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서 여름 사이 바다방류 강행키로

하루 500톤 흘려보내도 30년 더 걸려

"안전하다"는 일 정부…탈탈원전 정책도 번복

"일본 바깥 위험증대 모르나" 주변국 거센 반발

후쿠시마 원전 사고 12주기를 이틀 앞둔 9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활동가들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저장탱크가 가득 차는 시기를 고려해 이르면 올봄부터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2023.3.9
후쿠시마 원전 사고 12주기를 이틀 앞둔 9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활동가들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저장탱크가 가득 차는 시기를 고려해 이르면 올봄부터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2023.3.9

일본이 끝내 후쿠시마 사고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 보내겠다는 계획을 이번 봄부터 실행에 옮길 모양이다.

지난 11일로 후쿠시마의 도쿄전력 원전들이 도후쿠(동북) 대지진이 몰고 온 쓰나미로 사고가 나 수소폭발을 일으킨 지 12년이 됐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지금까지도 사고원전 건물 내부의 녹아내린 핵연료 등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대지도 못한 채 냉각수를 주입해 추가 폭발을 막는 한편 늘어나는 방사능 오염수 처리에 매달려 왔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핵연료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수와 바닥에 고인 그 냉각수에 오염된 지하수 및 빗물은 2014년에는 하루 540톤씩 늘다가 2021년에는 하루 130톤으로 줄었으나 지금도 하루 100톤 이상씩 탱크를 채워가고 있다.

도쿄전력은 2025년까지는 이를 100톤으로, 2028년까지는 50~70톤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면서 “오염수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어렵다”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관계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중단 기도회를 하고 있다. 2023.3.10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관계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중단 기도회를 하고 있다. 2023.3.10

일본의 안전=바깥세계의 위험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사고원전 주변 지하를 총 길이 1.5킬로미터의 관으로 둘러치고 영하 30도의 냉매를 순환시켜 땅을 얼림으로써 지하수 유입을 막는 ‘동토벽’을 설치했으나 유입 지하수를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있다. 빗물 침투를 막기 위해 원전 주변 6만 평방미터를 아스팔트로 덮는 페이싱 작업도 벌이고 있다. 이 작업은 지금까지 약 40%를 완료했다. 오염수는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 다핵종 제거설비(ALPS)를 통과시켜 방사능 핵종을 대부분 제거했다는 그 방사능 오염수를 보관해 온 원전 부지 내의 대형 탱크들이 수용 한계에 도달했다. 부지 내의 탱크들에 지금까지 보관된 오염수 총량은 도쿄의 실내체육관 도쿄돔을 채우고도 남는 약 132만톤으로, 약 1천개나 되는 전체 탱크 용량의 96%까지 차 있다. 올해 가을이면 꽉 차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 놓은 해결책이 이번 봄부터 여름 사이에 원전 앞바다로 이 오염수를 흘려 보내겠다는 것이다. 부지 내에 탱크를 더 지을 여유공간이 없고, 지금 있는 탱크들도 원전시설 폐기작업(폐로 작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비용과 안전 등을 고려할 때 해양방류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 일본정부와 도쿄전력 입장이다.

일본의 비용 절약과 안전 확보가 일본 바깥 세계의 비용 증대와 위험 증대로 이어질 수 있는 이항대립 관계를 모르는 것일까, 알면서도 그러는 것일까.

도쿄전력은 하루 최대 500톤의 오염수를 방류할 계획인데, 그 계획대로 하더라도 탱크의 오염수들을 다 비우는데에만 적어도 30년이 더 걸린다.

일본정부는 폐로 작업을 완료하는데에도 30~40년이 걸리고, 8조 엔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과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다.

 

일본방사성오염수방류저지공동행동,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단체가 1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의 일본 정부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장기보관 요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3.10
일본방사성오염수방류저지공동행동,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단체가 1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의 일본 정부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장기보관 요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3.10

오염수 방류에 반발하는 일본 현지 주민들

후쿠시마와 인근 지역 현지 주민들 대다수는 오염수 방류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과 태평양 연안국 및 섬나라들도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방류 강행 태세를 바꿀 기미가 없어 보인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월에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이바라키 등 4개 현의 해안지역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피난지시가 내려진 51개 시·읍·마을의 수장들에게 오염수 해양방류에 관한 앙케이트 조사를 벌였는데, 주민들의 이해나 신뢰 얻기 등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내세워 온 대책이 충분하다고 응답한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충분한 편이다’고 답한 사람은 6명인데 비해, ‘부족하다’ ‘부족한 편이다’고 답한 사람이 34명이었다.

현지 어민들은 대부분 방류에 반대하고 있다. 후쿠시마 현 소마 시의 한 어민은 “나라와 도쿄전력은 설명회에서 안전이나 풍평(나쁜 소문) 대책을 세웠다고 선전하지만, 방류 이후의 어업진흥책에 대해 물어 보면 ‘담당이 아니어서 대답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는 몇 번이고 설명회를 해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일본정부는 현지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대규모 기금을 만들어 수산물의 판매확대와 어선 연료비 지원 등에 800억 엔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에는 어획물에 대한 나쁜 소문으로 피해를 볼 경우의 배상기준까지 작성하고 농림수산업자나 자치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1천 번이 넘게 설명회를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결과는 신통찮다.

