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조선일보와 2시간 인터뷰…5개면 보도

부담스런 회견 피하고 '윤비어천가' 수구매체 골라

비판 의식 결여된 질문에 구체성 없는 답변 '맹탕'

"무슨 윤핵관이 있나" "처가에 대해 전방위 수사"

"이태원 참사 정무적 책임? 책임이 있어야 묻는 것"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신년인사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2023.1.2.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신년인사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2023.1.2.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고 대신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해 11월 21일 MBC 출입 기자의 '불미스러운 일'을 이유로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돌연 중단했던 윤 대통령은 2023년 신년사조차 기자들 없이 발표한 바 있다. 다수 출입 기자들과의 껄끄러운 문답은 피하는 한편, 평소 지면을 낯 뜨거운 '윤비어천가'로 채우는 대표적 친윤 수구 매체를 만만한 스피커로 선택함으로써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관측이다.

"시간이 없어서" 새해 기자회견을 생략(보류)한 것으로 알려진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3시 30분부터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조선일보와 2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선일보는 이를 2일자 신문 1면부터 5면에 걸쳐 보도했다. 그러나 비판 의식이 결여된 질문에 답변도 구체성 없는 해명이나 일방적인 홍보가 대부분이어서 알맹이가 없었다는 게 주된 평가다. 조선일보 측의 날카롭거나 집요한 추가 질문도 없었고 이렇다 할 치열한 논쟁도 없었다. 애초에 입맛에 맞는 매체를 고른 윤 대통령이 바랐던 전개였을 것이다.

남북 관계 악화와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한 국민들 불안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지만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 추진 의사에 관해 "정상회담을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다"면서도 "보여주기식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국민들도 식상해하지 않나"라고 뻔한 답변을 내놨다.

친미·친일 편중 외교로 관계가 심상치 않은 중국에 대해서는 "한중 간에는 얼마든지 서로 관계를 넓혀 경제적·문화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 많다"고 했으며, 일본에 대해서는 "징용 문제, 특히 일본 기업에 대한 현금화 문제만 해결되면 다방면에 걸친 한일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어떻게 관계를 풀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방법론에 관한 문답은 없었다.

야당과의 협치, 정치 보복적 검찰 수사의 문제에 대해서도 모호하거나 하나 마나 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인사 편중에 관한 질문엔 "글쎄 저는 사람 쓸 때 학교나 지역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잡아뗐고, 국민의힘 내 '윤심' 논란에 대해선 "여의도 정치를 내가 얼마나 했다고 거기에 무슨 윤핵관이 있고 윤심이 있겠나"라고 역시 딴청을 피웠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신년인사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의 건배 제의를 듣고 있다. 2023.1.2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신년인사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의 건배 제의를 듣고 있다. 2023.1.2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배우자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각종 허위 이력 의혹, 장모 최은순 씨를 둘러싼 여러 사기 의혹에 대한 수사가 미진하다는 비판 여론이 크지만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조국 장관 내정자에 대한 수사가 개시된 이후에 몇 년이 넘도록 제 처와 처가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뭐라도 잡아내기 위해서 무슨 지휘권 배제라고 하는 식의 망신까지 줘가면서 수사를 진행했다"고 도리어 '전방위적 수사'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진심 어린 사과와 시민분향소 방문을 바라는 유가족들의 요구에 대해선 일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반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을 두고 제기되는 정무적 책임론에 "글쎄 그게 정무적인 책임도 책임이 있어야 묻는 거다"라며 "과거에 대통령이 느닷없이 국면 전환 차원에서 인사를 하던 시절에도 책임을 물을 뭐가 있어야 했지, 그냥 사람을 바꾼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장관 등에게 책임도 없고, 물을 생각도 없다는 입장을 다시금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박 또한 전혀 없어서 조선일보가 윤 대통령의 확성기 노릇에 충실했던 대표적인 대목으로 꼽힌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대통령실 청사 1층 브리핑룸에서 참모진만 배석한 가운데 약 9분 동안 준비된 원고로 취임 첫 신년사를 읽으며 이른바 3대 개혁 추진 등 집권 2년차 국정 방향을 국민들에게 발표했다. 그러나 출입 기자들은 한 사람도 참석하지 못했고, 물론 별도의 질의응답도 없었다. 바쁜 업무 일정을 이유로 신년 기자회견도 열지 않기로 했다.

전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를 넉 달가량 남기고 있던 지난해 1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이유로 회견을 취소했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년 1월 중 신년사 발표와 신년 기자회견을 별도로 진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4~2016년 세 차례 신년 기자회견에서 현안에 직접 답했으며 국정농단 사태로 직무가 정지된 2017년 1월 1일에는 회견 대신 기자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안 한다고 맹비난했던 조선일보 2022년 1월 25일자 사설. 조선일보 홈페이지 화면 캡처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안 한다고 맹비난했던 조선일보 2022년 1월 25일자 사설. 조선일보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일 부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새해가 시작됐지만 이태원 참사의 아픔은 그대로인데 정부·여당은 참사가 이대로 잊히기를 바라는 것 같다"며 "대통령 신년사에서도 사과나 진상 규명 의지는 자취를 감췄다"고 개탄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당장 하루하루가 힘든 민생에 대해 단 한마디 언급조차 없는 무공감, 무책임, 무대책 신년사였다"며 "역대 모든 대통령이 집권 초기 진행했던 신년 기자회견도 거부한 채 오만과 독선, 불통과 아집의 국정운영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를 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국회 소통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취재진 없는 신년사로 신년 기자회견을 대신하더니, 특정 언론사와만 대문짝만한 신년 인터뷰를 했다"면서 "윤 대통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언론사에는 특혜를 주고,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사는 보복해 왔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신년 기자회견 패스는 국민 패싱, 언론 패싱"이라며 "대통령이 하네 마네 할 것이 아니라 국정 최고책임자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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