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세게?”…중국의 수산물 전면금수에 당혹한 일본
금수 장기화 땐 800억 엔 기금으론 대처불능
한해 중국홍콩 일본산 수입액 1조 5000억 원
배경엔 미일동맹과 중국 간의 전략적 대치
윤 대통령 정치입장 고려한 해양 투기 시기결정
“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세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일본 농림수산성 간부)
중국 맞대응 전면금수 “뜻밖”
지난 24일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강행하자 중국은 일본을 원산지로 한 모든 수산물에 대한 수입을 전면금지했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일본정부 내에서는 중국의 이런 맞대응 조치가 “상정했던 것 이상” “뜻밖의 대응”이라며 당혹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향후 경제적인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양국 관계가 호전되지 않아 정치적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정부는 핵오염수 투기를 시작하면 중국정부가 무슨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미 실시해 온 규제를 좀 더 강화해 “불매운동을 벌일지도 모르겠다”(일본총리 관저 간부)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아사히>는 썼다.
그러나 중국이 실제로 취한 조치는 일본 전국의 어업 관계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전면 금수’였다. 일본 총리관저의 외교담당관은 “뜻밖의 대응”이라며 놀랐고, 앞으로의 사태전개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해양 투기가 시작된 24일은 중국 상하이에서 ‘국제어업전람회’가 이틀째 열려, 약 30개국에서 4천개가 넘는 업체들이 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기업은 겨우 몇 개밖에 없었다. 해양 투기 강행 전부터 일본업체들은 이미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전면 금수 조치가 발표되자 일본쪽 관계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냉동 제품은 재고가 있지만, 앞으로 거래처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다”고 일본산 냉동 참치를 취급해 온 한 업자는 걱정했다.
지난해 일본수산물 중국 수출액 871억, 홍콩 755억 엔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수산물의 중국 수출액은 나라와 지역을 통털어 가장 많은 871억 엔이었다. 이 가운데 467억 엔으로 품목별 최다액을 차지한 것은 횟감으로 인기가 높은 가리비다. 일본산 냉동 가리비 도매업자는 “방출(투기) 전에도 거래가 있는 수십 곳의 가게로부터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앞으로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24일부터 일본 10개 도현 수산물 수입을 중단한 홍콩의 지난해 일본산 수산물 수입액은 755억 엔으로 중국에 이은 두 번째였다. 홍콩의 금수 조치만으로도 일본이 입게 될 손실은 적지 않다. 지난해 중국과 홍콩으로 수출된 일본산 수산물 액수를 합치면 1626억 엔(약 1조 5000억 원)에 이른다.
금수 장기화하면 800억 엔 기금만으론 대응 불능
중국에서는 지금까지는 지켜보겠다는 시민도 많았으나 이제 슈퍼나 인터넷 쇼핑에서 소금이 한국에서처럼 품귀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가 나온 직후인 7월 초에 중국은 2011년 3월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때부터 금지해 온 일본 10개 도현의 수산물 외의 수입품들에 대해서도 방사능 검사를 강화했다. 세관 통관에 2주에서 1개월이나 걸려, 선도가 생명인 냉장 생선들은 사실상 수입이 중단됐다.
이번의 전면 금수 조치는 일본 전국의 수산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냉장과 냉동 구별이 없으며, 어패류와 갑각류, 해조류도 대상에 포함된다.
중국에 대한 일본의 수산물 수출은 전체 수산물 수출의 20%를 차지한다. 규제를 강화한 홍콩에 대한 일본산 수산물 수출액도 중국 다음으로 많다. “중국과 홍콩을 대체할 수출 대상지를 찾기가 간단치 않다. 중국이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나.”(농림수산성 간부)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전면 수입금지 발표 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전어련)의 사카모토 마사노부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양 투기를 위해 적립해 온 총 800억 엔(약 7360억 원)의 기금을 신속하게 활용하고, 수산물 수매에도 나서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전면금수가 장기간 이어지면 기금만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일본정부는 긴급대책으로 수입금지의 영향을 받는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창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8월 말에는 기시다 총리와 니시무라 경산상 등 정부 고위관리들이 산리쿠(미야기, 이와테, 아오모리 현) 앞바다에서 잡은 수산물을 먹는 모습을 공개해 안전성을 알리는 퍼포먼스도 검토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24일 밤 “외교 루트를 통해 중국 쪽에 즉시 (전면금수) 철폐를 요구했다”고 밝혔지만, 관례적 제스처일 뿐 소용없어 보인다.
