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1호기 감사, 사전 시나리오 따라 미리 결론냈나

뉴스타파,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 감사원 문건 입수

민주, 세 번째 고발…"산업부 장관에 '쓰레기' 모욕도"

"감사 업무 '사냥'에 빗대…공수처가 철저 수사해야"

권익위‧방통위 등 청부 감사, 대통령실과 유착 의혹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2023.2.28. 연합뉴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또다시 '정치감사' 의혹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유 사무총장을 고발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감사원이 윤석열 정부의 사냥개로 전락한 배후에 '실세' 유 사무총장이 있다고 민주당은 판단하고 있다.

유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1월 비감사부서인 감사연구원장으로 좌천성 발령이 났다가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전문위원에 임명됐고 같은 해 6월 15일 감사원 2인자인 사무총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인물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감사를 주도하면서 보복성 정치감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유 사무총장이 직접 작성한 문건을 보면 그는 감사 업무를 사냥이나 전투로, 감사 대상은 사냥감 혹은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 법률위원회는 15일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원전 감사가 사전 시나리오에 따라 짜맞춰진 감사였다며 당시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서 감사 실무를 총괄했던 유 사무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민주당 법률위원회는 판사 출신 김승원 의원과 검사 출신 양부남 변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법률위는 "감사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증거에 기반하지 않고 선입견과 편견에 따라 미리 감사의 결론을 자의적으로 정해두고 그에 짜 맞추는 감사를 진행하도록 하였다면 이는 감사의 기본원칙과 감사 자세에 위반되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유 사무총장은 지난 2020년 4월 20일 월성 1호기 원전에 대한 재감사를 위해 공공기관 감사국장으로 부임한 직후, 본격적인 재감사가 착수되기도 전에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 즉 감사의 결론을 미리 정해두고 이에 맞추어 감사가 진행되도록 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사실은 유 사무총장이 직접 작성해 감사팀에 하달한 다수의 문건을 통해 명확히 확인됐다"면서 "또한 그 문건에는 유 사무총장이 자신이 정해둔 결론과 다른 진술을 하는 산업부 장관을 '쓰레기'라고, 산업부 국장을 '걸레'라고 모욕하는 표현까지 기재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법률위는 "이러한 유 사무총장의 감사 행태는 감사의 기본원칙과 감사 자세를 정하고 있는 '감사원 감사사무 처리규칙', '공공감사기준', 그리고 '감사원 공무원 행동강령'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행위로서 명백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면서 "유 사무총장은 감사 업무를 '사냥'에 빗대며 미리 시나리오를 정하고 그에 짜 맞추는 감사를 강행하며 자신이 정해둔 결론에 맞지 않는 것은 배척하는 행태를 보였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기능을 정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감사권 남용이 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2020년 5월 22일 작성한 문건에는 백운규 산업부 장관을 직권 남용 혐의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옭아매도록 한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이 들어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2020년 5월 22일 작성한 문건에는 백운규 산업부 장관을 직권 남용 혐의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옭아매도록 한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이 들어있다.

앞서 뉴스타파는 유병호 사무총장이 직접 작성한 감사원 내부 문건들을 근거로 유 사무총장이 월성 원전 재감사 담당 국장으로 투입돼 '새 판'을 짰다고 보도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문건은 유병호 사무총장이 감사원 공공기관 감사국장이었던 지난 2020년부터 21년 사이 작성한 이른바 '공감노트'로 일종의 '지휘 서신'에 해당하며, '주요 공감 및 논의 사항' 등의 제목이 달린 문건 22건에 다 합치면 70여 쪽 분량이다.

지난 2019년 10월 감사원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당초 최재형 감사원장은 2020년 4‧15 총선 전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잘못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려 했으나 감사위원들의 반대로 감사 결과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자 감사 책임자인 공공기관 감사국장 자리에 유병호 국장을 임명했다. 2020년 4월 20일 '구원투수'로 투입된 유병호 국장은 기존의 감사 방향과는 전혀 다른 새판을 짰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문건에는 바로 이 '새판 짜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문건에서 유병호 국장은 월성 원전 감사팀을 '부당개입팀'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백운규 산업자원통산부 장관이 직권을 남용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 부당 개입했다"는 감사의 결론을 미리 정해둔 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방증이라고 뉴스타파는 보도했다. 2010년 5월 21일 유 국장은 이 '부당개입팀'에게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을 전달하겠음"이라며 감사의 방향을 지시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이튿날 문건에 이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이 무엇인지 자세히 나온다.

