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급변한 '다자주의' 세계

이 '시대 전환'을 바라보는 독일 총리와 서방의 세계관

‘자유롭고 민주적인 서방’이냐 ‘미국 패권 지배의 도구’냐

‘세계화’의 종말 아니라 ‘세계화의 특수단계’의 종말일 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베를린 연방총리청에서 회의를 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숄츠 총리는 지난 24일 기후활동가들이 베를린 국제공항 활주로에 손바닥을 접착해 공항 운영이 일정 기간 중단됐던 사건을 언급하며 기후를 보호하고 싶다면 지역공동체나 환경청 등의 공직에 진출하라고 말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베를린 연방총리청에서 회의를 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숄츠 총리는 지난 24일 기후활동가들이 베를린 국제공항 활주로에 손바닥을 접착해 공항 운영이 일정 기간 중단됐던 사건을 언급하며 기후를 보호하고 싶다면 지역공동체나 환경청 등의 공직에 진출하라고 말했다.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올라프 숄츠는 지금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독일 총리 숄츠의 시각은 독일이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관점, 나아가 EU 주요국들과 함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구성하고 있는 미국(북아메리카)의 시각과도 상통한다. 따라서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 놓을 수도 있다. 서방(유럽과 미국)은 지금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이 글은 <포린 어페어즈> 2023년 1-2월호에 실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기고문이다. 그 내용은 지난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그곳 텔레비전과 한 인터뷰를 수정 보완한 것이다.

이 글에서 숄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는 다극화된 다자주의 체제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본다. 이른바 ‘시대 전환(Zeitenwende)’, ‘획기적인 구조변화’다. 다자주의 세계는 ‘자유롭고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EU 등의 서방세계와 이에 대적하는 강권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세력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경쟁한다. 숄츠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에 제국주의를 복귀시킨’ 푸틴의 러시아를 강권주의 세력의 대표로 지목하면서 단호한 대결적 자세를 취한다.

숄츠가 얘기하는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행태는 무력으로 세계를 자의적으로 갈라 블록을 만들고 세력권을 형성해 분열시키는 것이다. 그는 그런 러시아와 그에 맞서는 서방세계의 대결적 구도를 ‘신냉전’의 도래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한다. 동서냉전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이후 약 30년 간의 세월을 역사상 최고의 평화·번영의 시대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는 숄츠가 분단과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신냉전’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숄츠가 이 시대를 ‘세계화의 종말’이 아니라 ‘세계화의 예외적인 단계의 종말’로 파악하는 것도 흥미롭다. 그에게 세계화는 좋은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돼야 하는 것이고, 지금 끝나가고 있는 것은 세계화 자체가 아니라 세계화의 특수한 단계일 뿐인 것이다.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시진핑의 중국에 대해 숄츠는 중국이 서방에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강권주의 쪽으로 점차 멀어져 가는 나라로 본다. 그럼에도 숄츠는 비록 비민주적인 체제의 국가일지라도 규칙에 토대를 둔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해, 러시아와는 달리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은 열어 두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규칙에 토대를 둔 국제질서란 결국 이제까지 세계를 지배해 온 서방적 가치와 질서를 의미한다. 따라서 서방적 가치와 질서를 존중한다면 체제 차이를 넘어 어떤 나라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숄츠도 이 글에서 말했듯이 이 서방적 가치와 질서를 두고 푸틴은 “미국의 세계 지배를 위한 도구”라고 비판했다. 결국 푸틴의 입장에서 보면 서방이야말로 세계를 블록화하고 세력권화해서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숄츠도 철저히 서방적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숄츠가 세계를 유럽·미국의 서방세계와 아프리카·아시아·카리브해·남미의 비서방세계라는 두 개의 세계로 선명하게 구분해 인식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숄츠는 강권주의 세력으로부터 서방적 가치를 지키고 확장하는 나라들의 중심에 독일이 서 있으며, 이를 위해 독일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방위산업을 진흥시켜야 한다며 독일의 재무장과 나토 및 유럽 연합방위군의 증강을 정당화한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맞서는 미국의 안보군사정책을 지지하지만, 유럽 자체의 군사력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숄츠는 또 자신이 집권 직후부터 에너지의 러시아 의존 탈피를 서둘러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에너지 수급의 다변화와 함께 2030년까지 독일 전력생산의 80% 이상을 재생에너지가 맡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한다.

