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또 다른 외교 참사…"비굴하기 짝이 없다"

'주권 침해' 충격 사태에도 미온적 반응으로 일관

오히려 미국 눈치보기…국민적 비판에 적반하장

일본 정부에 면죄부, 퍼주기만 했던 행태 그대로

즉각 항의, 진상 파악, 사과와 재발 방지 요구해야

김태효 안보실 1차장, 정상회담 협의차 11일 방미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23.4.5.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23.4.5.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굴욕 외교'의 끝은 어디인가.

미국 정보기관 도청 파문이 윤석열 정부의 또다른 '외교 참사'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실, 그것도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안보실이 뚫렸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기밀문서에 의해 드러났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기이할 정도로 미온적 반응만 보일 뿐이다. 일본 정부에 철저한 저자세 굴욕 외교를 고수하며 과거사 문제에 오히려 면죄부를 주고 일방적 퍼주기만 했던 행태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도청 사태와 관련한 뉴욕타임스(NYT) 등 보도에 대해 대통령실의 첫 반응은 "과거의 전례, 다른 나라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대응책을 한번 보겠다. 제기된 문제에 대해 미국 측과 필요한 협의를 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실은 10일에도 "양국 상황 파악이 끝나면 우리는 필요할 경우에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며 "이런 과정은 한미동맹 간 형성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과장하거나 혹은 왜곡해서 동맹 관계를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많은 국민에게 저항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보안 문제라든지 이런 부분은 (용산으로) 이전해 올 때부터 완벽하게 준비했고 지금도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정기적으로 여러분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점검이 이뤄지고 있고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감청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자체 보안 점검 계획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는 "계획이 아니라 이미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답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은 이 밖에도 "보도가 어디까지 진실인지 미국으로부터 조사 결과를 공유받겠다" "미국에 대한 신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도·감청은 무관한 사안이다" "정쟁을 위해 한미 관계를 무분별하게 훼손해서는 안된다"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대통령실은 미국 정보기관이 '동맹국'인 대한민국 최고위 당국자들의 기밀 대화 내용을 무단 수집했다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소극성을 넘어 안이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미동맹 간 형성된 신뢰 관계"를 일방적으로 깬 미국 정부에 엄중 항의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마땅한 사안인데 "미국과 협의"에만 목을 매며 오히려 미국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필요할 경우에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는 언급에서는 오히려 한국이 부탁하는 처지인 듯 비굴함마저 느껴지고, "이번 사건을 과장하거나 혹은 왜곡해서 동맹 관계를 흔들려는 세력"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국민들의 정당한 비판마저 정치적으로 곡해하려는 전형적인 적반하장 및 갈라치기 시도가 읽힌다.

청와대를 막무가내로 폐쇄하고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졸속 이전할 당시 지척에 위치한 주한미군 기지로 인해 도청 우려가 초기부터 강하게 제기됐음에도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도·감청은 무관한 사안"이라고 미리 못박는 것 역시 사태 축소·은폐에만 급급한 기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용산 이전 때 대통령실 보안이 그토록 "완벽하게 준비"됐다면 미국 측은 무슨 수로 도청을 했다는 것인지 당연히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도청이 정말 불가능하다면 이번에 공개된 문건 속 대화 내용은 다 허위·날조라는 얘기인데, 누가 왜 그렇게 했다는 것인지 아무 증거도 논리도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실이 "도청 문건 속에 등장하는 대화 내용은 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자신하거나 확인해주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실은 미국 측이 조사 결과를 공유해줄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 전에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등을 자체 조사해서 실제 그런 대화가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도 덮어놓고 '대통령실 도청 불가능'이라는 결론을 정해놓은 뒤 언론에 우격다짐식으로 주입하고 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3.3.2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3.3.2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유출된 문서 속에는 도청 당시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 등 외교안보 고위 관계자들이 미국의 압박 속에서 3월 초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탄 제공 여부를 결정짓기 위해 고심하는 대화가 상세히 들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압박할 수 있다는 한국 당국자들의 우려까지 담겼다. 문제의 CIA 문서는 이들 정보가 전화와 메시지 등 통신 감청을 뜻하는 신호정보(SIGINT·시긴트)를 통해 나온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실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주권 침해 행위에 대한 즉각적이고 강력한 항의 ▲명확한 정보 제공 및 진상 파악 촉구 ▲한국 정부와 국민들을 향한 정중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요구 ▲주한미국대사 초치 ▲국가안보실을 대상으로 한 대통령실 자체 조사 및 보안 책임자 처벌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빗발치고 있다.

