 여는 길이다.
運三, 四, 成環 : 五․七․一 : 妙衍.
옴기어 셋, 네모루처, 이룬 고리 : 다섯ㆍ이룸ㆍ하나 : 고히 노니름.
☞ 크게 돌아가는 그 길을 옮기어(運) 보니 셋(△:人)이요, 그 셋에 네모(□:地) 둘러치고 그 위로 고리 이루니(○:天), 원방각(圓方角)이 다사리(다섯) 이룸(일곱)으로 오롯한 하나다. 집집 우주(宇宙)를 다 살리고 다 말하게 하는 다사리는 바탈(性) 일름(命) 알짬(精)을 참 하나로 이어 돌리면서 온갖 잘몬(萬有萬物)을 낳고 기른다. 그러니 그 하나는 하실로 늘 고이 노닐(妙衍) 뿐이다.
[※ 복희여와도를 보면 복희는 곡척(曲尺)을 들고 여와는 규구(規矩)를 가지고 있다. 구고현(勾股弦)의 三四五 세모(△)들이 네모(□)가 되고 그 네모를 둥글게 이룬 고리가 다섯 일곱의 원방각이다. 그 원방각의 올다스림(理致)으로 집집 우주는 처음 만들어졌다. 하나를 이룬 것이다.]
萬往 : 萬來 : 用變, 不動本 ―
잘가고 : 잘온데 : 갈리어 쓰이나, 꿈적 않는 밑둥 ―
☞ 등걸은 잘 가고 잘 오면서 돌돌 돌아가는 가온찌기다. 가고 오면서 늘 갈리어 쓰지만 밑동은 꿈적도 않는다.
本心. 本太陽 : 昻明 : 人中 : 天․地, 一 ―
밑둥 맘. 밑둥 해 : 뚜렷 밝아 : 사람 간듸 : 하날 ․ 땅, 하나 ―
☞ 가온으로 돌아가는 등걸의 밑동 맘(本心)은 밑동 해(本太陽)로 뚜렷이 밝다. 그 밝달 사람 가운데 하늘땅이 하나로 돈다.
人 : 中天․地 : 一 : 一.
― 사람 : 하날․ 땅, 드러 맞훈 : 하나 : 한.
☞ 밝달 사람은 하늘땅이 하나로 들어맞은 ‘큰이’다.
終․無 : 終.
― 마침 ․ 없 : 긑.
☞ 큰이의 다스림은 마침 없는 끝이다.
一.
실.
☞ 마침 없는 끝이니 늘 하나로 하시는 하실이다.
하나로 늘 하시는 그 님이 참올(眞理)이요, 산숨(生命)이요, 길(道)이다. 천부경은 하늘로 닿는 얼줄이다. 다석은 얼줄을 이어 우리말로 그 깊고 깊은 말씀의 숨을 길어 올렸다. 하루하루 나를 내고 낳아 비어 빈 빈탕의 속알로 영글어야 한다.
- 참고문헌 -
류영모 글, 다석학회 엮음, 『다석일지』, 동연, 2024
박영호 지음, 『다석전기-류영모와 그의 시대』, 교양인, 2012
류영모 말씀, 박영호 엮음, 『씨의 메아리 다석어록』, 홍익재, 1993
박영호 엮음, 『다석 류영모 어록: 다석이 남긴 참과 지혜의 말씀』, 두레, 2002
박영호 엮음, 류영모 글, 『다석 류영모 어록: 제나에서 얼나로』, 올리브나무, 2019
이정호 지음, 『훈민정음의 구조원리-그 역학적 연구』, 아세아문화사, 1975
주요한 편저, 『새벽』, 새벽사(발행인 주요한), 1955년 7월호
안재홍선집간행위원회, 『민세안재홍선집2』, 지식산업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