숄츠가 꿈꾸는 EU는 “5억명의 자유로운 시민들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역내시장”이다. 이 꿈의 EU를 건설하기 위해 숄츠가 어떤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지, 이 글에서 그 편린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민들레>는 12월 8일 <독일 총리 “분단 경험 통해 신냉전 위험 특히 잘 알아”>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글을 요약 소개했다. 이번에는 숄츠 기고문 전체를 번역, 소개한다.

 

12월 3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집이 불타고 있는 모습. 러시아군은 헤르손주의 주도 헤르손에서 철수했지만 공격을 계속하고 있어 도시 생활이 정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2월 3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집이 불타고 있는 모습. 러시아군은 헤르손주의 주도 헤르손에서 철수했지만 공격을 계속하고 있어 도시 생활이 정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전문

글로벌 시대전환, 다극화 시대에 신냉전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올라프 숄츠

세계가 획기적인 구조변화(Zeitenwende, 시대 전환)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시대의 종지부를 찍었다. 경제적으로 강하고 정치적으로 확신에 찬 중국을 비롯한 새로운 강자들이 등장하거나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 새로운 다극적인 세계에서 서로 다른 나라와 정부 모델들이 힘과 영향력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독일은 유엔 헌장의 원칙들에 토대를 둔 국제질서를 옹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있다. 독일의 민주주의, 안전보장, 그리고 번영은 공동의 규칙에 대한 구속력에 의존하고 있다. 독일인들이 우리 동맹국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유럽 안보의 보증인, 유럽연합(EU) 내의 조정자 그리고 글로벌 문제들의 다자주의적 해결의 옹호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독일이 우리 시대의 지정학적 균열을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다.

획기적인 구조변화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 안보 문제 차원을 넘어서 진행되고 있다. 그 핵심적인 문제는, 점차 다극화해 가는 세계에서 유럽인들 그리고 유럽연합은 어떻게 독립적인 행위자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것이다.

독일과 유럽은 세계가 또다시 서로 다투는 블록들로 분열될 것이라는 운명론적 시각에 굴복하지 않고 규칙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지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독일의 역사는 파시즘, 강권주의, 제국주의 세력들에 맞서 싸우는데에 특별한 책임을 부여한다.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지정학적 경쟁의 시기에 둘로 갈라져 있었던 우리의 경험은 신냉전의 위험들에 대한 특별한 공감을 자아낸다.

세계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철의 장막이 내려진 이후 30년간은 비교적 평화롭고 번영한 시기였다. 기술적 진보는 전례없는 수준의 연결과 협력을 창출해 냈다. 국제무역의 성장, 글로벌 차원의 가치 및 생산망, 그리고 국경을 넘는 사람과 지식의 전례없는 교환은 10억의 인구를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전 세계의 가장 중요하고 용감한 시민들이 독재와 일당통치를 무너뜨렸다. 자유, 존엄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그들의 열망은 역사의 진로를 바꿨다. 두 번의 파멸적인 전쟁과 엄청난 고통-그 많은 부분은 내 나라 독일 때문에 일어났다- 뒤에 인류절멸 가능성의 그림자 속에서 긴장과 대립이 계속된 40여년의 세월이 이어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 마침내 더 탄탄한 세계질서가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독일인들은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용감한 동독인들에 의해 무너졌다. 불과 11개월 뒤에 선견지명이 있는 정치인들과 동서지역의 파트너들 지원 덕에 나라가 통일됐다. 전 독일총리 빌리 브란트가 장벽 붕괴 직후에 얘기했듯이, 마침내 “함께하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이 실현됐다.

그런 말은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가맹했던 나라들이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맹국이 되고 유럽연합 회원국이 됐다. 당시 조지 H. W. 부시가 공식화한 “유럽은 하나이고 모두 자유롭다”는 말은 더는 근거없는 희망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 새로운 시대에 러시아는 소련이 그랬던 것과 같은 적이 아니라 서방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군대를 줄이고 국방예산을 삭감했다. 독일에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의 모든 이웃들이 친구나 파트너가 됐는데 왜 50만이나 되는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해야 하나?

