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유서와 불에 탄 명찰, 그리고 눈물
현실이 된 '제2의 유서 대필 조작 사건', 그 뿌리
조선일보 '건폭몰이'에 공범이었던 기자들의 원죄
"노조 탄압 중단시켜 주세요…동지들 풀어주세요"
언제까지 받아쓰기로 마녀사냥에 동참할 것인가
유족과 동료들 흘린 눈물이 역사의 법정 증거될 것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월간조선>은 "[단독] '분신 사망'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유서 위조 및 대필 의혹"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경찰이나 검찰에게서 넘겨받은 것으로 보이는 CCTV 화면을 근거로 '분신 방조' 조작을 시도하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진실이 밝혀지기 바랍니다"라며 호응한 것에 이어진 보도였다. 이를 통해 '제2의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이라는 비판은 비유를 넘어서 현실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 됐다.
돌아보면, 1991년의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87년 6월항쟁 이후의 변화에 대한 노태우 정부의 대대적인 '반혁명' 시도 속에서 등장했다. 그때도 주역은 우파 정권과 정치검찰과 족벌언론들이었다. 지금 전광훈 목사가 있듯이 당시에는 박홍 신부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기득권 카르텔의 반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더 중요한 요인은 그 1년 전에 있었던 '3당 합당'이었다.
김영삼과 민주당이 노태우의 품에 안기면서 반독재 운동 진영은 분열했고, 한때 '민주화 운동'의 일부였던 사람들이 정권과 족벌언론과 손을 잡게 됐다. 그러면서 독재와 학살의 후예들은 이제 자신들이 박정희나 전두환과는 다른 세력이 된 것처럼 행세할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광주를 찾아가 "오월 정신"을 말할 수 있게 된 뿌리는 여기에 있다.
당시에도 재야인사였던 김지하 시인 같은 사람들이 "죽음의 굿판"을 말하면서 마녀사냥을 측면 지원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신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잃어버렸다는 진실을 숨기고 이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낡았다'고 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검찰이 흘리고 <조선일보>가 터트리면 같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진보적 지식인'이나 청년 정치인들마저도 족벌언론에 기고하고 인터뷰하는 것이 '낡은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쿨한 태도가 됐다.
하지만, 역사는 단순히 반복될 수 없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의 투쟁과 희생 위에서 만들어온 성과와 전진들은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의 '제2의 유서 대필 조작' 시도에 강한 태클을 걸고 있다. 그동안 '정치검찰-족벌언론 받아쓰기'에 열심이던 대부분의 언론도 <조선일보>의 '분신 방조와 유서 대필 조작' 보도까지는 차마 받아쓰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반박하는 보도들도 보기 어렵다. 언론사와 기자로서의 '끈끈한 동료 의식'이 진실과 정의에 대한 추구보다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건폭몰이'에 동참했던 그들 스스로가 찔려서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민들레>가 있고,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반박과 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두드러지는 것은 MBC 뉴스들이 보여주는 진실 찾기이다. MBC는 <조선일보>가 '분신방조범'으로 조작하려 했던 건설노동자 동료를 직접 인터뷰하고 현장 목격자들을 취재해 진실을 밝혔고, 이어서 엄밀한 필적감정을 통해 <월간조선>의 '유서 대필 조작' 시도에 맞섰다.
5월 23일 MBC 뉴스에서 고 양회동 열사의 유서들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동일인이 작성한 유서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 뉴스에서 더 놀랍고 가슴 아팠던 것은 고인이 남긴 유서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YTN 기자, 즉 언론을 향해 남긴 유서였다. 이 유서에서 고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탄압이 저 하나의 목숨으로 그만 중단하였으면 합니다. 윤석열의 건설노조 및 화물노조, 금속노조까지 노동자 죽이는 노조 탄압 중단하라고 전해주세요. 저도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한 것뿐인데 구속영장 청구까지 하고 더는 탄압을 견딜 수 없습니다. … 어떻게 노동자가 천대받는 세상을 만들려는지 지켜보기 힘듭니다. 우리 건설노동자는 80년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이제는 죽지 않고 일하고, 힘든 일 하면서 천대받지 않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현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제발 노조 탄압 중단시켜 주세요. 그리고 죄 없이 구속된 동지들 풀어주세요."
건설노동자들을 멸시하고 천대하는 세상과 언론에 대한 두려움과 원망이 느껴지는 이 유서에서 고인은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사랑하는 동료들에 대한 정권의 탄압을 막아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건폭' 마녀사냥에서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4개 야당만이 아니라 언론을 향한 유서를 따로 남긴 것으로 보인다.
