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당’을 아십니까?
조소앙+한살림, 세상에 없는 정치 실험하기
지금 여기, 각자의 ‘한살림당’을 만들자
생명정치 5개년 계획’에 관한 또 하나의 생각
‘연결’이 중요한 '만인만당' '나홀로당'의 그물망
‘한살림정치’의 전제조건, '텅빈 충만' 구공존이
‘한살림당’은 우리 현대사에서 실제로 활동했던 정치조직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조소앙이 1922년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의 이름이 ‘한살림당(韓薩任黨)’이었다.
한살림당, 세상에 없는 정치 실험하기
그 당시 한살림당의 최종목표는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인류 대동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나에게 한살림당의 지향은 ‘죽임’의 세력을 안고 넘어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공생하고, 우주·사회적 공공성이 실현되는 한살림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지금 나의 머릿속에서는 100년 전 대동세계를 꿈꾸었던 한살림당과 2024년 오늘 ‘생명살림’ 세상을 꿈꾸는 100만 조합원의 생산-소비 생명공동체 ‘한살림’의 이미지가 겹쳐진다(2023년 말 기준으로 ‘한살림’의 조합원은 약 89만명이다).
그렇다. 21세기의 한살림당을 만들자는 말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없던, ‘놀람’과 ‘감탄’의 정치가 요구되고 있다. 기후파국 시대, 생태적 재난과 사회경제적 혼란을 예비해야 할 때이다. 포스트 성장시대, 다른 삶과 사회적 체계를 준비해야 할 때이다. 대전환의 시대, 생명살림 문명을 선도할 생명정치의 전위부대가 절실한 때이다.
그러나, 21세기의 한살림은 ‘대동단결(大同團結)’의 그것과 같은 ‘크게 하나됨(大同)’이 아니다(조소앙의 ‘한살림당’은 ‘대동당(大同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늘 우리에게 한살림은 ‘한(ᄒᆞᆫ)’이라는 접두사가 시사하듯이, ‘모두’의 ‘한 살림 세상’이면서 ‘각자’의 한 살림 세상‘이다.
단결 아닌 연결이 중요한 '만인만당'의 그물망
또한, 오늘의 한살림은 ‘결속된 덩어리(團結)’가 아니다. ‘단결’이 아니라 ‘연결(連結)’이 중요하다. 더욱이 그것은 ‘전체적인 연결’이 아니라, ‘부분적인 연결들’이다. 지구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지구 전체를 볼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전일론(holism)’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지적 시점의 통찰도 중요하지만, 나의 곁, 나의 이웃이 더욱 중요하다. 나에게 한살림당은 각자의 신체가 경험한 세계를 서로 교감하는 ‘관점들(perspectives)의 네트워크’이다. 각자의 정치적 입장들이 출렁이는 ‘만인만당(萬人萬黨)’의 그물망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목표는 기존의 세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일부인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존의 세계를 통째로 삭제할 수 없다. 우리는 다중우주적인 세계에서의 ‘배치의 재배치’를 고대한다. 기존 정당들의 혁파가 아니라, 기존 정당들 사이 새로운 정당의 태동을 통해 ‘정치판의 재구조화’를 소망한다. 3%의 소금이 되고, 21%의 산소가 된다면, 권력정치의 관성과 진보/보수의 구도를 흔들고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태동시킬 수 있다.
‘변이’ 없이 진화 없다. ‘차원변화’ 없이 전환 없다. ‘놀라움’과 ‘감탄’은 둘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이런 변이와 차원변화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서사를 통해 한 세계를 태동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다. 특별히 기후파국 시대, 생명-생태의 시대, 포스트 휴먼(인본주의 이후)의 정치형식을 발명해야 한다. 인간-비인간 공동의 ‘한살림 정치’가 그것이다. 그렇다. 오늘 나에게 생명정치의 이름은 한살림 정치다.
생명정치 5개년 계획(?)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2027년 3월 3일에 실시될 예정인 21대 대통령선거가 역사적인 분기점, 문명사적 결절점이 될 것이라고. 진보/보수의 대회전이 예고되고 있지만, 기후재난, 대지진, 팬데믹 등 예측할 수 없는 생태적 재난과 포스트 성장시대의 경제적 혼란은 ‘세상에 없는 정치’를 강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진보정치는 역사적 수명을 다했고, 녹색당은 한계를 남김 없이 드러냈다
또 다른 정치, 또 다른 세력, 또 다른 정당이 절실하다. 한살림정치가 그것이다(‘다사리정치’도 좋고, ‘생명살림정치’도 좋다.). 브뤼노 라투르가 『녹색계급의 출현』에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듯이, 그것은 인간-비인간들의 공생 네트워크를 통해 ‘구성’된다. 그리고, 그것은 (‘구조기획’과 구분되는) ‘과정기획’을 통해 촉진될 수 있다. 한살림당도 그 과정의 일부다. 이름하여, ‘생명(살림)정치 5개년 계획’이다. 물론 결정적인 계기는 2027년(4차년도) 대통령선거다.