세계가 또다시 서로 경쟁하는 블록으로 분열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안보 및 국방 정책의 초점은 다른 긴급한 위협들 쪽으로 신속하게 옮겨갔다. 발칸의 전쟁들과 2001년의 9·11 공격,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등은 지역과 글로벌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나토 내의 연대는 유지됐다. 하지만 9·11공격으로 제5조, 나토의 상호방위 규약을 발동하기로 한 결정이 처음으로 내려졌고, 이후 20년 동안 나토군은 나란히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다.

독일의 재계는 역사의 새로운 진로 속에서 그들 나름의 결론을 도출했다. 철의 장막이 걷히고 전례없이 통합된 글로벌 경제는 특히 예전의 동방 진영 나라들뿐만 아니라 신흥 경제국들, 특히 냉전 시기에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임이 입증된 방대한 에너지 및 다른 자원 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에서 새로운 기회와 시장들을 열어 젖혔으며, 그것이 평화시기에 유망한 협력관계를 확장시켜 줄 것으로 보는 것이 적어도 초기에는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예전의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를 경험한 러시아 지도부는 베를린과 다른 유럽 나라들의 수도에 있는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산주의 지배체제의 평화로운 전복을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회로 보는 대신, 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참사”로 불렀다. 1990년대에 소련 해체 뒤 그 지역에서 일어난 경제 정치적 혼란들은 러시아 시민들이 오늘날까지 소련의 해체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상실감과 비통한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강권주의와 제국주의적 야망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그런 환경 속에서였다. 2007년에 푸틴은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에서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미국의 지배 도구일 뿐이라고 조롱하는 공격적인 연설을 했다. 그 다음해에 러시아는 조지아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다. 2014년에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합병했으며, 국제법과 모스크바 자신이 체결한 조약을 위반하고 동부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들에 군대를 파병했다. 그 뒤 크렘린은 군축조약들을 깎아내리고 군사력을 강화했으며,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들을 구금하고 살해했다. 시민사회를 탄압하고, 시리아의 아사드 체제를 지원하기 위해 야만적인 군사개입을 자행했다. 그리하여 푸틴의 러시아는 유럽으로부터, 그리고 협력과 평화로운 질서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길을 택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불법적으로 합병하고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분쟁을 일으킨 뒤 8년간, 독일과 유럽 및 G7의 국제 파트너들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정치적 독립을 보호하고, 러시아의 공세를 저지하면서 유럽의 평화를 회복하고 보존하는 일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선택한 길은 러시아에 대한 규제조치와 대화를 병행하는 정치 및 경제적 압력의 조합이었다. 독일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정전과 일련의 다른 조지들의 이행을 촉구하는 민스크 협정과 민스크 프로세스로 이어진 이른바 노르망디 포맷에 관여했다. 모스크바와 키이우 사이의 역행과 신뢰 결여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프랑스는 그 프로세스를 이행하게 했다. 하지만 수정주의국가 러시아는 외교를 통한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야만적인 우크라이나 공격은 제국주의의 유럽 귀환이라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현실을 야기했다. 러시아는 20세기의 가장 섬뜩한 군사적 수단들 일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 수만명의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이미 목숨을 잃었으며,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다치거나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고향을 버리고 폴란드 등 유럽 각국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그들 중 100만명이 독일에 왔다. 러시아의 포와 미사일, 그리고 폭탄들이 우크라이나의 집들과 학교들 그리고 병원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마리우폴, 이르핀, 헤르손, 이지움과 같은 곳들은 러시아의 범죄행위 그리고 가해자들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영원히 각인시킬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쟁이 몰고 온 충격파는 우크라이나 차원을 넘어섰다. 푸틴이 공격명령을 내렸을 때 그는 그 건설에 수십년의 세월이 걸린 유럽 및 국제 평화구조를 산산조각냈다. 푸틴의 지도 아래 러시아는 유엔 헌장에 새겨진 가장 기본적인 국제법 원칙들, 즉 국제정책 수단으로서의 무력사용 포기, 그리고 모든 나라의 독립과 주권, 영토보전 존중이라는 약속마저 무시했다. 러시아는 마치 제국처럼 행동하면서 이제 무력으로 국경을 다시 그어 세계를 또다시 블록과 세력권으로 분할하려 하고 있다.

