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최종적인 전쟁 목표는 '우크라이나 쪼개기'

"폴란드, 우크라이나 서부 분할 계획있다" 공개 경고

우크라이나는 역으로 헝가리의 영토 분할 의혹 제기

 

중·동부 유럽의 지정학적 분쟁은 '판도라의 상자'다. 민족과 종교, 역사, 언어가 뒤엉켜 '치명적인 칵테일'로 비화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글로벌 강대국(super power)과 지역 강국(regional power)이 개입하면 분쟁의 규모가 증폭된다. 

개인적으로 중-동유럽의 지정학적 취약성을 처음 깨달은 것은 1995년 부다페스트 출장길에서였다. 방한 경험이 있는 헝가리 국제문제연구소의 아틸라 게르게이 박사는 "국경 밖에 존재하는 소수민족의 문제가 헝가리 국가안보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서울을 방문했을 때 옌볜 자치주에 거주하는 조선족 문제를 아무도 국가안보 사안으로 여기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고 전했다. 

 

지난 5월 9일 바르샤바의 소련병사 영묘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려던 세르게이 안드레프 폴란드 주재 러시아 대사가 반러 시위 군중이 던진 붉은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 난감해하고 있다. AFP통신이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해 재전송했다. 2022.5.9  연합뉴스 
지난 5월 9일 바르샤바의 소련병사 영묘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려던 세르게이 안드레프 폴란드 주재 러시아 대사가 반러 시위 군중이 던진 붉은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 난감해하고 있다. AFP통신이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해 재전송했다. 2022.5.9  연합뉴스 

보스니아 전쟁은 물론, 루마니아 차우세스크 정권의 붕괴 역시 소수민족 문제에서 비롯됐다. 1989년 루마니아 티미소와라에서 시작된 광부폭동이 전국으로 번진 결과였다. 바로 티미소와라가 속한 트란슬바니아 지역에 집중거주하는 헝가리계 주민들의 해묵은 불만이 뇌관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1992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평화적으로 결별한 것 역시 잠복된 갈등이 원인이었다. 

'럼프 스테이트(Rump State)'라는 단어가 서방언론에 자주 등장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평화적 분리 또는 전쟁을 통한 병합, 점령 등의 원인으로 쪼개진 나라를 말한다. 유고슬라비아는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제3의 길'에 성공했던 대표적인 나라였다. 독립적으로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보스니아 전쟁 뒤 이제 8개의 독립공화국으로 쪼개졌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스르프스카,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등이다. 대한민국 영토의 80%를 웃도는 면적(8만8361km2)에 인구 669만명(2022 추계)의 세르비아 외에는 우리 지자체 규모의 소국이 됐다. 

생뚱맞게 30여년 전 시사용어를 끄집어낸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럼프 스테이트'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스니아 '내전'을 나라 간의 '전쟁'으로 만든 지역 강국은 갓 통일된 독일이었다. 헬무트 콜 총리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보다 몇 달 앞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를 국가로 승인해 국제전으로 만들었고, 전쟁 결과 발칸은 마르크화 경제권에 포획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더 큰 외부의 손이 개입하고 있다.

 

전쟁은 공동의 적 앞에서 기존 앙숙관계를 되돌려 놓기도 한다. 지난 20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폴란드 남자의 장례식이 열린 바르샤바 폴베즈키 공동묘지에서 추모객들이 꽃을 들고 관 옆에 서 있다. 2022.12.20  AP연합뉴스
전쟁은 공동의 적 앞에서 기존 앙숙관계를 되돌려 놓기도 한다. 지난 20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폴란드 남자의 장례식이 열린 바르샤바 폴베즈키 공동묘지에서 추모객들이 꽃을 들고 관 옆에 서 있다. 2022.12.20  AP연합뉴스

구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럼프 스테이트'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폴란드와 헝가리가 나온다. 각기 다른 연유에서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쟁 초기인 지난 3월 11일 러시아의 승전으로 젤렌스키 정부가 수도를 리비우로 옮겨갈 경우 우크라이나는 럼프 스테이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폴란드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리비우는 서부 최대 도시로 전쟁 초기 몇몇 외국 대사관이 임시 이전했던 곳이다.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 통신 칼럼니스트인 표토르 아코포프는 지난 4월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끝난 뒤 러시아 세력권 내 럼프 스테이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전 10개월이 지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긍극적인 목표는 점령지를 최대한 확대, 러시아 영토로 병합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지방도 우크라이나로부터 떼어놓으려는 기대를 기회 있을 때마다 내비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수차례 "폴란드가 역사적으로 자국 영토였던 우크라이나 서부의 고토를 회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모스크바 발다이 회의에서도 비슷한 의중을 내비쳤다. 세르게이 나린슈키 대외첩보국(FVS) 국장은 "폴란드는 다른 이해당사국들과 우크라이나 영토를 분할할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역시 수차례 경고했다.

