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안보 위한 허울일 뿐…사상의 자유 억압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윤석열 대통령은 틈만 나면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윤 대통령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한국의 극우사대주의 세력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명분 삼아 반대 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해왔다. 자유민주주의가 극우사대주의 세력의 정권 안보를 위한 명분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핵(核)

인류 역사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유럽에서 중세 시대 말기에 등장했다. 당시 기본 생산수단이었던 토지를 독점하고 있던 봉건 국가의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은 절대왕정 체제에 기초해 민중을 지배, 착취하고 그들의 반항을 억눌렀다. 그들은 중세 시대 말기에 등장한 신흥 자본가계급– 주로 도시에 거주했기 때문에 이들을 시민계급이라고 부르기도 함-이 공업생산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자 그들의 성장도 억눌렀다. 이때 지배층이 신흥 자본가와 민중을 탄압하기 위해 사용했던 기본 수단이 사상의 자유를 불허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절대왕정을 정신적으로 떠받치고 있던 기독교적 세계관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사상이나 이론을 이단시하면서 가혹하게 탄압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세계관인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했던 학자들을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신흥 자본가계급과 민중은 왕족과 귀족의 폭압정치에서 해방되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사상의 자유를 요구하며 싸웠다. 그 무엇보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절대왕정이나 봉건제도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신흥 자본가계급과 민중은 18세기에 들어서며 전 유럽을 휩쓴 시민혁명을 통해 봉건제를 타도했고 사상의 자유를 비롯한 일련의 자유를 쟁취하는 역사적 진보를 이룩했다. 시민혁명을 통해 탄생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사상의 자유를 핵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정립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인류 역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핵이 사상의 자유–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양심의 자유로 표현됨-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사실 사상의 자유가 없다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사상의 자유가 있어야 그 사상을 언론을 통해 공표하거나 책으로 출판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한 것이고, 그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집회를 열거나 조직을 결사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한 법이다. 이런 점에서 사상의 자유는 다른 자유의 전제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4.3.1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4.3.1 연합뉴스

한국을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볼 수 없는 이유

한국을 과연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한국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자유민주주의의 핵인 사상의 자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를 불허하는 대표적인 반민주 악법이다. 한국은 객관적인 기준에 비춰볼 때, 사상의 자유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쇼 국가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파쇼 체제는 무엇보다도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느냐의 여부에 의해 구분된다. 이것은 파쇼화가 예외 없이 사상의 자유를 금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히틀러는 사회주의 사상을 금지함으로써 단기간에 독일을 파쇼화했고,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 역시 사회주의 사상을 금지함으로써 이탈리아와 일본을 파쇼화했다. 이는 파쇼 체제의 출발점이자 그 근간이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히틀러는 단번에 사상의 자유를 부정해버리고 싶었겠지만 당시의 유럽 분위기는 그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의 유럽 국가들은 사상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피어린 투쟁을 통해 탄생했기에 그것을 절대화하고 신성시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히틀러는 사상의 자유를 금지하기 위해 기괴한 논리를 조작해냈다. 그는 사상의 자유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독일은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과 대치 중인 특수 상황에 있으므로 한시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금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논리 아닌가? 한국의 역대 극우사대주의 세력은 “물론 사상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과 대치 중인 특수 상황에 있으므로 일부 사상은 금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사상의 자유를 불허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논리야말로 전형적인 파쇼 논리이다.

