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감위의 자기 부정…“전경련 조건부 복귀 권고”

정경유착 고리 끊을지 확신 못 한다면서도

재가입 반대 않고 회장과 경영진에 공 넘겨

“정경유착 근절해야 할 준감위 존재 이유 없어”

“4대 그룹 전경련 복귀는 과거로 회귀하는 것”

“이재용 회장 재가입 권고 반드시 거부해야”

2023-08-18     장박원 에디터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 위원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복귀 재논의를 위해 열린 임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8일 오전 서울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8.18. 연합뉴스

“개인적으로 저는 앞으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활동을 안 하겠습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16년 12월 6일 국회 청문회에서 다짐했던 말이다. 그는 전경련에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런데 정경유착을 근절해야 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18일 이 회장의 말을 180도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삼성의 전경련 복귀를 조건부로 권고하기로 한 것이다.

전경련은 오는 22일 임시총회를 열어 명칭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바꾸고 신임 회장으로 류진 풍산 회장을 선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4대 그룹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삼성과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에 혁신안과 함께 재가입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삼성 준감위는 전경련 혁신의 구체적 내용과 향후 실천 절차, 회계 투명성 등 운영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 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최종 입장을 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경련 혁신안이 정경유착 고리를 확실하게 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틀 만에 조건부 복귀를 권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전경련은 지난 5월 정경유착 근절을 위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을 합병해 이름을 한경협으로 변경하고 글로벌 싱크탱크로 거듭나겠다는 게 골자다. 윤리경영위원회도 설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김병준 전 의원이 회장직무대행을 맡으면서 현 정부와 밀착하는 등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강제징용 피해배상에 부응해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함께 기금 조성에 나서기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표지석. 연합뉴스

삼성 준감위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권고해 2020년 출범했다. 재판부는 외부에 삼성을 감시, 통제할 준법 감시 독립기구를 설립하면 이를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이에 삼성은 곧바로 준감위를 출범시켰다. 이 때문에 준감위을 두고 이재용 회장을 형량 감량을 위해 급조된 기구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런 준감위가 전경련 복귀를 권고한 것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한 결정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국 국장은 “정경유착을 근절해야 할 준감위가 전경련에 손을 들어주고 책임 또한 회장과 이사회 등 경영진에 떠넘기는 듯한 재가입 권고는 준감위가 급조된 조직에 불과함을 거듭 확인한 것”이라며 “이번 결정으로 준감위은 그 존재 목적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질타했다.

삼성은 총수 가족의 승계를 위해 국정농단 사건에 적극 개입한 그룹이다. 이재용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21년 8월 가석방됐고 지난해 광복절 복권됐다.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사법적 특혜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불법 합병 사건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두 회자의 합병 과정에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에 찬성투표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2018년 국제투자분쟁(ISDS)을 제기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엘리엇 '일부 승소' 판정을 내리며 우리 정부에 1300억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법무부는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승소하지 못하면 세금으로 물어줘야 한다. 이 때문에 원인 제공자인 이 회장 등에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경련 국정농단 연루부터 삼성 준감위 권고까지.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전경련에 다시 가입하는 것은 어떤 이유와 조건을 내세워도 궁색할 뿐이다. 경실련은 “삼성이 전경련에 재가입하면 더 큰 국민적 지탄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재용 회장은 준감위의 전경련 재가입 권고를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경실련은 삼성 등 4대 그룹 회장에게 전경련 재가입을 묻는 공개 질의서를 발송했다. 경실련은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자발적으로 탈퇴하기로 한 만큼 전경련에 복귀하면 대국민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전경련과 재벌 총수들은 공생 관계였다. 시민단체들은 재벌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전경련의 자발적 해체를 촉구해왔다. 4대 그룹이 전경련에 복귀하는 것은 정경유착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다. 전경련이 아니라도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정부와 기업이 소통할 수 있는 경제단체는 많다. 정경유착 흑역사로 점철된 전경련이 다시 기업을 대표하는 경제단체 노릇을 하는 것은 퇴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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