 

폴란드는 볼로디미리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워싱턴 방문 뒤 가장 먼저 찾아간 나라다. 지난 22일 바르샤바 제슈프-야시온카 공항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왼쪽)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2022.12.22  로이터연합뉴스 
폴란드는 볼로디미리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워싱턴 방문 뒤 가장 먼저 찾아간 나라다. 지난 22일 바르샤바 제슈프-야시온카 공항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왼쪽)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2022.12.22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우크라이나 서부 5개 주는 2차대전 이전까지 폴란드 영토였다. 소련의 영토 조정으로 우크라이나에 편입됐지만 지금도 폴란드계 주민이 집중거주하는 지역이다. 러시아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밈(meme)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이 불안하다는 뉴스 또는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있다.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전 폴란드 외교장관은 2014년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푸틴이 2008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도날드 투스크 당시 폴란드 총리에게 우크라이나 영토 분할을 제안했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었다. 지난 3월에는 폴란드 집권 '법과 정의당' 야로슬라브 카진스키 대표의 나토나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제안이 호재로 작용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곧바로 "평화유지군은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서부 영토를 회복하려는 구실"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개전 이후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 반러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폴란드는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폴란드의 '야욕'은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상대로 벌이는 선전전으로 인식된다. 미국 역사학자 스타니슬라프 쿠발딘은 지난 7월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기고문에서 "우크라이나 주민들에게 폴란드가 제기하는 위협의 심각성을 확신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2차대전 뒤 스탈린의 강압에 영토를 우크라이나에 넘겨준 국가는 폴란드 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서부. 노란색으로 표시된 5개주가 2차 대전까지 폴란드 영토였던 지역이다. 분홍색은 헝가리에서, 밤색은 루마니아에서 각각 우크라이나에 편입된 영토다.  위키페디아
우크라이나 서부. 노란색으로 표시된 5개주가 2차 대전까지 폴란드 영토였던 지역이다. 분홍색은 헝가리에서, 밤색은 루마니아에서 각각 우크라이나에 편입된 영토다.  위키페디아

헝가리는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영토 분할 야욕을 의심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 및 국방협의회 올렉시 다닐로우 서기는 지난 5월 "헝가리가 우크라이나 서부 자카르파티아주의 일부를 병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헝가리 정부는 펄쩍 뒤면서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양국은 수년전부터 갈등을 겪어오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공급받고 있는 헝가리는 개전 뒤 나토 30개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우크라이나 지원을 명시적으로 거부하거나 회피하고 있다. 헝가리는 2017년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정부가 헝가리어 교육을 중단하는 내용의 교육법개정안을 확정한 뒤 우크라이나와 갈등을 빚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절충안으로 개정 교육법의 시행을 2023년으로 미뤘지만,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검토하려는 '나토-우크라이나 위원회'의 결성을 막았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 17일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의 코트로세니 대통령궁에서 열린 아제르바이잔-조지아-루마니아-헝가리 4개국 간 '그린 에너지 개발 및 수송을 위한 전략적 동반자 협정' 조인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2.12.17  EPA연합뉴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 17일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의 코트로세니 대통령궁에서 열린 아제르바이잔-조지아-루마니아-헝가리 4개국 간 '그린 에너지 개발 및 수송을 위한 전략적 동반자 협정' 조인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2.12.17  EPA연합뉴스 

자카르파티아주는 역사적으로 헝가리 영토로 15만명 이상의 헝가리계 주민이 살고 있다. 2018년 헝가리 국경과 불과 10㎞ 떨어진 자카르파티아주 베레호브에 군사기지를 설립키로 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결정도 양국간 불화를 덫들였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나토 및 유럽연합(EU) 회원국이다. EU로부터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때문에 힘에 의한 국경의 변경을 시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미국과 서방의 강한 압박으로 러시아가 유지하고 있는 독립국가연합(CIS) 역내 안정이 흔들린다면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각국의 민족주의 에너지가 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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