정치문제화한 핵오염수 해양 투기
중국 외교부의 대일 강경자세에는 악화된 중일관계가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일본이 “이해 관계자와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일본쪽은 “과학에 입각한 협의를 하자고 중국 외교부에 몇 번이나 촉구해도 응답이 없었다”고 비판한다. 해양 투기 얘기만 나오면 일본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과학에 입각한”이란 레토릭이 실은 모든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애물임을 일본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정부와 IAEA가 돈을 매개로 일종의 협잡을 했다고 의심하는 중국은 일본이 주장하는 ‘과학’적 근거를 믿지 않는다. 1백만 톤이 넘는 방사성 핵오염수의 대량 투기가 해양 생태계와 사람에게 끼칠 장기간의 영향에 대한 조사도 없었다.
“원칙적인 논의뿐만 아니라 물밑에서 터놓고 얘기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는 양국 정부간의 악화된 관계도 핵오염수 해양 투기 강행 이후의 상호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해양 투기가 양국간 정치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외교 당국자간 교섭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가 없는 이상 “정상들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 배경에 깔려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둘러싼 미일동맹 또는 한미일 ‘준삼각동맹’과 중국 또는 북중러 동맹간의 대립과 갈등이 아닐까.
윤 대통령 정치입장 고려한 해양 투기 시나리오
한편 일본정부의 핵오염수 해양 투기 시기 결정과 관련해 3개의 시나리오가 검토됐다고 <아사히>가 25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제1안은 9월에 어로금지가 풀릴 때와 가능한 한 시간적 거리가 먼 ‘8월 초순’ 안이다. 그런데 중국정부가 ‘처리수’를 ‘핵오염수’로 부르고 위험성에 대해 계속 주장하는 바람에 “정보전을 치를 필요가 있다”(총리관저 간부)는 판단에 따라 8월 초순에 빈에서 열린 핵비확산조약(NPT) 재검토회의 모임에서 방출(투기)계획의 안전성을 주장하기 위해 미루기로 했다. 그때가 해수욕철이어서 그것을 피하자는 계산도 있었다.
제2안은 8월 중순의 ‘오봉(お盆. 우란분재. 백중맞이 연휴) 뒤’ 안이다. 한미일 정상회담이 원래 예정됐던 8월 하순에서 18일 개최로 앞당겨지는 바람에 백지화됐다. 회담 전의 방출(투기) 또는 방출결정이 방출에 일정한 이해를 보여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에게 마이너스가 된다고 판단한 것도 작용했다.
18일의 한미일 정상회담 직전에 해양 투기를 강행하거나 해양 투기 시기를 결정해서 발표하면 한미일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을 줘서 내년 총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기에 피하자는 것도 고려 사항 가운데 하나였다는 얘기다. 일본 자민당 정부는 한국에서 자신들과 정치성향이 비슷한 우파가 계속 집권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윤 정부에게 정치적으로 불리한 언행을 극도로 삼가는 경향이 있다.
해양 투기를 내년 한국 총선 때와 가능한 한 시간적 거리를 둬서 그 영향을 적게 받을 수 있도록 차라리 일찍 앞당겨서 투기해 달라고 한국 정부 여당이 일본쪽에 요청했다는 <아사히>의 보도가 근거없는 게 아니라는 것도 이 제1안, 제2안 고려사항이 짐작하게 한다.
결국 제3안인 ‘8월 하순’ 안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었는데, 기시다 정권의 운영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시다 총리가 미국에서 귀국한 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방출하자는 안이었고, 실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