후쿠시마 현 연안의 어민들은 사고 뒤 어로를 중단하는 ‘조업 자숙’에 들어갔으나 2021년 3월 말까지 어종이나 어획량을 줄이고 출하지에서의 평가를 확인하는 ‘시험 조업’을 실시한 뒤, 자유롭게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본격 조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해 어획고는 약 34억 9798만 엔으로 사고 전년도의 38%에 지나지 않았다. 어획량 자체도 줄었겠지만,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잡은 물고기들을 예전만큼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풍평 등으로 수요가 줄어든 것이다.

이런 판에 하루 수백 톤의 오염수를 인근 바다에 흘려 보낼 경우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30~40년을 계속 흘려 보내겠다니.

 

일본방사성오염수방류저지공동행동,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단체가 1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의 일본 정부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장기보관 요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3.10
일본방사성오염수방류저지공동행동,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단체가 1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의 일본 정부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장기보관 요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3.10

투명하지 않은 일본정부 공개 정보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출이 안전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원자력규제위원회는 2022년 7월에 “안전성에 문제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후쿠시마 어민단체 등 현지 주민들은 이를 불신하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2015년에 후쿠시마 어민단체에 “오염수는 관계자들의 이해 없이는 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얘기다.

일본정부는 2020년 4월부터 10월까지 후쿠시마 현과 도쿄도에서 ‘의견을 듣는 장’을 여는 등 해당지역 자치체와 농림수산업자들, 소비자단체, 경제단체 등과 이를 알리기 위한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벌여 왔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방류에 반대하는 것은 후쿠시마 현 어민단체들만이 아니다. 미야기 현 지사나 현 의회도 해양방류가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풍평(나쁜 소문)이 퍼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안전하다’는 정부발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도쿄전력 쪽은 ALPS로 위험한 방사능 핵종을 대부분 걸러낸다고 밝히고 있으나, 세슘 137, 스트론튬, 트리튬(삼중수소) 등의 방사능 핵종들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도 아니고, ALPS 자체가 완전하게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탱크에 보관 중인 처리된 오염수에서도 허용치를 크게 웃도는 방사능이 검출되기도 했다. 트리튬은 ALPS로는 아예 제거할 수 없는데, 바닷물로 허용 기준치(1리터당 6만 베크렐)의 40분의 1인 1500베크렐 미만으로 희석시켜 내보내겠다고 일본정부는 밝혔다.

하지만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이런 문제제기나 의혹을 누그러뜨릴 만큼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인체 허용 방사능 기준치를 자의적으로 대폭 올려 불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방류 해저터널 공사 200미터 남아

이런 의혹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쿄전력과 정부는 마치 정해진 스케줄(일정)이 있는 것처럼 계획한 공사들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사고원전 앞바다에 해안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해저터널을 만들어 방류하겠다는 것인데, 공사는 지금까지 약 200미터 정도를 남겨 둔 상태다. 작업은 이번 봄 중에 끝날 것이고, 방류는 봄에서 여름 사이에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 정책까지 뒤집은 기시다 정권

일본정부는 이와함께 기존의 신규 원전 건설과 노후 원전 가동 중단 방침까지 지난해에 갑자기 뒤집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일본정부는 “원전 의존도를 가능한 한 낮춘다”는 방침 아래 독립성을 높인 원자력규제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안전규제도 강화하고, 원전의 가동기간도 제한했다.

그러나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 지난해 이를 “원전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쪽으로 방침을 완전히 뒤집어, 신규 원전 건설과 노후 원전의 60년 이상 가동을 허용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가 닥쳤고, 에너지 안정공급과 탈탄소를 양립시키겠다는 것을 그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원전 신규 건설에는 최소 몇 년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과 원전 건설을 연계시키는 건 전혀 그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탈원전정책을 뒤집기 위해 기회를 노려오던 원전 마피아 등 원전 이권집단이 내세운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원전사고 지역의 방사능 오염토 처리문제도 전혀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능 오염 ‘핵 쓰레기’ 처리 장소 문제도 해결될 기미가 없다. 그럼에도 국민적 논의도 없이 탈탈원전, 즉 원전회귀를 강행하는 것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재난 자체를 풍화시키고 ‘원전은 안전하다’는 원전안전 신화를 부활시키려는 것이라고 아사히는 비판했다.

아베 정권에서 장기간 재무대신을 지내고 지금은 자민당 부총재로 있는 아소 다로가 얼마 전에 “원전에서 사망사고는 없었다”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해 비난을 산 것도 그런 원전안전신화 만들기 캠페인의 일환일 수 있다. 희생자들과 천문학적인 규모의 경제적 피해, 여전히 해결 전망조차 보이지 않는, 12년 전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사람들은 이미 다 잊었다고 아소 다로는 생각하는 듯하다. 비극의 망각과 탈탈원전으로의 방향선회에 12년이면 족하다고 그는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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