-2024년(1차년도): ‘한살림정치(다사리정치, 생명살림정치)’의 시작. 다양한 논의와 학습.
-2025년(2차년도): ‘만물공동회’ 및 ‘만당공동회’의 개회와 비정당적 정치네트워크로서 지역적이면서 전국적이면서 지구적인 ‘한살림정치 네트워크’(혹은 ‘생명살림정치 네트워크’’)의 형성.
-2026년(3차년도): 2026년 6월 3일에 실시 예정인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여. 정당 참여는 지역의 현실에 맞게 자유롭게 선택하되, ‘한살림정치 네트워크(가칭)’ 차원에서 공동 정책캠페인 및 선거운동 지원.
-2027년(4차년도): ‘한살림당’(혹은 ‘생명살림당’) 창당. 2027년 3월 3일 실시 예정인 대통령선거 독자 후보 추대 및 다른 후보와의 연대 모색.
-2028년(5차년도): 2028년 상반기에 실시 예정인 국회의원 선거에 독자 정당으로 참여. 비례 기준 득표율 20%를 목표로. 다당제 구도 하에서 ‘오행(五行)’의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살림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국민의 힘’과 ‘민주당’의 양당 구도로 상징되는 기존의 정치질서는 공고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갖가지 모습으로 새로운 정치들이 생성되고 있다. ‘한살림정치’는 이를 고무하고 격려하고 연결할 뿐이다.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념과 가치가 생명활동의 향방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굴신(屈身)’하며 동시에 ‘저항’하는 생명의 약동이 이념과 가치를 구성한다. 사회체계와 문명이 생명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생명세계의 자기돌봄을 위해 문명과 사회체계를 선택하고 구성한다.
나에게 생명정치의 이념은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한살림’이다. 민족운동가 안재홍의 ‘다사리’이다. 혹은, ‘생명살림’이다. 그러나, 그것은 21세기형 운영원칙과 조직형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한살림당은 모두의 한살림당이면서, 각자의 한살림당이다. 한살림당은 ‘만인만당’ 시대의 당이다. 그 조직적 형식은 ‘당들의 당’인 것이다. 단, 한살림(다시리, 생명살림)이라는 지향에 대한 공감과 함께, ‘구공존이(求空存異)’(후술 예정)의 원칙에 동의해야 한다.
한살림당은 ‘당들의 당’이다. 규칙에 동의하는 누구나 오갈 수 있는 ‘플랫폼 정당’, 혹은 연결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기술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정당’이나 ‘네트워크 정당’의 외형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생명의 관점에서 디지털기술은 인류의 놀라운 성취이지만 생명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한살림당은 뭇 생명이 마주침으로 생성변화하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정당이자, 다양한 교의와 가치가 요동하며 차원변화하는 ‘포함삼교(包含三敎)’의 정당이다. 인간과 비인간, 역사와 문명, 시간과 공간을 횡단하는 우주생명의 ‘판/마당’이다. 우리에게 그 이름은 ‘한살림’이다. ‘생명살림’이라고 말해도 좋고, ‘다사리’라고 말해도 좋다. ‘공생’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때 생명은 영적이면서도 신체적이다.
‘전북’과 ‘경북’, ‘정읍’과 ‘춘천’처럼 지역 간 네트워크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정치’와 ‘미래의 정치’와 ‘현재의 정치’를 넘나드는 시간적 중첩도 중요하다. 또한 한살림당은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실제적 현실’의 당이며 동시에 토끼와 호랑이가 함께 뛰노는 ‘환상적 현실’의 당을 아우른다. 판타지 당, 가상의 당을 만들어 참여할 수도 있다. ‘나홀로’ 당도 가능하고, ‘끼리끼리’ 당도 가능하다.
우리 역사 속에는 이미 수많은 당들이 있었고, 또 당들의 이미지를 그려볼 수도 있다. 홍대용의 ‘인물균당’, 조소앙의 ‘한살림당’, 안재홍의 ‘다사리당’, 김지하의 ‘수왕회’ 등등. 우리 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리는 ‘동학당(東學黨)’이었다. 이때 동학당이란 ‘동학의 무리’를 뜻했으나, 그 뜻을 이어 실제로 정치결사체를 만들기도 했다. 해방 이후 북쪽에 제도정당인 <천교도 청우당>이 만들어졌는데, 그 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지하당도 있었다. 1923년 서울에는 ‘불불당(不不堂)’, 평양에는 ‘오심당(吾心堂)’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조직되었으며, 1929년 두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여 ‘오심당’으로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나에게는 현존하는 한국의 녹색당도 ‘한살림정치’를 통해 연대하고 연결해야 할 ‘한살림당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나에게 서구형 생명정치의 원형은 유럽의 녹색당이 아니다. 『에코토피아』라는 소설 속의 정당이 더욱 친근하다. ‘생존당’(the survival party)이 그것이다. 나에게 ‘생존당’은 기후파국 시대에 도래할 생명정치의 현실이다. 여기에서 ‘생존당’은 살아남기 위해 만인과 투쟁하는 정당이 아니다. 파국적 생태위기 시대 생태주의자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이다. 생존당은 미 연방으로부터 캘리포니아의 독립을 이끌어내고, ‘에코토피아’의 꿈을 실현하는 정치적 모태가 된다.
