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적 휴전‧인질 석방 요구…개전 171일만

국제사회 분노, 이스라엘 반발 사이서 안절부절

악마는 디테일에…'장기적(lasting) 휴전' 불씨

"라마단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분명"

이사국들 "영구 휴전 향하는 첫걸음일 뿐"

팔 대사 "휴전 촉구까지 10만 명 넘게 살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가자 전쟁 개전 이후 171일 만인 25일(현지시간) 교전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상대로 즉각적인 휴전과 무조건적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처음으로 채택했다. 한국 등 선출직 비상임이사국 10개국(E10) 공동 제안한 이 결의안은 이사국 15개국 중 14개국의 찬성으로 통과됐으며, 이번에 미국은 거부권 행사(비토) 대신 기권을 택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총회 결의안과는 달리, 국제법상 구속력(강제력)을 지닌다.

 

2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가자 즉각 휴전 결의안 표결을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의 테러 희생자들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갖고 있다.  2024. 03. 25. [유엔 안보리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2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가자 즉각 휴전 결의안 표결을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의 테러 희생자들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갖고 있다.  2024. 03. 25. [유엔 안보리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즉각적 휴전‧인질 석방 요구…개전 171일만

이사국들 "영구 휴전 향하는 첫걸음일 뿐"

안보리 공식 브리핑에 따르면, 안보리 결의안 2728은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 기간에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demand)했으며, 분쟁 당사자들이 이를 존중함으로써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휴전"(a lasting sustainable ceasefire)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지를 담았다. 또한 모든 인질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석방과 함께, 의료 및 기타 인도주의적 필요에 대처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접근 보장을 "요구"했다. 그리고 결의안은 인도주의적 지원의 유입 확대가 시급히 필요하며, 국제법에 맞춰 인도주의 지원에 대한 모든 장벽을 제거하고, 가자지구 전체의 민간인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도 담았다.

결의안 내용 토의 과정에서 러시아가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lasting sustainable) 휴전이란 ceasefire)이란 표현은 "모호"해 이스라엘이 라마단 기간에 휴전하고 그 이후 군사 공격 재개의 구실로 악용할 수 있는 만큼 "영구적"(permanent) 휴전이란 표현을 제안했으나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좌절됐다. 그러나 이사국 대부분은 이 결의안이 "단지 영구적 휴전으로 향하는 첫걸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고 안보리 공보실은 전했다.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대사가 2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즉각적인 가자 지구 휴전 결의안 표결에 앞서 다른 대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 03. 25 [EPA=연합뉴스}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대사가 2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즉각적인 가자 지구 휴전 결의안 표결에 앞서 다른 대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 03. 25 [EPA=연합뉴스}

악마는 디테일에…'장기적(lasting) 휴전' 불씨

"라마단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분명"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대사는 "안보리는 비록 라마단 기간에 국한됐다고 해도 최초로 즉각적 휴전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고 결의안을 평가했다. 그러나 네벤자는 "영구적"(permanent)과는 달리 "장기적"(lasting)이란 표현이 "여러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 "불행히도 라마단이 끝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과거 세 차례완 달리 이번엔 기권했다. 적극적으로 비토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의안 채택을 '묵인'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집단학살극을 보면서도 시종일관 '자위권'을 얘기하며 이스라엘 편들기에 바빴던 조 바이든 행정부가 임계점에 이른 아랍권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분노'를 더는 견디기 어려웠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기가 무섭게, 미국이 안보리 결의안의 법적 구속력을 '부정'하고 나서 점이다. 이스라엘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임은 물론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미국의 거부권 불행사에 반발해 예정됐던 가자지구 군사작전 논의를 위한 정부대표단 미국 파견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스라엘의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대사는 "이번 전쟁은 하마스의 대학살로 시작된 것"이라며 "안보리 이사국들은 이 부끄러운 결의안을 거부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길라드 에르단(오른쪽) 주유엔 대사가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서 미국의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대사와 만나 미국의 가자 휴전 지지 결의안 표결을 마친 뒤 엄지척을 하고 있다.. 2024. 03. 22 [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길라드 에르단(오른쪽) 주유엔 대사가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서 미국의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대사와 만나 미국의 가자 휴전 지지 결의안 표결을 마친 뒤 엄지척을 하고 있다.. 2024. 03. 22 [EPA=연합뉴스] 