세계는 푸틴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러시아의 보복적인 제국주의를 멈춰 세워야 한다. 지금 독일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우리 군에 대한 투자를 통해 유럽 방위산업을 강화하고 나토 동부지역에서 우리의 군사력을 보강하며, 우크라이나 군을 훈련시키고 무기를 제공함으로써 유럽에 대한 주요 안보 제공자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독일의 새로운 역할에는 새로운 전략문화가 필요하며, 우리 정부가 몇 개월 안에 채택하게 될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은 그것을 반영히게 될 것이다. 지난 3개월간 독일의 안보 및 군사장비에관한 결정들은 평화로운 유럽을 배경으로 해서 내려졌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와 우리의 동맹국들이 유럽에서 맞서야 할 위협들, 가장 임박한 것으로는 러시아의 위협들이 무엇이냐는 것일 것이다. 여기에는 동맹국 영토에 대한 잠재적 공격, 사이버전쟁, 그리고 푸틴이 그렇게 절묘하게 위협하진 않았던 희박한 핵공격 기회까지도 포함된다.

이런 도전들에 대처하는데 대서양 양안의 협력은 필수적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글로벌 차원의 강력한 협력 및 동맹 구축과 투자에 쏟는 노력은 찬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균형잡히고 탄탄한 대서양 양안 협력에는 독일과 유럽의 적극적인 역할 또한 요구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리 정부가 내린 최초의 결정은 우리의 군사력인 연합방위군(Bundeswehr)의 무장을 개선하기 위한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특별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 헌법까지 바꿨다. 이 결정은 1955년에 연합방위군이 창설된 이래 독일의 안보정책에서 일어난 가장 극명한 변화를 보여준다. 우리 군인들은 우리나라와 우리의 동맹국들을 지키는데 필요한 정치적 지원과 물품들, 그리고 역량들을 지원받게 될 것이다. 목표는 우리와 우리 동맹국들이 의지할 수 있는 연합방위군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독일은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투입할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독일사회의 새로운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오늘날 대다수 독일인들은 적들을 막고 자국과 동맹국들을 지킬 수 있는, 지킬 준비가 돼 있는 군대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독일인들은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 할 것이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독일은 우크라이나의 최대 민간투자 및 정부 지원 국가였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적, 인도적 지원을 강화했으며 G7 의장국으로서 국제적 대응을 조율하는 일을 도왔다.

획기적인 구조변화는 또 수십년간 잘 다져진 독일의 무기수출 정책에 관한 원칙을 독일정부가 재고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독일의 최근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두 나라가 싸우는 전쟁에 무기들을 수출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교류하면서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두었다. 그것은 독일은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포와 방공 시스템이며, 독일은 우리의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의 조율 속에 바로 그것을 지금 제공하고 있다. 독일의 우크라이나 지원에는 대전차 무기들, 병력수숭 장갑차량, 대공포, 그리고 미사일과 대(對)포병 레이더시스템도 포함된다. EU의 새로운 임무는 5000명의 1개 여단 병력을 포함한 1만 5000명의 우크라이나 병사들을 독일에서 훈련시키는 것이다.

