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ㆍ전 주러시아 공사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ㆍ전 주러시아 공사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거의 1년이 된다. 현재 서방 언론의 보도를 보면 마치 우크라이나군이 전세를 뒤집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 국내 언론들도 덩달아 푸틴의 패배를 거론하면서 이로 인해 야기될 러시아의 내부 혼란 나아가 분열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몇몇 서방 학자들의 주장을 보도하였다. 우크라이나군이 작년 9월 동북부 지역인 하리코프 그리고 11월 남부 지역인 헤르손을 탈환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우크라이나군이 격전 끝에 러시아군을 몰아낸 것이 아니라 러시아군이 작전상 일방적으로 철수하였다는 점에서 두 지역의 탈환이 군사적 승리로서 갖는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현재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의 2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전반적인 전쟁 판세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올해 1월 중순 동부 지역인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맹렬한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솔레다르를 빼앗겼으며 현재 인근에 있는 전략 요충지인 바흐무트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마저 뚫리게 되는 경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중부 드네프르강 유역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현재 러시아군은 하리코프와 헤르손도 동시에 공격하고 있다.

앞으로 이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 모두 상당한 병력과 장비 손실을 본 것으로 보이며, 크게 볼 때 전선에 급격한 변화가 없는 상태이다. 현재 러시아군이 동북부, 동부 그리고 남부에서 동시에 공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이 임박했다고 하는 대공세의 서막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러시아가 지난해 부분 동원령으로 확보한 수십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대공세가 이번 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나토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탱크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하나 실제로 전장에 배치되기까지 몇 개월이 걸릴지 알 수 없으며 더욱이 그간 서방이 각종 무기를 제공할 때마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고 하였으나 초반에 반짝하였을 뿐이고 러시아가 상응하는 무력으로 대응하자 별 의미가 없어지곤 하였다.

객관적으로 볼 때 전쟁이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이냐는 미국 등 나토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무기 지원이 끊기면 전쟁을 지속할 수 없고, 러시아는 서방이 계속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주면 이에 상응하는 무력으로 맞대응해야 하므로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자기 국민들을 희생하면서 서방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형국인데, 달리 말하면 서방은 대러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이것을 인식하고 있는 듯이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국가들에 큰소리를 치며 마치 맡겨 놓은 물건을 내놓으라는 듯이 무기를 요구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미국 등 서방국가 지도자들은 마지막 우크라이나인까지 싸우다 죽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이고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평화를 회복하는 것보다 전쟁을 가능하면 오래 끌어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작년에 전쟁 발발 이후 얼마 안 되어 튀르키예가 주선하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 평화협상이 타결될 듯이 보였으나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늘리면서 전쟁을 계속하도록 종용하여 결국 평화협상은 깨지고 말았다. 이런 서방의 의도는 서방측 고위인사들의 최근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셉 보렐 유럽연합 외교수장은 1.20 마드리드에서 열린 어느 행사에서 “러시아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러시아는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침략을 물리친 역사가 있고 러시아는 끝까지 싸워 이겼으며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지고 있다든지 러시아군이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라고 했다. 또한,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도 1.20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방위 연락 그룹회의에 참석하여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격퇴하길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하였다.

미국의 관점에서 우크라이나가 설사 러시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더라도 직접적인 안보 위협은 없는 데 반해 러시아의 경우 패배한다면 안보 위협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 자체가 분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은 이미 기대한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함정에 빠뜨려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미국은 말로는 우크라이나를 수호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우크라이나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더라도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개입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미 미국은 유사한 사례에서 큰 재미를 본 적이 있다. 1979년 미국은 소련을 아프가니스탄 함정에 끌어들여서 10년간이나 엄청난 국력을 소모하게 하였고 이것이 소련의 붕괴를 촉진하였다.

이번 주에 나토와 미국의 국방 책임자가 잇따라 한국을 찾았다. 1.30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최종현 학술원 특별강연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바란다. 일부 국가가 교전 중인 국가에 무기 수출을 금지한 정책을 선회한 전례가 있으며 한국이 군사적 지원이라는 특정한 문제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라고 하였다. 1.31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연합뉴스 기고에서 “한국 안보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철통같으며 우리의 적과 경쟁자들은 만약 그들이 우리 중 한 나라에 도전할 경우 한미동맹 전체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점을 안다."라고 하였다.

나토의 맹주인 미국 측의 이런 언급은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재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면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라는 이야기이다. 현 정부가 이른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긴밀한 연대를 주장하며 나토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지지하고 인도적 지원을 하며 전후 피해 재건에 적극 참여하는 것 모두 좋으나 무기 지원만은 자제하여야 한다.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 되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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