미국, 안보리 휴전 결의 묵인 후 '구속력' 부인

국제사회 분노, 이스라엘 반발 사이서 안절부절

결의안 통과 후 발언을 통해 미국의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대사는 "미국은 이 결의안의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 '구속력 없는'(non-binding) 결의안의 중요한 목표 중 일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휴전은 첫 번째 인질 석방과 즉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안보리는 하마스가 그렇게 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고의로 파문을 불렀다는 것은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의 발언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커비는 이날 브리핑에서 "다시 말하지만 첫째 이것은 구속력이 없는 결의다"라며 "그래서 하마스를 쫓는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의 '진상'으로 전락하는 미국의 비루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거센 반발이 뒤따랐다. 미국에 이어 발언한 슬로베니아의 사무엘 즈보가르 주유엔 대사는 "우리는 안보리 결의의 구속력을 상기하며 이 명확한 결의의 신속한 이행을 촉구한다"라고 반박했다. 중국의 장쥔 주유엔 대사도 "안보리 결의는 구속력이 있다"며 "우리는 당사자들이 유엔 헌장에 따른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장 대사는 "안보리 행동에 반복해서 비토했던 미국이 결국 안보리의 즉각적 휴전 요구 방해를 멈췄다"며 "미국이 여전히 변명거리를 찾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눈들은 열려 있고 안목이 있다"고 덧붙였다.

 

팔레스타인의 리야드 만수르 주윺엔 대사가 2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가자 즉각 휴전 결의안 표결을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 03. 25. [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의 리야드 만수르 주윺엔 대사가 2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가자 즉각 휴전 결의안 표결을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 03. 25.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안보리 결의는 구속력…의무 이행 촉구"

팔 대사 "휴전 촉구까지 10만 명 넘게 살해"

파르한 하크 유엔사무총장 부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모든 안보리 결의는 국제법이다. 이런 범위에서 안보리 결의는 국제법과 같은 구속력을 지닌다"라고 말했다. 법률 전문가인 요르단의 마무드 다이팔라 흐무드 주유엔 대사는 이날 안보리 회의 직후 행한 기자회견에서 "유엔 헌장 제25조는 유엔 회원국이 안보리 결정을 수행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한다"며 "'요구한다'(demand)라는 용어는 이 조항에 근거한 구속력 있는 용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의 리야드 만수르 주유엔 대사는 결의안 채택후 발언을 통해 "마침내 즉각적 휴전을 요구하기까지 6개월이 걸렸고, 10만 명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되고 불구가 되고, 200만 명이 자기 집에서 내쫓기고 굶주림을 겪고 있다"고 "오늘의 채택은 인류애와 삶이 더 우세하다는 걸 보여준 표결"이라고 말했다. 만수르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거처할 집도 둘러 앉을 탁자도 먹을 음식도 없다"며 "이제 그들의 시련은 즉시 끝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영국 공군 항공기가 25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상공에서 낙하산들을 활용해 10톤의 식량 구호품을 투하하고 있다. 2024. 03. 25. 영국 국방부 제공. [AFP=연합뉴스]
영국 공군 항공기가 25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상공에서 낙하산들을 활용해 10톤의 식량 구호품을 투하하고 있다. 2024. 03. 25. 영국 국방부 제공. [AFP=연합뉴스]

황준국 "가자 상황, 결의안 채택 이후 달라야"

유엔총장 "결의안 이행 실패 용서받지 못해"

한국의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회의에서 "가자 현장의 상황은 이 결의안 채택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만 한다"며 "그것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국제사회의 컨센서스를 반영한 오늘의 결의안을 존중하고 이행할 때만 가능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인 1160명을 살해하고 인질 250명을 억류한 작년 10·7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자비한 보복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는 3만2000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봉쇄 조치로 생필품이 고갈돼 111만 명이 굶주리고 있으며, 가자 최후 피란처인 국경도시 라파에는 가자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40만 명이 몰려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번 결의가 '인질을 풀어주지 않아도 휴전이 허용된다는 희망을 하마스에 심어 준다'며 강력히 반발했고, 각료들도 '포격을 멈추지 않겠다'는 등 입장을 내며 안보리를 성토했다. 이에 대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X'에 올린 글에서 "안보리 결의는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실패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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