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감세의 귀결…내년 예산 증가율 역대 최저 2.8%
총수입은 아예 2.2% 준 612조원…적자 92조로 확대
대책없는 '부자 감세'로 국세 33조원 줄어 '세수 펑크'
관리재정 적자비율 3.9% 정부 설정 준칙 한도 초과
23조원 구조조정…총선 의식(?) 구체 내용 공개 안해
"무리한 긴축으로 경기 불확실성 대응력 저하" 비판도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역대 가장 낮은 증가율로 긴축 편성했다. 총지출 규모가 656조 9000억 원으로 올해 본예산 대비 2.8% 증가에 그쳤다. 정부의 내년 경상 성장률 전망치 4.9%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총수입은 612조 1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2.2% 감소했다. 국세 수입이 33조 원 넘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대책없이 '부자 감세'를 하다 생겨난 '세수 펑크'로 도리 없는 고육책으로 보인다.
이처럼 극도의 긴축을 했지만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92조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58조 2000억 원보다 33조 8000억 원이나 늘어난 규모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2.6%에서 50%나 늘어난 3.9%로 증가했다. 이는 정부가 정한 재정준칙상 한도 3%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정부는 29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2024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9월 정기국회에 이날 의결한 예산안을 제출한다. 국회는 각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오는 12월 새해 예산으로 확정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4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사전 브리핑에서 "대폭 감소한 세수 여건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재정수지 적자 악화 폭을 최소화했다"며 "건전재정 기조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정 건전화는 경기 상황을 고려해 중장기적으로 도모해야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중국 경제의 침체와 미국의 고금리 기조 등을 감안할 때 급격한 재정 긴축은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특히 세수 기반 확충에 대한 중장기 복안을 마련할 의지는 보이지 않고 경제 전반에 충격을 가져올 수 있는 재정 지출 구조조정만 외치는 정부의 자세가 안타깝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건전성은 중장기적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라며 "재정건전성 수치가 일시적으로 안 좋게 나오더라도 중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재정을 사용하면 세수 기반도 확충하면서 경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은 올해 본예산보다 18조 2000억원(2.8%) 늘어난 656조 9000억 원이다. 세출예산 증가율이 기재부가 지난 6월 말 재정전략회의에서 보고된 '4%대 중반'보다도 2%p 가까이 낮아진 수치다. 윤석열 정부가 처음으로 편성한 올해 예산의 지출 증가율(5.1%)의 절반 수준이다.
내년 예산안의 총수입은 13조 6000억 원(2.2%) 줄어든 612조 1000억 원이다. 기금 등 국세 외 수입을 19조 5000억 원 늘렸지만, 국세수입이 33조 1000억 원 줄어들어 총수입 감소를 피하지 못했다.
총지출은 증가하고 총수입은 감소해 그 격차만큼 재정수지는 악화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58조 2000억 원에서 92조 원으로 33조 8000억 원 늘면서 GDP 대비 적자 비율이 2.6%에서 3.9%로 1.3%p 높아지고, 국가채무는 61조 8000억 원 늘어나게 됐다.
기재부는 오는 2025년부터는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3% 이내에서 관리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내년 예산안에서도 그나마 세출 예산의 분야를 조정했지만 세입 예산에 대한 복안은 보이지 않는다. 부자 감세의 방향을 전환하지 않는 한 세입의 증가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약 23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4조 원에 이어 2년 연속으로 20조 원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어갔다. 유례없는 세수 부족으로 총지출 증가 폭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구조조정을 통해 필요 사업에 투입할 재원을 확보하고 재정을 정상화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세부적인 구조조정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복지 분야 예산 구조조정 등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다만 기재부는 주요 구조조정 분야로 연구개발(R&D) 및 국고 보조금 사업을 꼽았다.
특히 R&D 사업에서 7조 원, 보조금 사업에서 4조 원 규모의 구조조정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국가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R&D 예산을 줄이는 것은 국가 역량 제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다. 더구나 이 같은 결정이 윤석열 정부의 전임 정부 성과를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어서, 국회 심의과정에서 큰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세출 분야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재원을 약자 복지를 비롯한 민생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출의 4대 키워드로 ▲ 약자복지 ▲ 미래준비 ▲ 일자리 창출 ▲ 국가 본질기능 수행 등을 꼽았다.
저출산 대응을 위해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12개월에서 18개월로 6개월 확대한다. 신생아 출산 가구에 대해서는 특별공급(분양)을 신설하고 공공임대를 우선 공급한다. 사병 월급(병장 기준)을 사회진출지원금을 포함해 월 130만 원에서 165만 원으로 인상하고, 대중교통 요금할인을 제공하는 K-패스를 도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