체코 공화국, 그리스, 슬로바키아, 그리고 슬로베니아는 약 100대의 소련 시절 주력 전차들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해 왔거나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신에 독일은 그들 나라에 혁신적인 독일 전차들을 제공할 것이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군이 잘 알고 있는 탱크들을 제공받아 사용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기존 병참과 유지정비 계획에 쉽게 통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토의 행위가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대립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지만, 동맹은 더 이상의 러시아군 공격은 확실히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독일은 나토의 동부지역에 상당수의 병력을 증파해서 리투아니아에서 독일이 이끄는 나토의 전투 부대를 강화하고 그 나라의 안보 담당 여단을 지정했다. 독일은 또한 슬로바키아의 나토 전투부대에도 병력을 보내고 있고, 에스토이나와 폴란드에선 독일 공군이 영공 감시와 확보를 지원하고 있으며, 발트해에서는 독일 해군이 나토의 억제 및 방위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독일은 또 기갑사단, 그리고 (고도의 대비태세를 갖춘) 상당한 공군 및 해군 자산을 비상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동맹의 역량을 개선하기 위한 새 나토군 모델에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독일은 제5세대 F-35 전투기 구입을 비롯한 나토의 핵 공유협정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우리가 모스크바에 보내는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우리는 어떤 공격에 대해서도 나토의 모든 영토를 수호할 결의가 돼 있다. 우리는 동맹의 어느 한 나라에 대한 공격도 동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나토의 엄숙한 서약을 지킬 것이다. 우리는 또 핵무기에 대한 러시아의 최근 언급(rhetoric)에 대해 그것이 무모하고 무책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 11월에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 중국 주석과 나는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런 끔직한 무기의 사용은 인류가 올바르게 그어 놓은 금지선(red line)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가 모스크바에 보내는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우리는 나토의 모든 영토를 수호할 결의가 돼 있다. 푸틴이 저지른 수많은 오산 중의 하나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자신의 적들간의 관계를 손상시킬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EU와 대서양 양안 동맹은 이전보다 더 강력해졌다. 러시아가 직면하고 있는 전례없는 경제적 제재만큼 이를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력이 증대됨에 따라, 전쟁 초기부터 이 제재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했다. 러시아가 평화협상의 조건을 지시하려 하는 한 단 하나의 제재도 해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푸틴은 깨달아야 한다.

G7 국가의 모든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과 주권을 존중하는 올바른 평화를 추구하는 젤렌스크의 자세를 칭찬해 왔으며, 장차 자국을 수호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역량을 보호할 것이다.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통해 독일은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전쟁 이후 체결할 평화협정의 일부로 유지하는 방안에 합의할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러시아가) 엉터리 국민투표로 서투르게 위장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불법적인 병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전쟁은 그 침략에 반대하는 EU와 나토, 그리고 G7을 단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결국 러시아를 손상시키게 될 경제 및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촉진시켰으며, 이미 진행되고 있던 청정 에너지로의 중요한 전환을 고양시켰다. 2021년 12월에 독일 총리가 되자 마자 나는 보좌관들에게,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할 경우에 대비한 우리의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다. 우리가 러시아 가스 공급에 위태롭게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즉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시작하기 며칠 전에 독일은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공급을 크게 늘릴 노르드스트림 2 파이프라인에 대한 인증을 중단했다. 2022년 2월에 이미 유럽 바깥의 글로벌 시장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으며, 몇 개월 내에 최초의 부유식 LNG터미널이 독일 해안에서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돼 있었다.

푸틴이 독일과 나머지 유럽 지역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에너지를 무기화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최악의 시나리오는 곧 실현됐다. 하지만 독일은 지금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완전히 중단했고, EU의 러시아산 석유 수입은 곧 중단될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됐다. 유럽 안보는 에너지 공급자와 공급선의 다변화, 그리고 에너지 독립을 위한 투자에 달려 있다. 9월에 노르드스트림 파이프라인의 파괴는 그 메시지를 각인시켰다.

독일과 유럽 전체의 잠재적인 에너지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독일정부는 석탄화력 발전소를 전력망에 다시 포함시키고, 독일 원전을 원래 계획보다 더 오래 가동할 수 있게 했다. 우리는 또 민간 가스 비축시설들에게 최소비축 수준을 점차 높여 가도록 명했다. 지난해의 지금 시기에 비축량은 대단히 낮았으나, 오늘날 우리의 비축시설은 완전히 차 있다. 이는 독일과 유럽이 가스 부족 없이 겨울을 나기 위한 좋은 토대다.

러시아의 전쟁은 또 이런 야심찬 목표들을 달성하는 것이 우리의 안보와 독립, 그리고 유럽의 안보와 독립을 수호하는데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화석 에너지원료에서 벗어나면 전기와 그린 수소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며, 독일은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대대적으로 가속함으로써 거기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하다. 2030년까지 독일인들이 사용하는 전기의 적어도 8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할 것이며, 2045년까지 독일은 온실가스 배출 제로 또는 “기후 중립”를 달성하게 될 것이다.