언론들이 쏟아내는 '건폭', '공갈', '협박', '갈취' 등의 날 선 단어들은 고인의 가슴에 비수로 박혔고 싸늘해지는 사회와 주변의 시선은 고인의 목을 졸랐다. 몸에 불을 붙이기 직전에 말리던 동료에게 고인이 했던 말도 "애들이 알까 봐 무섭습니다"였다. 따라서 이 마지막 유서를 보고 <조선일보>는 물론이고 '건폭몰이'에 별 생각 없이 동참했던 모든 언론과 기자들은 고인 앞에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머금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다시는 족벌언론들과 윤석열 정부 공안기관들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쓰면서 너도 나도 돌을 던지며 누군가를 마녀사냥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윤석열 시대에 정치검찰-족벌언론이 만들어내는 '연쇄 살인과 죽음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더불어, 위의 MBC 뉴스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고인에게 어떤 몹쓸 짓을 했는지가 또 드러났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고인의 유서들을 즉각 유족에게 전달하지 않아서 비판받았는데, 이번에 공개된 마지막 유서도 왜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공개된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고인이 죽어간 현장을 바로 흙을 뿌려서 깨끗하게 정리해버린 문제다. 이처럼 유서를 뒤늦게 전달하거나 공개한 것도, 현장을 바로 정리한 것도 의도는 뻔히 짐작할 수 있다.
이 비극적 죽음이 낳을 정치적 효과와 책임 추궁을 가로막고 덮어버리는 것에 급급했던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정리된 분신 현장의 흙덩이 밑에서 MBC 기자가 20일도 지나서 찾아낸 것은 잿더미 아래서 불에 녹아 눌어붙은 노조 명찰이었다. 거기에는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양회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은 윤석열 정부에서 고인처럼 돈 없고 힘없는 노동자들이 어떤 처지에서 무슨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즘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극우 유튜버들은 고인에 대해서 '혼자서 신나 끼얹은 아저씨', '북한 지령받고 검찰이 기소하니까 분신한 사람'이라고 조롱하는 방송을 하고 있다. 건설노조 집회 현장에서도 경찰의 협조를 받으며 그런 방송을 하고 있다.
이런 혐오와 막말을 누구도 막지 않고 있고, 윤석열 대통령과 윤희근 경찰청장과 한동훈 법무장관은 거꾸로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의 '불법집회'를 원천봉쇄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 나온 지표들에 따르면 윤석열 집권 1년 만에, 지난 4년간 줄어들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다시 벌어지고 있다. 줄어들던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도 9년 만에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500대 기업의 직원 수에서 정규직은 0.2% 증가한 반면에 기간제는 40.6% 늘었다. 공기업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사라졌고, 거꾸로 기간제 고용이 799% 증가했다. 이것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말하면서 민주노총을 탄압하고 있는 정부가 만들고 있는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중소기업 경영인들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나온 77%의 지지율에 기뻐하며 "그게 진정한 지지율"이라고 했다. 누구의 여론과 이익을 대변하고 싶은 것인지 확인된다.
검찰은 지금도 건설노조 활동가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국정원은 또 '간첩 혐의'를 내세워 전교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조선일보>는 이제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체가 배상금의 일부를 떼어가려고 한다'며 새로운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런 정권을 지켜봐야 하는지, 언제까지 정치검찰-족벌언론의 이런 술수에 당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가 '분신 방조와 유서 대필 의혹'이라는 악질적인 마녀사냥을 시작한 지난 일주일 동안에 우리는 4번의 눈물을 보았다. 하나는 언론노조 윤창현 위원장의 눈물이었다. 윤창현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누구도 사과하지 않으니 나라도 건설노동자들에게 사과하겠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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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건설노조 박미성 부위원장의 눈물이었다. 성명서를 낭독하는 부위원장의 얼굴은 참담한 슬픔과 분노로 일그러졌고 차마 쳐다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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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양회동 열사 유가족의 눈물이었다. 건설노동자들 앞에선 양회동 열사의 형님은 '3차례의 소환조사, 휴대폰 압수수색, 구속영장 청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라면서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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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MBC가 인터뷰한 건설노조 동료의 눈물이다. <조선일보>에 의해서 '분신방조범'으로 몰린 이 노동자는 인터뷰 내내 흐느끼며 '그 펑 소리에 나는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같이 타 죽었어야 하는데'라고 했다.
"내가 같이 타 죽었어야 하는데 … "라는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이 눈물방울들은 나중에 윤석열 정부와 <조선일보>가 역사의 법정에 서게 될 때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다. 모든 언론은 이제라도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반박하는 취재와 보도를 다 같이 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