노무현과 윤석열, 누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인가

한국은 과연 자유민주주의 국가일까? 정치인을 포함하는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과연 자유민주주의자일까? 한국은 “사상의 자유는 무조건 또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가 아니라 “일부 사상은 금지해도 괜찮다”는 파쇼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파쇼 국가이고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적어도 정치적 입장에서는 파시스트다. 이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던 사례가 있다. 2003년에 일본을 방문 중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본의 정당 대표들– 일본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므로 공산당도 존재함-과 간담회를 하면서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발칵 뒤집혔고 극우사대주의 세력은 입에 거품을 물고 노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가 유럽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했다면 유럽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그들은 “왜 그런 당연한 말을 하냐?”고 물으면서 의아해 할 것이다. 상식이 있는 외국인들은, 어떤 한국인이 “한국은 특수 상황이므로 사상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면 그를 파시스트로 여길 것이다. 사상의 자유란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해서 금지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 기준, 국제적 기준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는 상식적인 말을 했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이다. 한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자유민주주의자를 찾아보기가 힘든 기형적인 반민주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며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극우사대주의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자를 참칭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설쳐대는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가 공산주의자로 매도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두 개의 사상은 금지해도 괜찮다고?

어떤 이들은 모든 사상을 다 금지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한두 개만 금지하는 것뿐인데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겠냐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단 하나의 사상이라도 금지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파쇼화되며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중세기적 야만국가로 전락한다. 단 한 개일지라도, 어떤 사상이 금지되면 해당 사회의 지배층은 제거하고 싶은 사람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절대무기를 손에 쥐게 된다. 그의 이마에 금지된 사상을 신봉하고 있다는 낙인만 찍으면 만사형통이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의 지배층은 기독교적 세계관이나 교리에 반하는 이단을 금지했다. 그렇다면 과연 당시의 지배층이 이단만 처벌했을까? 그들은 지배층에게 위협이 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부유한 과부의 재산을 강탈하기 위해 숱한 사람들을 이단이나 마녀로 몰아 박해하고 처형했다.

사회주의 사상을 금지했던 히틀러는 과연 사회주의자만 공격했을까? 그는 자기에게 위협이 되거나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사회주의자로 낙인찍어 제거했으며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유대인까지 사회주의자로 몰았다. 사회주의자의 한국적 표현인 빨갱이를 금지했던 이승만은 과연 빨갱이만 공격했을까? 그는 제거하고 싶은 모든 사람한테 빨갱이 낙인을 찍었으며 무고한 양민들까지도 빨갱이로 몰아 대량 학살했다.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낙인의 이름은 달라졌지만 그 밑바탕에 있는 것은 동일하다. 단 한 가지일지라도 금지된 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사회에 금지된 사상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파쇼화 되거나 중세기적 야만국가로 전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상의 자유에 유독 적대적인 한국 사회의 배타성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의 이면에 있는 심리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는 공존하지 않겠다 혹은 그를 제거하거나 죽이겠다는 배타성이다. 반면 사상의 자유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것의 이면에 있는 심리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과도 공존하겠다는 포용성, 개방성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 역시 인간이다. 따라서 그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 인간이고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대하면서 대화하고 공존하려고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빨갱이나 종북으로 낙인찍히면 그는 단번에 인간이 아닌 존재, 죽여도 괜찮은 존재로 간주되면서 공존을 거부당한다. 만일 “이슬람 사람은 절대 안 돼, 제거해야 돼.” “유대인은 절대 안 돼, 제거해야 돼”라는 말이 끔찍하게 들린다면 “빨갱이나 종북은 절대 안 돼, 제거해야 돼”라는 말에 대해서도 똑같은 감정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종교나 인종에 근거한 차별이나 박해에는 반대하지만 종북으로 표현되는 이념에 근거한 차별이나 박해에는 찬성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들은 새로운 유형의 종교적 광신자나 인종주의자인 셈이다.

한국 사회는 사상의 자유를 부정함으로써 금지된 사상을 가진 사람을 인간이 아닌 마치 짐승과 같은 존재로 간주하고 그와의 공존을 거부하도록 강요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 타인들, 이웃들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적대시하거나 배타시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진정한 민주화는 국가보안법 같은 반민주적인 악법이 철폐되고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에 절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라야 정상적 궤도에 올라설 수 있다. 그때가 되면 한국 사회를 병들게 만든 주범인 지긋지긋한 색깔론도 사라질 것이고, 색깔론으로 70여 년 넘게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던 극우 사대주의 세력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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