마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최종 조율을 위해 11일부터 3박 5일 일정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한다. 미국 행정부 인사들을 두루 면담할 예정이니만큼 정상회담 의제 조율 외에 도청 사건에 관해서도 한국 측 요구 사항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게 필수적이지만 윤석열 정부의 소극적이고 모호한 태도로 볼 때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미 정상회담 개최 자체를 재고하고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야권에서는 국회 운영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정보위원회, 국방위원회 등 유관 상임위들의 신속한 소집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초유의 도청 의혹이 명백히 해소되지 않을 경우 한미 양국 정부를 향한 비판 여론은 계속 확산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동맹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바로 상호 존중이어야 한다"면서 "일국의 대통령실이 도청에 뚫린다고 하는 것도 황당무계한 일이지만 동맹국가의 대통령 집무실을 도청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엄정 대응을 천명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70년 동맹국 사이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서 양국의 신뢰를 정면으로 깨뜨리는 주권 침해이자 외교 반칙"이라며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단호한 대응은커녕 남의 다리 긁는 듯한 한가한 소리만 내뱉고 있다"고 개탄했다.

국회 국방위·외통위·정보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명백한 주권 침해이면서, 국내로서는 특대형 보안사고"라며 "이번 사태는 윤석열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밝혔다. 이어 "현 대통령실 담벼락 바로 옆에는 주한미군 기지가 있다"면서 "대통령실과 미군 기지가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만큼, 우리 대통령실의 방첩 조치와 보안은 취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제강점기 징용 해법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3.6. 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일제강점기 징용 해법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3.6.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당장 항의를 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따져도 모자랄 판에, 미국과 무슨 협의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당연한 주권도 못 지키는 비굴한 태도로 정상회담을 백만 번을 한들 무슨 국익이 생기겠나"라고 비판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난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졸속 이전할 때부터 도·감청의 확률이 높으니까 대비하라고 계속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창문은 도·감청 필름을 붙여 (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벽은 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통령실에 들어가는 모든 선과 장비에 도·감청 장치들이 묻어 들어갔을 수 있다. 일체 다 점검하고 보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특히 "대통령실 바로 옆에 100m 가까이 미군기지가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면서 "옛말로 창호지 문, 종이문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꼴이다. 방 안에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도 다 들리는 그런 형상"이라고 비유했다. 나아가 "예전에 미국이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일부 국가는 국빈 방문까지 취소한 적도 있다"고 언급했다.

여당에서도 미국 측에 제대로 항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불교방송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미국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해야 한다. 사과도 요구해야 한다"고 했고, 홍석준 의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러시아가 이런 문제까지로 조작정보를 하기에는 근거가 미약하다. 팩트일 가능성이 더 많다"면서 "박정희 정권 때도 이런 CIA 도·감청 논란이 항상 있었다"고 진단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동맹국 사이에 도청, 감청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대통령실을 향해서는 "한심하고 비굴하기 짝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2021년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덴마크의 군사정보국(FE)이 독일, 프랑스 등의 정치인과 관료들을 도청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메르켈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이 "동맹국 사이에 도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고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단호하게 대처한 사실을 사례로 들며 우리 정부 역시 납득할 만한 조치를 받아내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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