푸틴은 유럽을 세력권들로 분할하고, 세계를 강대국들과 종속국가들로 이뤄진 블록들로 나누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의 전쟁은 오히려 EU를 앞으로 더 나아가게 만들었을 뿐이다. 2022년 6월,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에서 EU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에 “후보국” 지위를 부여했으며, 조지아를 장차 유럽에 포함시킬 것임을 재확인했다. 우리는 또 서부 발칸지역의 6개 국가 모두를 결국 EU에 가입시킨다는 데에 동의했으며, 그것은 나 개인적 목표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서부 발칸국들을 위한 이른바 베를린 프로세스를 재가동한 이유인데, 이는 그 지역의 협력을 강화하고 그들 나라와 시민들을 더 결속시켜 그들의 EU 가입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EU의 확장과 새로운 멤버들의 가입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잘못된 희망을 안겨 주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그러나 길은 열려 있고, 목표는 분명하다. EU를 5억의 자유로운 시민들로 구성되는, 세계 최대의 역내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EU는 무역과 성장, 기후변화, 그리고 환경보호에 관한 글로벌 표준을 확립하고, 선도적인 연구소들과 혁신적인 기업들을 유치하게 될, 전례없는 사회복지와 공공 인프라를 갖춘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들로 이뤄진 한 가족이 될 것이다.

EU가 그런 목표를 향해 나아갈수록 적들은 회원국들 사이를 계속 이간하려 할 것이다. 푸틴은 EU를 정치적 행위자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결국 EU-법치에 토대를 둔 자유롭고,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국가들의 연합-는 제국주의적이며 독재적인 그의 도둑체제(kleptocracy)의 안티테제다.

푸틴 등은 가짜 정보 캠페인과 불법적인 영향력 행사를 통해 열리고 민주적인 우리 체제가 우리 자신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려고 애쓸 것이다. 유럽 시민들은 매우 다양한 시각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올바른 길을 놓고 토론하고 때로는 언쟁을 벌인다. 특히 지정학적, 경제적 도전의 시기에 그렇다. 그러나 우리 열린 사회의 이런 특성들은 버그(bugs)가 아니라 특징이다. 그런 것들은 민주적 의사결정의 본질적 요소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목표는 분열로 유럽을 외부개입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 중요한 지역들에서 단결하는 것이다. 그 임무에 중요한 것은 강력하고 자주적인 EU라는 동일한 비전을 지닌 독일과 프랑스의 더욱 긴밀한 협력이다.

더 넓게 보면, EU는 낡은 분쟁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해결책들을 찾아야 한다. 유럽의 이민과 재정정책이 중요한 사례들이다. 사람들은 계속 유럽으로 올 것이며, 유럽은 이민자들이 필요하다. 따라서 EU는 실용적이고 그 가치에 걸맞은 이민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불규칙적인 이민을 줄이는 동시에 합법적인 이민통로를 강화하는 것인데, 우리의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숙련 노동자들(skilled workers)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재정정책의 경우 EU는 높은 에너지 가격이 야기한 지금의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복구·회복 기금을 설립했다. EU는 또 특정한 조치들에 반대하는 개별 국가들의 거부권을 배제함으로써 의사결정 과정에서 동원되는 이기적인 차단전술도 타파해야 한다. EU가 확장되고 지정학적 행위자가 되면 빠른 의사결정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그 때문에 독일은 EU의 대외정책과 조세 분야처럼 지금 만장일치제를 채택하고 있는 분야들에서 다수결에 따른 의사결정 관행을 점차 늘려 가자고 제안해 왔다.

유럽은 또 자체 안전보장을 위한 더 큰 책임을 계속 떠맡아야 하며, 방위능력을 확립하기 위한 조율되고 통합된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EU 회원국들의 군대는 각기 다른 무기 시스템들을 너무 많이 운용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실질적이고 경제적인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EU는 역내의 관료주의적인 절차를 바꿔야 하는데, 여기에는 용기있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독일을 비롯한 EU 회원국들은 공동으로 만든 군 시스템들의 수출에 관한 국가정책과 규칙들을 바꿔야 한다.

