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신당’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몇 가지 여론조사에서 조국신당은 1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보여서 제3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아직 의원이 단 한 명도 없고 공개 활동을 시작한 지 1주일밖에 안 된 창당대회도 하지 않은 당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더욱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당의 얼굴이자 핵심적인 지도자인 조국 전 법무장관의 거침없는 발언이 큰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국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를 “수사도 기소도 받지 않는 범죄집단”이라고 정면으로 겨냥하며 “3년 반의 남은 기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윤석열 정권을 정치적·법적으로 조기 종식 시키겠다”고 해서 수많은 이들을 속 시원하게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자신들의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칼을 전혀 휘두르지 않고 말만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조선제일 검이 아니라 혀 설 자를 서서 조선제일 설이라고 생각을 하고, 김건희 중전 호위를 하는 중전 호위 제일 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얄미운 기회주의적인 지식인으로 여기는 진중권 교수, 김경율 회계사에 대한 언급도 듣는 사람들에게 사이다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뭐 길게 답하고 싶지 않고 저는 그 두 분 같은 경우는 진보를 참칭하는 친검찰 친윤석열 인사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답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조 전 장관이 최근 2심에서도 유죄를 판결받았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 전개를 예측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범행을 인정하거나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또다시 실형을 선고했고, 한겨레 같은 ‘진보’ 언론도 “먼저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라면서 조 전 장관의 발목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2심 선고 직후에 “‘검찰개혁’을 추진하다가 무수히 쓸리고 베였지만 그만두지 않고 ‘검찰 독재’를 막는 일에 나설 것”이라며 정치 활동을 선언했다. 이것은 무기력하게 짓밟히고 말없이 사라지는 희생자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검찰 개미지옥’에 빠져서 5년 동안 발버둥 치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에게 더는 무서운 것이 없어 보였다.

다양한 정치적 성격이 있고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것은 무엇보다 2019년 서초동을 뜨겁게 달구었던 거대했던 ‘검찰개혁 촛불시위’의 정치적 부활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촛불시위는 2016년 ‘촛불혁명’의 한계 속에서 등장했다. ‘촛불혁명’은 헌법재판소를 통한 대통령 탄핵과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라는 제도권 절차에 갇혀 마무리됐다.

그러면서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로 교체됐지만 입법부, 사법부에는 여전히 구세력들이 강력했고, 무엇보다 재벌/ 검찰/ 족벌언론이라는 진짜 권력자들은 여전했다. 이 ‘진짜 권력자’들이 촛불혁명을 파괴하려고 시작한 ‘연성쿠데타’가 조국 마녀사냥이었다.

검찰의 마녀사냥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정의로운 견제’로 포장됐는데, 많은 ‘진보’ 언론과 ‘진보’ 지식인들도 이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나서서 손발이 됐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침묵과 무기력은 더할 나위가 없을 정도였다. 모두 자기들에게도 ‘조국 묻을까 봐’ 손절하기 바빴다.

그 상황에서 누구도 예기치 않게 서초동에서 솟구쳐오른 것이 검찰개혁 촛불시위였다. 2016년 ‘촛불혁명’의 참가자들이 검찰과 언론의 연성쿠데타에 맞서 촛불혁명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섰다. 당시 <민중언론 참세상>이 서초동 시위 참가자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80%가 ‘2016년에도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가했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속수무책의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진보정당들이 그 공백을 메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진보정당과 그 지도자들은 서초동 촛불시위를 ‘조국을 광적으로 추종하는 민주당 당원들의 행사’ 정도로 깎아내리며 별다른 관심과 지지도 보내지 않았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서초동 촛불시위에 민주당은 참가하거나 관여하지도 않았다.

민주당에서도 주변에 있는 소수 정치인만 개인적으로 참가했을 뿐이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오히려 촛불시위를 부담스러워하면서 거리를 두고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태도만 보이고 있었다. 또 진보정당과 그 지도자들은 서초동 촛불시위와 당시 광화문의 우파 집회가 ‘다를 게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당시 광화문의 우파 집회는 ‘적그리스도 문재인을 탄핵하자’는 전광훈 목사가 주도했고, 자유한국당(지금의 국민의힘)이 조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진보정당은 서초동 촛불시위를 신포도 취급하고 참가자들을 깎아내릴 것이 아니라, 함께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을 위해 투쟁하면서, 이 운동을 더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개혁의 동력으로 삼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두 달 가까이 거의 연인원 백만에 가까운 사람이 거리로 쏟아졌지만 민주당은 물론이고, 진보정당들도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으면서 서초동 촛불시위는 그렇게 사그라져 갔다. 2020년 총선에서 열린민주당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곧 민주당에 흡수돼 버렸다. 그리고 조국 마녀사냥과 ‘검언 쿠데타’를 주도한 검찰총장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변신한 윤석열은 지난 대선 때 2019년 서초동 촛불시위에 대해서 이렇게 맹비난했다.