한살림당의 정치적 기반-‘나홀로당’의 그물망
‘만인만당’의 시대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되묻는다. ”생명정치를 구현할 정당이 실제로 가능할까요?“ ”조직적 기반이 있나요?“ ”대중적인 인물은 있나요?“
그렇다. 한살림당은 기존의 정치질서 안팎을 넘나들어야 한다. 근대적 정치체계 안에 있으면서 비근대적 정치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닌, ‘귀신’ 같은 정당, ‘유령’ 같은 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정치체계 안에서 작동되기 위해서는 표를 얻어야 하고, 그것을 이끌어 낼 조직적 기반과 정치적 인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거에 참여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귀신도 유령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실체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실존하는 100만 조합원의 생활협동조합이자 생산자공동체인 한살림은 가장 귀하고도 실질적인 조직적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명’과 ‘영성’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등 종교단체들이 중요한 잠재적 조직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아마도 현실적으로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은 반려동물 인구가 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기준으로 한국의 반려동물 양육인구는 602만 가구 1306만 명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0% 가까이가 개와 고양이와 ’한살림’이다. 동물단체들은 가장 강력한 전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생명평화운동 단체들과 환경운동 단체들도 중요한 조직적 기반이 될 것이다. 도시의 수많은 명상인구와 방방곡곡 수행하는 도인들도 중요한 정치적 도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살림당이 특별히 주목해야 할 존재들은 ‘각자의 한살림’을 살고 있는 1인 가구들이다. 오늘날 우리는 1인 가구 1천 만시대, 혼밥, 혼술, 혼통(혼자 통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 1인 가구는 2024년 상반기 기준으로 전체 가구(2400만 세대)의 41.7%를 차지한다. 우리는 수운 최제우가 말한, ‘홀로 있으되 떨어질 수 없음을 아는’ ‘각지불이(各知不移)’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한살림당은 무엇보다 ‘나홀로당’의 그물망이다.
‘한살림정치’의 인물들은 앞서 이야기한 조직, 인구 안에서 잠재적 ‘한살림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만물공동회’와 ‘만당공동회’의 과정에서 혜성과 같이 출현할 것이다.
지금 여기, 각자의 한살림당을 만들자
그렇다면, 지금 여기 한살림당, 혹은 한살림정치를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각자의 ‘한살림당’을 만드는 것이다. 각자의 ‘생명-개벽당’을 창당하는 것이다. ‘나홀로당’도 좋고, ‘끼리끼리당’도 좋다.
법률가로 활동하는 어느 도반은 법을 공부하면서도 동시에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법이 예술이당’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사용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정읍이 우주의 배꼽’임을 굳게 믿고 있는 나는 ”정읍이 우주의 배꼽이당“을 만들고 싶다. 우선은 나홀로 ‘우주의 배꼽이당”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귀촌한 베이붐 세대와 캠핑을 좋아하는 MZ세대이 꿈꾸는 “나는 자연인이당”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다. 전국 거의 모든 지역에서 캣맘들의 “고양이 엄마당”이 활동을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청년들의 ’한류당‘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24년 올해 가을과 겨울 당장 ’한살림정치‘ 이야기, 한살림당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그리고, 2025년 상반기에는 ’만인만당(萬人萬黨)의 한살림 정치축제를 열어보자. ‘만물(萬物)공동회’를 빗대어 ‘만당(萬黨)공동회’도 괜찮을 것 같다. 첫 번째 ‘만인만당’의 한살림 정치축제 장소로 동학혁명의 땅 정읍 고부는 어떠한가? 혹은 동학사상의 시원지 경주 용담은 어떤가? 혹은 1893년 2만명 동학도인이 집회를 연 ‘보은취회’의 현장에서 개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1898년 ‘만민공동회’가 열렸던 서울 종로도 좋다. 그렇다. 모여야 ‘사건’이 일어난다.
‘한살림정치’의 전제조건, '텅빈 충만' 구공존이(求空存異)
한 살림당과 한살림정치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구공존이(求空存異)’가 그것이다. 구‘동’존이(求同存異)가 아니라 구‘공’존이(求空存異)다. ‘차이’를 존중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같음’을 추구하는 것을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생명의 인식론으로 볼 때 우리는 각자의 경험 세계를 떠날 수 없다. 우리는 보는 것만을 볼 수 있다.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없다. ‘공동의 세계 만들기’는 ’같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텅빈 충만‘의 힘으로부터 생겨난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구동존이‘는 1950년대 주은래 시절 중국공산당의 제3세계 전략이었다. 그때는 나름의 의의가 있었으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대전환시대, 우리가 ‘함께 살아갈 세계’는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각자의 문제와 염원을 공개하고 협상하고 ‘공동으로 구성’해야 한다. ‘구공존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욱 자세히 이야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