유럽이 발전하기 위해 시급히 바꿔야 할 분야 중의 하나는 항공 및 우주 방위분야다. 이는 독일이 향후 몇년간 추가 능력을 확보해 나토군 기본체제의 일부로서 방공체제를 강화하려는 이유다. 나는 이 구상을 우리 유럽 이웃나라들에 개방했고, 그 결과 지난 10월에 다른 14개 유럽국가들이 참여한 유럽방공망구상(European Sky Shield Initiative)으로 결실을 맺었다. 유럽에서 통합방공체제는 각자 방공체제를 갖추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가격 대비 효율도 높을 것이며, 이는 나토 내에 유럽의 기둥을 강화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좋은 예를 제공한다.

나토는 유럽·대서양 안보의 궁극적인 보증자이며, 번영하는 두 민주국가인 핀랜드와 스웨덴이 회원국으로 추가돼야 그 힘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나토는 또한 유럽 회원국들이 EU 틀 내의 방위구조들 사이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갖기 위해 각자가 앞으로 나아갈 때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침략전쟁이 시대전환을 촉발시켰을 수도 있지만, 그 구조적 변화는 훨씬 더 깊다. 일부 사람들이 예언했듯이 역사는 냉전과 더불어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국제질서의 양극화 시대의 끝머리에 있다고 본다. 그들은 새로운 냉전이 다가오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미국과 중국이 대결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세계화의 예외적인 단계의 종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COVID-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외부 충격으로 가속되긴 했지만 전적으로 그것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닌 역사적인 전환이다. 그 예외적인 단계에서 북아메리카와 유럽은 30년간의 안정적인 성장과 높은 고용률, 낮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했으며, 미국은 결정적인 세계의 강대국이 됐고 그런 역할은 21세기에도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포스트 냉전 단계에서 중국 또한 오랜 과거의 세계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글로벌 플레이어가 됐다. 중국의 흥기가 중국을 반드시 고립시키거나 협력을 억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커가는 힘이 아시아와 그 너머에 대한 헤게모니 요구를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나라도 다른 어떤 나라의 뒷마당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아시아와 다른 지역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럽에도 적용된다. 최근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나는 유엔 헌장에 새겨져 있는 것과 같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개방적이고 공정한 무역에 대한 확고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유럽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통해 독일은 유럽과 중국 회사들에게 공정한 경쟁의 장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중국은 이런 점에서는 거의 하는 일이 없고, 눈에 띄게 개방에서 벗어나 고립쪽으로 향하고 있다.

베이징에서 나는 또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인권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중국의 접근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본권과 자유의 존중은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준수하기로 맹세한 만큼 결코 개별 국가들의 “내부 문제”가 될 수 없다.

중국과 북아메리카 및 유럽의 국가들이 세계화의 새로운 단계의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가는 한편으로, 지난 시기에 물품 제조와 값싼 원료로 예외적인 성장을 이룩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 카리브해,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이제 점차 더 번창하면서 자원과 상품, 서비스에 대한 그들 자신의 수요를 갖게 됐다. 이들 지역은 세계화가 제공하는 기회를 붙잡고 그들의 커가는 경제와 늘어나는 인구에 걸맞게 글로벌 사안들에 대한 더 강한 역할을 요구할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 그것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의 시민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국제질서에 대한 이들 지역의 더 많은 참여와 통합을 장려해야 한다. 이것이 다극적인 세계에서 다자주의를 존속시키는 최선의 길이다.