"조국 사태 때는 참 어이없는 일들이 있었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앞에 수만 명, 얼마나 되는 인원인지 모르겠는데 소위 말하는 민주당과 연계된 사람들을 다 모아서 검찰을 상대로 협박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완전히 무법천지였다. 과거 같으면 다 사법처리될 일이다.”

이처럼 윤석열 정치검찰과 기득권 카르텔에게 적대적 공격을 당하고,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정당들과 ‘진보’ 언론들까지 외면하고 선을 그었던 2019년 서초동 검찰과 언론 개혁 촛불시위의 힘과 목소리는 이제 5년 후에 조국신당의 등장으로 정치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당시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공간을 찾게 됐다.

일종의 ‘역사의 복수’이다. 조 전 장관은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당, 민주당보다 더 빨리 행동하는 정당,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싸우는 정당을 만들고자 한다"면서 방향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고 더 강력한 투쟁과 개혁을 추진하는 정당’은 바로 진보정당들이 차지했던 위치였다.

그런데 기존의 진보정당들이 ‘종북몰이’ 속에 위기와 분열에 처하거나, 정치적 혼란 때문에 그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면서 조국신당이 등장할 수 있었다. 물론 기존의 진보정당들과 달리 조국신당은 민주당과 대립보다 보완적 협력을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조 전 장관이 직접 후원회장을 맡았던 대표적인 진보정당의 지도자인 고 노회찬 의원의 유산과 비극을 떠오르게 한다.

노회찬 의원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검찰 개혁을 주장한 진보정당의 지도자이면서 그 자신이 또 다른 검찰 권력과 언론 권력의 희생자였다. 노회찬 의원과 후원회장이던 당시 조국 교수는 유시민 작가와 함께 2012년 봄에 <저공비행>이라는 팟 캐스트에 출연한 바가 있다.

‘검찰 마피아’가 주제인 이 방송을 다시 들으면 오늘날 검찰과 검찰 개혁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세 사람은 검찰을 조직의 이익만 추구하는 마피아, 망나니처럼 칼을 휘두르는 조폭에 비유한다. 검찰이 저지른 온갖 사건 조작과 부패 비리와 인권 유린을 폭로한다.

검찰은 하나의 독자적 정당과 같고, 차관급 관료만 50명에 이르고 엄청난 정보력과 힘을 가진 사실상 권력의 제4부라고 분석한다. 국회에서도 20%에 달하는 검사 출신 의원 등을 통해서 입법까지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 사람은 검찰의 민주적 통제가 중요하고 공수처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노회찬 의원 특유의 신랄한 유머와 풍자도 빠질 수 없다. ‘개와 사람이 공존하려면 개를 묶어놓아야 한다’, ‘정기적으로 광견병 주사를 놔줘야 한다.’ 가장 의미심장하고 서글픈 것은 마지막 부분이다. 세 사람은 검찰이 자신들을 비판하며 힘을 약화시키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복한다고 걱정한다. “이거 들으면 검사들이 우리 죽이려 할 텐데”라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유시민 작가와 노회찬 의원이 조국 교수를 법무부 장관으로 추천하며 통합진보당 공약으로 제시하자는 대목이 나온다. 조국 교수는 펄쩍 뛰면서 ‘왜 이러냐, 내가 검찰의 표적이 된다’면서 손사래를 친다. 그 후 세 사람, 특히 노회찬 의원과 조국 교수가 어떻게 됐는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드루킹’이라는 한 과대망상적 선거 브로커의 댓글 조작에 대한 수사는 우파 야당과 언론의 압박 속에 특검 구성으로 나갔다. 공안검사 출신의 뉴라이트 허익범은 특검으로 임명되자 드루킹의 진술만을 이용해 문재인 정부를 엮으면서, 별건 수사로 노회찬 의원과 정의당에게도 칼을 쑤셔댔다.

삼성 떡값 검사 리스트를 폭로한, 진보 정치인이면서 대중적 인기도 높았던 노회찬 의원이 검사들의 공적이었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결국 노회찬 의원은 비극적 죽음으로 내몰렸고, 나중에 드루킹은 허익범 특검의 요구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실토했다.

노회찬의 비극을 목격한 조국 교수는 나중에 그토록 질겁하던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면서, 본인만이 아니라 부인과 자녀, 부모와 친지까지 다 몰아넣은 ‘조국몰이’ 속에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는 살아 돌아왔고, 이제 조국신당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조국신당이 과연 기존의 진보정당들이 놓치고 있던 목소리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

단지 검찰과 언론 개혁만이 아니라 진보진영의 오랜 과제였던 차별금지법 제정, 국가보안법 폐지, 사형제 폐지,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난민법 개선, 탈화석연료, 혼인평등법 등까지 과제로 받아들이며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 기존의 진보정당들은 다시 지금의 위기와 분열을 극복하면서 대중적 기반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번 총선에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