"백(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직접 또는 부하직원들을 통해 정(정재훈 한수원 사장)과 한수원 관계자를 압박해 즉시 가동 중지를 관철시키고, 정 등 한수원 관계자는 한수원 이사들을 적극적으로 기망해 즉시 가동중지 안건을 통과시킴"

유병호 국장의 이런 지시 때문인지, 감사 과정에서 유 국장이 그린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에 맞지 않는 산업부의 소명은 모두 무시됐다. 감사를 받은 산업부 관계자들과 한수원 이사들은 감사원 직원들이 미리 정해놓은 결론에 맞는 진술을 강요당해야 했다고 항변했다. 유병호 국장의 지휘를 받던 월성원전 감사팀은 "호통과 윽박지르기를 반복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감사원이 만든 시나리오에 맞춰 답변할 것을 종용했다"고 산업부 문신학 국장은 증언했고, 민간인 신분이던 김해창 전 한수원 사외이사도 "유치장에 끌려간 죄수 취급을 받았다"고 전했다

5개월 뒤인 2020년 10월 감사원은 유병호 국장이 '부당개입팀'에 전달한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과 정확히 일치하는 감사 결과 보고서를 내놨다. 한 달 뒤인 2020년 11월 시민단체들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유병호 국장을 직권남용과 강요죄 등으로 고발했다. 감사 범위를 부당하게 경제성에만 국한한 데다 그 경제성 평가마저 객관적이지 못했고, 사전에 만든 결론과 시나리오에 맞춰 문답서를 각색하고 날인을 강요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2년이 넘도록 아무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해당 보도에 감사원 대변인실은 14일 입장문을 내고 "시나리오가 있었다거나, 유병호 당시 국장이 '월성 재감사를 해보겠다'고 감사원장에게 제안했다거나, 직원들의 출장비 횡령을 감쌌다는 등 문건의 내용에 대한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또 뉴스타파가 보도한 문건은 "유 총장이 내부 직원 훈련용으로 작성한 자료를 악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라며 "당시 유병호 국장은 기존 1차 감사 때 채집된 증거와 사건·경과 분석을 토대로 감사단장으로서 감사 방향과 맥락, 증거채집 전략 등을 지휘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1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민원실 앞에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과 '권익위 감사' 제보자로 알려진 권익위 고위직 A씨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기 전 취재진을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2.12.15. 연합뉴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1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민원실 앞에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과 '권익위 감사' 제보자로 알려진 권익위 고위직 A씨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기 전 취재진을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2.12.15. 연합뉴스

앞서 민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들은 지난달 6일 유 사무총장 등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위계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한 바 있다. 유 사무총장이 국민권익위원회 내부 제보자와 공모해 전현희 권익위원장과 부위원장들 사퇴를 압박하기 위한 감사를 실시했다는 이유였다. 아울러 감사원이 지난 2021년 권익위 정기 감사를 실시했는데도 지난해 이례적 고강도 감사를 통해 이정희 전 부위원장을 사퇴에 이르게 했다면서 이는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12일에도 윤석열 대통령실과 감사원 유착 의혹인 이른바 '대감 게이트' 등과 관련해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과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을 직권남용 및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었다.

민주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들과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 대책위원회'는 고발장에서 "감사원이 국민권익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표적 감사했고, 국민의힘에서 '알박기 인사'라고 주장한 공공기관들을 대상으로 중점감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에 대해 감사위원회의 의결 없이 감사에 착수해 절차적으로 위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유 사무총장과 이 수석 간 문자 메시지는 정치·하명 감사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문제삼았다. 유 사무총장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보도와 관련해)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이 수석에 보낸 사실이 드러나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사건 당시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정권의 사냥개를 자처한 감사원이 누구의 지시로 정치감사에 나섰는지 실체가 분명해졌다"면서 "권익위와 방통위 등 전 정부 인사를 겨냥한 청부감사도 우연이 아니었다. 정권의 돌격대, 검찰의 이중대로 전락한 감사원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 박범계 위원장 등 민주당 의원들이 12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민원실 앞에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등을 직권남용 및 개인정보보호법위반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2.10.12 [공동취재]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 박범계 위원장 등 민주당 의원들이 12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민원실 앞에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등을 직권남용 및 개인정보보호법위반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2.10.12 [공동취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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