이것이 독일과 EU가 아프리카, 아시아, 카리브해, 남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과의 새로운 협력관계에 투자하고 기존의 관계를 확장시키는 이유다. 그들 중 다수는 우리와 기본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도 민주주주의 국가다. 이 공통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들을 강권적인 국가들에 대항하게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 아니라-그런 대항은 새로운 글로벌 갈라치기에 기여할 뿐이다-민주적 가치와 시스템들을 공유하는 것이 21세기의 새로운 다극적인 현실에서 우리가 공통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공통의 목표들을 달성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몇 년 전에 했던 주장을 다른 말로 표현하기 위해 자본주의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북한과 한줌의 다른 국가들을 제외하고) 그러나 자본주의가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조직됐느냐, 아니면 강권주의적인 방식으로 조직됐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COVID-19에 대한 글로벌 대응을 예로 들어 보자. 팬데믹 초기에 어떤 사람들은 강권주의 국가들이 더 능숙하게 위기관리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 국가가 장기계획을 더 잘 짤 수 있고 더 신속하게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권주의 국가들의 팬데믹 기록들은 그런 관점을 지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COVID-19 백신과 약물치료들은 모두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개발됐다. 더욱이 강권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민주주의 국가들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정치 지도자들을 선택함으로써 자기 교정 능력을 갖게 된다. 우리 사회와 의회, 그리고 자유로은 언론에서의 끊임없는 논의와 문제제기는 때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우리 시스템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 준다.

중국의 흥기는 베이징을 반드시 고립시키거나 협력을 억제하진 않는다.

자유, 평등, 법치, 그리고 모든 인간의 존엄은 서구에서 전통적으로 이해돼 온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 가치들이다. 그보다는 세계의 모든 시민들과 정부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고, 유엔 헌장은 그 전문에 그것이 기본적인 인권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독재적이고 강권주의적인 체제들은 그런 권리와 원칙들을 종종 어기고 부정한다. 그런 것들을 지키기 위해 독일을 비롯한 EU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정의된 서구 바깥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과거에 우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해, 남아메리카의 국가들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너무나 자주 우리의 말은 행동으로 뒷받침되지 못했다. 이것은 바꿔야 한다. 독일이 G7 의장국일 때 이 그룹은 지금 G20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와 긴밀하게 의제(agenda)를 조정했다. 우리는 또 아프리카연합(Arica Union) 의장국인 세네갈과도 깊은 논의를 했고,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 공동체 의장국인 아르헨티나, 우리의 G20 파트너인 남아프리카, 그리고 내년에 G20 의장국이 될 인도와도 숙의했다.

결국 다극적 세계에서 대화와 협력은 민주적인 안전지대 너머로 확장돼야 한다.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은 “민주적 제도들은 갖추고 있지 않지만 규칙에 기반한 국제체제 위에 서 있고 또 그것을 지지하는 나라들”에 관여할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들 나라와 협력해서 권력을 규칙으로 묶고 러시아의 침략전쟁과 같은 수정주의 행동들에 대적하는 글로벌 질서를 옹호하고 지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은 실용주의와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민주적 자유를 향한 여정은 퇴행과 실수들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특정한 권리와 원칙들은 몇 세기 전에 확립되고 수용됐다. 자의적인 구금을 막는 출정영장이 그런 기본권 중의 하나이며, 그것을 최초로 인정한 것은 민주적인 정부가 아니라 영국의 절대주의 군주 찰스 2세였다. 마찬가지로 이웃 나라의 소유물을 강제로 빼앗을 수 없다는 기본원칙도 중요하다. 이런 기본적인 권리와 원칙들에 대한 존중은 모든 나라들이 자국 내 정치 시스템이 어떠하든 반드시 지켜야 한다.

포스트 냉전 시절 초기에 대다수 세계가 경험한 것과 같이 인류역사상 비교적 평화롭고 번영했던 시기가, 야만적인 힘이 규칙을 지배하던 역사의 일반적 기준으로 볼 때 드문 막간이거나 단순한 일탈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침략과 제국주의의 조류를 되돌릴 수 있다. 오늘날의 복잡하고 다극적인 세계는 이런 작업을 더 도전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독일과 EU의 파트너들, 미국, G7과 나토는 우리의 열린 사회들을 보호하고 우리의 민주적 가치들을 옹호해야 하며, 우리 동맹국들과 협력관계들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세계를 또다시 블록들로 나누려는 유혹을 피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협력관계를 실용적으로 이데올로기적 맹목 없이 쌓아 올리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밀접하게 상호연결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평화와 번영,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고방식과 다른 도구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고방식과 도구들을 개발하는 것이 결국 획기적인 구조변화(Zeitenwende)가 의미하는 모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